‘갇혀 사는’ 동물들의 반란 막전막후

관람객도, 사육사도 위험하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더 이상 진짜 동물이 아니다”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말했다. 하지만 동물은 자신의 타고난 본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할 동물원. 불과 2년 전 호랑이에 물린 사육사가 숨진 데 이어 또 다시 맹수에 의한 동물원 사육사 사망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낮에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에 물려 숨진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 맹수마을에서 사육사 김모(52)씨가 사자 방사장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내실 소방점검 중이던 동료직원이 발견했다. 사고는 오후 1시에 20분간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끝나고 김씨가 방사장에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면서 발생했다.

방사장 혼자 정리
사자에 물려 숨져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당시 곁에는 암수 사자 한 쌍이 있었다. 사자가 갇혀 있어야 할 내실 4개 중 1개의 문이 열린 상태였다. 김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방사장에서 김씨가 하의가 벗겨진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주변을 암수 사자 한 쌍이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했다.
 
김씨를 공격한 사자는 2006년생 수컷과 2010년생 암컷으로, 두 마리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체 번식한 종이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당시 얼굴과 우측 목, 양쪽 다리에는 물린 것으로 보이는 깊은 이빨 자국이 발견됐다. 종아리와 넓적다리 근육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사자들은 내실 문이 열리면 방사장에서 내실 안으로 스스로 이동하도록 훈련돼 있다. 사육사는 사자들을 모두 내실로 몰아넣고 내실 문을 잠근 뒤 방사장에 들어가 청소 등을 한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CCTV 분석 결과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내실 문을 미처 닫지 않은 김씨가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사장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사장은 내실 1, 2 로 바로 앞쪽에 있고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문이 있다. 방사장에서 훈련 등이 끝나면 문을 통해 바로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잇단 인명사고…안전불감증 동물원
“안전조치 대책 마련” 또 뒷북 대책
 
김씨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사자 두 마리를 내실로 유인했다. 김씨는 사자가 좋아하는 내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실 1, 2문을 모두 열었다. 사자 두 마리는 모두 내실 2로 들어갔다. 김씨는 내실 2에 있던 사자 두 마리를 다시 내실 1로 옮겼고 열었던 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실 2의 문은 닫았으나 내실 1의 문을 닫지 않았다. CCTV를 살펴보면 내실 2의 문을 닫는 모습은 보이나 내실 1의 문을 닫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 동물원 측은 사자 우리를 폐쇄하고 사자를 완전히 격리 조치했다. 어린이대공원은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지난 8일 이후 동물원 전체를 폐쇄하는 임시휴장에 들어가 시민 관람객은 없었다. 김씨는 사육사 경력 20년에 맹수사육만 3년째 맡아왔다고 대공원 측은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고 원인규명을 철지히 하는 동시에 예우에 맞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은 14일 “서울시설공단 인사규정에 따라 고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 한다”며 “한 직급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는 CCTV가 있지만 사자 두 마리가 30여 분간 방사장을 떠도는 상황을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관제센터 관리와 119 늑장신고 등 안전관리 수칙 부재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숨진 사육사는 이날 오후 2시22분 방사장 청소를 위해 방사장에 들어가 1분 후 사자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사육사가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2시34분. 소방담당 직원이 소방점검을 위해 사자 방사장을 찾았을 때였다. 어린이대공원 CCTV관제센터는 사자 방사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자 방사장에는 동물 움직임에 따라 촬영되는 CCTV 한 대가 가동중이었다. 소방담당 직원은 방사장 출입문을 닫은 뒤 인근 다른 사육장 동료에게 알렸다. 오후 2시36분이 돼서야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다른 사육사 4명이 오후 2시37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2시47분에 수의사가 사고현장을 확인한 뒤 119에 신고했다.    
 
결국 CCTV관제센터는 소방담당 직원이 최초 발견할 때까지 30여 분간 방사장에서 떠도는 사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이 대공원 관계자가 “CCTV담당 직원이 방사장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30분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린이대공원 측
사실상 방치 지적
 
어린이대공원 측은 또 김씨를 방치한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최초 무전으로 연락 받고 동물을 마취해 제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사람을 먼저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신고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맹수들의 공격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대 수의학 신남식 교수는 YTN과 인터뷰에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연상태와 달리 사육공간이 좁아 운동량이 적고 무료함을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놀잇감을 넣어주거나 먹이를 숨겨 활동성을 높여 건강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활동이다”고 반박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향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동물 내실 출입문의 개폐 여부 확인과 사육관리 동선상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맹수 퇴치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봉 등 개인 안전 장구류를 추가로 확보해 유사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매뉴얼에는 ‘맹수는 반드시 내실 입실 후 마릿수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방사장에 들어간다’ ‘100% 안전한 상태에서만 작업하며 항상 침착하게 행동한다‘ 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3년 11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보름 만에 사망한 사건과 판박이다. 사고 발생 옆 휴게음식점 주인이 혼자 쓰러진 사육사를 최초로 발견하고 근처 동물사 사육사에게 연락했다. 현장에 사육사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번 사고와 똑같이 방사장 문이 열린 채 호랑이가 나와 있고 사육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1987년 서울시에 입사한 20년차 베태랑 사육사다.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방사장 안전관리를 위해 사육 방사장 별 한 개씩 CCTV를 설치했다. 개폐시 알림 장치와 사육사 이동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여 관리자의 안전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는 매일 안전수칙을 읽고 근무에 임하도록 매뉴얼을 바꿨으며, 우리에 들어갈 때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상시 무전기를 휴대하도록 했다. 특히나 당시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2인 1조로 근무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며 “앞으로 사고방지를 위해 반드시 2인1조 근무를 철칙으로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숨진 김씨는 혼자 근무를 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과천 어린이대공원은 자기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굳이 과천 서울대공원의 매뉴얼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모두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동물원이다.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 이 때문에 어린이대공원의 설명은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 업무 일반 수칙’에는 <사육사는 안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단 한 번의 실수나 무관심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동물사 출입문은 반드시 잠금장치를 하고, 열쇠는 근무자가 소지하며 퇴근시 당직근무자에게 인계해 동물원 열쇠함에 보관한다><동물사 순찰 및 청소 시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이외에도 사육사 업무 일반수칙은 10여가지나 된다.
 
