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대한민국 新 쩐의 전쟁 ②재계 현금사수 백태

재계가 ‘쩐의 전쟁’에 돌입했다.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 이는 대기업일수록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유동성 위기설, 부도설, 사정설 등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경영환경 속에서 믿을 만한 구석이 ‘쩐’밖에 없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세상’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이런 분위기는 이명박(MB) 대통령의 강력한 투자 주문에도 요지부동이다. 재계는 ‘곳간’을 쉽게 열지 않을 태세다. 각 기업들의 현금 확보를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조명해 봤다.

‘보릿고개 초비상’ 곳간 걸어 잠그기

재계는 폭풍전야다. 유동성 악화설, 부도설, 사정설 등의 ‘칼바람’이 언제 어디로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살생부’에 사명이 오르내리는 기업은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하다. 여기에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도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겹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기업 자금사정 심각“부채비율 등 부담”
더구나 기업들은 고유가, 환율하락 등 대내외적인 경영환경의 악화에서 비롯된 ‘9월 위기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중에서도 금호아시아나그룹, 두산그룹, STX그룹, 유진그룹, 코오롱그룹 등 최근 몇년 사이 대형 M&A를 성공시킨 대기업들은 더 그렇다.
실제 대기업의 자금사정이 심각하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2천1백63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작성한 ‘8월 기업경기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종업원 3백인 이상)의 자금사정 실사지수(BSI)는 지난 8월 85로 전월의 89에 비해 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BSI 통계가 시작된 2003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대기업 BSI는 지난 5월 96에서 6·7월 89, 8월 85 등으로 하락 추세다. 8월 기준으로만 보면 2003년 91, 2004년 93, 2005·2006년 96, 2007년 103 등이었다.
여기에 현금을 창출하는 능력인 영업현금흐름도 좋지 않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비금융기업 중 12월 결산법인 6백1개사의 영업현금흐름이 올해 상반기 1.1%로 지난해 상반기(4.0%)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고 밝혔다. 연간 기준으론 2002년 8.1%, 2003년 6.2%, 2005년 5.8%, 2006년 5.4%, 2007년 4.5%로 역시 하락세가 뚜렷하다. 이중 영업현금흐름이 전혀 없는 기업도 41.1%에 달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각종 위기설이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으나 대기업들이 부채비율 상승 등 자금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해당 그룹들은 설명회 등을 통해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한번 고개를 든 위기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업마다 자금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대기업들은 금융 불안이 단기간에 개선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 철저한 유동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혹시 모를 경기부진 장기화를 미리 대비해 현금 확보에 혈안인 것. MB정부와 여당이 “기업이 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며 재계를 몰아세우는 동시에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이같이 투자를 기피하고 현금을 쌓아두는 현상은 대기업일수록 두드러진다. 증권선물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지난해 12월 결산법인 중 비교 가능한 5백67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올 상반기 64조3천5백1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9천9백3억원(3.19%) 늘어났다.
이 가운데 10대 그룹은 38조1천8백34억원으로 13.85%나 증가했다. 이에 비해 10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상장사들의 현금성자산은 지난해 28조8천2백20억원에서 26조1천6백81억원으로 9.21% 줄었다.
반면 투자는 제자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설비·건설·무형 고정투자를 합한 총고정자본의 전년 동기 대비 실질증가율은 0.5%에 그쳤다. 2001년 -3.6%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은행권 관계자는 “재계의 투자와 고용 등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감소하고 있다”며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몇 십조 원씩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고 말했다.
이도 모자라 대기업들은 ‘돈될 만한’부동산과 계열사 등 자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대우건설 M&A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7월 자산 매각 등으로 4조5천억원을 확보하는 그룹 자산 감축을 통한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대우건설,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계열사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손에 쥐겠다는 복안이다.
대우건설은 내년 말까지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SOC) 지분 매각을 통해 2조원 이상 마련할 계획. 대우건설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은 부산 밀리오레와 대구 대우빌딩 등 비유형자산 1조8천억원, 유가증권 등 유동자산이 3조7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금호산업은 내년 상반기까지 금호생명 등 계열사 지분 매각 등으로 1조원을, 아시아나항공도 내년 상반기까지 대한통운 유상감자 등으로 1조4천억원을 확보키로 했다.
 
