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사는’ 동물들의 반란 막전막후

관람객도, 사육사도 위험하다!

[일요시사 사회2팀] 박창민 기자 =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더 이상 진짜 동물이 아니다”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말했다. 하지만 동물은 자신의 타고난 본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행복과 즐거움이 있어야 할 동물원. 불과 2년 전 호랑이에 물린 사육사가 숨진 데 이어 또 다시 맹수에 의한 동물원 사육사 사망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낮에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에 물려 숨진 것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 맹수마을에서 사육사 김모(52)씨가 사자 방사장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내실 소방점검 중이던 동료직원이 발견했다. 사고는 오후 1시에 20분간 진행된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끝나고 김씨가 방사장에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면서 발생했다.

방사장 혼자 정리
사자에 물려 숨져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당시 곁에는 암수 사자 한 쌍이 있었다. 사자가 갇혀 있어야 할 내실 4개 중 1개의 문이 열린 상태였다. 김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방사장에서 김씨가 하의가 벗겨진 채 엎드려 있었고, 그 주변을 암수 사자 한 쌍이 어슬렁거렸다고 증언했다.
 
김씨를 공격한 사자는 2006년생 수컷과 2010년생 암컷으로, 두 마리 모두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체 번식한 종이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당시 얼굴과 우측 목, 양쪽 다리에는 물린 것으로 보이는 깊은 이빨 자국이 발견됐다. 종아리와 넓적다리 근육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사자들은 내실 문이 열리면 방사장에서 내실 안으로 스스로 이동하도록 훈련돼 있다. 사육사는 사자들을 모두 내실로 몰아넣고 내실 문을 잠근 뒤 방사장에 들어가 청소 등을 한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CCTV 분석 결과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내실 문을 미처 닫지 않은 김씨가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사장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사장은 내실 1, 2 로 바로 앞쪽에 있고 방사장과 격리하기 위한 문이 있다. 방사장에서 훈련 등이 끝나면 문을 통해 바로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잇단 인명사고…안전불감증 동물원
“안전조치 대책 마련” 또 뒷북 대책
 
김씨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사자 두 마리를 내실로 유인했다. 김씨는 사자가 좋아하는 내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실 1, 2문을 모두 열었다. 사자 두 마리는 모두 내실 2로 들어갔다. 김씨는 내실 2에 있던 사자 두 마리를 다시 내실 1로 옮겼고 열었던 내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실 2의 문은 닫았으나 내실 1의 문을 닫지 않았다. CCTV를 살펴보면 내실 2의 문을 닫는 모습은 보이나 내실 1의 문을 닫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 동물원 측은 사자 우리를 폐쇄하고 사자를 완전히 격리 조치했다. 어린이대공원은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지난 8일 이후 동물원 전체를 폐쇄하는 임시휴장에 들어가 시민 관람객은 없었다. 김씨는 사육사 경력 20년에 맹수사육만 3년째 맡아왔다고 대공원 측은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고 원인규명을 철지히 하는 동시에 예우에 맞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은 14일 “서울시설공단 인사규정에 따라 고인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 한다”며 “한 직급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는 CCTV가 있지만 사자 두 마리가 30여 분간 방사장을 떠도는 상황을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관제센터 관리와 119 늑장신고 등 안전관리 수칙 부재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숨진 사육사는 이날 오후 2시22분 방사장 청소를 위해 방사장에 들어가 1분 후 사자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사육사가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2시34분. 소방담당 직원이 소방점검을 위해 사자 방사장을 찾았을 때였다. 어린이대공원 CCTV관제센터는 사자 방사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자 방사장에는 동물 움직임에 따라 촬영되는 CCTV 한 대가 가동중이었다. 소방담당 직원은 방사장 출입문을 닫은 뒤 인근 다른 사육장 동료에게 알렸다. 오후 2시36분이 돼서야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다른 사육사 4명이 오후 2시37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2시47분에 수의사가 사고현장을 확인한 뒤 119에 신고했다.    
 
결국 CCTV관제센터는 소방담당 직원이 최초 발견할 때까지 30여 분간 방사장에서 떠도는 사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이 대공원 관계자가 “CCTV담당 직원이 방사장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30분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어린이대공원 측
사실상 방치 지적
 
어린이대공원 측은 또 김씨를 방치한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최초 무전으로 연락 받고 동물을 마취해 제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사람을 먼저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에 신고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 맹수들의 공격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대 수의학 신남식 교수는 YTN과 인터뷰에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연상태와 달리 사육공간이 좁아 운동량이 적고 무료함을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놀잇감을 넣어주거나 먹이를 숨겨 활동성을 높여 건강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활동이다”고 반박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향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동물 내실 출입문의 개폐 여부 확인과 사육관리 동선상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맹수 퇴치용 스프레이, 전기 충격봉 등 개인 안전 장구류를 추가로 확보해 유사시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매뉴얼에는 ‘맹수는 반드시 내실 입실 후 마릿수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방사장에 들어간다’ ‘100% 안전한 상태에서만 작업하며 항상 침착하게 행동한다‘ 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13년 11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보름 만에 사망한 사건과 판박이다. 사고 발생 옆 휴게음식점 주인이 혼자 쓰러진 사육사를 최초로 발견하고 근처 동물사 사육사에게 연락했다. 현장에 사육사들이 도착했을 당시 이번 사고와 똑같이 방사장 문이 열린 채 호랑이가 나와 있고 사육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1987년 서울시에 입사한 20년차 베태랑 사육사다. 
 
