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메이저리그 가는 김광현

“현진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SK와이번스 좌완 투수 김광현을 두고 말이 많다.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 도입 이후 세 번 째로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하게 된 그는 기대보다 낮은 포스팅 금액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결정했다. 곧 연봉협상을 마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평가의 굴욕을 피하지 못한 건 분명해 보인다. ‘돈 보다 꿈’을 외쳤지만 야구계 안팎의 평가는 냉랭하다.

 
올해 프로야구 오픈시즌에 MLB 진출을 노리던 SK와이번스 좌완 투수 김광현이 구단의 승인을 얻어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부터 200만달러(약 22억원)의 응찰액을 받아냈다. 김광현은 시즌 시작 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한다고 밝혔다. 스카우트들을 몰고다닌 그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포스팅시스템을 신청하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쩐이냐 꿈이냐
아메리카 드림
 
그러나 200만달러의 응찰액은 김광현이나 구단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선수의 강력한 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던 SK 구단은 포스팅시스템 수용을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의 도전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어느 팀이라도 김광현보다 낮은 수준의 응찰액을 제시받고 심각한 전력 누출을 감수하며 에이스를 내보내기는 어려웠다.
 
앞서 지난 10월29일 SK는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 시즌 김광현의 미국 무대 진출을 선언했다. SK는 프로 데뷔 후 7년간 팀을 위해 헌신한 김광현을 국위선양을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 MLB리그 진출을 돕겠다고 밝힌 바 있다.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광현에 대해 긍정적 기류는 일찍이 감돌았다. 김광현을 선발로 보는 팀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포스팅시스템 절차가 마지막 카운트를 기다렸다. 지난달 6일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MLB 사무국이 김광현에 대한 포스팅시스템 공시를 했다고 확인했다. MLB 사무국은 김광현에게 관심이 있는 구단 중 최고액을 써낸 팀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통보하고, 현 소속팀인 SK에 전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포스팅 금액과 상관없이 일단 도전
‘돈보다 꿈’ 샌디에이고와 본격 협상
 
결과가 나오기 전 김광현은 공식기자회견에서 “돈 문제는 아니다. 꿈을 향한 도전”이라고 밝혔다. 실제 김광현은 연봉이나 보직에는 연연하지 않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밝혀온 바 있다. 이에 구단 관계자들은 “포스팅시스템 금액만 잘 나오면 예상보다 연봉협상이 일찍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었다. 당시 김광현은 야디어 몰리나(세인트루이스)의 에이전트이기도 한 멜빈 로만을 협상 대리인으로 선임해 구체적인 사전 준비를 하기도 했다.
 
소속팀 SK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이왕이면 김광현이 좋은 대우를 받고 나가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1000만달러 이상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는 게 SK의 판단이었다. 그 아래의 금액이라고 해도 헐값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해외진출을 승인한다는 계획이었다. 현지 언론에서 김광현의 이름이 꾸준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인 신호로 봤다.  좌완이라는 장점, 그리고 아직은 어린 나이, 향후 성장 가능성 등 김광현의 가치를 높게 끌어올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2012년 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부터 받은 2573만7737달러33센트의 역대 최고액까지는 받지 못하더라도 500만달러 이상의 수준이 될 것으로 양측은 기대했다. 이 때문에 SK와 김광현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고심을 거듭했다.

포스팅시스템

세 번째 MLB행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지난달 12일 SK는 시간을 끌지 않고 신속히 김광현의 포스팅시스템 최종 응찰액이 200만달러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 스포츠매체 <폭스스포츠>의 명칼럼니스트인 켄 로젠덜에 따르면 김광현의 포스팅시스템에 나선 구단 중 샌디에고 파드레스가 200만달러(약 22억원)로 최고액을 써냈다.
 
당초 1000만달러까지 내다봤던 SK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금액이었지만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사실상 확정됐다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SK에 전달된 금액은 포스팅시스템에 응한 역대 한국선수가 받아든 응찰액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액수지만, SK와 김광현 측에서 기대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 김광현의 계약이 성사되면 2009년 최향남(101달러·롯데 자이언츠→세인트루이스)과 류현진에 이어 세 번째로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미국 프로야구로 직행하는 선수로 기록된다. 아울러 김광현은 류현진에 이어 두 번째로 100만달러 이상의 포스팅시스템 금액을 받아낸 선수가 됐다.
 
김광현은 구단을 통해 “결과를 수용해주신 구단과 김용희 감독님을 비롯한 SK 와이번스 선수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렸을 때 꿈꾸던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기회를 잘 살려 실력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다. 신인 같은 마음으로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숱하게 한국을 찾아간 미국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이 김광현을 구원투수 요원 급으로 분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90마일 초반대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투-피치’만으로는 그 구위가 제아무리 뛰어나도 미국에서 버텨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섰던 거 아니냐는 것이다. 힘과 세기를 겸비한 미국 야구에서 투-피치로 플레이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포스팅시스템 금액 200만달러는 김광현을 확실한 선발요원으로 결론 내렸다면 결코 나오기 힘든 숫자였다. 그런데 조금 애매한 것은 구원투수라는 전제하에 따지고 보면 200만달러가 아주 박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동안의 한·일 프로야구 포스팅 역사나 미국에서 형성되는 전체적인 구원투수 몸값을 놓고 볼 때 포스팅시스템 후 연봉계약까지 2~3년 총액이 최대 1000만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낮은 대우…헐값 논란
마이너 전전할라…야구계 우려
 
일례로 지난달 1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막을 올린 ‘메이저리그 단장회의’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있는 미국 지상파 ‘CBS 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존 헤이먼이 익명의 단장을 인용해 그 단장이 직접 예상해 내놓은 매년 ‘적중확률 50% 이상’을 자랑하는 올겨울 자유계약선수(FA) ‘톱50’의 계약을 살펴보면 구원투수 중 1위(전체 12위)에 오른 데이비드 로벗슨(양키스)의 몸값이 3년 4500만달러로 나타났다. 로벗슨은 올 FA시장에서 눈여겨볼 유일한 마무리투수라는 데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셋업맨 이하 구원투수로는 전체 18위에 오른 앤드루 밀러가 3년 2200만달러 선이다. 2014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와 볼티모어를 오간 좌완 강속구투수(평균구속 93.9마일) 밀러의 시즌 평균자책점(ERA)은 2.02다. 무려 73경기를 뛰면서 62.1이닝 동안 솎아낸 탈삼진 수만 103개에 이른다.
 
