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⑮목숨을 구걸한 A급 전범들

재판정 서서 마지막까지 변명과 핑계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그는 자신이 독일, 이태리, 일본의 삼국동맹을 주도하고, 동남아시아 침략을 주도했으며, 진주만 습격을 명령한 전쟁 주범이면서도, 재판에서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당당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을 변명하는 일로 일관했다.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으로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자신은 집행한 것뿐이라며, 모든 죄를 전임자에게 돌리고 선처를 호소했다.

명백한 거짓말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자신은 집행만 했다는 진주만 공격도 사실은 그가 주도한 것이었다. 1937년의 루거우차오(노구교 : 盧溝橋)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중국 침략을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이 중국을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던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게 철수를 요구하면서 군수물자 통제에 들어갔다.

특히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은 인도네시아와 중동으로부터 일본으로 가는 석유 수송을 필리핀 해협에서 차단하며 일본에 압박을 가했다. 군수물자 확보가 절실해진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 아래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는 한편 미국과 교섭을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과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본의 입장으로 미·일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일본은 드디어 1941년 9월6일 어전회의를 열어 10월 초까지 미·일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을 공격 한다고 결의한다. 이 어전회의에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은 굴복이라며, 차라리 미국과 전쟁을 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의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였다.

그는 미·일 교섭의 진전이 없음에도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가 10월 초가 되어도 전쟁을 선포하지 않자 그를 사퇴시킬 것을 왕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후임 총리로 부임한 ‘도조 히데키’는 첫 어전회의에서 진주만 공격을 재차 결의했다.

‘대미 교전’을 결정한 어전회의 당시 총리는 ‘고노에 후미마로’였다 해도 대미 공격을 주장한 사람은 바로 당시의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였고, 고노에 후미마로를 대미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총리직에서 쫓아낸 사람도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그리고 그 후임 총리가 되어 진주만 공격을 재차 의결한 사람도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명령 따랐을 뿐 살려달라" 눈물로 호소
모든 죄 전임자에 돌리고 국민 탓하기도


그럼에도 도조 히데키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재판관들이 일본 정치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은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실행했을 뿐”이라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도조 히데키는 한술 더 떠 “전쟁의 진짜 원인은 서구의 동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정책의 영향과 세계 적화를 꾀하는 공산당의 책동이었지, 결코 일본이 전쟁을 유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더하여 “나의 정권 아래서 아시아 각국은 일본과 대등한 입장이었지, 결코 식민지거나 피 점령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원폭투하 등 승전국이 자행한 대량 학살에 대해 재판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며, 그 죄도 추궁하자고 호소했다. 중국과 일본의 전면 전쟁 계기가 됐던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과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사건’ 등 대중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 정책은 바로 직전의 정권에서 세운 계획으로 자신은 집행만 한 것이지, 자신이 정책을 계획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자신에게 돌아올 패전의 책임을 일본 정부와 국민의 탓으로 전가한 사실도 밝혀졌다.

항복 직후 쓴 수기에 “적의 위협에 겁먹고 손을 들어버리는 내각 지도자와 국민의 나약한 정신을 믿고 전쟁에 나선 것에 대해 개전 당시 책임자로서 깊은 후회를 느낀다”고 말하고 “신 폭탄(원자폭탄)에 움츠러들고 소련의 참전에 움찔해 무조건 항복하면, 국민의 전투 의지는 급속히 사그라진다. 이런 사태는 군을 지휘 통수하는 데 지대한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며 내각 결정에 반발했다.

이를 두고 ‘도조 히데키’ 연구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패전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 추궁에 신경을 곤두세운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처형되기 전에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咤)의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이 또한 위선이 아닌가 한다. 처형되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제대로 자살도 못하고, 재판에서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삶을 구걸하던 그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에는 마치 의연히 죽는 듯이 유언시를 남기는 행동은 너무 위선이라고 생각된다. ‘도조 히데키’는 전형적인 소심한 인간이었다.

전세가 유리할 때는 무슨 배포가 대단한 사람인 양 확전에 확전을 주도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고 하와이까지 공격을 강행하면서, 부하에게는 사무라이답게 죽으라며 ‘전진훈(前進訓)’과 ‘와전옥쇄(瓦全玉碎)’의 훈령을 내렸던 그가 관동군에 있으면서 침략한 중국 난징의 대학살에서 보듯이 점령지 민족들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포악했으나, 막상 패전하자 자신은 겁이 나서 죽지도 못하고, 재판에서는 살아보겠다고 선처를 호소하며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추태를 부렸던 것이다.

부끄러운 추태를 부린 것은 ‘도조 히데키’만이 아니다. 전쟁의 주범, 소위 말하는 A급 전범들은 재판받는 와중에서 서로를 탓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A급 전범 15명이 자신의 변호인 앞으로 제출한 자필진술서에 의하면 “이들 A급 전범들은 태평양전쟁은 스스로 지키려는 정당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언급하는 진술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회피

앞에서 말한 동부 헌병대 사령관 ‘오타니 게이지로’와 필리핀 전선을 지휘하던 ‘무토 아키라’의 추태 외에도, 봉천 특무기관장을 지내면서 그 많은 만주 주민을 학살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도비하라 겐지(土肥原 賢二)’는 “전쟁이 부당하다며 작전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히 반역자가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은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며, 형벌을 낮추어 줄 것을 재판관 앞에서 실제로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이같이 자국민들에게 사무라이 정신을 강요하며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는 치욕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라던 핵심 군국주의자들마저 자결하지 못하고 살아남아, 패전의 책임을 변명하고 전가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추태를 보인다면, 도대체 그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진정한 사무라이의 행동은 어떤 것이냐고 묻고 싶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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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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