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혁신 기회"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이 지난 13일 취임 50일을 맞이했다. 원 위원장은 표류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마지막 희망이다. 취임 후 많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갈 길이 멀다. 원 위원장은 과연 표류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지난 7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한민국 주요기관 11곳 중 국회가 신뢰도 꼴찌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같은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꼴찌를 차지했던 국회는 올해 신뢰도가 0.46점이나 더 떨어져 10점 만점에 2.85점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2012년 총선부터 지금까지 치러지는 선거마다 연전연패 중이다. 내부의 자중지란까지 겹치면서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다. 뭐 하나 잘한 것 없는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연이은 자살골로 손쉽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원 위원장도 자신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원 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음은 원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취임 50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성과를 얻으셨습니까?
▲ 무엇보다 제1야당 몫의 국회도서관장 지명권이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회도서관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위를 통해 이러한 기득권을 내려놓게 되면서 국회도서관장 자리에 정치권 인사가 아닌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이 임명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미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등 학계 전문가 6명이 참여해 국회도서관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고 올해 말까지 우리나라의 최고 지성을 국회도서관장으로 모셔올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새정치 혁신위는 비례대표 공천 및 전략공천 혁신, 현 출판기념회 제도가 개선 될 때까지 출판기념회 개최 금지, 세비조정위원회 및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적인 외부기관으로 설치, 부정부패로 재보궐 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의 공천금지 등을 당론으로 결정하는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 지난 11일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발표한 9개의 혁신안이 당내 의총에서 퇴짜를 맞았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 말로만 혁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런 혁신은 국민들이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그래서 우리 당의 혁신위는 이름부터 혁신‘실천’위원회로 정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혁신안은 ‘일단 막 질러보고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그래서 당내 반발에 직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우리 당은 작지만 혁신안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 하지만 김문수 위원장은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는 반면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언론 노출 빈도가 너무 낮은 것 같습니다. 새정치연합도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혁신안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새누리당의 혁신안은 일단 막 질러보고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는 참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발표한 혁신안이 의원총회에서 거부당해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혁신과 기득권 내려놓기가 이목 끌기용이나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의 성찬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고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원 수 감축과 세비 삭감은 혁신 아냐"
"새누리당 혁신안은 '아니면 말고' 전략"

- 정치혁신 과제 중 상당수는 여당과 함께 합의해야 성사될 수 있는 것들인데 여야 간 의견차가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특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문제는 여야의 합의 없이는 성사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야가 함께 모여 정치 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발족을 새누리당에 제안해 놓은 상태입니다. 모든 문제는 만나야 풀립니다. 야권에선 이미 이에 대한 합의가 끝난 만큼 김문수 위원장께서 답할 차례입니다.

-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1곳의 주요 사회 기관 중 국회의 신뢰도가 ‘최하위’ 평가를 받았습니다.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무척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야 간 대결적 갈등구조와 소통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막말, 방탄국회, 게리맨더링(기형적이고 불공평한 선거구획정) 등 낡은 기득권 구조와 도덕성 문제도 불신의 원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회가 국민들에게 수많은 약속을 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 위원장께서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의원 수 감축’과 ‘세비삭감’은 정치혁신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혁신은 의원 수 감축이나 세비삭감 같은 것들입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혁신과 시각차가 너무 큰 거 같습니다.
▲ 의원 수를 줄이고 세비를 삭감하는 것은 당장 국민들의 화풀이는 되겠지만 정치 혁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의원 수를 줄이면 거대한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 할 수 없게 되고, 세비를 삭감하자는 것은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하라는 뜻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정말 믿을 수 있고,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진짜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반 국민들은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왜 세비가 부족하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세비를 인상하기보단 저효율 고비용의 선거제도, 지역구 사무실 운영 경비 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저효율 고비용 선거제도나 지역구 사무실 운영 경비 등의 문제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세밀하게 다뤄야 할 사항입니다. 그보다 먼저 세비 문제의 본질은 국회의원이 자신의 세비를 직접 결정하는 현재 시스템에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세비산정위원회’를 설치해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세비가 결정되도록 할 것입니다.