랭킹이 내려갈수록 몸값은 점점 곤두박질친다. 랭킹 31위인 루키 그레거슨(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이 1년 500만달러, 한때 최강의 클로저 중 하나였던 32위 라파엘 소리아노(워싱턴 내셔널스)가 1년 800만달러로 예측됐다. 올해 올스타에 선정됐던 팻 니쉑(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조차 1년 400만달러인 점을 볼 때 김광현의 몸값 총액 예상치는 나쁜 수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대 반 걱정 반
한국야구 위상?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꿈을 향해 도전하라고 권하기에는 뭔가 석연치않다. 미국 스카우트들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겠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어느 정도 내상을 입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가 다소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은 ‘나쁜 선례’를 걱정하는 것이다. 한국선수 ‘후려치기’ 러시가 들어올 소지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이번 포스팅을 받아들인 샌디에고가 취할 연봉협상 태도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미 샌디에고 유력 일간지인 <유니온-트리뷴>에서는 “김광현에게 제시한 200만달러조차 상상 지출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찔러보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이것이 MLB의 생리다. 쓸만한 선수라고 판단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이너리그 거부 옵션을 껴서라도 선수를 데려온다.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걱정해야할 우려가 적지 않다.
 
 
김광현에게 던져진 200만달러의 조건은 추후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제대로 된 연봉이나 받으면 다행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타 선수를 위한 옵션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MLB에서 고생만 하다 시간을 허비하고 다시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좋은 조건으로 MLB에 입성했다가 마이너리그를 돌았던 이가와 게이(오릭스 버펄로스)의 사례를 기억해할 것으로 보인다.
 
일로노이주 시카고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의 자회사인 <시카고 나우>는 “KBO의 스타 김광현이 좋은 시즌을 보낸 뒤 포스팅 될 예정”이라며 “그는 올 시즌 리그 탈삼진과 평균자책점(ERA)부문에서 ‘톱5에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김광현에게는 몇 가지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면서 “첫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부상으로 고생한 전력이 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다”지적했다.
 

이어 “그가 가진 스터프로 볼 때 90마일 초반대 패스트볼과 두 번째 주무기 등이 모두 평균 수준으로 분석되고 때때로 컨트롤(투쿠제어)과 커맨드(경기운영)로 고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김광현의 종합 프로필은 구원투수 아니면 빅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의 마지막을 책임질 어깨 정도로 평가된다”면서 “이 수준이라면 컵스 자체 마이너리그 내에서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비슷한 옵션(선택사항)이 많아 컵스는 포스팅 비용으로 거액을 쏟아 붓지 않는 선에서 김광현에 관심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김광현은 빅리그 스터프를 지녔다. 명백하게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 레벨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다”며 “만약 김광현이 시작 단계의 21살 유망주였다면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어찌됐든 김광현은 MLB행을 선택했다. 그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으로 선발투수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야할 것으로 보인다. 샌디에고와 김광현 측은 내달 안에 연봉 협상에 들어간다.

저평가 논란
MLB 딜레마
 
2007년 김광현과 나란히 데뷔한 양현종은 구단의 만류로 국내에 남게됐다. 김광현 보다 약 50만달러 적은 금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각자 소속 구단이 한국시리즈 정상을 제패하던 시절 새로운 에이스로 주목받으며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선택은 달랐다. KIA타이거즈는 양현종에 대한 포스팅 응찰액을 수용하지 않았다. 굳이 자존심을 구겨가며 열악한 연봉으로 고생할 필요가 있겠냐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현재 한국야구는 일본과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1995년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의 관문을 열고빅리그행 열풍을 일으킨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당시 일본 선수들은 가만히 있으면 몇십억엔을 손에 쥘 수 있는 선수들이 100만달러에도 못미치는 헐값에 미국행을 결정했다. ‘돈보다 꿈’이라는 외침 뒤에는 풍족한 일본 야구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이 주효했다. 일본 선수가 현역으로 7∼9년 뛸 경우 남부럽지 않은 돈을 모으게 된다. 돈 걱정 없고, 설사 실패한다 해도 얼마든지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깔려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일본야구 스타들은 포스팅시스템 또는 FA자격으로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 선수들의 움직임에 빅리그 구단들은 일본 야구시장을 ‘전략적 확보의 장’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한국야구는 박찬호 이후 불었던 국내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빅리그행 러시는 한풀 꺾였다. 사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그 방법이 달라졌다. 일단 프로리그에 뛰어든 뒤 국내 무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려는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졌다. 메이저리그 진출 방식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다르지만, FA광풍과 메이저리그행 이적료 사이에는 무시하지 못할 상관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김광현은?]
 
▲서울 출생
▲안산공고 졸업
▲건국대 체육교육과 학사
▲제6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경기도 안산시 스포츠 홍보대사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
▲프로야구 올스타전 동군 대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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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