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사는’ 동물들의 반란 막전막후

관람객도, 사육사도 위험하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더 이상 진짜 동물이 아니다”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말했다. 하지만 동물은 자신의 타고난 본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할 동물원. 불과 2년 전 호랑이에 물린 사육사가 숨진 데 이어 또 다시 맹수에 의한 동물원 사육사 사망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낮에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에 물려 숨진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 맹수마을에서 사육사 김모(52)씨가 사자 방사장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내실 소방점검 중이던 동료직원이 발견했다. 사고는 오후 1시에 20분간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끝나고 김씨가 방사장에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면서 발생했다.

방사장 혼자 정리
사자에 물려 숨져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당시 곁에는 암수 사자 한 쌍이 있었다. 사자가 갇혀 있어야 할 내실 4개 중 1개의 문이 열린 상태였다. 김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방사장에서 김씨가 하의가 벗겨진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주변을 암수 사자 한 쌍이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했다.
 
김씨를 공격한 사자는 2006년생 수컷과 2010년생 암컷으로, 두 마리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체 번식한 종이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당시 얼굴과 우측 목, 양쪽 다리에는 물린 것으로 보이는 깊은 이빨 자국이 발견됐다. 종아리와 넓적다리 근육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사자들은 내실 문이 열리면 방사장에서 내실 안으로 스스로 이동하도록 훈련돼 있다. 사육사는 사자들을 모두 내실로 몰아넣고 내실 문을 잠근 뒤 방사장에 들어가 청소 등을 한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CCTV 분석 결과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내실 문을 미처 닫지 않은 김씨가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사장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사장은 내실 1, 2 로 바로 앞쪽에 있고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문이 있다. 방사장에서 훈련 등이 끝나면 문을 통해 바로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잇단 인명사고…안전불감증 동물원
“안전조치 대책 마련” 또 뒷북 대책
 
김씨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사자 두 마리를 내실로 유인했다. 김씨는 사자가 좋아하는 내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실 1, 2문을 모두 열었다. 사자 두 마리는 모두 내실 2로 들어갔다. 김씨는 내실 2에 있던 사자 두 마리를 다시 내실 1로 옮겼고 열었던 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실 2의 문은 닫았으나 내실 1의 문을 닫지 않았다. CCTV를 살펴보면 내실 2의 문을 닫는 모습은 보이나 내실 1의 문을 닫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 동물원 측은 사자 우리를 폐쇄하고 사자를 완전히 격리 조치했다. 어린이대공원은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지난 8일 이후 동물원 전체를 폐쇄하는 임시휴장에 들어가 시민 관람객은 없었다. 김씨는 사육사 경력 20년에 맹수사육만 3년째 맡아왔다고 대공원 측은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고 원인규명을 철지히 하는 동시에 예우에 맞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은 14일 “서울시설공단 인사규정에 따라 고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 한다”며 “한 직급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는 CCTV가 있지만 사자 두 마리가 30여 분간 방사장을 떠도는 상황을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관제센터 관리와 119 늑장신고 등 안전관리 수칙 부재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숨진 사육사는 이날 오후 2시22분 방사장 청소를 위해 방사장에 들어가 1분 후 사자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사육사가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2시34분. 소방담당 직원이 소방점검을 위해 사자 방사장을 찾았을 때였다. 어린이대공원 CCTV관제센터는 사자 방사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자 방사장에는 동물 움직임에 따라 촬영되는 CCTV 한 대가 가동중이었다. 소방담당 직원은 방사장 출입문을 닫은 뒤 인근 다른 사육장 동료에게 알렸다. 오후 2시36분이 돼서야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다른 사육사 4명이 오후 2시37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2시47분에 수의사가 사고현장을 확인한 뒤 119에 신고했다.    
 
결국 CCTV관제센터는 소방담당 직원이 최초 발견할 때까지 30여 분간 방사장에서 떠도는 사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이 대공원 관계자가 “CCTV담당 직원이 방사장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30분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린이대공원 측
사실상 방치 지적
 
어린이대공원 측은 또 김씨를 방치한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최초 무전으로 연락 받고 동물을 마취해 제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사람을 먼저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신고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맹수들의 공격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대 수의학 신남식 교수는 YTN과 인터뷰에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연상태와 달리 사육공간이 좁아 운동량이 적고 무료함을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놀잇감을 넣어주거나 먹이를 숨겨 활동성을 높여 건강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활동이다”고 반박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향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동물 내실 출입문의 개폐 여부 확인과 사육관리 동선상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맹수 퇴치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봉 등 개인 안전 장구류를 추가로 확보해 유사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매뉴얼에는 ‘맹수는 반드시 내실 입실 후 마릿수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방사장에 들어간다’ ‘100% 안전한 상태에서만 작업하며 항상 침착하게 행동한다‘ 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3년 11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보름 만에 사망한 사건과 판박이다. 사고 발생 옆 휴게음식점 주인이 혼자 쓰러진 사육사를 최초로 발견하고 근처 동물사 사육사에게 연락했다. 현장에 사육사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번 사고와 똑같이 방사장 문이 열린 채 호랑이가 나와 있고 사육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1987년 서울시에 입사한 20년차 베태랑 사육사다.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방사장 안전관리를 위해 사육 방사장 별 한 개씩 CCTV를 설치했다. 개폐시 알림 장치와 사육사 이동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여 관리자의 안전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는 매일 안전수칙을 읽고 근무에 임하도록 매뉴얼을 바꿨으며, 우리에 들어갈 때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상시 무전기를 휴대하도록 했다. 특히나 당시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2인 1조로 근무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며 “앞으로 사고방지를 위해 반드시 2인1조 근무를 철칙으로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숨진 김씨는 혼자 근무를 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과천 어린이대공원은 자기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굳이 과천 서울대공원의 매뉴얼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모두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동물원이다.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 이 때문에 어린이대공원의 설명은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 업무 일반 수칙’에는 <사육사는 안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단 한 번의 실수나 무관심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동물사 출입문은 반드시 잠금장치를 하고, 열쇠는 근무자가 소지하며 퇴근시 당직근무자에게 인계해 동물원 열쇠함에 보관한다><동물사 순찰 및 청소 시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이외에도 사육사 업무 일반수칙은 10여가지나 된다.
 
