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대한민국 新 쩐의 전쟁’(4) 돈 넣고 돈 먹기 ‘연예 매니지먼트사’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연예기획사는 2천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과포화상태다. 그동안 한류 열풍이 불어 연예산업이 활황을 탔었으나, 지금은 많이 식은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사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래의 관행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연예기획사들은 현재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막대한 자본금을 가지고 대형화, 글로벌화를 꾀하고 있는 반면, 영세한 기획사들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동고동락’ 안될까요?”

한국 대중문화계의 핵심은 ‘한류’ 열풍을 만들어낸 스타군단과 그 스타군단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매니지먼트사에 있다. 과거 연예인들의 소속사 역할을 담당하던 방송사들이 SBS의 등장과 더불어 연예인에 대한 전속제를 포기하면서 방송사의 기능을 매니지먼트사(연예기획사)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에 방송사 공채 시험을 통한 연예계 입문이나 각종 미인대회 및 가요제를 통해 발굴되던 연예인 시스템은 매니지먼트사들에 의해 조직적인 체계와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매니지먼트사들의 대형화와 체계적인 시스템화는 한류를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 하면, 한류 스타의 체계적인 관리 등 국내 연예매니지먼트의 다각화와 해외 진출로 이어지는 등 발전적인 모습들도 많이 보여줬다.
매니지먼트사는 스타를 활용한 스타마케팅과 해외진출, 신인발굴 및 트레이닝 등 연예인에 대한 전반적인 영향력이 확대되며 현재의 스타권력을 쥐게 되었다. 또한 방송사, 영화사, 외주제작사 등 제작물에 대한 스타 출연을 전제로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코스닥 상장을 통한 인수합병으로 거대 매니지먼트사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거대기업의 성공사례를 통하여 지난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우회상장 열풍이 불었다. 스타와 기업을 연결시켜 ‘대박’ 효과를 노린 우회상장으로 현재 코스닥에 상장된 엔터테인먼트회사는 40여 개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된 원인은 기존의 매니지먼트사들이 추구하던 스타마케팅 방식이나 연예인 관리 시스템, 낙후된 제작환경과 열악한 제작 시스템 등으로 수익구조에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들의 지분참여로 인한 투자확대와 주가상승으로 인한 기업가치 상승의 3박자가 투자자들로 하여금 막대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한 결과이다.

국내 매니지먼트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어 내야

그러나 대중문화산업의 결과물인 영화, 드라마, 음반 등에서 대중들의 문화소비패턴이 급속히 변화하고 해외진출의 교두보인 ‘한류’ 열풍이 사그라들고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가속되면서 회사경영에 필요한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스타파워에 의존한 작품보다는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예가 늘어나면서 스타군단을 보유한 매니지먼트사의 실적이 떨어지고 ‘스타=대박’의 신기루가 사라지고 있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매니지먼트사들이 마땅한 수익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데 대한 스타군단을 보유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며 주가상승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제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는 국내 매니지먼트사들은 다양한 수익모델 개발과 더불어 스타들에 대한 새로운 수익배분의 정립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코스닥시장에서의 퇴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이미 대중문화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CJ를 비롯하여 SK, KT 등 본격적인 대중문화산업에 진출하는 거대문화자본에 이끌려 결국 독점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어 국내 매니지먼트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중소 매니지먼트 회사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매니지먼트사의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중소 매니지먼트 회사들의 몰락이다.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들의 캐스팅 독점은 물론이고, 제살 깎아먹기식으로 중소 매니지먼트 회사들끼리 소속 연예인들을 빼돌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한 달이 멀다하고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소송 기사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처럼 진한 우정으로 맺어진 연예인과 매니저(소속사)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같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연예 관련 종사자들은 ‘이게 다 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예전에도 금전 관계로 인한 다툼이 있긴 했지만, 최근 들어 일부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스타 영입과 군소 기획사들의 연합 등을 통해 코스닥 우회 상장으로 재미를 보자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졌다.
연예인의 이름 값이 주가 상승에 직결된다고 생각한 기획사들은 연예계로 유입된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스타 모셔오기’에 혈안이 돼 있고, 그 결과 연예계 역시 신뢰 보다는 돈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이 돼 버린 것이다.
10년 넘게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기획사 대표 A씨는 “과거에는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으며 스타의 꿈을 키워갔지만, 요즘은 조금 있어 보고 못 뜨면 ‘당신이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며 떠나려 한다”며 “영세한 매니지먼트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 말 못하고 연예인을 다른 회사로 뺏기는 경우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사의 B실장 역시 “먼 미래보다 당장의 돈을 보고 소속사를 선택하는 연예인이나, 애써 영입한 연예인을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회사에 뺏길까봐 전전긍긍하는 기획사나 결국 다 손해볼 수 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대형화로 ‘금전 문제’ 충돌
신뢰 무너져 소송도 줄이어

반면, 올 초 소속사를 나와 혼자 일을 하고 있다는 연기자 C는 “연예인의 인기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반문하며 “능력만 된다면 보다 많은 돈과 좋은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회사로 옮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중소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해온 한 매니저는 지금의 폐해는 결국 경험과 기획력, 능력이 부재한 대다수 중소매니지먼트사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너도나도 몇 년 사이 우후죽순으로 연기자 1∼2명을 데리고 매니지먼트를 시작했지만 실제 이들 회사 중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있는 곳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심지어 이들 중에는 방송국이나 제작사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매니저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 매니지먼트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5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전략과 전문화된 인력충원, 그리고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의 신뢰와 믿음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병철 기자 /ybc@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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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