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명실공히 예능왕 유재석

국민들 웃음 책임지는 영원한 국민MC

사전적 의미로 ‘국민’은 소재지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일정한 국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의 구성원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민MC의 뜻은? 그런 구성원에게 대중적 사랑을 받는 진행자를 일컫는다. 여기 국민MC로 대표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유재석이다. 온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남자, 안티가 없는 연예인, 1인자, 예능 천재로 통하는 유재석. 그의 변치 않는 인생사를 알아보자.

지난달 30일 TV에는 SBS <연예대상>이 방송됐다. 올해 마지막 예능 시상식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과연 KBS와 MBC에서 대상을 차지한 유재석이 방송3사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을지 여부였다.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된 가운데 발표된 대상 수상자는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의 진행자인 이경규였다. 카메라는 일제히 그를 비췄고 객석에서는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때 군중들 사이에서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유재석은 선배의 수상에 두 손을 번쩍 들고 마치 제일인 듯 축하하고 있었다.

메뚜기·둘리춤
최고의 예능인

1972년생인 유재석은 1991년까지 유현초등학교, 수유중학교,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처음 TV에 나온 시기를 1991년 이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끼를 선보인 시작점은 1989년 <비바 청춘>이란 프로그램에서다. 그는 당시 용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18살의 나이로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패러디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91년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월5일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된 <제1회 KBS 대학 개그제>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친구 최승용과 함께 ‘개그 칼럼’이라는 코너를 기획해 시청자들 앞에 선보였다. 앞서 발생한 ‘페놀 사태’를 은유한 그들의 코미디는 신선하긴 했지만 유재석은 심각한 무대 우울증으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해피투게더>에서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안 떠는 척 당당한 척 했지만, 시선은 허공으로 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무대에서 유재석과 최승경은 장려상을 받았다. 충분히 큰 상이었지만 당시 갓 20살이 된 꿈 많은 유재석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장려상이 발표되자 그는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른손으로 귀를 만지며 시상식 자리로 향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무한도전>에서 그는 당시 대상을 기대했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장려상을 받았으니 실망이 컸던 것이다. 그는 “실제 시상식이 끝난 후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고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그때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후 대학을 중퇴한 유재석은 본격적으로 KBS에서 개그맨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10년간의 무명생활을 견뎌야 했다. 틈틈이 심형래 감독이 제작한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함께 시작한 박수홍, 남희석, 김용만, 김국진 등이 TV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특히 심각한 무대 울렁증은 ‘방송을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그를 괴롭혔다.

나경은과 결혼
슬하에 아들 하나

오랜 무명생활에 지쳐갈 때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1999년 방송이 시작된 <진실게임>을 통해 인지도를 다지기 시작해 2000년 <목표달성! 토요일 -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첫 메인 진행자로 발탁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깐족거리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치 <톰과 제리>에서 ‘제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해피투게더>에서 발군의 끼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2004년에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을 맡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끌어내는 등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치로 범국민 책읽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KBS·MBC 연예대상 “최다 수상자 등극”
올해 43세…24년간 승승장구 개그인생

2006년은 유재석의 예능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해였다. <X맨> <무한도전>의 진행을 맡으면서 최고의 진행자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쪼아’ ‘당연하지’ 등 다양한 신조어와 ‘후라이팬 놀이’같은 기발한 게임을 통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은 <X맨>에서 그는 재치 있는 입담과 몸개그를 선보여 공동 진행자 강호동과 함께 ‘국민 MC’로 발돋움 하게 된다. 이후 방송국에서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된다는 속설이 돌 정도로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된다. 이후 그 둘은 때로는 선의의 라이벌로서 때론 친한 동료로서 함께 성장한다.

유재석을 얘기하는 데 있어 <무한도전>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무한도전> 시즌1격인 <무모한 도전> 진행을 맡아 수많은 폐지 논란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낸다.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에서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시청자들을 위해 매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다. 덕분에 MBC 예능 역사는 <무한도전>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파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시청률이 높든 낮든 트렌드를 이끌어 간다는 측면에서 <무한도전>이 현존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것은 물론 한 여성과의 사랑에도 성공하게 된다. 그는 <무한도전>을 통해 당시 객원 아나운서로 활약한 나경은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81년생인 그녀는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한 방송에 의하면 그녀는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고. 이후 그녀는 2004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요리보고 세계보고> <뽀뽀뽀> 등에서 활약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유재석을 만나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2008년 7월 결혼식을 올렸다. 나경은·유재석 부부는 결혼 3년 만인 지난 2010년에 아들 지호 군을 출산했다. 현재 그녀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아나운서를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석은 빠르게 변하는 예능 판도 속에서도 뒤처지는 모습 없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1박2일>을 시작으로 야외 버라이어티가 예능계를 주도할 때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예능 감각을 선보여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차세대 예능을 표방한 <런닝맨>을 통해 10대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 결코 떨어지지 않는 체력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 전원이 열심히 뛴 덕에 <런닝맨>은 최근 중국에 포맷이 수출되는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예능으로 거듭났다.
 

