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아청법 '앞과뒤'

“미성년 야동 받으려던 게 아닌데…” 졸지에 성범죄자 낙인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뒤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만화를 그려 배포하면서 아청법의 맹점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한 번의 클릭으로 단순히 파일만 잘못 다운로드받아도 아동음란물 배포자로 기소돼 멀쩡한 청년이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의도치 않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마사토끼는 웹툰 작가답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했다. 아청법 제도의 모순점을 생생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지적한 것이다.

껍데기 까보니
엉뚱한 알맹이
 
지난달 28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마사토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화가 겸 스토리 작가 양찬호(30)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masaruchi) 등에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는 8편짜리 웹툰을 연재했다. 이 웹툰에 따르면 앞서 마사토끼는 지난 9월 경찰로부터 아청법상 아청법을 위반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문제의 사건을 떠올려 만화로 구성했다.
 
웹툰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어느 날 갑작스레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소지·음란물제작·배포 등)’ 그는 불안한 마음에 만화가 인생이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다. 자신을 성범죄자로 인식할 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마사토끼는 이 일을 평생 비밀로 안고 살아가려고 결심하던 찰나, 자신이 겪은 일을 만화로 정리하고자 결심했다. 이내 마사토끼는 불안했던 자신의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냈다. 자신과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라는 공익적인 목적도 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선 그는 출석요구서가 날라온 부산의 모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해당 서는 그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줬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P2P(peer to peer) 프로그램으로 한 파일을 공유했다. 경찰은 서울에서 조사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반성문을 써가면 좋다는 팁까지 알려줬다. 큰일이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이후 마사토끼는 자필로 준비한 반성문을 들고 인근 경찰서 사이버수사과를 찾았다. 분위기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조사도 없었다. 그저 그가 다운로드 받은 영어와 숫자로 된 파일명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사토끼는 파일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초 구체적인 파일명이 아닌, 검색어를 통해 다운로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파일 안에는 일본 여학생 나체사진이 가득했다. 에로 셀카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사실 마사토끼는 에로만화를 보기 위해 P2P 내에서 검색을 하던 중 특정 단어를 검색, ‘요정전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했다. 이 파일에는 만화 권수마냥 넘버링까지 붙어있었다. ‘요정전설 1, 요정전설2…’. 마사토끼는 이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파일은 클릭과 동시에 배포가 시작됐다.
 
마사토끼가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받았던 파일의 제목과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요정전설’을 다운 받은 뒤 재생시켰지만 정작 요정과 전설과 관련된 내용물은 없었다. 아동 음란물이 나왔던 것이다. 당황한 그는 해당 파일을 즉시 삭제했다. 그러나 파일을 내려받는 즉시 업로드를 하게 되는 P2P 특성상 아동 음란물을 배포한 파렴치범이 된 것이다. P2P에서는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충격이 더했다.

클릭 잘못했다가…
성범죄자로 등록
 
마사토끼는 가짜 파일에 속은 뒤 곧바로 다른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그가 아동 음란물을 다운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사토끼는 결국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고 며칠 뒤 사건 관할서가 서울로 옮겨졌고 검사가 배정됐다는 우편을 받았다. ‘마사토끼가 아청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 팬에 의해 그의 아동 음란물의 정체, 정확한 파일명이 ‘요정전설 13세의 성노예’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토끼는 해당 웹툰을 통해 자신의 사례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아청법의 비현실적인 부분도 짚었다. 일례로 아청법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배포하거나 소지한 경우도 처벌하게 돼 있는데,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의 아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청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면서 “다만 기왕 규제할 것이라면 무엇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원인인지 파악해 현실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마사토끼는 비록 실수이긴 하지만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받고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마사토끼는 지난 11월28일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 신상정보 등록 명령을 받았다.
 

