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제2의 히딩크’ 기대되는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벼랑 끝 몰린 한국축구를 부탁해~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독일 출신 슈틸리케 감독이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원할 외국인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선수 시절에 비해 지도자로서의 커리어가 떨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한국축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열린 자세로 ‘이기는 축구’를 하겠다고 공언한 그의 다짐이 현실이 될 지는 앞으로 남은 평가전과 아시안컵의 결과가 증명할 것이다.
 
지난 5일 대한축구협회는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을 선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2007년 핌 베어벡 감독 이후 7년 만에 찾아온 외국인 감독이다. 독일 출신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1991년 1월 데트마르 그라머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을 맡은 이후 23년 만이다.

7년 만에 찾아온
외국인 감독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엠블 호텔 킨텍스에서 슈틸리케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의 취임 기자회견이 열렸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에서의 첫 공식 활동이었다. 다소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어 통역의 부재로 스페인어로 30여분 간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이 다시 강국이 될 거라 믿지 않았으면 감독직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축구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외국인 감독이 새로 오면 편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쁜 예로 어떤 지도자는 돈이나 명예 때문에 한국에 올 수도 있다. 나는 매 경기 이긴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 경기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 오겠다고 약속하겠다”라며 솔직 담백한 각오를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에서 프란츠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언급될 정도”라며 “독일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1982년 월드컵 준우승에 올라가는 등 화려한 선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전 감독이 사퇴한 뒤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을 유력한 후보로 손꼽고 협상을 벌였지만 세부 조건에 대한 견해 차이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비공개 협상을 통해 차순위 후보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초 유력한 후보였던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 비해 명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 축구를 일으키고자 하는 태도만큼은 남다르다는 평가다. 그간 외국인 감독이 보여주지 못했던 차별화된 모습으로 한국 축구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신임 축구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된 슈틸리케는 앞서 지난 6일(한국시간) 독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위대한 축구 열정이 있다”며 “내가 일을 시작하는 데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일 축구 전설적 존재 베켄바워 후계자
최강군단 DNA로 멈춘 한국축구 움직일까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축구협회 관계자의 자격으로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본선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기억을 꺼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처럼 열정이 뜨거운 곳에서는 어떤 성과가 반드시 산출되기 마련”이라며 한국축구 팬들의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부진했던 한국축구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멀리서 판단하기에는 섣부른 면이 있다”며 “한국에 건너가 가까이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선수들의 경험부족에 대해서는 언급했다. 그는 특히 공격수 손흥민(레버쿠젠)과 구자철(마인츠)을 한국 축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분데스리가 선수들로 거명했다.

기존 코치진과 호흡
빠른 적응이 관건
 
슈틸리케 감독은 계약기간인 2018년까지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지낼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장에 진득하게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라고 알려진다. 진정 감독직을 수행하기 위해선 선수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틸리케의 이러한 마음가짐이 다른 후보를 제치고 지휘봉을 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할 코치진 구성도 마무리됐다. 기존에 있던 신태용(44) 코치 외에도 홍명보호에서 코칭스태프로 활약했던 박건하(43) 코치와 김봉수(45) 골키퍼 코치가 신임 사령탑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자신과 함께 해왔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를로스 아르무아(65) 수석코치를 대동할 예정이다. 그의 사령탑으로서 공식 일정은 내달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우루과이 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태극전사들과의 첫 만남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차두리, 손흥민, 기성용 선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차두리는 마르틴 카세레스(유벤투스)가 버틴 우루과이의 왼쪽을 쉼 없이 괴롭히면서 ‘차미네이터’의 존재감을 여실히 입증했다. 스피드와 몸싸움 등에서 우외를 보이며 완벽에 가까운 철통 수비를 선보였던 것이다.
 
손흥민은 특유의 드리블로 우루과이의 수비진을 흔들며 빠른 스피드와 정확도 높은 슈팅으로 경기의 흐름을 리드했다. 기성용은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공격수 에딘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를 전담마크하며 근성의 땀을 흘렸다.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은 다음 날인 9일 국내에서 머물 숙소 후보지 3∼4군데를 돌아봤다.
 
