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자화상

부모 봉양에 자식 뒷바라지까지 “언제 편해지나”


‘낀 세대’ 베이비부머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전쟁 후 출산붐을 타고 태어나 고단한 인생역정을 겪었던 이들. 민주화과정과 IMF, 금융위기까지 견디고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의 삶은 버겁다. 늙은 부모 봉양에 결혼을 앞둔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짊어진 짐은 여전히 무겁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한 노후준비는 아직도 까마득하기만 하다. 베이비부머의 애환을 들어봤다.


은퇴 러시 앞둔 베이비부머들의 고단한 인생
노후대책보다는 부모, 자식에 대한 책임감 커


“IMF 모진 바람 피하고 직장후배들에게 질기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버티다보니 어느새 퇴직할 나이가 됐습니다.” 몇 달 후면 30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해야 하는 김모(56)씨는 요즘 심란하기만 하다. 퇴임식 준비로 분주한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불안하기도 하단다.

지긋지긋한 샐러리맨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은 김씨에겐 사치일 뿐. 아직도 건사해야 할 가족들이 남아있는 탓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결혼을 앞둔 큰딸, 대학원에 다니는 둘째 아들, 중학생 늦둥이 아들까지 김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족들이 수두룩하다.

제2의 인생도 샐러리맨

가지고 있는 재산은 집 한 채와 직장생활동안 모아둔 약간의 자금, 퇴직금이 전부. 이 상황에서 몇 달 후면 고정 수입마저 끊길 처지라 한숨만 늘어난단다. 김씨는 “딸 혼수비용에 아들 대학원등록금까지 목돈 들어 갈 일이 줄을 지어있는데 이대로 직장을 나와 버리면 생활이나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퇴직도 하기 전에 새 직장을 알아보라는 마누라 잔소리를 들을 때면 일하는 기계 인생이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태어난 게 원망스럽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앞날에 대한 걱정에 담배만 늘었다는 김씨는 결국 작은 중소기업 팀장자리를 맡아뒀다. 김씨가 다니던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일하는 회사다. 전 직장에 비하면 회사 규모도, 연봉도 비교할 수 없이 적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체면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막둥이아들 대학교까지 보내고 나면 이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그때가 되면 내 나이가 70이 다 될 텐데 그때까지도 샐러리맨으로 일을 하면서 책임감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김씨의 이야기는 이 시대 수많은 아버지들의 삶이기도 하다.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 온 이들에게 편안한 노후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출산붐을 타고 태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남은 것은 자식들 뒷바라지와 끝나지 않는 고단한 삶 뿐인 것.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이들은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다. 그 수만 712만명에 달한다. 한국 전쟁 이후의 가난과 고도성장으로 인한 풍요로움을 동시에 맛보며 성장한 이들 세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내는데 젊은 날을 바쳤던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취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직장에서 전성기를 누려야 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외환위기란 거대한 장벽을 만난다. 잘리지 않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 것. 갖은 눈치와 괄시 속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편한 날은 없었다. 아날로그 세대인 이들에게 세상은 디지털로 변화할 것을 요구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기기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이들에게 도전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후배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또 한번의 위기가 닥쳤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그것.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는 이들이 버티기엔 너무나 매서웠다. IMF도 견뎌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 다시 만난 산은 너무 높고 가팔랐다.

잊고 지냈던 명퇴이야기도 다시 회자됐다. 칼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썼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간간이 들렸다. 이 모든 위기를 헤치고 꿋꿋이 살아남은 이들도 이젠 직장에서 떠날 때가 됐다. 본격적인 은퇴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2010년부터 베이비부머들은 하나둘씩 퇴직을 하게 된다. 기업들의 정년 연장 움직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기도 했지만 언제 제도화될지는 미지수. 특히 정년을 코앞에 둔 이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다보니 베이비부머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설문조사로 여실히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정도가 매우 높았다. 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 노후준비도 그리 탄탄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에 의존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2008~2009년 사회조사를 통해 본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에서 나타난 결과다.

먼저 이들은 가족 부양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한 결과 베이비부머의 99.1%가 ‘자녀의 대학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90.0%가 ‘자녀 결혼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부모 중 한 분이라도 생존해 있는 경우가 68.5%에 달해 부모 봉양의 책임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정, 직장 스트레스 이중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정도도 높았다. 15세 이상 인구의 60.4%가 스트레스를 느끼는데 비해 베이비부머의 65.2%가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경우도 7.1%를 차지했다. 자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52.8%)’이 가장 많았으며, ‘가정불화(18.0%)’ ‘외로움·고독(10.6%)’ 순이었다.

체계적으로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는 적었다. 80%가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노후 준비 방법으로는 국민연금을 꼽은 이들이 38.5%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예금·적금(24.3%), 사적연금(19.5%), 기타 공적연금(7.1%) 순이었다. 10명 가운데 2명꼴로 노후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이 중 50.3%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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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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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