하지만 이날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은 동료 사육사가 휴가를 낸 상태여서 김씨 혼자 근무했다는 것이 어린이 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사육사 두 명이 대부분 맹수를 관리하다 보니 휴무일 등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사육사 한 명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숨진 사육사 김씨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변을 당하고 홀로 방치됐다. 

“타고난 본능은
거부할 수 없다”
 
이날 김씨는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도 소유하지 않았다. 여론은 어린이대공원은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에 준하여 운영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이 평소 김씨에게 사육사 관리 수칙 등을 정확하게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비극의 현장,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 들어선 김씨는 혼자였다. 열린 문도 무심코 지나쳤고 맹수를 발견하고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쓰러지고 난 뒤에도 목숨이 오가는 천금같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의 CCTV 판독 결과 발표대로 이번 사고 원인이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가 있던 내실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명의 사육사가 크로스체킹을 했을 경우 내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었다. 
 
왜 어린이대공원은 맹수사에서 2인1조 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운영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해명은 어린이대공원은 사육사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동선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전하다는 구조는 이번 사고처럼 부주의 한번에 무너질 만큼 허약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동물원은 현재 96종 505마리의 동물을 14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다. 맹수사 사육사는 2명뿐이다. 하루도 쉬지않고 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함께 근무할 수는 없다.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국 사육사를 증원해야 하는데, 공기업인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인력증원은 제약이 많다. 증원하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사육사를 단기간에 키우기는 어렵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동물전염병이 돌 때마다 휴장해 관람객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적자액도 매년 50억∼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육사 매뉴얼에서도 2인1조 근무제는 논란이 된다. 서울대공원은 2013년 사육사가 호랑이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매뉴얼을 고쳤으나 어린이대공원 매뉴얼에는 여전히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이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이 같은 서울시 산하지만 조직 성격이나 운영주체가 다르고 업무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공원은 서울시가 사업소 형태로 운영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을 직영하고 놀이공원인 서울랜드는 민간에 위탁을 하는 형태다. 직원 신분도 공무원이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가 위탁을 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직원도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하는 일은 거의 같은데 조직은 별개인 셈이다.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이 운영방식을 바꿔도 어린이대공원이 굳이 따라가지 않게 되는 배경이다.
 
스트레스 극에 달한 
동물들 갈수록 포악
 
이 때문에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이 안된다면 활발한 연계 업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실제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통합은 서울대공원 호랑이 참사 후 구성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서도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자 박원순 시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동물원 관련 법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원법’이 발의 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내 동물의 사육환경을 향상시키는 내용이다. 사육환경을 개선해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면 관람객이나 사육사에 대한 공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동물원법은 그동안 주 소관 부처를 어디로 하냐는 문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으로 표류했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환경부가, 동물보호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해양수산부가 각각 따로 관리하고 있다.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결국 해당 법은 환경부 소관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금은 동물원 시설관리 및 소속 동물의 사육조건 등을 규정한 법령이 전무한 상태다. 동물보호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시행령이 전체 동물의 관리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원의 설립 규정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제각기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 규정한 법령
아직 전무한 상태
 
동물원법은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과 사육동물의 관리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동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원법이 통과될 경우 사육의 편의 등을 위해 전기충격기, 채찍, 족쇄 등을 사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또 동물의 개체 수, 폐사, 질병의 발생에 관한 현황 등 사육현황을 매년 2회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육사 죽인 사자,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동물원에서 ‘사고 사자들’에 대해 사고 원인과 사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2년 전 비슷한 참극을 일으켰던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는 현재 징계 중이다.
2013년 11월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과천 서울대공원의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지난해 5월 개장한 ‘백두산 호랑이 숲’ 내 60∼70평 정도의 공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사육사를 물어 죽인 호랑이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일부에서는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측면에서는 2인1조 근무제를 어기고, 호랑이를 작은 여우우리에 수용하는 등 동물원의 관리 책임도 커 호랑이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여론도 강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시베리아 호랑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동물원에서 비슷한 사고가 생겼을 경우를 보면 상황이 위급하면 현장에서 사살하기도 한다. 2013년 제주도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물어 죽인 반달곰 두 마리의 경우 사살됐는데 현장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