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다른 요지부동 '우유값의 비밀'

생산량 넘치는데 가격 제자리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우유 생산량이 넘치면서 재고가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소비자부담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낙농업계는 우유가 팔리지 않는다며 울상만 짓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는 우유값 이면에 자리한 불편한 의혹들을 짚어봤다.


우유 생산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좋은 날씨 덕분에 우유가 과잉생산되고 미국, 뉴질랜드의 가공업체에서는 유제품 생산을 증가시킨 탓에 전 세계적으로 우유가격이 지난 12개월여에 걸쳐 50%이상 폭락했다. 그런데 국내의 우유가격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멸균 신공법?
 
우유가 넘쳐나는 이유는 공급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면 가격을 조정하면 되지만 우유가격은 여전히 제자리다. 좋은 먹을 거리가 넘치면서 그동안 우유가 갖고 있던 ‘완전식품’ 이미지는 희미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더이상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가 아는 우유값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표면적으로는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에 시장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원유가격연동제란 낙농가의 생산비와 연동해 원유가격을 정하는 제도로 우유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정부는 과거 낙농가와 우유업체가 3∼5년에 한 번씩 낙농진흥회를 통해 원유가격을 협상하면서 생기던 잡음을 없애기 위해 지난 2012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당국이 가격결정권을 가짐으로써 원유가격을 협상 할 때 마다 반복되던 낙농가의 단식농성, 납품중단 등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은 통계청이 발표한 우유생산비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매년 8월1일 기본가격과 등급가격을 반영해 결정된다. 이 제도는 생산비 변화만을 원유 기본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수요감소나 과잉생산 등에 대해서는 능동적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패한 낙농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낙농진흥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원유생산량은 18만5346톤으로 2013년 17만5363톤에 비해 신장했다. 우유생산량도 같은 달 기준 30만7168톤에서 33만6130으로 약 11% 상승했다. 그러나 우유 소비 부진으로 지난해 대형마트의 우유 및 유제품 판매량(8월 기준)은 2013년 같은 기간보다 1.8% 감소했다. 반면 생산량은 5% 증가했다. 이에 따라 분유(남는 우유는 건조시켜 분유상태로 보관) 재고량은 7월 기준 1만4896톤으로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재고 12년 만에 최대치…판매가 그대로
‘도대체 왜?’ 소비자 사이에 의문 증폭
 
그럼에도 우유가격에 큰 변동이 없자 소비자단체들은 원유가격연동제가 낙농가의 생산비를 보전하기 위한 취지와 달리 제조·유통비용을 높이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원유가격연동제를 고수할 방침을 내비쳤다. 대형마트들은 우유 재고량이 증가한 작년부터 우유 소비 촉진을 위한 각종 프로모션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만 우유를 찾는 소비자들은 점차 줄고 있다.
 
국내에 물량이 넘치면 재고를 가까운 중국에 수출하면 된다. 하지만 이 판로가 막혀 녹록지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한국산 살균우유의 유통기한이 자국 우유보다 긴 것 등을 문제 삼아 제품 등록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제품은 135°C로 초고온 살균 방식으로 생산되지만, 중국은 72∼75°C 저온살균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저온살균 방식으로 생산된 우유가 영양분이 더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초고온 살균 방식이 아닌 저온살균 방식으로 맞춰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우리 측은 지난해 8월 중국에 기술검증자료를 냈고, 중국은 국가인증인가감독관리위원회(CNCA) 소속 실사단을 파견해 검증해본 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실사단은 금주 내 방문을 예고했다. 중국 실사단 5명은 우유 수출이 보류된 기업 7곳 중 5곳을 둘러보고, 중국으로 다른 유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업체 2곳에 대한 사후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중국 수출재개가 임박해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저온살균은 72∼75°C에서 30분 정도 끓이는 공법, 초고온 살균은 135°C에서 2초간 살균하는 공법이다. 우유생산 업체 측에서는 오래 끓이는 공법보다 짧게 끓이는 공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제품이 ‘멸균우유’인데,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고 품질관리 용이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멸균공법은 단백질 등 영양소가 대거 파괴돼 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우유는 초고온 살균으로 생산되지만 프리미엄 우유는 저온살균으로 생산된다. 일각에서는 우유생산 업체들이 ‘신공법’이라며 초고온 살균 방식을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만 ‘호갱’
 
이 때문에 중국이 한국 우유 수입을 중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우유생산 업체들이 생산비용이 올라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 물량에 한해서만 생산공정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소비자가 높은 가격의 우유를 소비함으로 인해 중국 소비자에게 국내보다 고급공정을 거친 우유를 살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한 우유업체 관계자는 국내용과 중국 수출용에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생산방식은 분명 달랐다. 이 관계자는 “국내 제품은 135°C 초고온으로 2초간, 중국 수출 제품은 100°C에서 10초간 살균한다“고 말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장애인이 만드는 화제의 우유
 
지난 14일 완주군에 따르면 완주군 장애인복지관과 완주지역 자활센터,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당은 지난해 정부에서 실시한 ‘융·복합 노인일자리 시범 사업’ 공모에 선정된 후 컨소시엄 형태로 주식회사를 설립해 ‘오늘 우유’ 생산에 나섰다.
 
우유 명칭을 ‘오늘 우유’로 결정한 것은 젖소 착유부터 생산까지 24시간 이내에 완료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생산되는 우유는 한국낙농진흥회를 통해 원유를 공급받아 여러 낙농가의 합쳐진 원유이기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하고 세균이 많아 초고온 살균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오늘 우유’는 완주군 내 낙농농가 가운데 전용목장을 지정함에 따라 세균 수 8000 미만(ml당)으로 관리된 전용목장을 두어 중·저온살균이 가능하다. 초고온 살균 우유는 높은 온도로 인해 유산균 사멸 및 칼슘 변성에 따른 체내 흡수율 저하, 비타민의 높은 손실률 등 영양적인 측면에서 큰 이로움이 없는 반면 ‘오늘 우유’는 단백질 변성이 적은 75°C에서 15초간 살균해 영양 손실을 최소화하고 칼슘의 변화가 적어 체내흡수율이 높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어르신 및 장애인은 총 7명이다. 당초 사업목적인 취약계층인 장애인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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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