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외환거래 44명 신상 공개

조세피난처에 짱박은 검은돈 더 많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주 사회고위층 인사들의 불법 외환거래 사실이 알려졌다. GS·LG·롯데·현대·효성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그룹 일가와 사회 저명인사, 유명 연예인이 대거 적발됐다. 이들은 막대한 외화를 앞세워 해외 부동산 및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외국환거래법 제32조 따르면 외화 유출입을 신고하지 않거나 송금 절차를 위반할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솜방망이 규정이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적발된 이들의 면면을 낱낱이 공개한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국내 재벌과 유명 연예인들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했다. 이들은 해외 부동산 취득 및 금융거래 과정에서 1300억원대의 재산처분 사실을 숨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3일 금감원은 재벌가와 연예인 등 44명이 신고 없이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고 전했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외국환 자본거래는 우리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도 없이
1300억 숨겨

금감원은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거래 규모가 큰 GS그룹 계열의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을 검찰에 통보키로 했다. <시사저널>이 보도한 '외국환거래법 주요위반자 조치 예정 내역'에 따르면 허 회장은 과태료 1건(1198만원), 거래정지 2건, 벌칙 1건으로 모두 4건의 불법을 저질렀다. 특히 <시사저널>은 "허 회장이 14회에 걸쳐 900만달러(현재 환율 기준 97억원)의 외화 채권을 매입하면서 신고하지 않아 검찰 통보 조치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 회장은 GS가 3세이자 장손이다. 아버지는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으로 LG그룹의 공동창업주인 고 허만정 회장의 장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허 회장의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상무는 GS의 주식을 155만6327주(1.67%)나 갖고 있다. 허 회장의 지분은 2.85%(265만1600주)로 주식가치는 약 1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범LG가에서도 불법 외환거래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구미정씨와 구씨의 남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은 2건의 과태료(380만원)와 3건의 거래정지를 함께 조치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도 불법 외환거래 명단에 포함됐다. 구 전 회장은 199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모두 4건의 부동산을 사고팔았지만 단 한건만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구 전 회장에게는 2건의 거래정지만 내려질 것으로 알려져 그 내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녀 구근희씨에게도 2건의 거래정지가 예고되고 있다. 구씨는 과거 이계순 전 농림부장관의 아들인 이준범씨와 혼인했다. 이씨는 현재 플라스틱 용기 생산업체인 ㈜화인의 최대주주(지분율 76%)로 확인된다.

금감원 재벌·스타 외환법 위반 적발
총 1300억원대 외화 해외 곳곳에 숨겨

현대가도 금감원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외동딸인 정경희씨는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미국 하와이 리조트 등을 매매했다가 4건(159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금감원 조사결과 정씨는 해외에 숨겨 놓은 수십억원의 예금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씨는 1990년대 중후반 자신이 소유한 미국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거액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에게는 과태료 외에도 거래정지 3건, 경고 2건 등이 내려졌다.

금감원은 롯데가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여부도 조사 중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 거래정지 처분을 앞두고 있다. 이번 명단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신 총괄회장 역시 900만달러(약 97억원) 규모의 외환거래가 문제되고 있다. 롯데 측은 신 총괄회장이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외화를 수령했다고 주장했다.

두산가에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나란히 적발됐다. 복수 언론에 따르면 형인 박 회장은 뉴욕 맨해튼에 '셰필드'라는 이름의 콘도 43층을 갖고 있다. 두 박 회장에게는 거래정지 2건과 경고 1건이 유력시되고 있다.


80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거래정지 처분(1건)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조 회장을 큰아버지로 두고 있는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위반자 명단에 없었다.

지난 6월 KBS1TV 탐사보도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은 "조 사장이 19번째 생일을 기념해 부모로부터 받은 고급 리조트가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조 사장은 이를 되팔아 8억원의 시세차익을 봤지만 우리 금융당국에는 신고하지 않았다.

재벌가 3세
무더기 적발

CJ가로 분류되는 민재원씨는 거래정지 처분(1건)을 받았다. 민씨는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민기식 전 공화당 의원의 딸이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전 CJ 상무)의 부인이다.

'벤처업계의 신화' 김정주 NXC(옛 넥슨홀딩스·넥슨 지주회사) 대표도 거래정지(2건)가 확정적이다. 일본에 상장한 넥슨의 최대주주(48.5%)인 그는 주식을 포함한 보유자산이 2조원이 넘는 대부호다. 김 대표는 노르웨이 유모차업체인 '스토케'를 5100억원에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서 일본에서는 환율 변동폭을 이용한 'FX 마진거래'가 증권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때문에 이번 단속에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을지 관심의 대상이다. 금융감독원은 2013년 12월 'FX마진거래 규정 위반사례 및 유의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딸을 위해 미국 현지에 매장을 개설해 준 '회장님'도 있다.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김성환 금강제화 회장은 자신의 딸과 사위를 위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특혜성 대출을 해줬다. 미국 뉴욕 등에 설립된 직영매장은 회사로부터 395만달러(한화 약 43억원)를 지원받았다. 김 회장에게는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거래정지(2건)가 예고된 상황이다.