‘돈될 만한’재산 팔기“과연 제값에 팔릴까”
유동성 악화설에 휩싸인 유진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부채비율이 93%에서 1백95%까지 치솟아 이자 등의 부담이 커진 유진그룹은 유가증권, 부동산 등 보유자산 매각을 결심했다. 이를 통해 3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진그룹은 지난해 3월 인수한 유진투자증권의 재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무리한 신규 투자로 자금난에 몰린 C&그룹도 불끄기에 진땀을 빼고 있다. 계열사 CEO가 “돌아오는 자금을 막느라 매일 전쟁을 치른다”고 말할 정도로 코너에 몰린 C&그룹은 C&우방랜드, 진도F&, C&우방ENC, C&중공업 철강사업부, C&컨리 컨테이너 부분 등 비주력 계열사의 매각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같은 자산 매각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M&A업계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인 기업들이 이를 진화하기 위해 부동산과 계열사 등 자산을 내놓고 있지만, 부동산 등 시장 침체 상황에서 매입할 기업이 있을지,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고개를 저었다.
대출을 통해 현금 잡기에 나선 경우도 있다. 대기업의 ‘은행 노크’가 늘고 있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대기업은 은행권에서 3조1천원을 조달했다. 지난달 2조1천억원으로 줄었지만, 1월 3조8천억원과 4월 3조5천억원 등 3조원 이상 ‘대출 달’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이 3조원을 대출한 것은 2000년 7월(3조8천억원) 이후 처음이다.
한은 측은 “은행들의 기업대출 증가액을 보면 대부분이 시설투자자금이 아닌 운전자금”이라며 “운전자금을 쌓아두는 것은 어두운 경제 사정 때문에 투자를 미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 움직임도 곳곳에서 일고 있다. 원자재·에너지 절약, 비용절감, 임금동결 등의 비상경영체제를 항시 유지하고 있는 것.
삼성전자는 올해 주력 사업인 반도체의 가격 급락에 따른 수익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하이닉스도 경비절감 차원에서 ‘제품당 1센트 원가 줄이기’운동을 전개 중이다. LG전자 역시 대대적인 경비 절감 운동을 벌이고 있다. LG전자, 현대중공업, 대한항공, ㈜코오롱, 쌍용자동차, 르노삼성, 동국제강 등은 무분규로 임금을 동결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무분별한 ‘곳간 잠그기’에 따른 어두운 단면도 드러나고 있다. 기부금이 줄어든 것이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연간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남기면서 1백만원 수준의 미미한 액수를 사회에 기부하는 사례도 많다.
재계 전문사이트인 재벌닷컴이 2007년 매출 1조원 이상인 1백10개 상장기업의 순수 사회 기부금 지출 내역(사원 복지 부분 제외)을 집계한 결과 기부금 총액은 2006년 1조1천2백67억원에서 2007년 9천948억원으로 11.7%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업들의 순이익은 32조2천8백90억원에서 38조1천8백96억원으로 18.3%나 늘었다. 따라서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정도를 측정하는 ‘순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도 2006년 3.5%에서 2007년 2.6%로 낮아졌다.

기부금까지 잠그나 사회환원 감소 추세
재계 관계자는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더 나쁠 것이란 우려 속에서 꼭 필요한 비용 외에는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이 사훈처럼 굳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의 순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기부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형적인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위기 탈출법
자산매각·대출 ‘그림의 떡’
중소기업에겐 자산 매각, 대출 등이 ‘그림의 떡’이다. 계열사 등 내다 팔 자산이 없고, 대출 또한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시중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들이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내실경영을 표방하며 대출한도를 줄이는 등 리스크 관리에 나선 상태”라며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신규 대출을 사실상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은 결국 인력 구조조정을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 절반가량이 올 하반기 중에 인력 구조조정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전문기업 코리아리크루트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2백59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인력 구조조정 계획’이란 주제로 설문조사 한 결과 53.3%(1백38개사)가 “하반기 인력 구조조정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78.0%가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인력 구조조정 시행 방법’에 대해선 “부서간 통합”(26.1%)이 가장 많았으며, “정리해고”(23.9%), “신규채용 중단·축소”(16.7%), “일부사업 정리·철수”(13.8%), “명예퇴직 권고”(8.7%) 등의 순이었다.
‘인력 구조조정 시행 시기’는 “시기 미정”(34.1%)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9월(28.3%), 12월(22.4%), 11월(9.4%), 10월(5.8%) 순이었다.
규모는 ‘5% 미만’과 ‘5∼10% 미만’이 각각 26.8%, 23.2%를 차지했으며 ‘미정’이라는 응답도 21.0%에 달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큰 불황을 겪을 때마다 중소기업들은 인력 조정을 선택한다”며 “이도 안 되면 결국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대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전반적인 경기 하락 전망 속에서도 신규채용 규모를 대폭 확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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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