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㉑ 잔인한 사형방법

"톱으로 조금씩 목 잘라 죽였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이나 중국과는 다른 봉급제도를 갖고 있었다. 조선이나 중국은 중앙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었으나, 일본은 봉급을 주는 대신 영지를 나누어 주는 일종의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영주로부터 봉급을 받는 대신에 하사받은 영지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을 팔아 수입을 대신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은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면서, 나라의 여러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일하도록 하였다. 몇 년은 함경도에서, 몇 년은 영남에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호남지역에서 일하게 하였다.

베테랑 왜군

전국 곳곳에서 일함으로써 나라 사정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은 되었겠으나,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님으로써 동료 사이에 인간관계로 맺어지는 끈끈한 정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은 군사 동원 체제로 ‘제승방략(制勝方略)’이라는 제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지방의 수령이 군사를 모아 전투 지역으로 출전하면 중앙에서 임명된 장수가 그 병사를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효율성 있게 막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낯선 지휘관 아래 여러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소속됨으로써 결집력이 떨어지고 지역적 특수성을 살린 전술을 쓰기 어려운 제도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은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 ‘신립 장군’을 ‘3도 도순변사’로 임명하고, 3000의 기마병과 5000의 보병을 합친 8000의 군사로 남한강의 ‘탄금대’ 앞에 배수의 진을 치고 국가의 운명을 건 대전을 준비했다. 이 8000의 군사는 그때까지 경기도, 충청도 등에 산재해 있던 군사를 모집한 것이고, 사령관 신립은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던 장군이었다.

사령관과 그 밑의 장수 및 병사들은 한 번도 함께 한 적이 없던 부대였다. 반면에 상대 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사는 조총이라는 당시 최신 무기로 무장된 군사라는 점 외에도 전국시대를 겪으며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온 군사들이었다.

작전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왜군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조선의 군사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그 뜻이 잘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받은 가신은 다시 하급 무사나 농민들에게, 전쟁 시에는 군인으로 또는 짐꾼으로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일정한 계약을 맺고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영지는 대물림되므로, 한번 땅을 하사받으면 그 땅은 대대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 먹고사니, 이곳저곳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일이 없었고, 한번 땅으로 맺어진 주군과 가신의 관계는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전쟁터 나가
영주 마음대로 언제든지 사형 집행


좋게 보면 그 때문에 주군과 가신 사이에 끈끈한 정도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려운 시기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대대로 얽매여 사는 결과가 된다. 한번 주군이면 평생 주군일 뿐 아니라, 자손 대대로 주군이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주군의 눈에 벗어나는 일이 생겨 하사받은 땅을 몰수당하면, 전 가족은 하인으로 전략하며 그것도 대대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세상만사 언제 어디서나 먹고 사는 일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경제적 번영기이든 쇠퇴기이든, 풍요로울 때나 궁핍할 때나,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어려운 시기에 목구멍은 더더욱 무서운 포도청이 되는 것이다.

전쟁에 나간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두려움보다 당장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가신이 주군에게 충성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충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주군은 부하 사무라이에게 영지를 내림으로써 은혜를 베풀며, 사무라이는 전쟁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의무다’라는 글과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여 볼 때, 사무라이들이 그들의 영주에게 했던 충성은 그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관우나 장비가 유비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에서 나온 충성이었다.

결코 어떤 조건이나 이익을 바라고 ‘도원결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들끓는 홍건적을 무찌르고, 쓰러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었다. 사육신이 단종에게 보인 절개 역시 순수한 충정에서 우러나온 신하의 절개였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모진 고문과 삼족(三族)을 멸하고 제자들까지 처형당하는 형벌 속에서, 그리고 자신들은 거열형을 당할 줄 알면서도 절개를 꺾지 않았던 것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그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견딘 것이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은 억울한 누명과 그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선조 임금께서 “후일을 기약하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며 불과 12척의 소형 전선과 120명의 군사를 이끌고,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가려는 133척의 대 군단을 결단코 그대로 북상시킬 수 없다고, 명량해전에 임했던 그 마음 역시 순수한 애국심이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충성을 바친 사무라이들도 일부 있었겠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충정으로 영주를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영주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도, 순수한 애국심도 아니고, 단지 영지를 얻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식된 충성을 한 것으로 믿어진다.

전국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전국시대에 법으로 정해진 사형방법은 없었다. 절대 권력자가 사형을 집행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주가 마음 내키는 대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대망>에는, 죄인을 처형하는 데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땅을 파서 목까지 묻고, 그 옆에 톱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씩 목을 잘라 죽이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애국심은 없었다


사무라이에게는 평민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언제 어디서든 즉석에서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라이에게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할복으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할복이고, 스스로 알아서 죽은 것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배를 갈라 죽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형극의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로 할복이 아니라, 옆에서 칼로 목을 쳐 주는 참수형을 했던 것이다. 단검을 배에 갖다 대는 형식을 취하면 ‘가이샤쿠(介錯 : 할복하는 사람의 목을 치는 일)’라고 하는 또 다른 사무라이가 목을 쳐서 죽이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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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