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무한 렌탈시대 천태만상

명품부터 애인까지 “빌려드립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보통 렌탈이라고 하면 승용차나 정수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여상품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명품 핸드백, PC, 노트북, 휴대폰, TV, 악기, 가구, CCTV, 보청기, 비데, 제습기, 공기청정기, 침대 매트리스, 전자레인지, 음식물처리기 등. 교환 주기가 짧은 소비자들의 비용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애인대행 서비스도 여전하다. 바야흐로 못 빌리는 게 없는 세상이다.

 
국내 렌탈 시장이 새로운 소비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세대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렌탈서비스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소비를 경험하고 있다. 생활의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문화가 퍼지면서 렌탈 시장은 지금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점점 얇아지는
주머니 사정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대학생 이모(23)씨는 주로 학교에 있는 데스크탑을 사용한다. 평소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가끔은 노트북이 생각난다. 카페에서 과제를 하거나 멀리 이동할 시에 그렇다. 그래서 노트북 시세를 알아보던 중 ‘노트북 렌탈’ 서비스를 알게 됐다. 1박2일 기준으로 1만원 미만, 한 학기 기준으로 대여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씨는 일단 급한대로 1박2일 동안 노트북을 렌탈했다.
 
3년만 지나도 성능이 떨어져 구형이 되는 시대인지라, 이씨는 단기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최신용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 렌탈서비스에 만족했다. 노트북 안에는 최신 영화, 음악, 게임 등 콘텐츠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이씨는 이렇게 노트북을 빌려서 사용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 이후에도 이따끔씩 노트북 렌탈서비스를 이용했다.
 

직장인 차모(34)씨는 캠핑시즌 때마다 텐트 등 캠핑용품을 렌탈한다. 캠핑용품을 전부 구입해봤자 1년에 쓰는 건 단 몇 번 뿐이고, 크기도 크고 종류도 많아 보관하는 데 애를 먹겠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사서 안 쓰고 묵혀두는 것보다 빌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여름, 가을에 렌탈 전문 사이트를 통해 각종 캠핑용품을 빌렸다.
 
차씨는 캠핑 전 텐트, 캠핑매트, 파라솔, 바비큐 그릴, 불판, 침낭, 접이식 테이블 및 의자, 아이스박스, 캠핑용 랜턴 등을 빌렸다. 전부 상태가 A급이라서 만족스러웠다. 차씨는 캠핑용품 외에도 가족과 즉석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폴라로이드까지 빌렸다. 
 
렌탈 전문 업체의 렌탈제품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컴퓨터(노트북, 넷붓, 데스크탑, 복사기, 프린터, 기타주변기기), 디지털 캠코더/카메라(HD화질 메모리 캠코더, 수중방수 캠코더, DSLR카메라, DSLR렌즈, 디지털카메라, 수중방수 카메라, 즉석카메라), 네비게이션(7인치·4인치), 영상기기(PDP TV, 프로젝터, DVD 플레이어), 멀티미디어(PMP, 닌텐도/PSP 등 게임기·전자사전), 가전/주방/업소/생활(정수기, 비데/연수기, 공기청정기, 청소기, 안마기, 유아용품, 명품가방), 스포츠레저(텐트, 취사용품, 사이클/카이클론, 런닝, 천막/캐노피, 무선모형, 기타 제품) 등이 있다.
 
 
렌탈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렌탈 전문 업체의 사이트에 가입한 뒤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렌탈 시작일로 지정을 원하는 날짜를 선택하고 렌탈 일수를 조정한다. 대여시작일은 상품을 택배로 수령하거나 직접 방문 수령하는 날짜다. 렌탈 기간을 지정한 후 신청 버튼을 누르면 된다. 반납은 택배로 이루어진다. 렌탈 일수를 조정하는 것 외에는 일반 쇼핑몰 이용 방법과 큰 차이가 없다.