17대 대선의 뜨거운 감자였던 BBK 사건의 '키맨' 전세호 심텍 대표도 눈에 띈다. 전 대표는 거래정지(3건)와 경고(1건)를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전 대표가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BBK 회장으로 알고 투자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전 대표는 2001년 11월 "BBK에 투자한 5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이 전 대통령의 부동산을 압류한 바 있다.

이종명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외국환거래법 주요 위반자 명단에 있다.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는 방위사업이 주력인 일광그룹의 계열사로 유명하다. 일광그룹의 회장이자 이 대표의 아버지인 이규태씨는 최근 한 여자 연예인이 제기한 성희롱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소속사 측은 "회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해당 연예인을 협박 혐의로 고발한 상황이다.

알고 보면
사회고위층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씨의 자녀(거래정지 1건)가 원로배우 신영균씨(대종상영화제 명예이사장)의 자녀와 나란히 위반자 명단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신씨의 자녀는 국내 신고 없이 미국의 한 쇼핑몰을 매입했다가 1억원의 과태료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2013년 신씨와의 친분으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한 바 있다.

원혁희 코리안리 회장도 거래정지(2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코리안리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국내 유일의 재보험사다. 재보험사는 보험사를 위한 보험사다. 대형사고가 터졌을 때 한꺼번에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려면 부담이 크기 때문에 보험사가 보상책임을 재보험사와 분담하는 것이다.


코리안리는 국내 재보험 물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우월적인 시장 지위를 점하고 있다. 앞서 <일요시사>는 '코리안리 황제경영 해부(인터넷판 2014년 11월10일)'라는 기사에서 원 회장과 그의 자녀를 중심으로 한 오너 경영체제를 점검한 바 있다. 2013년 원 회장은 급여와 상여금, 배당금 등을 합쳐 모두 12억원을 수령해간 것으로 드러났다.

중견기업 KCC정보통신은 위반자 숫자와 위반 횟수가 가장 많았다. IT솔루션 제공, 수입차 딜러 등을 주력으로 하는 KCC정보통신은 지주회사를 포함한 연매출이 5000억원에 달하는 알짜 회사다.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과 장남인 이상현 KCC오토모빌 대표, 차남인 이상훈 KCC시큐리티 대표 등 11명은 과태료 4건(1967만원), 거래정지 9건, 벌칙 2건의 제제가 가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이 회장 일가는 미국 하와이주에 있는 마우이섬 부동산을 대거 소유하고 있다. 2010년 마우이섬의 한 대저택을 700만달러(현재 환율 기준 75억5000만원)에 사들였고, 1995년에는 당시 1∼3살이었던 손주들에게 하와이 카우아이 섬을 선물했다. 매입가는 110만달러(현재 환율 기준 118억6000만원)로 전해졌다.

GS·LG·현대 일가 미국 호화 부동산 투자
이수만·한예슬 등 유명 연예인 꼼수 도마

이 회장 일가는 하와이 부동산에 최소 2000만달러(215억7000만원)를 투자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실제 부동산 가치는 2배 이상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들은 해외 부동산 투자가 합법화(2006년 5월 100만달러 이내 허용·2008년 6월 무제한 허용)되기 전부터 부동산을 거래했다. 대부분의 부동산은 국내 거주자인 자녀나 부인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이 회장 일가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하고 60여억원의 증여세를 추징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금감원은 이 회장 일가의 외환거래법 위반 사실을 검찰에 통보키로 결정했다.


이 회장과 함께 혐의가 중대하고 판단돼 통보 조치된 유명인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다. 이 대표는 4892만원(1건)의 과태료와 2건의 거래정지, 2건의 벌칙 처분을 받았다. 이 대표는 미국 현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LA 등지에서 다수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표가 해외에 비밀리에 투자한 돈은 2500만달러(약 269억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신고 과정에 일부 착오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솜방망이 처벌
재벌은 코웃음

한인타운 빌딩을 매입한 여자연예인 한예슬씨도 적발됐다. 신씨와 함께 과태료 납부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위반 건수는 2건이다. 한씨 측은 "누락된 것에 대해 실수를 인정하고 과태료를 낼 것"이라며 "일부 오해가 있다"고 성명을 냈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국내그룹 관계자 117명을 대상으로 외환검사를 실시한 결과 272건의 미국 부동산 매입을 밝혀냈다. 삼성·SK·한화·효성·LG 등 재벌가 소유가 포함된 부동산 규모는 4억9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5286억원 규모다. 1인당 평균 45억1700만원의 해외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이상 법망을 빠져 나간 돈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을 넘어 여러 조세피난처에 분산되는 있는 자산까지 더하면 사회고위층의 불법 외환거래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외국환거래법 제32조가 규정하고 있는 최대 과태료는 5000만원에 불과하다. 주식으로만 수천억원씩 굴리고 있는 재벌들에게 5000만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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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