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청문회 무사통과 권순일 대법관 내정자

9부 능선 넘었는데…안개속 정국 득? 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양창수(62·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 후임으로 권순일(55·사법연수원 14기) 법원행정처 차장이 내정됐다. 이번에도 판사 출신이다. 문제는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자질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안개 속에 가려진 정국이 오히려 그에겐 득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지난 7월24일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이기수)는 회의를 열어 권 후보자와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연수원 12기), 윤남근 고려대 교수(연수원 16기)를 대법관 후보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지난 11일엔 양승태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권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고,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이에 대해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민주사법연석회의)는 “이번 대법관후보추천을 최악의 추천이라고 평가한다”고 혹평했다. 

투기의혹에
자질 논란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8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는 여의도 국회 본관 제3회의장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권순일(55·사법연수원 14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적격’ 의견으로 채택했다.
 
인청특위는 보고서 종합의견을 통해 “후보자는 지난 약 30년 동안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립대학교 시간강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하는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왔고, 객관적 법해석을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유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앞서 지난 25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권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대법관으로서의 자질 및 도덕성,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두루 검증한 바 있다. 특히 다운계약서 작성과 부동산 투기, 병역 현역 기피 의혹 등이 쟁점으로 부각돼 자질 논란이 일었다. 그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의 1993년 재산등록 신고내역을 보면 1989년 경기도 화성 땅을 평당 1369만원에 매입했다”며 “당시 공시지가가 9500만원이었는데 어떻게 9500만원의 땅을 7분의 1 가격인 1300여만원에 샀느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권 후보자가 1989년 3월 신 모씨와 공동으로 경기도 화성땅과 용인땅을 매입해서 4개월 후에 화성땅은 후보자 명의 단독소유가 됐고, 2009년 매각했다”며 “공무원이 현저히 낮은 대가로 증여를 받으면 뇌물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장인께서 집안의 어른으로 모시는 신씨가 보유하도록 소개하고 저에게 돈을 내라고 해서 평당 1500만∼1800만원을 냈다”며 “공시지가가 그 정도라는 것은 지금 처음 들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취득세와 등록세는 아파트 기준가에 맞춰서 책정됐기 때문에 위법은 아니다”라면서도 “증여세 등 지금이라도 내지 않은 세금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형태라도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합의해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허위의 거래가격으로 계약하는 다운계약서도 도마에 올랐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아파트를 매각하면서 매각 대금으로 공시지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신고하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권 후보자는 “아파트를 매매하고 공인계약서를 실거래가가 아닌 기준가격으로 작성해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납부했다”며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갖가지 의혹 도마 올라 “자질·도덕성 문제” 
“직무 수행에 무리가 없다” 판단 보고서 채택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1980년 6월 징병검사에서 입영 대상자로 분류됐는데 5개월 후 갑자기 보충역으로 바뀌었다”며 현역 근무를 기피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권 후보자는 이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그는 “1980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 근시와 고도난시 때문에 ‘3급을’을 받았다”며 “당시 대학 재학 중이면 징병등급을 한 급 높였기 때문에 2급이 돼서 현역병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는 “현역으로서 법무장교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병역청으로부터 통지서를 받아보니 보충역으로 바뀌어서 놀랐다”며 “이후 병무청에 가서 장교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당시 병무청에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공군으로부터 보충역 입영통지서가 와서 다음날 바로 입대했다”며 “법무장교로 입대하지 못해서 개인적으로는 법조 경력에 손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사과하면 그만?
늘 같은 시나리오
 
박사 학위 취득에 대한 공방도 오갔다. 정호준 의원은 “판사의 과도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현직에 있는 동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며 “정상적인 대학원 공부가 가능했는지 어떻게 논문을 쓸 수 있었는지 등이 의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은 1996년이고 논문을 받은 것은 2002년”이라며 “주로 세미나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그때 연구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1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논문 작성과 재충전 등을 위해 연수 휴직을 내고 1년간 미국으로 유학갔다”며 “그 기간 동안 집중해서 논문을 썼다”고 답변했다.
 
