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 ②뤽 베송 감독의 <루시>

“뤽 베송! 한 번 더 기회 준다”

일요시사 전창걸 영화칼럼니스트 = 개그맨, 영화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맛깔나게 했던 전창걸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 곁을 떠나 있었던 그가 <일요시사>의 새 코너 ‘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의 영화칼럼니스트로 대중 앞에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대 영화’ 코너에서 전창걸식 유머와 속사포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써 영화로 보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 두 번째 이야기는 뤽 베송 감독의 <루시>다.

1994년 <레옹>으로 찾아와 소설 <소나기>처럼 아름답고 풋풋한 사내의 순정멜로와 액션 조화의 마법을 펼치며 사내들 가슴을 진탕 설레게 만들더니 3년 후, 명절만 되면 지구를 구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표 배우 부르스 윌리스를 앞세워 공상의 폭을 넓힌 <제5원소>로 천재 입증 도장을 확실히 받은 감독 뤽 베송. 그가 요란하게 한국배우 최민식까지 캐스팅하며 영화 <루시>로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고 한국을 찾아왔다.

천재 감독 뤽 베송의 귀환

때마침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 <명량>이 한국영화 흥행 역사 기록을 갈아 치우는 판이었다. 배우 최민식은 <올드보이>와 스크린쿼터 운동 이후 잠잠하던 주가를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명량> 등 출연한 영화를 견인하는 에너지로 이전보다 폭발적인 가치의 새로운 흥행코드로 전환한 뒤였다.

거기에 주인공이 스칼렛 요한슨! 때론 터프한 바비인형, 털털한 금발 미녀, 근접하기 어렵지 않은 친근함까지 무장한 채 깊이를 요구하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는 포근한 감성과 이지적 내면에 몰입하는 그녀의 매력…감히 함부로 안젤리나 졸리가 누렸던 여신의 경지를 가뿐하게 제치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뤽 베송의 <제5원소>에서 지구를 구하며 일약 여신 경계를 누린 밀라 요보비치의 좀비로 덮인 지구의 마지막 희망을 가진 변종 구원자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쇠퇴하고 새로운 구원자에 갈증을 느낄즈음 탄생한 여신 구원자라니…. 우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보여준 액션의 역동성까지 검증시킨 그녀가 <루시>로 재탄생한다는 환희는 이미 영화를 보기 한참 전부터 비주얼과 스토리가 엄청날 것이라는 신뢰적 기대감을 팝콘처럼 튀겨 놓았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 혼자서…. 명절 때라 1만2000원을 주고. 앗! 뤽 베송의 제작자와 감독을 아우르는 고통? 아니면 ‘이만한 조합이면 재밌게 볼 거야. 그럼 난 돈 좀 만지겠지…’ 이건가? 나는 영화 <루시>에서 뤽 베송의 귀찮음을 발견했다. 시나리오의 상당부분이 독재의 칼질에 성형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 곳곳을 지겨울 정도의 교육에 할애한다. 생명 탄생의 근원에서 뇌의 활용까지 동영상 강의로 구구절절 반복하고,  최민식과 3류급 악당무리가 루시에 반하는 악의 대표라니…. 무게 비중이 너무 차이난다.

추측컨대 뤽은 영화 <리미트리스>와 워쇼스키 남매의 최근작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접한 뒤 질투심이 솟았을 것이다. 그 질투심이 양자물리학의 영화적 가치와 구원자를 어설프게 혼합하는 요령으로 변질돼 루시 프로젝트가 진행됐겠지만, 결국 고수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만한 깊은 사색의 결과를 대신해 교육자료들로 서둘러 봉합한 흔적이 역력하다(흥부가 대박 전에 입었던 저고리가 연상된다).

시나리오 상당부분 독재의 칼질에 성형당한 흔적 역력
영화 고수들의 시선 만족시킬 사색 대신 서둘러 봉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루시>의 후속이 기대된다. 0 : 2로 전반전을 마친 축구처럼 <루시>의 후속편이 대역전을 일으키길 응원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화 <루시>는 못마땅해 하는가? 그 이유는 악의 설정에 있다.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날리고 총알을 멈추고 물질의 본질을 변화시킬 에너지를 가진 루시에 대항한 세력이 기껏 3류 국제 조직이었다니….
 

자, 영화 속 악의 근원을 보자. 밀레니엄 시대를 넘기며 극장에 걸리는 영화의 장르가 확연하게 교체됐다. 2000년 이전 지구를 구하던 영웅들은 제국에 대항하는 테러리즘, 핵폭탄과 3차 세계대전 유발을 막는 것이 주류였다. 이후 은막의 영웅들은 만화를 능가하는 초인적 캐릭터로 대체된다. 좀비, 외계생명체, 바이러스, 변종 초능력자, 구원자 등을 필두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가상의 세계를 실제 현실보다 믿음직하게 구상·재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악의 근원을 허상, 즉 상상 속 공포로 상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테러리즘이 절대 악이던 시절 이전에는 공포의 대상이 유령, 대자연의 재앙, 괴수 등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할리우드식 대표 악은 사실 막연하며 그 악을 대항하는 선마저 막연하다. 자본과 시스템에 의해 공포가 주입되며 시선을 사육당하는 느낌이다(물론 간헐적으로 현실의 악을 표현한 영화들이 나오긴 하지만, 상상 속의 악을 주입하는 스케일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다룰 만한 실감나는 악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솟을 것이다. 나는 넘버원 악으로 소시오패스를 꼽는다. 그것도 권좌에 앉아 있는 소시오패스들. 법을 유린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백색테러를 일삼고 오로지 탐욕을 향한 금전 불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연 파괴를 일삼으며 전쟁을 서슴지 않는 변종들이 내가 꼽는 넘버원 악이다.

자본의 권좌에 앉은 소시오패스, 그 상인일족이 돈벌이용으로 국가를 조정·경영하는 광경이 상상된다. 살인을 일삼으며 때론 그런 상인이 권좌에 앉아 상인 무리와 담합하여 국토를 헤집고 혈세를 빨아가는 장면이 상상된다. 그 패악의 반복을 끊으려는 시민의 외침에 자갈을 물리고 색깔을 씌우고, 억울함과 분통을 위로하는 국민을 조롱하며 꼬리표 달기를 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악’ 설정 실패

이렇게 실감나는 악의 근원을 헤집고 파헤치며 악에 빌붙은 자들까지 통쾌하게 소탕하는 루시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의 침묵을 깨고 진실을 외치는 시민의 힘이 더해져 루시가 결정적 위기를 막아내는 권선징악 스토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레옹> 시절 게리 올드만 비슷한 하류 조직들을 상대하던 초능력 루시에 대한 응원이 덜 했는지도 모르겠다. 재밌게 본 분들의 기준에 걸맞지 않는 비평의 글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영화만큼은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한 중년 총각의 상상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다. “뤽 베송! 한 번 더 기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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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