그리고 10일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아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울산 현대전을 직접 관전했다. 국내축구 분위기를 살피면서 숨은 보석을 찾기 위해서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해외파와 K-리거들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K-리그의 좋은 재목 발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혁의 바람의 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차례로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은 “중요한 건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떤 날엔 짧은 패스로 경기를 이끄는 것이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날엔 공중 볼이 중요할 수도 있다.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3박4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11일 스페인으로 출국했다. 오는 24일 재입국해 인천아시안게임을 관전하고 10월 A매치 준비에 들어간다. A매치에 나설 멤버를 구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기복 없는 안정적 플레이
좋은 결과 ‘실리축구’ 추구
 
슈틸리케 감독은 앞으로 다가올 수차례 평가전을 통해 국내파와 해외파 선수들의 윤곽을 잡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작부터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우선 10월10일 파라과이전, 10월14일 코스라티카전을 거쳐야 하고 11월14일 요르단전, 11월 18일 이란전을 치러야 한다. 특히 내년 1월4일부터 26일까지(한국시간) 호주에서 열리는 2015 AFC 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의 본격적인 첫 시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호주·오만·쿠웨이트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내년 1월10일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오만과의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를 시작으로 쿠웨이트·호주와 차례로 맞붙는다. 다가올 아시안컵이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눈팅
앞으론 슈팅
 
올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토니 크로스가 자국 명문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스페인 무대로 진출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국대표팀 사령탑이 된 슈틸리케 감독을 언급하기도 했다. 크로스는 독일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레알의 하얀 옷을 입고 내 아이돌들이 한때 뛰었던 팀의 미래가 되고 싶다”면서 “특히 레알에는 내가 롤모델로 여기는 독일 출신 선수들이 발자취를 남겼다. 바로 울리 슈틸리케, 권터 네처, 그리고 폴 브라이트너가 그들이다. 그들이 남긴 레알의 영광을 드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크로스는 “레알은 신화적인 구단이며 영광스러운 과거와 나를 흥분케 하는 미래를 동시에 보유했다”며 “현재 팀 또한 개개인 기량은 물론 팀으로 뭉쳤을 때 대단한 투지와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크로스가 슈틸리케에게 존경심을 나타낸 이유는 간단하다. 슈틸리케가 과거 레알 시절 오늘날 크로스와 마찬가지로 공격과 수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지능적인 경기 운영 능력으로 팀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였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8일 입국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독일 출신이면서도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 수석 코치를 데려올 예정이라고 밝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독일 축구계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다양한 리그의 팀을 지도했지만 자국 클럽은 츠바이트리가(2부리그) 발트호프 만하임을 1년 이끈 게 전부라는 점도 의혹의 대상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9일 독일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르트아인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입을 열었다. 
 
“지난 1977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독일)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입단하면서 독일에선 ‘탈영병’으로 간주됐다. 당시 나는 스물 둘이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8년을 뛰었고 이후엔 스위스에서 9년간 선수와 감독을 경험했다.” 
 
해외생활이 길어지면서 배신자 꼬리표를 떼기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1970년대의 묀헨글라트바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유럽 최강자로 군림했다. 이 기간 묀헨글라트바흐는 리그 우승 5회(70·71·75·76·77년), 준우승도 2회(74·78년)를 기록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유망주가 떠나자 독일인들은 그에게 ‘탈영’의 꼬리표를 붙이며 비난의 화살을 쏟았다. 그가 마드리드에 거주하며 아르헨티나 코치를 선택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그랬던 그가 독일로 돌아가 8년간 각급 유소년 대표팀(U-19·20·21)을 맡을 수 있었던 계기는 직속 선배 베르티 포그츠(68·현 아제르바이잔 감독) 덕분이었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명장 포그츠와 슈틸리케는 묀헨글라트바흐와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2년 전임자였던 포그츠 감독이 불러줘 독일 21세 이하(U-21) 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위기의 한국축구
기사회생 가능할까
 
현역 시절 슈틸리케 감독은 화려했다. 그는 1977년~85년까지 스페인 프로축구의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프라메라리가에서 외국인 선수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다.
 
독일 축구의 전설적인 존재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주목받았고, 10년간 독일 대표선수로 A매치 42경기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 88년 은퇴한 그는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돼 이후 스위스와 독일 등에서 클럽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독일대표팀 수석 코치와 코트디부아르 감독도 역임했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는 카타르리그의 알 사일리아와 알 아라비 감독을 지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낮은 자세로 거창한 목표를 남발하지 않았지만 지휘 철학은 분명했다. 그는 “모든 감독들이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다. 한 경기만 패배하고도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어려운 결과를 어떻게 극복할지를 잘 준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볼점유율이 몇 %인지 패스를 몇 번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승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에서 어떤 전술과 스타일을 구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가 ‘이기는 축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철저한 실리주의자임은 확실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출생
▲1972∼1977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독일)
-리그우승 3회(1975, 1976, 1977), UEFA컵 우승 1회(1973)
▲1977∼1985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리그우승 3회(1978, 1979, 1980), UEFA컵 우승 1회(1985)
▲1985∼1988 뇌샤텔 그자막스(스위스)
-리그우승 2회(1987, 1988)
▲1975∼1984 독일 국가대표팀(42경기 출전, 3득점)
-1980 UEFA 유럽 챔피언십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89∼1991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
▲1992∼1994 뇌샤텔 그자막스(스위스) 감독
▲1994∼1996 SV 발트호프 만하임(독일) 감독
▲1996 UD 알메리아(스페인) 감독
▲1998∼2000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0∼2006 독일 유소년대표팀 감독
▲2006∼2008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감독
▲2008 FC 시옹(스위스) 감독
▲2008∼2010 알아라비 SC(카타르) 감독
▲2010∼2012 알사일리아 SC(카타르) 감독
▲2013∼2014 알아라비 SC(카타르) 감독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낙선하면…’ 오세훈 다음 시나리오