새로운 소비문화
소유 대신 대여
 
다소 낯선 렌탈 상품도 있는데, 바로 명품백이다. 경기침체에도 명품 소비는 불황을 모른다. 그렇다고 모두가 새 제품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게 명품백 렌탈서비스다. 명품백을 갖고 있는 소비자가 자신의 명품백을 렌탈 업체 사이트에 올리는 방식이다. 렌탈 요청이 들어오면 업체는 명품백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한다. 렌탈료는 5만원 선으로, 1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명품백을 제공하는 사람에겐 일정 부분 수익을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명품이라는 희소가치를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 소비자 외에도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을 위한 렌탈서비스도 있어 눈길을 끈다. 행사용 테이블, 의자, 엠프 등 각종 음향장비, 간이화장실, 전시용 진열대, 테이블, 벤치 의자도 렌탈이 가능하다. 우리가 참석하는 행사장에 있는 용품 중 일부는 렌탈 제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장난감을 대여하는 렌탈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이 렌탈서비스는 장난감 비용을 줄이고, 장난감 소비 방법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마련됐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장난감을 대여할 수 있고, 아이들도 더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비싼 가전·가구 대여 유행
목돈 부담에 웬만하면 빌려
 
대여 방법은 해당 업체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위시리스트에 담고, 추후 배송된 장난감을 재미있게 갖고 논 후 반납하면 된다. 배송 후에는 초음파 세척기 및 자외선 살균 건조기를 이용해 위생관리된다. 이용 금액은 월정액 회원제로 운영된다. 현재 키마, 닌자고, 프렌즈, 스타워즈, 시티, 크리에이터, 디즈니, 레고 무비 등의 레고 시리즈를 대여하고 있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한 번쯤 느꼈던 문제, 이제는 대여로 해결이 가능해졌다. 이외에도 휴대폰, TV, 악기, CCTV, 보청기, 음식물처리기 등 다양한 제품이 렌탈 상품으로 올라오면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대행서비스도 렌탈서비스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애인, 부모, 결혼식 하객 등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건전대행도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다. 함께 밥을 먹고 쇼핑하고 영화도 보는 애인대행을 비롯해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부모대행, 결혼식 하객이 없어 걱정인 신랑, 신부를 위한 하객대행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역할대행과 같은 서비스가 성행하는 원인으로는 온라인을 통한 인간관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대면접촉을 피하게 되면서 사회적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점차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퇴폐적인 이미지로 연결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건전대행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건전대행을 제안한 게시자에 따르면 한 시간을 기준으로 같이 걷는 것은 3만원, 장보기는 4만원, 밥 먹기는 5만원이다. 같이 걸을 경우 사람이 없는 곳은 1만5000원의 추가 요금이 발생하며, 장을 볼 때 짐이 많으면 1만원을 더 받는다. 밥을 먹을 때는 무엇을 먹든 상관없이 무조건 5만원이며 옷에 음식 밴 냄새 때문에 세탁비 2만원이 추가된다. 드라이브는 4만원이며 원거리로 나갈 경우 추가 할증료 2만원이 붙는다.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 차와 쿠키 혹은 케이크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요금은 4만원이다. 게시자는 본인을 ‘167cm 48kg’라고 소개한 뒤 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라고 어필했다. 씁쓸한 세태를 비꼬았다고 볼 수도 있다.

갈수록 커지는
유료 대여시장
 
KT경제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8조5000억원에 달하던 개인 및 가구용품 렌탈 시장이 2016년 11조4000억원으로 34% 늘었다. 5000만 인구 모두가 1인당 20만원 이상의 물건을 빌려 쓸 때 나오는 수치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렌탈 시장이 오는 2016년에 25조9000억원까지 팽창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렌탈시장은 1970년대 건설시장과 기업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렌탈이 합리적인 소비 대안으로 떠올랐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렌탈 시장이 부흥을 이끈 일등공신은 경기침체라 할 수 있다. 불경기에는 적은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렌탈이 호황을 이룬다. 물건은 사야 하는데 목돈은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소비자들은 눈이 높아진 상황인데, 경기는 좋지 않다. 즉 필요한 물건은 많아졌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 렌탈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렌탈 업체 수도 2만5000여개에 달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생활가전 등 기존에 자리를 잡은 업종부터 시작해 다소 생소한 명품이나 그림 등 의외의 품목도 렌탈 제품으로 등록돼 있다. 렌탈 관련업에 종사자는 15만명이다. 전문가들은 하루가 다르게 출시되는 신제품의 등장과 함께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이 렌탈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도 물건도 ‘입금만 하면 OK’
불경기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올라
 