- 지난 10일 열린 혁신위의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혁신안’ 토론회에서 박수현 의원이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의원정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운데 새정치연합이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과 다양한 의견도 수렴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의원정수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헌재의 선거구 헌법 불일치 결정을 계기로 달라진 사회 환경과 시대변화 등을 고려해 정치와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인데 전반적으로 혁신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절박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혁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기득권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내려놓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실천하겠습니다. 우리 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에 안주해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거마다 연패를 거듭했지만 변화의 몸부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했던 것 자체가 오만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소한 부분이지만 정치혁신과 관련해 국회의원들이 각종 회의에서 자리를 너무 많이 비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의원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엔 일 안하고 노는 것 같습니다. 당장 당 차원에서 소속 의원들의 출석을 관리할 수는 없습니까?
▲ 회의출석은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은 지난 18대 국회부터 본회의 출석률 등을 공천심사 때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 이미 국회법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출석 할 경우 세비를 삭감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액수가 1회에 3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패널티로서 효과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혁신위에서는 현행 청가서 허가 및 결석계 제출 요건을 강화하고 회기 중 한 차례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참하면 특별활동비 전액을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임기 내 계파청산만큼은 반드시 달성"
"국민 눈높이에서 기득권 모두 버려야"

- 현재 새정치연합에서는 비례대표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례대표 제도는 공천헌금, 낙하산 공천 등의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 한 때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밀실공천, 자기사람 심기, 나눠먹기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선, 세대와 계층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는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또 전문가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과거처럼 지도부가 밀실에서 뽑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만들 예정입니다.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절차적 공정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것입니다.

- 혁신위 과제에 개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회 내에 개헌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은 많지만 구체적인 개헌방식에 대한 의견은 천차만별입니다. 김 위원장께서는 어떤 방식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개인적으로 대통령은 직선으로 선출하되, 내각은 국회 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람으로 구성해 권력을 나누고 상호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분권형 권력구조가 가장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새정치연합 내 계파청산도 중요한 정치혁신 과제입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계파청산을 수도 없이 선언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계파청산보다는 차라리 계파갈등을 줄일 수 있는 차선책을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지요?
▲ 계파 청산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계파가 형성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공천’입니다. 특정계파가 당권을 잡게 되면 전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계파에 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력이 제도 위에 있지 못하도록 당 운영시스템을 개혁할 생각입니다.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전횡을 일삼거나 쉽게 뜯어고치지 못하도록 당 시스템에 권위와 독립성을 부여하겠습니다. 공천을 비롯해 당이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습니다.

- 새정치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하 민정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나옵니다. 현재 민정연은 당권이 교체되면 말단 직원까지 교체될 정도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아 중장기 정책 발굴이 어렵고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과 비교해 정책 개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솔직히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혈세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동안 연구소의 인력과 예산이 연구 활동에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민정연은 인사권과 예산권이 중앙당에 예속돼있어 연구의 자율성 및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고,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연구위원도 부재한 상태입니다.

사실상 싱크탱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민정연을 아예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싱크탱크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민정연 개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확보해 상시적으로 정책 개발을 하고, 중장기 선거 전략수립 및 데이터의 축적 등으로 민정연이 제대로 된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정치혁신위원장 임기 내 반드시 마무리하고자 하는 과제는 무엇입니까?
▲ 앞서도 언급한 계파청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천 제도를 혁신해야 됩니다. 지금은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도 자기 마음대로 하다보니까 계파가 생기고 계파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공천 제도를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게 확립해서 정치혁신위원장 임기 내에 반드시 계파청산만큼은 마무리하고 물러나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원혜영 위원장 프로필>

▲ 풀무원식품 창업자
▲ 민선 제2, 3대 부천시장
▲ 제14, 17, 18, 19대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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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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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