전순옥 새정치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1988년 서초구 삼풍아파트 1채를 주거목적으로 분양받고 이를 임대해 그 전세자금으로 경기도 용인의 임야와 화성시 임야 및 토지를 매입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올렸다”면서 “놀라운 부동산투기 실력”이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최근 서울고법이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종북주사파’라고 지칭한 보수논객 변희재씨의 명예훼손 책임과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을 거론하며 “법원이 북한 입장을 두둔하고 주장을 ‘스피커’처럼 얘기하는 건 종북이 아니라면서 변씨에게 손해배상을 물도록 했는데 그것이 과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인가”라고 따졌다. 
 
김진태 의원도 “정부는 당(통합진보당) 자체를 해산하라는데 개인이 그 당 대표를 종북이라고 하면 안 되나. 어떻게 무서워서 말을 하겠는가”라며 “이렇게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고도 국민 신뢰를 받겠다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한성 의원은 또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인정한 것을 지적하며 “130명가량의 사람들이 비밀집회에서 군사시설 타격논의를 했는데 법원은 이를 선동에 대한 공모로만 판단했다. 대단히 억지 논리”라고 주장했다.
 
50대 남·서울법대·법관…매번 같은 코스
대법관 출신 획일화…문제는 서열중심 추천
 
권 후보자는 특위위원장인 양승조 의원이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직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높은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어느 정도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필요한 때에만 엄정히 적용해 나가는 게 법원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여야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엘리트 코스
예정된 라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권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별법의 권한과 구성에 대해 사회에서 극심한 의견 대립과 여야 간 토론이 있는데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훌륭한 입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후보자의 경우 사시합격 기수는 22회로 지난 2월 임명된 조희대 대법관(23기)보다 높지만, 연수원 기수는 14회로 오히려 1기수 낮다. 참여연대는 “서열중심의 추천과 후보자 제청을 벗어나지 못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면서 “대법관 후보자는 대법관으로서의 자질과 사회적 요구와 흐름에 가장 부응하는 인물인지를 중심으로 제청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가 대법관에 취임하게 되면 신영철·이인복 대법관을 더해 대전고 출신 현직 대법관은 3명으로 늘어난다. 양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가운데 서울대 법대 출신은 12명으로 여전히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남성 대법관수도 12명으로 마찬가지다.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된 권 후보자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대전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5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권 후보자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순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는 치밀한 재판준비와 해박한 법리를 토대로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특히 출중한 법률지식을 인정받아 3년 동안 대법원에서 선임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역임하며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거나 복잡한 법률문제가 얽혀 있는 중요사건들에 관한 재판연구업무를 수행해 비법관 재판연구관 제도를 정착시켰다. 또한 재판연구관 제도 및 업무 개선에 힘쓰며 대법원의 판례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하면서는 사법정책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또 법원공무원을 증원하는 등 법원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권 후보자는 엉덩이가 무겁기로도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증권투자 권유자 책임론’을 썼고 공법과 민사법, 비교법 분야의 각종 주요 쟁점들에 대한 논문 30여편을 저술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 연방사법센터 및 국립주법원센터에 파견근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일선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행정재판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면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병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하는 등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용직 인부와 대학교 시간강사에 대해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 등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학교용지부담금과 관련한 특례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위헌결정을 이끌어냈고, 임용고사에서 사범대 출신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무효 판결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법관’
약자 배려하기도
 
권 후보자는 재판업무뿐만 아니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조사심의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두루 거치며 행정 업무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나타냈다. 특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개혁안에 대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탁월한 조정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단계적 법조일원화와 로클럭 제도 도입, 대법관추천위원회 신설 등이 포함된 개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소탈하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 법관과 직원들의 귀감이 되고, 따뜻한 성격과 절제된 행동으로 주변 선·후배 동료로부터 존경을 받는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양 대법원장은 제청 과정에서 전문적 법률지식,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력,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의지, 국민과 소통하며 봉사하는 자세, 인품과 경륜, 도덕성과 청렴성 등에 관한 철저한 심사평가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국민이 바라는 대법원의 바람직한 모습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khlee@ilyosisa.co.kr>
 

[권순일은?]
 
▲ 충남 논산
▲ 대전고 졸업
▲ 서울대 법대
▲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 서울형사지법·서울고법·서울가정법원 판사
▲ 대구지법·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 대전지법·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
▲ 대법원 선임재판 연구관
▲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 법원행정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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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