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가구점 화재' 한전 책임 공방전

누가 그 새벽에…귀신이 불 질렀나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2011년 2월, 안양시 만안구 소재의 가구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퍼져 주변 건물 태웠고, 가구점과 식당이 전소되고 주변 주택, 빌딩, 상가 등 8가구가 피해를 봤다. 가구점 주인은 경찰과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한전에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2심 법원은 한전 손을 들어줬다. ‘화재가 한전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가구점 주인은 “억울하다”말하고 있다.

2011년 2월23일 새벽 4시30분경.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836-10번지 안양가구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2시간만에 잡혔지만 소방서 추산 1억원의 재산피해와 주변에 위치했던 식당, 주택, 빌딩, 옷가게가 전소되거나 연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30년 가까이 가구점을 운영하던 양승환씨는 경기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전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도경·국과수
“인입선 문제”

화재현장 감식에 나선 경기지방경찰청은 “주상변압기의 전원선은 동 매장(안양가구점) 후면에서 다시 중단부 발화부 주변으로 이동하는 형태이며, 동 전원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 일부 관찰된 사안이다”며 “동 부분의 인입배선에서 전기적인 특이점이 관찰됐지만 내부 배선의 전기적인 부분은 전소붕괴 및 발굴복원조사 불가로 논단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과수는 “안양가구점 후면 우측의 분전반 소락 부분에서 수거한 멀티콘센트 및 배선에서는 전기적인 특이점이 식별되지 않으며 분전반의 인입배선 수개소에서 단락흔이 식별됨”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단락흔은 전선이 합선되면서 녹은 흔적을, 소락은 불에 타서 아래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1심에서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단락흔이 발견된 배선이 한전의 책임 부분에 속하는 인입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불복한 양씨는 즉시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결 또한 1심과 같았다.

재판에서 패한 양씨에게 돌아온 것은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변 상가, 가구 측의 손해배상소송. 결국 수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주게 된 양씨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고 충격에 낙향했고 함께 가구점을 운영하던 형은 공장에 취직했으며 양씨도 시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양씨는 아직 “억울하다”고 말한다. 한전이 재판부와 양씨를 속였다는 것이다. 양씨는 “한전이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해가며 재판에서 위증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양씨의 주장과 한전의 전기공급약관, 판결문, 현장감식 결과 등 자료를 토대로 몇 가지 의혹을 정리해 봤다.

첫 번째는 ‘인입선 연결방식’이다. 인입선은 전신주에서 각 가구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하는 전선을 말한다. 아파트나 요즘 지어지는 주택의 경우에는 인입선이 지하에 묻혀있지만 과거에 지어진 주택의 경우, 건물 주변 전신주에서 각 건물로 이어지는 검은 전선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검은 전선이 인입선이다.

3년 전 8가구 피해…원인 미궁으로
발화된 가구점 주인 한전 상대 소송

한전전기공급약관 제 6조6항에도 인입선은 ‘공중 및 진중전선로의 지지물(전신주)로부터 다른 지지물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장소의 연결점이나 인입구에 이르는 전선’으로 명시되어 있다.

전신주에서 출발한 인입선은 각 가정에 공급되기 전 인입지지물을 거쳐 계량기를 통한다. 약관에 따르면 한 건물의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은 다른 가정으로 연결될 수 없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인입지지물을 거치기 전에 별도의 인입선을 연결해 다른 가정으로 연결할 수 있다. 연접인입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신주와 건물사이에 또 다른 건물이 존재해 직접 인입선을 연결할 수 없는 경우나 전신주와 거리가 너무 멀 경우에 사용된다. 흔히 ‘선을 딴다’고 표현한다. 선을 딴 지점은 ‘연접’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공동주택 등으로서 한 건물 내 2개 가구 이상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 사용되는 공동인입선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 주택 등 공동 주택과 상가건물이 이에 해당한다. 1인입선 1계량기를 원칙으로 하는 기본인입선과는 사용전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그보다 두꺼운 인입선이 설치된다.
한전 전기공급약관 제 32조1항에서도 ‘한전은 건물 밀집장소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장소에서는 연접인입선이나 공동인입선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특히 공동주택 등으로 1건물내 2이상의 고객(1인입선으로 2개이상의 계량기)에게 전기를 공급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동인입선으로 공급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 안양가구점과 가장 가까운 전신주 사이에는 또 다른 가구점 A가 들어서 있었다. 안양가구점과 A가구점의 직선 거리는 13m에 달했다. 여기에 안양가구점은 1988년 1월 건축됐다. A가구점은 그 보다 뒤에 건축됐다. 당초 인입선이 전신주와 안양가구점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가 A가구점이 들어서면서 기존 인입선을 끊고 새 인입선을 A가구점과 연결 후 연접을 이용해 안양가구점과 연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인입선이 직접 연결되기 힘든 상황인 것. 연접인입선이 설치됐어야 했다.

사라진 인입선
대체 어디로?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안양가구점 인입선은 A에 설치된 인입지지물을 거친 인입선”이라고 주장했다. 인입지지물을 거친 A와 연결된 인입선이 다시 안양가구점으로 연결됐다는 주장인데 이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화재 발생 후 안양가구점에 연결된 인입선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의심이 드는 부분은 A와 연결된 인입선에 연접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선을 따서 어딘가로 인입선을 연결했다는 얘긴데 이 역시 연접 지점만 존재할 뿐 인입선을 확인할 수 없다.

