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㉑ 잔인한 사형방법

"톱으로 조금씩 목 잘라 죽였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이나 중국과는 다른 봉급제도를 갖고 있었다. 조선이나 중국은 중앙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었으나, 일본은 봉급을 주는 대신 영지를 나누어 주는 일종의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영주로부터 봉급을 받는 대신에 하사받은 영지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을 팔아 수입을 대신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은 관료와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면서, 나라의 여러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일하도록 하였다. 몇 년은 함경도에서, 몇 년은 영남에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호남지역에서 일하게 하였다.

베테랑 왜군

전국 곳곳에서 일함으로써 나라 사정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은 되었겠으나,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님으로써 동료 사이에 인간관계로 맺어지는 끈끈한 정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은 군사 동원 체제로 ‘제승방략(制勝方略)’이라는 제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지방의 수령이 군사를 모아 전투 지역으로 출전하면 중앙에서 임명된 장수가 그 병사를 지휘하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효율성 있게 막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낯선 지휘관 아래 여러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소속됨으로써 결집력이 떨어지고 지역적 특수성을 살린 전술을 쓰기 어려운 제도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조정은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 ‘신립 장군’을 ‘3도 도순변사’로 임명하고, 3000의 기마병과 5000의 보병을 합친 8000의 군사로 남한강의 ‘탄금대’ 앞에 배수의 진을 치고 국가의 운명을 건 대전을 준비했다. 이 8000의 군사는 그때까지 경기도, 충청도 등에 산재해 있던 군사를 모집한 것이고, 사령관 신립은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던 장군이었다.

사령관과 그 밑의 장수 및 병사들은 한 번도 함께 한 적이 없던 부대였다. 반면에 상대 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사는 조총이라는 당시 최신 무기로 무장된 군사라는 점 외에도 전국시대를 겪으며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며 살아온 군사들이었다.

작전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왜군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조선의 군사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그 뜻이 잘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장원제도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받은 가신은 다시 하급 무사나 농민들에게, 전쟁 시에는 군인으로 또는 짐꾼으로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일정한 계약을 맺고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영지는 대물림되므로, 한번 땅을 하사받으면 그 땅은 대대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 먹고사니, 이곳저곳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일이 없었고, 한번 땅으로 맺어진 주군과 가신의 관계는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전쟁터 나가
영주 마음대로 언제든지 사형 집행


좋게 보면 그 때문에 주군과 가신 사이에 끈끈한 정도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려운 시기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대대로 얽매여 사는 결과가 된다. 한번 주군이면 평생 주군일 뿐 아니라, 자손 대대로 주군이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주군의 눈에 벗어나는 일이 생겨 하사받은 땅을 몰수당하면, 전 가족은 하인으로 전략하며 그것도 대대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세상만사 언제 어디서나 먹고 사는 일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경제적 번영기이든 쇠퇴기이든, 풍요로울 때나 궁핍할 때나, 사람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어려운 시기에 목구멍은 더더욱 무서운 포도청이 되는 것이다.

전쟁에 나간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두려움보다 당장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가신이 주군에게 충성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충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주군은 부하 사무라이에게 영지를 내림으로써 은혜를 베풀며, 사무라이는 전쟁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의무다’라는 글과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여 볼 때, 사무라이들이 그들의 영주에게 했던 충성은 그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관우나 장비가 유비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에서 나온 충성이었다.

결코 어떤 조건이나 이익을 바라고 ‘도원결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들끓는 홍건적을 무찌르고, 쓰러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었다. 사육신이 단종에게 보인 절개 역시 순수한 충정에서 우러나온 신하의 절개였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모진 고문과 삼족(三族)을 멸하고 제자들까지 처형당하는 형벌 속에서, 그리고 자신들은 거열형을 당할 줄 알면서도 절개를 꺾지 않았던 것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그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견딘 것이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은 억울한 누명과 그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지 불과 몇 달 만에, 선조 임금께서 “후일을 기약하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며 불과 12척의 소형 전선과 120명의 군사를 이끌고, 서해를 통해 한양으로 가려는 133척의 대 군단을 결단코 그대로 북상시킬 수 없다고, 명량해전에 임했던 그 마음 역시 순수한 애국심이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충성을 바친 사무라이들도 일부 있었겠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충정으로 영주를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영주에게 보인 충성은 순수한 충정도, 순수한 애국심도 아니고, 단지 영지를 얻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식된 충성을 한 것으로 믿어진다.

전국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전국시대에 법으로 정해진 사형방법은 없었다. 절대 권력자가 사형을 집행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주가 마음 내키는 대로 사형을 집행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대망>에는, 죄인을 처형하는 데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땅을 파서 목까지 묻고, 그 옆에 톱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씩 목을 잘라 죽이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애국심은 없었다


사무라이에게는 평민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언제 어디서든 즉석에서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라이에게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할복으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할복이고, 스스로 알아서 죽은 것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배를 갈라 죽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형극의 시간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에 있어서는 이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로 할복이 아니라, 옆에서 칼로 목을 쳐 주는 참수형을 했던 것이다. 단검을 배에 갖다 대는 형식을 취하면 ‘가이샤쿠(介錯 : 할복하는 사람의 목을 치는 일)’라고 하는 또 다른 사무라이가 목을 쳐서 죽이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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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