이처럼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다 보니 상복도 따라오기 시작한다. 2003년 KBS <연예대상> ‘TV진행부문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매해 굵직굵직한 시상식에서 상을 탔다. 현재까지 KBS에서 2회, MBC 4회, SBS 4회, 백상예술대상 1회 등 총 11차례 대상을 거머쥔 그는 2005년부턴 매년 빠지지 않고 수상받고 있으며 이미 2013년 대상을 통해 방송사상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무한도전·런닝맨
종횡무진 활약

그의 활약은 예능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10억 뷰’를 기록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은 노란색 옷을 입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존재감을 보여줘 해외에서는 ‘옐로우 가이’로 통한다. 또한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음악의 한 장르인 랩에도 도전해 최근 랩퍼 스윙스와 CF촬영도 함께 하는 등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팔색조 활약은 부단한 노력과 소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처럼 오래도록 방송을 하기 위해 술·담배 등을 일절하지 않고 헬스로 기초체력을 관리한 결과 지금과 같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현재 가장 소통을 잘하는 진행자로 알려진 그는 선배는 물론 후배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에 재능이 더해지니 장기집권의 끝은 아마도 그가 은퇴를 해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이처럼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배려와 사려 깊음 속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MBC <연예대상>에서 탤런트겸 영화배우인 박슬기는 뮤직·토크쇼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을 이야기하며 “유재석 선배님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유재석의 남다른 배려심 덕분이다. 2007년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상을 받지 못한 박슬기는 무대 뒤에 밀려나 있었다. 그때 유재석이 나타났고 많은 케이블TV, 아침방송 카메라들이 그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결국 박슬기는 더욱 뒤로 밀려났다. 자칫 연예인으로서 서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유재석은 “우리 슬기씨 자리 좀 내 달라”고 양해를 구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설움이 복받쳤다. 그녀는 그날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유재석을 만나면 늘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늘 동경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분이 나를 챙겨주시니 어떻게 안 좋았겠냐”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부단한 자기관리와 진심 다한 소통
최고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예능인

MBC 공채 20기 개그맨 오지환이 지난달 3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긴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오지환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무한도전> 멤버들과 마주쳤다. 당시 느낌에 대해 오지환은 “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말이 선배님이지 저에겐 그저 연예인일 뿐이고 그분들은 제가 개그맨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회상했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오지환은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넸는데 걱정과 달리 따뜻하게 인사를 받아줬다.

특히 유재석은 “개그맨 생활 힘들죠?”라며 “이 바닥은 잘하는 사람이 뜨는 게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뜨는 거예요. 힘들어도 개그 포기하지 말고 버티세요”란 조언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오지환은 당시 개그맨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였는데 조언을 받고 나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개그에 몰두하게 되었다.


유재석의 이런 진심 어린 말은 수상 소감 때도 이어졌다. MBC <연예대상> 수상 후 그는 “우리 예능의 뿌리는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아쉽게도 오늘은 동료들, 후배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지랖 넓은 말을 하는 거 같지만 다시 한 번만 더 꿈을 꾸고 무대가 필요한 후배들에게 내년에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심은 더 높은 자리와 명예가 아닌 힘들고 어려운 후배들을 향해 있었다.

존경받는 선배
연예인 멘토 1위

지난 2011년 <무한도전>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그는 ‘말하는 대로’를 불렀고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곡은 그의 유년 시절 겪었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다짐을 담고 있다. 지금은 최고의 진행자가 됐지만 그도 지금의 20대 못지않게 힘든 삶을 살았고 앞날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최근 에듀윌이 문화공연이벤트에 참여한 회원 9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멘토로 삼고 싶은 연예인’ 1위를 유재석으로 꼽았다. 믿음과 신뢰가 뒷받침 되어야 형성될 수 있는 것이 ‘멘토-멘티’의 관계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유재석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유추가 가능하다.

“만약 내가 스타가 된다 해도 힘들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유재석이 밝힌 이 말처럼 2015년에도 그는 변함없이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달릴’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BS 연예대상은 이경규

2014 S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가 대상을 수상한 가운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수상소감을 전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오후 9시부터 시작된 2014 S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는 유재석을 비롯해 강호동, 김병만 등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자가 발표되자 후배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이경규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후배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특히 유재석과 강호동은 두 손을 번쩍 들며 제 일처럼 환호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혀 훈훈함을 더했다.

이경규의 수상소감도 화제가 됐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입을 연 뒤 “아버님이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이런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셨을 것이다”며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큰 재능을 물려받았기에 아버님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전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했다. 이어 “파이팅 넘치는 강호동, 배려하는 유재석, 정글에서 고생하는 김병만. 여러분 발목을 붙잡아서 미안하다”며 후배들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경규는 현재 <힐링캠프 - 기쁘지 아니한가>와 <붕어빵>의 진행을 맡고 있으며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노련한 진행 솜씨를 보여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SBS에서 연예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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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