하지만 이날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은 동료 사육사가 휴가를 낸 상태여서 김씨 혼자 근무했다는 것이 어린이 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사육사 두 명이 대부분 맹수를 관리하다 보니 휴무일 등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사육사 한 명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숨진 사육사 김씨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변을 당하고 홀로 방치됐다. 

“타고난 본능은
거부할 수 없다”
 

이날 김씨는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도 소유하지 않았다. 여론은 어린이대공원은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에 준하여 운영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이 평소 김씨에게 사육사 관리 수칙 등을 정확하게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비극의 현장,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 들어선 김씨는 혼자였다. 열린 문도 무심코 지나쳤고 맹수를 발견하고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쓰러지고 난 뒤에도 목숨이 오가는 천금같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의 CCTV 판독 결과 발표대로 이번 사고 원인이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가 있던 내실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명의 사육사가 크로스체킹을 했을 경우 내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었다. 
 
왜 어린이대공원은 맹수사에서 2인1조 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운영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해명은 어린이대공원은 사육사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동선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전하다는 구조는 이번 사고처럼 부주의 한번에 무너질 만큼 허약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동물원은 현재 96종 505마리의 동물을 14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다. 맹수사 사육사는 2명뿐이다. 하루도 쉬지않고 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함께 근무할 수는 없다.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국 사육사를 증원해야 하는데, 공기업인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인력증원은 제약이 많다. 증원하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사육사를 단기간에 키우기는 어렵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동물전염병이 돌 때마다 휴장해 관람객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적자액도 매년 50억∼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육사 매뉴얼에서도 2인1조 근무제는 논란이 된다. 서울대공원은 2013년 사육사가 호랑이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매뉴얼을 고쳤으나 어린이대공원 매뉴얼에는 여전히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이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이 같은 서울시 산하지만 조직 성격이나 운영주체가 다르고 업무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공원은 서울시가 사업소 형태로 운영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을 직영하고 놀이공원인 서울랜드는 민간에 위탁을 하는 형태다. 직원 신분도 공무원이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가 위탁을 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직원도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하는 일은 거의 같은데 조직은 별개인 셈이다.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이 운영방식을 바꿔도 어린이대공원이 굳이 따라가지 않게 되는 배경이다.
 
스트레스 극에 달한 
동물들 갈수록 포악
 
이 때문에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이 안된다면 활발한 연계 업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실제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통합은 서울대공원 호랑이 참사 후 구성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서도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자 박원순 시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동물원 관련 법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원법’이 발의 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내 동물의 사육환경을 향상시키는 내용이다. 사육환경을 개선해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면 관람객이나 사육사에 대한 공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동물원법은 그동안 주 소관 부처를 어디로 하냐는 문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으로 표류했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환경부가, 동물보호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해양수산부가 각각 따로 관리하고 있다.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결국 해당 법은 환경부 소관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금은 동물원 시설관리 및 소속 동물의 사육조건 등을 규정한 법령이 전무한 상태다. 동물보호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시행령이 전체 동물의 관리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원의 설립 규정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제각기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 규정한 법령
아직 전무한 상태
 
동물원법은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과 사육동물의 관리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동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원법이 통과될 경우 사육의 편의 등을 위해 전기충격기, 채찍, 족쇄 등을 사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또 동물의 개체 수, 폐사, 질병의 발생에 관한 현황 등 사육현황을 매년 2회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육사 죽인 사자,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동물원에서 ‘사고 사자들’에 대해 사고 원인과 사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2년 전 비슷한 참극을 일으켰던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는 현재 징계 중이다.
2013년 11월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과천 서울대공원의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지난해 5월 개장한 ‘백두산 호랑이 숲’ 내 60∼70평 정도의 공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사육사를 물어 죽인 호랑이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일부에서는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측면에서는 2인1조 근무제를 어기고, 호랑이를 작은 여우우리에 수용하는 등 동물원의 관리 책임도 커 호랑이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여론도 강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시베리아 호랑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동물원에서 비슷한 사고가 생겼을 경우를 보면 상황이 위급하면 현장에서 사살하기도 한다. 2013년 제주도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물어 죽인 반달곰 두 마리의 경우 사살됐는데 현장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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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