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

이젠 전설로…‘굿바이 마왕’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마왕’ 신해철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했다. 뮤지션, 라디오 디제이, 논객 등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기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3040세대에게 그의 음악은 신세대의 표상이었다. 마왕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난달 27일 가수 신해철이 심장 이상으로 수술을 받던 오후 8시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로 한국 록의 큰 별이 졌다. 이날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신해철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입원 중이던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동료도 팬들도
애도의 물결
 
KCA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의료진이 사인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밝혔다”며 “신해철씨가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내원한 뒤 응급 수술을 포함해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해철씨의 회복을 바라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염원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앞서 의료진은 심정지에 이른 원인을 찾기 위해 최근 신해철이 장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부위를 개복해 응급 수술을 하기도 했다. 당시 KCA 엔터테인먼트는 “의료진이 부어오른 장으로 인한 심장 압박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장 상태가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해철은 동공 반사가 없는 의식 불명으로 위중한 상태였다. 고인의 빈소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에 마련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역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대학가요제회는 신해철을 애도·추모하는 공식 추모 모임을 가졌다. 신해철은 지난해 대학가요제회 기획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대학가요제회에는 배철수, 심수봉, 김경호, 전람회 김동률, 마그마 조하문, 샌드페블즈, 서울대트리오, 이명우, 임백천, 노사연, 썰물, 김학래, 권인하, 정오차, 이재성, 스물하나, 김한철, 조정희, 우순실, 샤프, 이무송, 에밀레, 조태선, 장철웅, 높은음자리, 원미연, 이정석, 조갑경, 유열, 이규석, 작품하나, 주병선, 전유나, 배기성, 이한철, 이상미, 랄라스윗 등의 가수들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연예계는 비통함에 젖었다. 서태지는 최근 엠넷 ‘슈퍼스타K6’ 출연 당시 “신해철을 응원해달라”며 울먹였다. 이날 서태지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리허설 도중 고민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신해철과 서태지는 6촌 관계다. 서태지는 추모사에서 “우리의 젊은 날에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해준 그 멋진 이름을 기억해주실 겁니다”라고 적었다.
 
연예계의 애도가 SNS 등을 통해서도 잇따랐다. 윤도현은 트위터에 “실감은 안 나고 가슴은 멈칫멈칫하고 난 형한테 마음의 빚도 있고, 남은 가족분들은 얼마나 더 허망할까요? 한국 록의 큰 별이 떠나갔습니다. 해철이 형, 미안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듀오 더 클래식 멤버 김광진 역시 “신해철 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의 노래와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애도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일부 동료 연예인들은 의료과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인과 절친했던 시나위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를 떠나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만 해철아 복수해줄 게”라고 분노했다. 장협착증 수술을 담당했던 병원 측은 의료과실을 부인하고 있다. 
 
‘시대의 아이콘’한국 록의 큰별 지다 
깨어 있는 지성으로 사회에 독설 일침
 
정치권도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박원순 시장은 트위터에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마왕’의 빈자리는 지금보다 살아가며 그 크기가 커져 갈 것입니다. 신해철씨, 당신의 팬이었음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남겼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논평을 통해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신해철은 지난 2011년 7월 한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영상으로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다시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신해철은 생전 인터뷰에서 “뜨지 않은 곡 ‘민물장어의 꿈’은 내가 죽으면 뜰 거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민물장어의 꿈’이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민물장어의 꿈’은 2001년 8월 발매된 앨범 ‘락 앤 록(樂 and Rock)’의 수록곡으로 신해철이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곡이다. 스스로의 고뇌, 반성, 꿈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 이 곡은 잔잔하게 시작되지만 후렴구에서는 절규가 돋보이는 곡으로 신해철이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만든 곡으로 유명하다.
 
‘민물장어의 꿈’은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라는 비장미 넘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해철은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을 통해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주면서 살아 있는 가사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의식 있는 뮤지션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의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인정한 팬들은 그를 ‘마왕’ 혹은 ‘천재’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해철은 서울 보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룹 사운드 활동을 시작한 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이던 1988년, 친구들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다. 그리고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면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무한궤도는 그 유명한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그대에게’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학교 축제나 각종 운동 경기의 단골 응원 레퍼토리로 활용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인 89년에는 정석원까지 합류하며 6인조로 재편된 무한궤도로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그는 빼어난 외모와 신선한 음악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등 히트곡을 쏟아내며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을 알렸고 이듬해 발표한 ‘마이셀프’ 앨범부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걸었다.

