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임박' 분주한 야동시장 현주소

법 위서 노는 ‘제2의 김본좌’ 나온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남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앞으로는 웹하드나 P2P에서 음란물을 찾을 수 없고, 송수신도 제한될 예정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청소년이 음란물을 접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성인들도 성인물을 향유할 수 없도록 개정됐다는 것이다.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웹하드 등에서 음란물이 유통되는 것을 방지하고 청소년이 스마트폰 앱 등의 유해정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야동 원천차단
샛길까지 막나
 
이날 전체회의에 보고된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웹하드·P2P 등 특수한 유형의 부가통신사업자는 음란물 유통방지를 위해 ▲음란물 인식 ▲음란물 검색과 송수신 제한 ▲음란물 전송자에게 경고문구 발송 등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관련 운영·관리 기록을 2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또 사업자가 운영·관리하는 게시판에서 불법정보가 유통되는 경우, 유통방지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이상 기술적 조치를 취했다고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데도 불법정보가 유통되는 경우 사업자를 처벌할 수 있는 셈이다.
 

이동통신사업자가 청소년과 계약을 할 때에는 청소년 유해정보 차단수단의 종류와 내용 등을 청소년과 법정대리인에게 알리고 차단수단이 설치된 것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 후에도 차단수단이 임의로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단수단이 삭제되거나 15일 이상 작동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에게 이를 고지해야 한다. 
 
시행령 개정한은 입법예고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규제개혁위원회 및 법제처 심사를 거쳐 개정법률 시행일인 4월16일에 맞춰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으로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한 음란정보와 청소년 유해정보 유통이 대폭 감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통위의 소식이 전해진 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방통위는 ‘음란물 전담반(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규제 활동에 돌입키로 했다. 방통위는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음란 정보의 유통이 심각하다고 판단, 머지않아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음란물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SNS 등을 통해 음란물이 빠르게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가입자 9억명에 달하는 트위터는 최근 국내외에서 음란물 유통 채널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여기에 아동·청소년들이 자신의 신체를 찍어 올리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간편한 가입절차 때문이기도 하다. 성인인증 없이도 음란물 게재는 물론, 노출이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트위터는 지난해 ‘포토DNA’라는 기술을 도입해 불법 콘텐츠를 찾아 제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을 전담하는 인력이 불법 콘텐츠를 모니터링 하고 차단하는 업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도 유해 콘텐츠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SNS 사이트들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최근 사이 관리·감독이 허술한 외산SNS로 옮겨가는 추세지만 이를 단속할 만한 뾰족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인 대처가 전무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부조차도 음란물을 막을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나만 아는

멍청한 규제
 
청천벽력 같은 야동규제 소식은 뭇 남성들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직장인 A씨는 급히 카카오톡 채팅방을 개설해 친구 수십 명을 초대했다. A씨는 본인의 자유이용권이 담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한 뒤 ‘모든 장르의 성인 콘텐츠를 서둘러 다운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메시지가 퍼지자 채팅방은 요동쳤고 A씨의 친구들은 저마다 주 분야와 특정 AV(성인용 비디오)를 맡아 동시 다발적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앞서 업계 관계자들의 말처럼 웹하드·P2P를 막는다고 해도 야동을 볼 수 있는 사이트는 천지에 깔려있다. 외산SNS, 해외사이트 등을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성인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이번에 방통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청소년이 음란물을 접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물론 청소년이 음란물을 접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에 반기를 들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으로 인해 애꿎은 성인들까지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성인도 성인물 못 보는 개정안 마련
애꿎은 마니아들 “미리 다운 받자”
 
이 개정안에는 기본적으로 ‘야동이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정말 그럴까. 지난해 경찰청은 경찰대학에 의뢰해 실시한 ‘온라인 아동음란물 실태 및 대책’ 연구 용역에서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 국민인식 설문조사’를 통해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성범죄 사이 상관관계가 높다고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량은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성범죄 사이 상관관계가 높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성범죄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응답은 42.4%였고, ‘높다’는 응답도 33.3%였다. 연령별로는 20대 응답자의 53%가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성범죄 상관관계가 높다고 답했다. 40대(86%), 50대(89%), 60대(85%) 등 고연령층에서는 평균보다 상관관계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연구결과는 달랐다.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의 안토니 다마토 교수가 지난 2006년 작성한 ‘포르노가 늘수록 강간이 감소한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야동이 허용된 이래 미국의 성범죄는 85%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1980년에는 1000명당 2.7이던 성폭행 희생자는 2004년 1000명당 0.4명까지 줄어들었다.
 
물론 미국의 형사사법체계의 강화 등을 원으로 들 수 있지만 다마토 교수는 주로 야동 확산에 기여하는 인터넷 배급과 강간률이 보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봤다. 실제로 미국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장 적었던 4개주(켄터키·미네소타·웨스트버지니아·아칸소)에선 강간률이 53% 가량 증가했지만 인터넷 사용이 가장 많았던 4개주(콜로라도·뉴저지·워싱턴·알래스카)의 경우 강간률이 27% 감소했다.
 
