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S한방병원 '고가 암치료' 공방전 전말

‘산삼 약침’암환자에 효과 있나 없나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서울 강남 소재 대형 한방병원이 암 환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말기암 환자의 절박함을 악용해 병원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 병원이 내세운 치료 방법은 '산삼약침.' 하지만 약침은 거의 '맹물'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박모씨는 아내를 잃었다. 원인은 대장암. 사망 당시 아내의 나이는 불과 35세.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박씨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안 해본 게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S한방병원(전 S한의원)이었다. 지난해 3월, 박씨는 아내와 함께 S한방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았다. 박씨는 '살 수 있다'는 말 한마디를 믿고 1회 60만원인 약침치료 20회, 총 1200만원과 미네랄주사·면역칵테일·닥터라민 100·리피션 20% 등 양방치료 182만원, 총 20일 치료에 1382만원이라는 금액을 결제했다.

충청도 지역에 거주하는 데다 아이들이 어려 학교문제 때문에 박씨의 아내는 서울 신림동 친척집에 기거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20일 동안 치료를 받았다.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거기에 S한방병원의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한 달만 치료를 받고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지속적으로 치료를 권유하는 S한방병원의 말을 다시 믿고 600여만원을 추가 결제하면서까지 치료를 이어갔다. 4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간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8월, 박씨는 아내를 떠나보냈다. 

20일 치료에
1400만원 들어

강원도 삼척시에 사는 정모씨는 2012년 4월 말경 아버지가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게 됐다. 정씨는 정확한 검사를 받기 위해 부친을 서울 대형병원으로 모셨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정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각종 말기암 환자들의 완치 사례가 수십개 올라와 있고 TV 출연으로 시술법을 공개한 S한방병원을 알게 됐다. 정씨는 예약을 하고 2012년 5월 중순 경 부친과 함께 S한방병원을 찾았다.

정씨에 따르면 S한방병원은 부친의 MRI 사진을 보고 '우리가 제조한 산삼액기스를 정맥에 투입하면 암세포가 점차 줄어들어 그 효과는 3개월 정도 지나면 알 수 있다' '비용이 비싸긴 한데 적절한 시기에 잘 찾아왔다'며 정씨를 안심시켰다. 정씨는 어떻게든 부친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한 달에 900만원씩 3개월간 집중치료를 시작하게 됐다. 삼척에서 서울까지 왕복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정씨는 S한방병원 근처 월세 140만원의 오피스텔을 얻어 기거하면서 치료를 받았다.


3개월 뒤, S한방병원은 정씨에게 부친의 혈액 검사결과와 사진을 보여주고 '암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다시 3개월간 450만씩으로 해 좀 간격을 두고 치료를 하자고 제안, 다시 3개월 치료를 받게 됐다.

하지만 부친은 야위어만 갔다. 차도가 없다고 생각한 정씨는 다시 서울 대형병원을 찾아 재검진을 받았고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어 1~2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간이 암으로 덮여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삼액기스 같은 액체를 주입하면 급속도로 간이 상해 상태가 악화된다는 게 대형병원의 설명이었다. 그 후 부친은 대형병원의 예상대로 2개월 뒤 세상을 등졌다.

희망 없는 말기 환자 절박함 악용
한달에 1000만원…병원 배불리기

당시 정씨는 억울한 심정에 S한방병원을 찾아가 책임 추궁을 하고 싶었지만 의학적인 지식도 부족한 데다 이미 부친이 돌아가신 뒤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JTBC <리얼시사매거진 뉴스맨>에서 '암 치료, 한방병원 산삼 약침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산삼액기스의 효능 및 인터넷 홈페이지 완치사례가 모두 거짓이며 특히 산삼성분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 방송됐고 정씨는 지난해 7월10일 S한방병원 원장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이 내린 판단은 '불기소.' "당초 피의자인 A씨가 광고한 것과 달리 S약침에는 진세노사이드 등 산삼 성분이 없음을 확인하였으나 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산삼약침에는 원래부터 산삼 성분이 없다고 하였고, 따라서 피의자인 A씨가 고의로 불필요한 치료행위를 하였음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다시 말해 산삼약침에 산삼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원래 산삼 성분이 없는 약침이니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 진세노사이드는 인삼에 있는 사포닌을 이르는 말로 최근 항암, 항산화,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가 밝혀지면서 생리활성물질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S한방병원이 산삼 약침에 산삼 성분이 들어 있다고 허위 광고를 해왔다는 점이다. S한방병원의 2013년 당시 홈페이지를 보면 'S약침에는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면역 세포를 포함한 정상 세포의 재생과 활성화를 촉진시킬뿐더러, 암세포의 자연사멸을 유도합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나눠준 <12주 약침 요법>이라는 책자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귀가 실려 있다.

올해 6월 홈페이지에도 'S약침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중의 주원료인 파낙스 진액에 있는 진세노사이드, RG3, RH2, COMPOUND K 성분은 종양세포의 자연 사멸을 유도하여 항암효과를 낳고, 암세포의 전이와 재발을 방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관련된 근거는 세계적 학술지에도 수차례 보도된 바 있고, 국내 논문에도 약침의 항암 작용에 대해 입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진세노사이드는 암세포 사멸효과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시켜 주는 성분입니다'라고 적시했다. 올해 9월 기준, 해당 광고글은 삭제되어 'S약침은 23여가지의 순수 한약재로 만든 약침입니다'하는 글로 대체된 상태다.