이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방사장 안전관리를 위해 사육 방사장 별 한 개씩 CCTV를 설치했다. 개폐시 알림 장치와 사육사 이동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여 관리자의 안전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육사는 매일 안전수칙을 읽고 근무에 임하도록 매뉴얼을 바꿨으며, 우리에 들어갈 때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상시 무전기를 휴대하도록 했다. 특히나 당시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2인 1조로 근무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며 “앞으로 사고방지를 위해 반드시 2인1조 근무를 철칙으로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숨진 김씨는 혼자 근무를 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과천 어린이대공원은 자기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만들어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굳이 과천 서울대공원의 매뉴얼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모두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동물원이다.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 이 때문에 어린이대공원의 설명은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 업무 일반 수칙’에는 <사육사는 안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단 한 번의 실수나 무관심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동물사 출입문은 반드시 잠금장치를 하고, 열쇠는 근무자가 소지하며 퇴근시 당직근무자에게 인계해 동물원 열쇠함에 보관한다><동물사 순찰 및 청소 시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는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이외에도 사육사 업무 일반수칙은 10여가지나 된다.
 
하지만 이날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은 동료 사육사가 휴가를 낸 상태여서 김씨 혼자 근무했다는 것이 어린이 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사육사 두 명이 대부분 맹수를 관리하다 보니 휴무일 등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사육사 한 명이 관리한다”고 말했다. 숨진 사육사 김씨는 결국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변을 당하고 홀로 방치됐다. 

“타고난 본능은
거부할 수 없다”
 

이날 김씨는 신호용 호루라기나 무전기도 소유하지 않았다. 여론은 어린이대공원은 서울대공원의 사육관리에 준하여 운영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이 평소 김씨에게 사육사 관리 수칙 등을 정확하게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비극의 현장, 어린이대공원 사자 방사장에 들어선 김씨는 혼자였다. 열린 문도 무심코 지나쳤고 맹수를 발견하고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쓰러지고 난 뒤에도 목숨이 오가는 천금같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의 CCTV 판독 결과 발표대로 이번 사고 원인이 사육사가 사자 두 마리가 있던 내실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명의 사육사가 크로스체킹을 했을 경우 내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도 있었다. 
 
왜 어린이대공원은 맹수사에서 2인1조 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운영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해명은 어린이대공원은 사육사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동선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전하다는 구조는 이번 사고처럼 부주의 한번에 무너질 만큼 허약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동물원은 현재 96종 505마리의 동물을 14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다. 맹수사 사육사는 2명뿐이다. 하루도 쉬지않고 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함께 근무할 수는 없다.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국 사육사를 증원해야 하는데, 공기업인 서울시설공단이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인력증원은 제약이 많다. 증원하더라도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사육사를 단기간에 키우기는 어렵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동물전염병이 돌 때마다 휴장해 관람객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적자액도 매년 50억∼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육사 매뉴얼에서도 2인1조 근무제는 논란이 된다. 서울대공원은 2013년 사육사가 호랑이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하도록 매뉴얼을 고쳤으나 어린이대공원 매뉴얼에는 여전히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이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이 같은 서울시 산하지만 조직 성격이나 운영주체가 다르고 업무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공원은 서울시가 사업소 형태로 운영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을 직영하고 놀이공원인 서울랜드는 민간에 위탁을 하는 형태다. 직원 신분도 공무원이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가 위탁을 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직원도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하는 일은 거의 같은데 조직은 별개인 셈이다.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이 운영방식을 바꿔도 어린이대공원이 굳이 따라가지 않게 되는 배경이다.
 
스트레스 극에 달한 
동물들 갈수록 포악
 
이 때문에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이 안된다면 활발한 연계 업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실제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통합은 서울대공원 호랑이 참사 후 구성된 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서도 통합 필요성이 제기되자 박원순 시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동물원 관련 법규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원법’이 발의 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동물원법은 동물원 내 동물의 사육환경을 향상시키는 내용이다. 사육환경을 개선해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면 관람객이나 사육사에 대한 공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동물원법은 그동안 주 소관 부처를 어디로 하냐는 문제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으로 표류했다.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환경부가, 동물보호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해양수산부가 각각 따로 관리하고 있다.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결국 해당 법은 환경부 소관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금은 동물원 시설관리 및 소속 동물의 사육조건 등을 규정한 법령이 전무한 상태다. 동물보호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시행령이 전체 동물의 관리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동물원의 설립 규정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제각기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 규정한 법령
아직 전무한 상태
 
동물원법은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과 사육동물의 관리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동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훈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동물원법이 통과될 경우 사육의 편의 등을 위해 전기충격기, 채찍, 족쇄 등을 사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또 동물의 개체 수, 폐사, 질병의 발생에 관한 현황 등 사육현황을 매년 2회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육사 죽인 사자, 어떻게 되나?
 
전문가들은 동물원에서 ‘사고 사자들’에 대해 사고 원인과 사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2년 전 비슷한 참극을 일으켰던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는 현재 징계 중이다.
2013년 11월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과천 서울대공원의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지난해 5월 개장한 ‘백두산 호랑이 숲’ 내 60∼70평 정도의 공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사육사를 물어 죽인 호랑이 처리를 놓고 고심했다. 일부에서는 살처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측면에서는 2인1조 근무제를 어기고, 호랑이를 작은 여우우리에 수용하는 등 동물원의 관리 책임도 커 호랑이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여론도 강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시베리아 호랑이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동물원에서 비슷한 사고가 생겼을 경우를 보면 상황이 위급하면 현장에서 사살하기도 한다. 2013년 제주도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물어 죽인 반달곰 두 마리의 경우 사살됐는데 현장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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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