한전 주장처럼 안양가구점 인입선이 A에 설치된 인입선이라면 한전이 전기공급약관을 스스로 어기고 인입선을 설치했다는 말이 된다. 한전이 약관을 지켰다면 연접을 통해 안양가구점에 인입선이 연결됐다는 양씨의 주장이 사실이 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입선의 두께도 쟁점 중 하나다. 증거물로 수집되어 단락흔이 발견된 인입선의 두께는 2.6mm. 한전은 “한전에서는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인입선이 아니라는 것. 이 주장 역시 의문이 든다. ‘배전편 설계기준 DS-3700’을 보면 인입선의 굵기에 대해 ‘전선의 굵기는 케이블인 경우 이외에는 2.6mm 경동선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세기 및 굵기의 절연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기용량 5kVA 이하일 때 2.6mm의 인입선을 사용하도록 했다. 전체 인입선 길이가 15m 이내일 때 2.6mm를 적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안양가구점의 전기용량은 5kVA 이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자료에는 전기 용량 5kVA이하부터 50kVA이하 까지 각각의 용량에 따른 인입선 굵기가 전부 달랐다. 가장 얇은 2.6mm부터 가장 두꺼운 150mm까지 다양했다. 양씨는 “2.6mm의 인입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들이밀자 한전은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일축했다”고 전했다.

1·2심 “증거 없다” 판결
이 과정서 위증 의혹 제기

한전은 ‘일반적인 주택이나 상가의 경우 한전은 3.2mm의 인입선만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수집된 2.6mm 단선이 양씨 측이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2.6mm 단선과 함께 수집된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4mm 단선과 멀티콘센트에서는 단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양씨는 “한전 주장대로 우리가 인입선과 계량기를 연결하기 위해 설치한 단선이 있다면 함께 발견된 1.4mm 단선이었을 것”이라며 “2.6mm 단선도 우리 것이라면 3.2mm 인입선에 2.6mm 단선을 연결하고 거기에 다시 1.4mm 단선을 연결하는 바보짓을 한 게 된다”고 말했다.


한전이 수집된 2.6mm의 인입선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입지지물이다. 한전에서 인입용앵글이라고 부르는 인입지지물은 인입선이 계량기에 연결되기 전 거쳐야만 하는 지지물이다.

한전전기공급약관 제30조 3항은 ‘인입선 연결을 위해 전기사용장소 내에 구내전주 등 보조지지물을 시설하거나 고객의 희망에 따라 한전 규격품 이외의 완금 등 인입지지물을 시설할 경우에는 고객이 그 지지물을 시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양가구점 인입지지물로는 ㄷ자 모양의 철근이 설치되어 있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법정에서 “전기사용장소외벽에만 구멍이 뚫린 L자 철근을 한전만이 직접 설치하고 L자 철근 외에는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안양가구점)가 주장하는 계략기 상단의 ㄷ자 철근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상은 달랐다. 안양 가구점 주위 여러 건물들을 돌아보며 인입지지물을 확인한 결과 못, 둥근철근, 일자철근, 아시바(철봉), 플라스틱 연통, 삼각앵글, 각목, 철콘테이너 홈, 공사용 철근, 옥상난간, 구멍없는 L자 철근, 옥상기와, 옥상기둥 등을 인입지지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인입지지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전이 주장하는 L자 철근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의혹에 대해 양씨는 한전 본사, 한전경기본부, 한전안양지사 등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소송이 끝난 사항이라 답변의 의무가 없다’는 무성의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한전 고객의 소리와 다음 아고라, 국민 신문고 등에도 의혹을 제기했지만 같은 답변이 반복될 뿐이었다.

수차례 의혹 제기
한전 ‘모르쇠’


그렇다면 한전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규약인 전기공급약관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재판에 임한 이유가 뭘까? 사실 확인을 위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한전 홍보팀에 보냈지만 “입장을 물어본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질의한 사항에 대해 한전은 법원의 판결내용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달리 밝힐 의견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상한 목격자 진술, 진실은?

대부분의 화재 현장에는 목격자가 있기 마련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당국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경위를 조사한다.

안양가구점 화재도 목격자가 있었다. 최초 목격자는 가구점 근처에서 거주하던 안모군(당시 18세)이다. 안군을 포함 도합 4명의 목격자가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최초 발화지점에 대한 진술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양씨에 따르면 한전은 준비서면을 통해 4명의 목격자가 한결같이 “가구매장 후면 중앙 주분전반 지점에서 펑하는 소리와 불길을 외벽 창문에서 보고 119에 신고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다. 주분전반은 전신주에서 연결된 인입선이 각 가구에 공급되기 전 전력량기 다음으로 거치는 전기시설이다. 문제는 주분전반이라는 용어가 쉽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통상 사용되는 ‘계량기’ ‘분전반’ ‘메인차단기’ 등의 용어가 있는데 4명 모두 주분전반이라고 진술을 했다는 점이 의아하다.

의혹은 최초 목격자 안군의 경찰 진술서를 보면 더 짙어진다. 안군은 경찰 조사에서 주분전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안군의 경찰 진술서에는 “잠에 들기전 창문 쪽에서 폭죽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창 밖을 봤는데 안양가구점 가운데 약간 오른쪽 밑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며 “불난 지점이 우리집에서 봤을 때 가운데서 오른쪽 밑이였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서도 한전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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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