‘낙선하면…’ 오세훈 다음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큰 가운데 오 시장 자신도 당의 상징색 붉은색을 기피하고 있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사법 리스크 대응과 대권 도전을 위해 당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과연 오 시장은 화려한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을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8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은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책임당원 50% 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로써 오 시장은 서울시장 5선에 도전하게 됐다. 오 시장은 후보 확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을 내어주면 정권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제동 장치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과 충돌 장과 대립 오 시장은 지난달 경선 후보 등록 마감을 2회에 걸쳐 거부했다. 당시 오 시장은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과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대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명확한 의견 표명 및 실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에게 사실상 2선 후퇴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이 이어졌다. 오 시장은 후보 확정 직후엔 MBN <토요와이드>에 출연해 장 대표의 미국 방문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어차피 여기 있어도 역할이 크지 않다”며 “중차대한 시기에 외국에 오래 머무는 것은 고의로 선거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후보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의 발언 이후 주요 언론은 장 대표를 일컫는 보도를 하면서 ‘후보의 짐’이란 표현을 제목에 포함시켰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도 지난 22일 YTN 라디오 <김준우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장 대표가 특정 후보를 지원하면, 10표는 붙일 수 있어도 100표는 잃는다”며 “오 시장의 말대로 후보의 짐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의 참모들은 서울시장 선거 준비를 위해 연이어 사의를 표명했다. 김인규 정무비서관 등은 지난달 사직했고, 지난 17일에는 박찬구 정무특보 등이 사의를 표명했다. 오 시장은 지난 19일에는 경선 경쟁자였던 같은 당 박수민 의원과 윤희숙 전 의원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오 시장은 “장 대표가 선대위에 들어갈 공간은 없다”며 “중도 확장 선대위로 중도 바다로 나아가 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와 무관하게 독자적인 선대위를 구성하는 움직임은 부산·대구·경기·경북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 시장이 장 대표와 대립각을 유지하는 이유를 놓고, 일각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고 있다. 김건희 국정 농단 특검은 지난해 12월 명태균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한 후 비용을 대납하게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오 시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오, 장동혁에 “후보의 짐” 비판…당권 도전 암시? 독자 선대위 구성 예상…대구 포함 각지 번지는 중 오 시장은 지난 3일 진행된 재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법정에서 나온 증언을 SNS 재료로 활용하면 선거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니 지방선거 이후로 재판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지난 22일 공판기일에는 오 시장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피고인 신문·결심 등 남은 절차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아울러 오 시장에게는 일각에서 “제2의 사법 리스크가 될 조짐이 있다”고 우려하는 사안도 있다. 오 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강버스 사업이다. 지난 14일엔 ㈜한강버스 2025년도 감사보고서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됐다. 여기에는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초과했고, 순자산은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는 등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울러 ㈜한강버스의 부채 약 1538억원 중 925억원은 서울시 산하 SH공사로부터 빌려온 단기·장기 차입금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런데도 SH공사는 차입금의 만기를 운항 개시일로부터 20년까지 연장해 줬다. 또 ▲선박 보험금 청구권 ▲사업 계좌의 예금 채권 ▲미래 수익권 등도 모두 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다. 그런데 SH공사는 후순위 채권자로 설정돼 우리은행·신한은행에 대출 원리금이 전액 상환되기 전까지는 대여금을 변제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하지만 전체 11명 중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7명인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는 서울시·㈜한강버스가 지난달 체결한 업무협약 변경안을 부결시켰다. 여기에는 ▲㈜한강버스의 운항 결손액 ▲선착장 셔틀버스 비용 지원 근거 조항 ▲서울시 요청에 따른 사용 비용 별도 지원 규정이 담겨있었다. 발목 잡을 한강버스 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변경안에 문제가 있으니 부결시켜야 한다”는 뜻을 모아 별도 표결도 하지 않은 채 위원장의 선언만으로 부결시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10월 “한강버스 사업을 추진하면서 SH공사에 재정적 부담을 끼쳤다”며 “오 시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했었다. 당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윤 전 의원은 지난 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 1차 토론회에서 오 시장의 한강버스 사업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그는 “오 시장이 다른 나라에 가서 겉보기만 보고 온 후 한강에 시민의 세금을 뿌려대고 계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도 지난달 국회의 요구에 따른 한강버스 관련 감사 이후 서울시에 “경제성 분석 과정에서 선착장 건설비만 비용으로 반영하고, 선박 구입비는 제외하는 등 위법·부당 사항이 있으니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오 시장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할 경우, 한강버스 사업에 따른 사법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5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서울시의회 과반을 차지하면 행정사무 감사 등을 거친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 2일 국민의힘의 상징색인 붉은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고 서울 도봉구 쌍문역 인근 쌍리단길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윤 전 의원과 지난 19일 오찬 회동을 할 때는 짙은 녹색 재킷을 입었다. 