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회사원 몰리는 ‘수면방’ 가보니…

자꾸 없어지는 과장님 따라가니 ‘허걱’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대낮에 잠을 잘 수 있는 이른바 ‘수면방’이 등장해 화제다. 수면방은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낮 시간에 꿀잠을 잘 수 있는 공간으로, 기존의 휴게텔이나 사우나에 비해 밝고 깨끗한 데다, 이용요금도 부담이 없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숨겨진 아지트를 소개한다.

 
최근 사무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직장인들에게 유료로 낮잠 장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만성피로에 젖어 있는 직장인들의 탈출구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잠자는 카페?
 
지난 6일 ‘수면방’으로 알려진 서울의 한 카페를 찾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카페 안에는 해먹(hammock·기둥이나 나무 사이 같은 곳에 달아 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핏 보면 일반 카페와 비슷하지만, 테이블 대신 알록달록한 해먹이 자리하고 있어 이채로웠다.
 
기자는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창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면방 내부는 훈훈한 상태였다. 적당한 습도와 향기가 더해져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해먹은 보기와 달리 편안했다. 몸을 눕히자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이 카페의 이용료는 1시간에 5000원. 영국과 스페인에서 직접 수입한 커피와 홍차, 향긋한 차도 포함된 가격이다.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잡지와 책도 마음껏 볼 수 있어 ‘힐링’ 장소로 제격이다. 인근에 모 대기업 사옥이 자리하고 있어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수면방을 찾은 직장인 김모(32)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점심을 먹지 않고 바로 이곳을 찾는다. 김씨는 “항상 잠이 부족한데, 해먹에서 1시간 누워있다 사무실로 복귀하면 좀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자 대부분은 김씨와 같은 직장인이지만, 대학생 등 일반인도 적지 않다. 대학생 오모(28)씨는 가끔 해먹을 떠올린다. 한번 맛 들린 이후 그 매력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오씨는 “누워서 이용하는 카페라고 생각한다”며 “일반 카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사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면방은 단돈 5000원으로 1시간 동안 마음 편히 잠자고, 지정한 시간에 잠을 깨워주는 알람서비스를 받고,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휴식공간의 등장은 우리에게 여유가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극도의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점심밥 대신 낮잠 선택하는 직장인들
1시간 5000원…해먹에 누워 ‘드르렁’
 
전문가들에 따르면 30분에서 1시간 동안 낮잠을 자면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어든다. 때문에 스트레스 감소와 마음 안정 효과가 나타나 일의 집중도와 능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1일부터 ‘쪽잠제도’를 도입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야근자나 건강이 좋지 않은 직원 등이 이 제도를 이용해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서울시의 쪽잠제도는 점심시간 이후인 1시부터 6시 사이에 쉬고 싶은 직원이 부서장에게 신청해 허가받은 후 30분에서 1시간 동안 공식적인 휴식을 취하는 제도다.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은 서울시청 신청사와 서소문별관에 설치된 직원 휴식공간이다. 부서장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 직원들의 낮잠 신청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용률은 시행 초기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좋은 제도를 두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최근 홈페이지 회원 2470명을 대상으로 수면과 숙면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하기 위해 실시한 ‘숙면 및 수면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 많은 응답자들이 자신의 수면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소 본인의 숙면·수면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0.73%인 759명만 만족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만 본인의 수면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수면시간 부족과 수면의 질인 숙면을 취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수면시간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57.85%인 1429명이었다. 본인의 평균 수면시간에 대해 묻는 질문에 5∼6시간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932명으로 가장 많았던 반면, 적당한 수면 시간에 대한 질문에는 7∼8시간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1301명으로 가장 많아 수면의 양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면의 질에 대한 부분에서는 수면시간보다 숙면 여부가 중요했다. ‘수면시간 부족’을 꼽은 응답은 20.21%에 그친 데 반해,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으며, 자다가 자꾸 깨거나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등 숙면과 관련된 응답은 전체 응답의 76.61%에 달했다. 

수면시장 확대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환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08년 22만8000명에서 2012년 35만7000명으로 최근 5년 동안 약 60% 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급증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웰슬리핑(well-sleeping)’ 수면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초창기에는 주로 이불, 베개, 침대 등 침구류에 집중되어 발전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종 생활용품, 화장품, IT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IT업계의 경우 스마트 워치나 손목밴드, 수면 유도등, 수면안경, 수면안대 등을 내놓고 있다. 침구류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뇌파에 영향을 주는 골전도 숙면 베개, 스피커를 통해 숙면을 돕는 음악 베개 등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숙면시장이 ‘보조’에서 ‘치료’하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khlee@ilyosisa.co.kr>
 

‘잠이 보약’ 숙면 10계명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라
▲잠자리에 소음을 없애고, 온도와 조명을 안락하게 하라
▲낮잠은 15분 이내로 제한하라

▲40분 동안 땀이 날 정도의 낮 운동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
▲카페인이 함유된 음식, 알코올 그리고 니코틴은 피하라
▲잠자기 전 과도한 식사를 피하고 적당한 수분을 섭취하라
▲수면제의 일상적 사용을 피하라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피하고 이완하는 법을 배워라
▲잠자리는 수면과 부부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하라

▲잠자리에 들어 20분 이내 잠이 오지 않는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완하고 있다가 피곤한 느낌이 들 때 다시 잠자리에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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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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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