렌탈 시장을 기업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리 없다. 이미 여러 기업이 다양한 렌탈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 정수기, 가습기, 제습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생활가전용품은 이미 렌탈 시장의 트렌디셀러로 여겨지며, 여기에 사용기간이 짧은 육아용품, 안마 의자처럼 구매단가가 높은 의료 건강 장비, 하루가 다르게 최신형이 출시되는 카메라 같은 IT기기, 분기에 한 번 쓰면 많이 쓰는 캠핑용품 등.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은 대부분 빌릴 수 있는 환경이다.
 
과거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목돈을 들이더라도 소유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주칠 경우에만 물건을 빌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렌탈을 대하는 분위기가 다르다. 못 사서 빌리는 것이 아니라 렌탈 자체가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렌탈 대여 기간 동안 업체로부터 관리도 받을 수도 있어, 렌탈에 대한 의식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렌탈 시장은 경기침체와, 렌달에 대한 소비자 인식변화, 렌탈 기업의 다양화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렌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 중 하나는 서비스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은 물건 하나를 빌리더라도 업체마다 일일이 연락을 취해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렌탈 전문 오픈 마켓’이다. 온라인은 물론 앱을 통해 모바일에서도 렌탈서비스를 비교할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렌탈 전문 오픈 마켓에서는 생활가전용품, 육아용품, 의료 건강 장비, IT기기, 캠핑 용품 등 다양한 업체들의 렌탈 품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고 있다. 여기에 ‘재능(전문MC, 출장 카메라맨, 초대 가수 등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까지 빌려준다는 콘셉트가 등장에 눈길을 끌고 있다.  이처럼 렌탈서비스는 어느덧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시장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반짝 유행’
일각서 우려도
 
지난달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렌탈서비스 시장규모는 2004년 1조원에서 2013년 약 10조2000억원으로 10배넘게 늘었다. 이는 피부관리, 헬스, 성형 등 국내 뷰티산업이나 게임시장, 배달음식 시장과 대등한 규모다. 각 업체별로 매년 15∼30% 가량 매출이 늘고 있다.
 
반면 한국소비자원의 자료를 보면 ‘소유권 이전형 렌탈’ 관련 소비자상담은 2011년 7447건에서 2012년 6988건으로 소폭 줄다가 지난해 8558건으로 다시 늘고 있다. 소유권 이전형 렌탈은 일정 기간 렌탈료를 지불하고 계약 종료 후에 제품 소유권이 소비자에게 이전되는 렌탈 방식이다.
 
소비자 상담 가운데 계약 해지 관련 불만 비중이 37%로 가장 높았고 이어 품질 및 사후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21%로 뒤를 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렌탈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와 서비스 인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반짝 성공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혼수도 렌탈, 뭐가 되나?
 
최근 예식장과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는 봄, 가을 성수기 대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겨울과 여름 비성수기 시장으로 예비부부들이 몰리고 있다. 혼수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결혼 초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전·가구 등 혼수를 소유하는 대신 렌탈서비스를 이용해 실속을 챙기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비용절감이 중요하다고 해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신혼살림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젊은 층일수록 유행에 민감하고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높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혼수 렌탈 패키지’다.
 
가전제품 렌탈 전문 업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이사가 잦고 제품 교환 주기가 짧은 신혼부부들을 비롯해 다양한 소비자들의 비용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냈다”고 설명했다.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혼수용품을 다루는 생활가전 렌탈 업체는 1100개에 달한다고 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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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