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변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비밀리에 영업하던 성인용품점이 주택가를 점령하고 있다. 학교가 코앞에 있어 지나치는 청소년들이 많은 장소에서도 버젓이 상점을 차려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호기심이 동해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사는 청소년도 있을 정도다. 이런 성인용품점에는 허가받지 않은 불법수입품이나 가짜 비아그라 등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도 팔고 있어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성인용품점 주택가에서도 성업 중 … 미성년자에 노출
일부 업소들 불법수입품이나 가짜 비아그라 팔아 위험
지난 16일 경기도 부천의 한 주택가. 음식점, 옷가게 등이 즐비한 거리에 유독 분홍색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성인용품’이란 큰 글씨가 새겨진 간판이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초등학교 하나와 중학교 두 개가 있어 미성년자들에게도 쉽게 눈에 띄는 장소에 위치한 상점이다.
하교하는 남자 중학생들은 한참이나 문틈으로 보일 듯 말듯 한 가게 안을 기웃거리다 마지못해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가게 안이 보이지 않도록 유리창에 필름을 붙인 탓에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는 내부 사정을 알 길이 없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수백 개는 족히 돼 보이는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 선반에는 여성용 속옷이 즐비했다. 물론 일반 속옷 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야한 속옷이 대부분이었다.
콘돔부터 칙칙이까지
또 다른 쪽 선반에는 각종 콘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것 역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의 콘돔이었다. 그 옆에는 페로몬 향수, 사람과 흡사하게 만든 실리콘 인형, 남녀의 신체를 본뜬 기구, 젤, 일명 ‘칙칙이’라 불리는 남성용 국소마취제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 30대로 보이는 한 커플이 쭈뼛쭈뼛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성인용품점에 처음 온 듯한 이 커플은 어색해하며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가게 주인 A씨는 “요즘엔 젊은 여자들도 혼자 와서 물건을 사는데 뭐가 그렇게 쑥스럽냐”고 웃으며 “요즘엔 이런 용품들이 잘 나간다”고 물건들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결국 이 커플은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 나갔다.
A씨에게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묻자 “가게를 옮긴지 얼마 안 돼 단골손님을 만들지 못해서 그렇지 조금만 지나면 단골이 생겨 잘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서울 구로구에서 장사를 하다 사정이 생겨 부천으로 가게를 옮겼다는 A씨는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 성인용품점이라고 말했다. A씨는 “몇년 전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유흥업소나 성매매업소 관계자들이 와서 물건을 샀는데 최근에는 구매층이 꽤 넓어졌다”며 “미성년자를 제외하고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이 구경도 하고 물건도 사간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어제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들어와 자위기구를 사갔는데 주민등록증을 요구할 정도로 어려 보여 놀랐다”며 “나이가 어릴수록 거리낌 없이 물건을 사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손님의 층도 다양화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엔 독신남성이 주고객이었는데 요즘엔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부터 신혼부부, 중년커플 등으로 고객층이 확대됐다는 것.
주택가 안에서 영업을 하는 것에 제약을 받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A씨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학교에서 200m 이상만 떨어진 곳이라면 장사를 할 수 있어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청소년들에게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꺼림직하긴 하지만 절대 가게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A씨가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남성손님들이 비아그라를 팔라고 할 때라고 한다. A씨는 “때로 술 취한 중년남성들이 들어와 무작정 비아그라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아무리 물건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다”라며 “사실 중국산 짝퉁 비아그라를 팔아서 돈을 버는 업소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최근엔 단속이 심해져 웬만하면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주택가 한 가운데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성인용품점에 대해 주민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다 성인용품점과 불과 한 블록 떨어진 빌라에 살고 있다는 주부 이모(34·여)씨는 “몇달 전에 주택가에는 있어선 안 될 것만 같은 간판이 걸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 앞을 매일 지나다니는데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서모(43)씨는 “저 가게 하나로 동네 인상까지 바뀔 지경이다”라며 “왜 저런 업소들이 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런 불만은 비단 이 동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 어디를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성인용품점의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이 지속되면서 적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속속 업소들이 증가하고 있다.
건강 해치는 용품까지
문제는 이런 업소들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이 대부분 불법수입품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본부세관이 서울시내 성인용품점들에 대한 일제단속을 실시한 결과 남자용 자위기구 325점, 여자용 자위기구 228점, 비아그라 등 성보조제 1400점 등 시가 2억원 상당의 불법 성인용품을 압수했다.
또 현행 법령상 풍속을 저해하는 음란물로 수입이 금지된 여성 신체모양의 기구 및 중국산 짝퉁 비아그라 등을 밀수입해 시중에 유통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각종 불법 용품들을 판매해 부당이득을 올리고 있었던 것.
한 성인용품업계 관계자는 “음지에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성인용품점이 늘어나면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불법수입품들까지 판을 치고 있다”며 “주택가 안에서도 별다른 제약 없이 영업을 할 수 있는 만큼 이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