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청문회 무사통과 권순일 대법관 내정자

9부 능선 넘었는데…안개속 정국 득? 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양창수(62·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 후임으로 권순일(55·사법연수원 14기) 법원행정처 차장이 내정됐다. 이번에도 판사 출신이다. 문제는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자질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안개 속에 가려진 정국이 오히려 그에겐 득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지난 7월24일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이기수)는 회의를 열어 권 후보자와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연수원 12기), 윤남근 고려대 교수(연수원 16기)를 대법관 후보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지난 11일엔 양승태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권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고,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이에 대해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민주사법연석회의)는 “이번 대법관후보추천을 최악의 추천이라고 평가한다”고 혹평했다. 

투기의혹에
자질 논란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8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는 여의도 국회 본관 제3회의장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권순일(55·사법연수원 14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적격’ 의견으로 채택했다.
 
인청특위는 보고서 종합의견을 통해 “후보자는 지난 약 30년 동안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립대학교 시간강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을 하는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왔고, 객관적 법해석을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유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앞서 지난 25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권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대법관으로서의 자질 및 도덕성,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두루 검증한 바 있다. 특히 다운계약서 작성과 부동산 투기, 병역 현역 기피 의혹 등이 쟁점으로 부각돼 자질 논란이 일었다. 그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의 1993년 재산등록 신고내역을 보면 1989년 경기도 화성 땅을 평당 1369만원에 매입했다”며 “당시 공시지가가 9500만원이었는데 어떻게 9500만원의 땅을 7분의 1 가격인 1300여만원에 샀느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권 후보자가 1989년 3월 신 모씨와 공동으로 경기도 화성땅과 용인땅을 매입해서 4개월 후에 화성땅은 후보자 명의 단독소유가 됐고, 2009년 매각했다”며 “공무원이 현저히 낮은 대가로 증여를 받으면 뇌물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장인께서 집안의 어른으로 모시는 신씨가 보유하도록 소개하고 저에게 돈을 내라고 해서 평당 1500만∼1800만원을 냈다”며 “공시지가가 그 정도라는 것은 지금 처음 들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취득세와 등록세는 아파트 기준가에 맞춰서 책정됐기 때문에 위법은 아니다”라면서도 “증여세 등 지금이라도 내지 않은 세금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형태라도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합의해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허위의 거래가격으로 계약하는 다운계약서도 도마에 올랐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아파트를 매각하면서 매각 대금으로 공시지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신고하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권 후보자는 “아파트를 매매하고 공인계약서를 실거래가가 아닌 기준가격으로 작성해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납부했다”며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갖가지 의혹 도마 올라 “자질·도덕성 문제” 
“직무 수행에 무리가 없다” 판단 보고서 채택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1980년 6월 징병검사에서 입영 대상자로 분류됐는데 5개월 후 갑자기 보충역으로 바뀌었다”며 현역 근무를 기피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권 후보자는 이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그는 “1980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 근시와 고도난시 때문에 ‘3급을’을 받았다”며 “당시 대학 재학 중이면 징병등급을 한 급 높였기 때문에 2급이 돼서 현역병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는 “현역으로서 법무장교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병역청으로부터 통지서를 받아보니 보충역으로 바뀌어서 놀랐다”며 “이후 병무청에 가서 장교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당시 병무청에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공군으로부터 보충역 입영통지서가 와서 다음날 바로 입대했다”며 “법무장교로 입대하지 못해서 개인적으로는 법조 경력에 손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사과하면 그만?
늘 같은 시나리오
 
박사 학위 취득에 대한 공방도 오갔다. 정호준 의원은 “판사의 과도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현직에 있는 동안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며 “정상적인 대학원 공부가 가능했는지 어떻게 논문을 쓸 수 있었는지 등이 의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은 1996년이고 논문을 받은 것은 2002년”이라며 “주로 세미나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그때 연구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1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논문 작성과 재충전 등을 위해 연수 휴직을 내고 1년간 미국으로 유학갔다”며 “그 기간 동안 집중해서 논문을 썼다”고 답변했다.
 