논란 되자
광고글 삭제

정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상식적인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안수기도로 암을 낫게 해주겠다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긴 사람이 고발당해도, 종교계와 의학계에서 원래부터 안수기도로 암이 낫는 것은 아니라고 증명한다면, 기도를 빙자해 거액을 받아 챙긴 사람도 불기소 처분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위와 같은 이유로 서울고등법원에 S한방병원 사건에 대해 기소 유무를 가려달라는 재정신청을 냈다. 서울고법은 최근 원장 A씨의 사기 혐의가 있다며 공소제기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판결문을 통해 "S한방병원이 산삼 약침에 산삼 성분이 들어 있다고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으나 검찰 조사 결과 산삼 성분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또 치료를 받고 호전됐다는 증거로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 28장 중 2장을 제외하고는 호전됐다고 볼 수 없는 사진"이라고 밝혔다. 서울고법은 "산삼 약침과 S약침을 말기암 환자의 정맥에 주사했을 때 항암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듣도 보도 못한
한방 암 전문의

정씨와 박씨 등 피해자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해오던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은 서울고법의 강제기소 명령을 환영하면서 "현재 고소장을 접수한 5명 외에 추가로 수백명의 피해자들을 규합해 S한방병원에 대해 대규모 집단 소송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S한방병원은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S한방병원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진세노사이드 성분에는 전의총에서 주장하는 RH2, RG3 이외에도 다른 성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며 "(S한방병원이) 직접 성분분석기관에 산삼 약침 성분분석을 의뢰한 결과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진세노사이드에는 여러 가지 성분이 있는데 일부 성분이 미포함됐다고 해서 산삼 성분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심지어 RH2와 RG3 성분도 극미량 검출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전의총과 고소인, S한방병원 측의 주장이 상반돼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S한방병원은 재판 결과에 따를 예정"이라고 전했다.

S한방병원의 허위·과장 광고는 산삼약침 효능에 그치지 않는다. S한방병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암 치료만 20여년을 해온 국내 유일의 한방 암 전문의가 있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문의한 결과 '외과 전문의는 26개 진료과목으로 분류하며 암 전문의라는 자격증을 두고 있지 않으며 한의사 전문의는 8개 진료과목으로 분류되며 역시 암 전문의라는 자격증을 두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S한방병원은 또 홈페이지 동영상에서 '양한방 전문의 5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양한방 전문의라는 자격을 두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병원 관계자는 "문제가 된 광고 문구를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삭제하거나 다른 문구로 교체했으며 동영상 또한 해당 언급을 빼고 재촬영해 게재했다"며 과장 광고를 인정했다. 실제로 과장 광고가 논란이 된 직후 S한방병원 홈페이지에는 '한방 암 전문의' '양한방 전문의'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호전 사례 90% 이상 허위 사실
전의총 대규모 집단 소송 예고

S한방병원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의총은 S한방병원이 발표한 '클라츠킨 종양 약침 반응 증례 발표'라는 논문이 증례보고 논문이 갖추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조군이 없다는 것.

증례보고는 매우 드문 질환을 발견했거나 같은 질환일지라고 상당히 독창적이고 특별한 임상 경과를 보였을 경우 가능한 보고다. S한방병원의 논문같이 특별한 치료 경험을 증례보고 하려면 최소한 그 특별한 치료법으로 여러 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똑같은 조건에서 그 특별한 치료법으로 치료받지 못한 명확한 대조군을 설정해야 한다는 게 전의총의 주장이다.

전의총은 "하지만 S한방병원은 대조군 처리가 전혀 안 된 단 하나의 임상 증례를 가지고 논문 발표를 했다"며 "산삼약침 치료를 받고 종양이 줄어든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처음 진단시 종양의 크기' '한의원 치료 직전 종양의 크기' '치료 중 종양의 크기'를 비교해야 하지만 논문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S한방병원은 "전의총의 주장대로 논문이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면 학회 통과자체를 못했을 것이다"며 논문에 대한 의혹 제기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전의총은 S한방병원이 CT 사진과 함께 올려놓은 암 환자 호전 사례 역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의총은 S한방병원 홈페이지에 암 치료 호전 사례라고 하면서 CT 사진과 함께 올라온 28명의 사례를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S한방병원이 호전 됐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의 CT 사진 대부분이 판정 불가한 상태거나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중에는 서로 다른 부위를 올려놓고 호전됐다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진상 실제로 호전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의혹제기는 억지"
"재판에 따를 것"

사례를 분석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비교 판독이라 할 때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비교 대상이 되는 두 사진의 조건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S한방병원에서 제시한 전후 사진을 보면 같은 조건의 사진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S한방병원의 한의사들이 영상검사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면 당장 CT 사진을 이용한 홍보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밝힌 뒤 "만약 환자들이 호전된 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렇게 엉터리 사진을 홍보자료로 올렸다면 아주 죄질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이에 S한방병원은 "호전이 되고 안 되고를 S한방병원에서는 판단하지 않고 환자들이 최초 암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가져온 판독지를 보고 그 판단을 그대로 인용할 뿐"이라며 "12명의 환자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전·후 필름이 동일하고 환자들도 S한방병원의 약침 치료로 암이 호전됐음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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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