지난 20일에도 시민 비만율 저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시 상징 동물인 해치가 그려진 흰색 후드 재킷을 입었다. 넥타이도 붉은색이 사라졌다. 지난 18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 직후엔 연두색 넥타이를 맸다. 오 시장으로선 5선에 실패하거나 민주당이 서울시의회 과반을 차지하면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오 시장 자신을 사법 리스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당권에 도전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한다. 마이웨이 독자 노선 오 시장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돼 4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후에는 국회 경험이 없다. 오 시장의 ‘서울시장 4선’ 경력은 오 시장의 이미지를 ‘서울시장’으로 굳혔다. 스스로도 부족한 국회 경험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아는지 기회가 되면 당권 도전에 나섰다.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가·언론에서 먼저 오 시장을 잠재적인 당권·대권주자로 분류하는 사례가 많았다. 오 시장은 지난 2016년부터 잠재적인 당권·대권주자로 분류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새누리당이었고,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의 계파 갈등이 극심했다. 오 시장에 대해선 “뚜렷하게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친박계가 오 시장을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과 “오 시장이 혁신을 내세우면서 독자 세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이 공존했다. 그는 당내 역학구조 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보다 흐름을 관망하면서 나서야 할 명분과 시기를 신중하게 판단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으로 지목된 이후엔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후 바른정당으로 옮겼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유일하게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섰던 시기는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대표 선거였다. 당시 그는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하자”면서 당내 중도·개혁 보수 선두 주자임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당시 승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였으며 오 시장은 2위에 머물렀다. 다만, 국민 여론조사에선 황 전 대표를 앞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을 들었다. 이는 여전히 오 시장이 당권 도전에 무관심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는 근거로 작동한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자 그의 당권 도전 가능성을 두고 변형된 예측이 나왔다. 우여곡절 5선 도전 결과는? 한강버스에 명태균 리스크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 시장이 후보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녹색 넥타이를 맨 것에 대해 “국민의힘을 장동혁 대표의 빨간색이 아닌 자신의 초록색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아닌 장 대표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이기면 서울시장이 되는 것이고, 지면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건데, 이미 서울시장 선거는 포기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고 의원의 주장은 “오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를 가장한 차기 당권 다툼에 돌입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제22대 대선은 오는 2030년 3월에, 제10회 지방선거는 오는 2030년 6월에 치러진다. 일각에선 이 시간대를 두고 “오 시장이 당권 도전에 나서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오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돼 5선 임기까지 소화할 경우, 임기 만료 직전 자연스럽게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명분과 시기를 제공한다. 만약 오 시장이 차기 대선에 도전한다면, 부족한 국회 및 정당 운영 경험도 채워야 한다. 이 때문에 고 의원은 “낙선하면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당선 가능성이 없는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더라도, 낙선을 미리 결론 내린 후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 정치인은 없다. 오 시장도 5선을 염두에 두고 장 대표와 대립하면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했고, 당심도 그를 후보로 밀어줬다. 따라서 “오 시장이 서울시장 5선과 당권 및 대권 도전을 동시에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부지사가 오사카유신회·일본유신회를 창당한 사례가 있다. 현재도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 부지사는 일본유신회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선 흔히 보기 어려운 형식이다. 이는 자치권이 상대적으로 강한 일본 정치 풍토와 지역 기반 인물 중심 정치가 뿌리 깊은 오사카의 정치적 특성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떨어져도 레드 카펫 하지만 오 시장이 눈여겨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운 모델이다. 오 시장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당권 장악을 통해 부족한 국회 경험을 채우면서 레드 카펫을 깔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되면 당이라는 배경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과연 오 시장은 화려하게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