다마토 교수는 야동을 보고 성적 욕구를 일부 해소한 사람은 굳이 나가서 성범죄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지며, 야동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은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성적인 자극에 덜 민감하게 되기 떄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2011년 이탈리아의 SIAMS(the italian Society of Andrology and Sexual Medicine)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도 야동과 성충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SIAMS가 성인 2만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젊은 남성들은 10대 중반부터 보기 시작한 야동 때문에 성욕 부진과 발기부전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결과지만 시사점은 분명하다.


간과 못하는
순기능도 있다
 
지난 2012년 ‘스마트폰 야동 퇴출법안’을 제출한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과거 국회에서 ‘야한 사진’을 보고 흉내를 내는 듯한 사진이 공개돼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청소년을 보호한다며 스마트폰 야동 규제법안을 제출한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국회에서 야사를 보는 장면”이라며 문제의 사진을 게시하면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야사 보는 국회의원’ 사진은 2006년 17대 국회 시절 한 의원이 동료의원들과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여성의 사진을 본 후, 흉내를 내듯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앞서 한 의원은 모바일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전기통신사업법 관계 법령 개정안 2건을 발의했다.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유행처럼 번졌던 김본좌의 명언은 실로 날카로웠던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남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성인음란물의 본좌로 불린 김본좌. 그는 불법 야동 공유로 당시 28세의 나이로 구속됐다. 김본좌는 ‘토토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kimcc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일명 김C로 통했고 가수 김C로 오해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야동의 선구자였던 stoangel의 제자였다. 라이벌로는 devine이 있었다. stoangel은 국내 야동의 역사를 열었던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은퇴시기에 맞춰 김본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거세지는 비난 여론
 
김본좌는 토토디스크에서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0월 구속 직전까지 3년간 양질의 야동을 매일 수십편씩 불법 업로드했다. 일본 오픈냅에서 신작 야동이 공유되면 그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웹하드에 올렸다. 이후 ‘세가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그곳에 야동을 올렸지만 이때 꼬리가 잡혀 결국 구속됐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국내에 퍼진 일본 야동의 70% 이상은 김본좌의 손에서 대량 유통된 것이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김본좌가 유포한 야동은 1만4000편에 이른다. 용량으로 치면 하루에 20∼30기가바이트의 야동을 다운 받아 다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셈이었다. 김본좌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그는 야동 업로드 시 영상의 내용과 캡쳐 사진까지 달아, 조회건수가 대부분 1만 건을 넘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야동을 불법 유포한 김본좌는 결국 2006년 10월 부산에서 구속됐다.
 
당시 부산 사상경찰서 자유발언대에는 이모씨가 실명으로 김본좌의 선처를 구하는 게시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우리의 슈퍼스타 김본좌 형님을 선처해주세요. 그렇게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민중의 지팡이를 믿겠습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사상경찰서는 “실정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답변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경찰서 자유발언대에는 김본좌의 선처를 바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전설로 남은
본좌들 업적
 
당시 수많은 남성이 김본좌를 옹호하는 댓글을 남기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혔다. 이때부터 ‘지못미’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게 됐다. 이후 김본좌는 2007년 7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김본좌가 구속된 다음 날 국내 제지회사 11곳 중 10곳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상황이 너무나 절묘했고, 주가가 떨어지지 않은 회사 한 곳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휴지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본좌의 영향력이 새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김본좌의 정신을 잇는 용자가 나타나 화제가 됐다. 김본좌의 기록인 1만4000편을 뛰어넘은 2만6000편을 공유하다가 구속된 정모씨가 그랬다. 그러나 이미 선구자로서 이름을 남긴 김본좌의 명성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후에도 김본좌의 후계자로 불리는 이들은 끊이지 않았고 ‘5대 본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2006년 김본좌, 2009년 정본좌, 2010년 양본좌, 2011년 서본좌, 2012년 박본좌 등. 김본좌의 후예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상에 야동을 업로드 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은 성인들이 성인물을 당당하게 볼 수 없는 암흑 같은 시기가 될 전망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하니, 제2의 김본좌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순 없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서전 쓴 야동배우, 왜?
 
일본 AV(성인용 비디오)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다. 일본의 AV배우 사쿠라 마나는 최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고전(중학 졸업자가 입학하는 5년제 학교)생이었던 내가 만난 세계에서 단 하나의 천직(이하 단 하나의 천직)>을 출간했다.
 
사쿠라 마나의 <단 하나의 천직>은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AV배우의 삶에 대한 내용을 진솔히 담아 발매 이후 온라인 상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그녀의 팬임을 선언한 일본의 인기 개그맨 바카리듬이 서평을 써 눈길을 끈다.
 
<단 하나의 천직>에는 2012년 고전 재학 중이었던 사쿠라 마나가 AV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와 AV업계에서의 일상, 급료, 부모님에게 ‘일’을 들켰을 때, 연기 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쿠라 마나는 인상적인 몸매와 귀여운 외모를 갖춰 국내외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인기 AV배우로, 일본의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에도 출연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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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