유명 웹툰 작가 만화 다운받다가 걸려
카톡 대표 얼떨결에 피의자 신분 소환
  
남일 인 줄 알았던 아청법을 피부로 직접 느낀 마사토끼의 실화를 접한 팬들은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현실과 맞지 않는 아청법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 팬은 “마사토끼는 비난받아야 할 아청법 위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실수한 부분을 무시하고 법전의 글자만을 근거로 입건한 경찰 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청법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인과관계는 어디에도 없다”며 ”아청법은 현실 세계의 아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도치 않게 성범죄자로 몰린 마사토끼 사건의 핵심에는 P2P가 있다. P2P 파일 전송 네트워크는 서버란 개념이 없다. 어떤 사용자가 한 파일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내려 받는 방식이다. 올리는 쪽과 내려 받는 쪽 모두 동시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오디오나 비디오, 데이터 등 임의의 디지털 형식 파일의 공유에 적합한 서비스로 과거부터 꾸준히 사용돼 왔다.
 
이처럼 이용자 간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일부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는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P2P에 떠도는 음란물 중 10%가량이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지뢰찾기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콘텐츠를 다운 받고자 검색해서 클릭해도 막상 파일을 실행해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2P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파일공유 서비스다. 어느 정도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그간 큰 문제 없이 수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청법 시행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파일 제목에 낚여 잘못 다운로드 받았다가 수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신상정보 등록 등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기존의 이용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설익은 법…
엉뚱한 화살
 
아청법의 화살은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에게도 향했다. 지난달 10일 이 대표가 아청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10일 대전 서구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다음과 합병하기 전 카카오에서 대표로 있을 당시 ‘카카오그룹’을 통해 유포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해 사전에 전송을 막거나 삭제할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서비스 대표에게 아청법을 적용해 입건한 첫 사례였다.
 
이후 24일 이 대표는 아청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말이 많다. 경찰이 이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법률적 근거는 아청법 제17조 1항이다. 관련법에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동음란물 배포 안 해도…줄줄이 기소

“본래 취지와 달리 과도하게 집행” 지적
 
이 법에 따르면 이 대표는 카카오그룹에 유통된 자료들 가운데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을 찾아내 즉시 삭제하거나 사전에 이러한 자료들이 이동할 수 없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설익은 법이 멀쩡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아청법을 따르자면 카카오그룹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한다. 그러나 카카오그룹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청법을 실행하면 통비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통비법 제3조에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정취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감청이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실시간 모니터링은 ‘감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아청법은 ‘사전적 기술조치’를 요구하지만 관련법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현재 네이버나 다음은 성인음란물에 대해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 기술적으로 음란물 유통을 막고 있다. 온라인 포털 또한 이용약관을 통해 아청법 관련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 감청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법률 간 충돌
과도한 법집행
 

반면 카카오그룹에는 동일한 적용이 어렵다. 통비법 위반 소지도 그렇지만 아청법 11조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 DB 구축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음란물 이동을 막을 길이 없다.
 
아청법은 지난 2011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던 최형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음란물이 온라인으로 유포될 때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9월15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 이듬해인 2012년 3월16일부터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됐다.
 
아청법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꾸준히 개정됐지만 17조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적 기술조치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통비법과의 충돌도 여전한 상태로 ‘미완의 법’으로 남아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소관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의견조율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당초 법을 제정할 때 법 간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검토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교복 성인물’ 판결 보니…
“발육 상태로 성인 판단”
 
음란물에서 교복 입은 인물이 성행위를 하더라도 명백히 아동·청소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음란물의 제작·유포자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 형사합의 1부는 아청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기소된 채모(46)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만원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동영상 속 여성이 외모나 신체 발육 등에 비춰 아동·청소년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 성행위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해당 동영상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번 판결의 발판은 지난 9월에 있던 재판이었다. 당시 박모(34)씨도 앞서 채씨 처럼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해당 성인 동영상에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지만, 외관상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지 않는 만큼 아청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에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 등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연출된 인물이 음란 행위를 하는 동영상은 일반인에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벌금 300만원과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동 음란물 단속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수사당국이나 법원에서 사건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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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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