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교회 텅빈 청년부, 왜?

예배당에 젊은 사람이 없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교회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 교회 부흥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기둥인 청년들이 하나둘 예배당을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청년부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 심지어 일부 교회는 사실상 청년부예배를 폐지하기도 했다. 교회공동체의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은 가운데, 현재로선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한 현실이다.

 
“교회에 청년이 없다.”
 
언제부턴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이다. 대학생 위주로 구성된 ‘청년부’를 지탱해야할 젊은이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교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늙은 교회 시대는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로, 교계에서는 ‘교회 고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촌에 청년이 부족하듯, 교회에도 청년 품귀현상이 뚜렷하다. 이러한 청년들의 교회 이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점점 굽혀지는
교회의 허리
 
현재 한국교회의 청년부의 80% 이상이 불과 10∼20명 이하의 대학생 및 청년들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교회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숫자는 하나의 ‘찬양팀’ 수준에 불과하다. 예배당 의자가 텅텅 비어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교회는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일당백’ 청년들 덕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소수의 인원들은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등 다양한 역할로 분주한 상황 속에 놓여있다. 일인 다역으로 인해 평일에도 쉴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쁘다. 신앙이라는 말로 위로를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천의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직장인 신모(28·여)씨는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꾸준히 헌신해왔다. 그는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 성가대, 청년부 임원 등 교회에서 다양한 직책을 한 번에 소화하며 ‘일꾼’으로 통했다. 그는 예배가 있는 주일(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교회에 나가 각종 봉사에 팔을 걷어부쳤다.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교회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반강제적인 상황도 한몫했다. 언제부턴가 청년들이 잇따라 교회를 떠나면서 그들이 기존에 맡았던 직책을 어쩔 수 없이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당백 역할에 지친 신씨는 결국 모든 직책을 내려놨다.
 
젊은층 이탈 심화…뚜렷해진 고령화
일부교회 사실상 청년부예배 폐지도
 
이후 신씨는 주일 오후에 있는 청년부예배만 참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부 인원은 급감했고, 찬양팀 인원마저 이탈해 예배에 차질이 생겼다. 급기야 교회는 사실상 청년부예배를 폐지시켰다. 차라리 장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청년부가 폐지된 뒤부터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이 10명 내외로 뚝 떨어졌고, 서로의 근황도 알 수 없을 정도 청년공동체가 무너져 내렸다. 교회 곳곳에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청년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걸까. 경기도의 한 교회에 출석 중인 취업 준비생 오모(29)씨는 취업스트레스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오씨도 앞서 신씨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런데 취업을 준비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교회에 있는 시간이 불안했다. ‘신앙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오씨는 교회와 관련된 일을 내려놓고 졸업유예까지 하면서 취업준비에 몰두했다.

이외에도 많은 청년들이 교회 일의 압박과 개인적인 상황에 치이면서 교회를 멀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교회에는 젊은 청년이 없다. 각종 행사를 집사, 권사, 장로 등 장년부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교회가 늙어간다’는 위기의식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새로운 피 수혈’이 요원한 상태다.
 
서울의 한 청년부 목사는 “과거에는 청년들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였지만 지금은 장년들 중심으로 움직인다”며 ‘늙은 교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스러워했다. 이 목사는 “청년이 부족한 것은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문제”라며 한국교회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노인들 바글바글
청년 발길 끊어
 
전문가들은 청년부가 위축되는 원인을 크게 교회의 ‘내적문제’와 ‘외적문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내적문제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청년부를 지도하기 위한 전문 사역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청년 이탈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대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단체들의 경우 전문 사역자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지만 일선 교회의 경우에는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목회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는 형편없는 교육환경 때문이다. 신앙훈련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받고 싶어도 교회에 청년이 부족해 일부 청년이 일인 다역을 맡다 보니 중압감 때문에 신앙훈련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장년부가 청년부를 ‘5분대기조’로 활용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금 청년들은 교회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받고 있어 지친 상태라는 것이다.
 
여기에 청년부의 교육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점, 청년부 중심의 교재가 적은 점, 제자훈련, 소그룹 활동, 기도목회 등의 실천적인 전략들이 부재하다는 점 등이 겹쳐지면서 청년부가 활력을 잃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는 수십 년 전 정관이나 회칙, 조직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 변화가 절실하다.
 
 
이러한 내적문제보다 중요한 게 외적문제다. 일단 많은 청년들은 고등부를 졸업하고 청년부로 올라가기 꺼린다. ‘어느 학교에 합격 했나’ ‘누구는 명문대학 갔다’ 등 왜곡된 입시문화는 교회 안에서도 갈등을 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대학부’ ‘대학청년부’ 등 명칭논쟁도 빈번하다. 쓸 데 없는 소모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취업 했나’ ‘누구는 대기업 갔다’ 등.
 