전순옥 새정치연합 의원은 “권 후보자가 1988년 서초구 삼풍아파트 1채를 주거목적으로 분양받고 이를 임대해 그 전세자금으로 경기도 용인의 임야와 화성시 임야 및 토지를 매입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올렸다”면서 “놀라운 부동산투기 실력”이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최근 서울고법이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종북주사파’라고 지칭한 보수논객 변희재씨의 명예훼손 책임과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을 거론하며 “법원이 북한 입장을 두둔하고 주장을 ‘스피커’처럼 얘기하는 건 종북이 아니라면서 변씨에게 손해배상을 물도록 했는데 그것이 과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인가”라고 따졌다. 
 
김진태 의원도 “정부는 당(통합진보당) 자체를 해산하라는데 개인이 그 당 대표를 종북이라고 하면 안 되나. 어떻게 무서워서 말을 하겠는가”라며 “이렇게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고도 국민 신뢰를 받겠다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한성 의원은 또 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인정한 것을 지적하며 “130명가량의 사람들이 비밀집회에서 군사시설 타격논의를 했는데 법원은 이를 선동에 대한 공모로만 판단했다. 대단히 억지 논리”라고 주장했다.
 
50대 남·서울법대·법관…매번 같은 코스
대법관 출신 획일화…문제는 서열중심 추천
 
권 후보자는 특위위원장인 양승조 의원이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직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높은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어느 정도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필요한 때에만 엄정히 적용해 나가는 게 법원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여야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엘리트 코스
예정된 라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권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별법의 권한과 구성에 대해 사회에서 극심한 의견 대립과 여야 간 토론이 있는데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훌륭한 입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후보자의 경우 사시합격 기수는 22회로 지난 2월 임명된 조희대 대법관(23기)보다 높지만, 연수원 기수는 14회로 오히려 1기수 낮다. 참여연대는 “서열중심의 추천과 후보자 제청을 벗어나지 못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면서 “대법관 후보자는 대법관으로서의 자질과 사회적 요구와 흐름에 가장 부응하는 인물인지를 중심으로 제청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가 대법관에 취임하게 되면 신영철·이인복 대법관을 더해 대전고 출신 현직 대법관은 3명으로 늘어난다. 양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가운데 서울대 법대 출신은 12명으로 여전히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남성 대법관수도 12명으로 마찬가지다.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된 권 후보자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대전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5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권 후보자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순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는 치밀한 재판준비와 해박한 법리를 토대로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특히 출중한 법률지식을 인정받아 3년 동안 대법원에서 선임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역임하며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거나 복잡한 법률문제가 얽혀 있는 중요사건들에 관한 재판연구업무를 수행해 비법관 재판연구관 제도를 정착시켰다. 또한 재판연구관 제도 및 업무 개선에 힘쓰며 대법원의 판례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하면서는 사법정책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또 법원공무원을 증원하는 등 법원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권 후보자는 엉덩이가 무겁기로도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증권투자 권유자 책임론’을 썼고 공법과 민사법, 비교법 분야의 각종 주요 쟁점들에 대한 논문 30여편을 저술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 연방사법센터 및 국립주법원센터에 파견근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일선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행정재판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면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병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하는 등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용직 인부와 대학교 시간강사에 대해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 등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학교용지부담금과 관련한 특례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위헌결정을 이끌어냈고, 임용고사에서 사범대 출신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무효 판결하기도 했다.

‘공부하는 법관’
약자 배려하기도
 
권 후보자는 재판업무뿐만 아니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조사심의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두루 거치며 행정 업무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나타냈다. 특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개혁안에 대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탁월한 조정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단계적 법조일원화와 로클럭 제도 도입, 대법관추천위원회 신설 등이 포함된 개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소탈하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 법관과 직원들의 귀감이 되고, 따뜻한 성격과 절제된 행동으로 주변 선·후배 동료로부터 존경을 받는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양 대법원장은 제청 과정에서 전문적 법률지식,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력,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의지, 국민과 소통하며 봉사하는 자세, 인품과 경륜, 도덕성과 청렴성 등에 관한 철저한 심사평가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국민이 바라는 대법원의 바람직한 모습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khlee@ilyosisa.co.kr>
 

[권순일은?]
 
▲ 충남 논산
▲ 대전고 졸업
▲ 서울대 법대
▲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 서울형사지법·서울고법·서울가정법원 판사
▲ 대구지법·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 대전지법·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
▲ 대법원 선임재판 연구관
▲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 법원행정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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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