‘민물장어의 꿈’
음원차트 점령
 
그는 앨범에 수록된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같은 노래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는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였다. 이렇게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신해철은 솔로 뮤지션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뒤 92년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이후 넥스트는 1997년 해체되기까지 1~4집을 발표하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 첨병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넥스트는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먼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등 숱한 명곡을 쏟아내며 록음악 팬층을 넓혔다. 그가 창작을 주도한 넥스트의 음악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토대에 두면서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였다. 새로운 차원의 록밴드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전성기를 달리던 넥스트는 97년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며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 공부에 전념했다. 유학을 전후해서는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팀 또는 개인 활동을 벌이며 전자 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대중성 보다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넥스트를 꾸렸고 솔로 뮤지션으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리고 2002년 미스코리아 뉴욕 진으로 본선에까지 오르고 뉴욕 스미스대학교를 졸업,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일본지사에서 일한 윤원희씨를 유학길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동거를 시작했을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2년간 연애한 끝에 2002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신해철은 윤원희가 림프암에 갑상선암으로 투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아내 곁을 지키고 결혼해 애틋함을 더했다.
 
신해철은 2008년 SBS <야심만만2-예능선수촌>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인 윤원희씨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결혼 전 부인이 암으로 아팠다”며 “나는 원래 결혼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던 사람인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더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부인과) 병원에 가면 그냥 ‘남자친구’인 것과 ‘제가 이 사람 남편입니다. 보호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다르더라”고 털어놓으면서 “빨리 결혼해 든든한 남편으로서 그 사람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고 더 덧붙이기도 했다.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알고서 결혼한 사연이 전해지며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어록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
팬·동료 등 각계각층 슬픈 작별인사
 
신해철은 활동 기간 동안 탁월한 언변을 보여 줄곧 ‘라디오 스타’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MBC FM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도시>의 초대 디제이로서 진행을 맡았고, 2000년대 초에는 SBS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맡아 팬들과 소통했다. 그는 음악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 표명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MBC <100분 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해 간통제 폐지를 찬성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반면 이라크 파병만큼은 반대했다. 2008년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스스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 영국의 영연방에 들어가 스스로 식민지가 되든지…이게 무슨 엿 같은 소리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는 천민자본주의를 혐오하기도 했다. 돈이나 출세가 성공이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보지 않았다. 91년 발표한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4년 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출세지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20, 30대가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이 사회가 대학 1학년부터 겁을 잔뜩 줘서 취직 걱정부터 하게 만드니까 젊어서도 음악에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길 꿈꾸지 않아요. 영국에서 살면서 영국 노동자들은 상류층으로 살려는 욕망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 사람들은 퇴근해서 맥주 마시고 일요일 날 축구하고 노조 나갔다가 공장가면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고 말하거든요. 걔네는 상류층이 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천박하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욕망이 없으면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쌍스럽고 천박하면서 거기에 겁먹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최근 발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그는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해철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삶을 대하는 측면에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지금 30, 40대들이 신해철의 죽음에 먹먹해진 건 신해철과 함께 젊음을 고뇌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신해철은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6집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또 ‘넥스트유나이티드’를 꾸려 공연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또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 윤종신, 진중권 교수 등과 토크쇼 <속사정 쌀롱> 출연을 예정하며 방송 활동에 박차를 가하려던 차였다. <속사정 쌀롱>은 2회분까지 녹화된 상태다. 신해철은 1회 녹화에 참여했고 예고편이 전파를 탄 바 있다. <속사정 쌀롱> 측은 유족과 협의 끝에 신해철이 출연한 1회 방송분을 내보냈다. 

마왕이 남긴
독설과 감동
 
그는 최근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마흔여섯이다. 아직도 살 빼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쁘게 복귀를 발표한 바 있지만,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1990∼2000년대를 그와 함께 보낸 팬들은 저마다 슬픈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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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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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