공감대형성이 이뤄지지 않는 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풀이된다. 교회마다 운영방식이 다르지만 보통 청년부는 대학생부터 미혼자로 구성돼 있다. 이 말인즉슨, 20세 대학 새내기와 40세 미혼청년이 같은 소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그늘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청년이탈 현상은 중·소규모 교회의 경우에 한하는 얘기다. 소위 잘나가는 ‘대형교회’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중·소규모 교회의 청년들이 대형교회로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을 지적한다.

예견된 현상
깊어지는 한숨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잘나가는 대형교회 청년부는 여전히 건재하다. 좋은 시설과 양질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점들이 중·소규모 교회에 있던 청년들의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다. 물론 청년들이 대형교회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대형교회에서 오히려 더 큰 실망감만 느끼고 교회를 등지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신앙의 본질을 잃은 채, 외적인 성장만 추구하는 초대형화·기업화된 교회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10일 개봉한 영화 <쿼바디스>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신랄하게 고발한 다큐영화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됐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됐고, 마침내 미국으로 가서 기업에 됐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됐다” 이 영화에 나온 대사다.
 

<쿼바디스>의 주 내용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불법 횡령·세습·성폭력·전별금 등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욕심과 탐욕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교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에 공문을 보내 <쿼바디스>의 영상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본질서 멀어진 대형 기업화 바람
발걸음 돌리게 한 결정적인 계기
 
<쿼바디스>는 서울 서초동 ‘사랑의 교회 건설현장’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탈세·배임 사건’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여신도 성추행 의혹’ 등을 집중 조명했다. 여기에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등 황당한 문제점을 짚고 실제 자료들을 토대로 돈과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 날의 교회를 보여준다.
 
간간히 개혁을 외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과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한국교회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7일 교회개혁실천연대는 ‘2014년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문제상담소 상담통계 및 분석’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신도들을 상담한 내용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교회 분쟁의 주된 요인은 재정 불투명을 포함한 재정 배임 및 횡령 등 ‘돈 문제’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따르면 분쟁이 있는 21개 교회를 상담한 결과 ‘재정 전횡’이 13건, 31.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담임목사의 독단적 운영’은 9건(22%), 교회 세습에 따른 분쟁 5건(12.2%), 목회자의 성문제 3건(7.3%), 설교표절 1건, 헌금강요 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신뢰 잃은 교회
대안적 바람 절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재정과 관련된 문제가 교회분쟁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 수 있었고, 담임목사에 의한 독단적 운영, 교회세습 및 목회자 청빙 관련 문제, 담임목사의 성문제, 목회자 윤리 상담 주제 대부분이 담임목사와 관련 있었다”며 “한국교회는 교회 내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와 의사결정 구조에서 일어나는 일방적인 불통 때문에 교회 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상담 통계로 본 교회 분쟁 경향에서 교회 운영에 대한 평신도들의 관심과 문제의식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또 목회자 그룹 내 내부 고발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교회 분쟁이 사법적 조치로 이어지고, 폐쇄적인 재정, 인사 전횡에 대한 문제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교단 내부적으로 분쟁 해결의 시스템을 전문화하고,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럽은 지금…교회 리모델링 유행
 
유럽교회가 술집과 상가, 체육시설로 리모델링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신도 수가 크게 줄면서 빈 교회와 성당 건물들이 처치 곤란에 빠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에든버러의 루터교 교회가 술집으로 바뀌어 최근 새로 개장했다고 보도했다. 천장이 높은 교회 특유의 구조를 놔둔 채 음산한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꾸며 괴물 프랑켄슈타인 관련 테마가 엿보이는 술집으로 바꿨다.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교회가 서커스 훈련학교로 탈바꿈했다. 학교 측은 교회의 높은 천장이 공중 곡예 연습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는 1889년에 지어진 성당 내부를 흰색으로 칠한 뒤 여성의류 판매점으로 바꿨다.
 
네덜란드의 1600개 가톨릭 성당 중 3분의 2는 신도가 턱없이 부족해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독일에서는 지난 10년간 515곳의 가톨릭 성당이 미사를 중단했다. 영국에서는 연평균 20여 곳의 성공회 교회가 폐쇄되고 있으며, 덴마크에서는 지금까지 200곳 안팎의 교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5000곳의 교회가 새로 생겼지만 신도 수는 오히려 3% 줄어 머지않아 유럽과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종교학자들은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교회가 공동체 결속에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전통을 고려해 건물을 아예 허물기보다는 용도 전환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유지비를 지자체 재정으로 감당하려면 벅찬 데다 수요를 무시하고 도서관이나 공연장 등으로 개조할 수 없자 상업적 이용을 허용했다.
 
교회의 변신은 교계 입장에서는 씁쓸한 현실이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용도가 바뀐 교회 건물에 들러 “웃기는 일” “믿음을 더럽힌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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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