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농구 잔혹사

게임은 재미없고 선수는 사고치고

[일요시사=경제팀] 한종해 기자 = 등을 돌리는 농구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유독 한국 농구와 관련된 논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판을 폭행한 감독이 자격 박탈을 당하는가 하면 폭행 및 사기혐의로 기소되거나 처형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왕년의 스타 출신 감독은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한 시즌 농구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은 사건을 재조명해봤다.

 
한국 농구가 개념을 잃어버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농구계 소식은 전부 부정적인 소식 투성이다.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린 적이 없었다.
 
최근 연세대 정재근 감독의 ‘박치기’가 농구계를 들었다 놨다. 정 감독은 지난 7월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CC와 함께하는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폭언을 하고 심판 얼굴을 박치기했다.

동네북 된 심판
 
양팀이 팽팽한 접전을 펼치던 중 연장전에서 연세대 최준용이 골밑슛을 시도할 때 수비 과정에서 발생한 고려대 이승현이 반칙을 심판이 파울로 선언하지 않은 데 대한 분출이었다.
 
사태가 커지자 정 감독은 하루 뒤인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사과한 뒤, 연세대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대한농구협회는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정 감독에게 자격정지 5년의 징계를 결정했다. 한 번의 실수로 5년 동안 아마추어팀을 비롯해 프로팀을 맡을 수 없게 된 것. 또 해외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대한농구협회 승인 없이는 불가능해 사실상 퇴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3월 프로농구 부산 KT와 창원 LG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도중 코트로 들어와 심판에게 ‘배치기’를 시전하는 등 강하게 항의한 KT 전창진 감독은 테크니컬 반칙 2개를 받고 코트를 떠났다. 대한농구협회는 전 감독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선수를 나무라는 과정에서 폭언을 하고,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됐다. 지난 2월16일 안양 KGC와의 원정경기 중 작전타임에 모비스 함지훈을 혼내면서 “야 테이프 줘봐, 입에 붙여”라고 했다. 이에 함지훈이 잠시 머뭇대자 유 감독은 “붙여 이 XX야”라고 욕설을 뱉었고 이 장면이 중계화면을 통해 방송됐다.
 
촉망받던 농구선수들의 충격적인 행보도 이어졌다. 한국 최고의 슈터로 이름을 날리며 미국 프로농구(NBA) 진출까지 노렸던 농구 국가대표 출신 방성윤은 지난 2월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방성윤은 공증까지 된 상황에서 건물 보증금을 속여 빼앗는 등 고소인을 상대로 사기를 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방성윤은 지난 2012년 9월 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돼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피해자 김모씨는 고소장에서 ‘방성윤이 사업 파트너이자 또 다른 피고소인 이씨와 함께 2012년 4월부터 8월까지 나를 수차례 폭행했다. 이들은 골프채와 아이스하키 스틱, 쇠파이프 등으로 허벅지를 매회 40∼50회 정도 때렸다’고 진술했다.
 
등 돌리는 팬들 갈수록 늘어나
툭하면 감독 심판에 폭행·폭언
폭력·사기에 살인 사건 잇달아
 

당시 방성윤은 “남자들끼리 장난친 게 전부”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2013년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방성윤은 현재 집단·흉기 등 상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방성윤과 함께 한국 농구의 재목으로 평가됐던 정상헌은 사체은닉 혐의로 기소, 지난달 21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정상헌은 지난해 6월 상가 권리금 문제로 처형과 말다툼을 벌이다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시체를 암매장했다. 이후 정상헌은 숨진 처형의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아내의 살인 교사로 처형을 살해했다는 거짓 진술을 내놓으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김민구는 음주사고를 냈다. 지난 6월7일 새벽 국가대표 농구팀 외박기간 중 음주 후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 신호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본인을 제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당시 김민구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60%로 면허정지에 해당됐다. 김민구는 고관절, 발목 등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선수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 부상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수술 후 그의 회복경과는 예상보다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이 승부조작 사태에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강 전 감독은 지난 2011년 2∼3월 브로커들에게 4700만원을 받고 주전 대신 후보 선수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지난해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에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강 전 감독이 범행 내용과 방법이 불량해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어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후에도 브로커들에게 회유와 압력을 넣었다”고 판시했다. 또 “한국 농구계의 우상인 강 전 감독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한 사건 때문에 프로농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사회적 손실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전국구 스타로 인지도가 높은데다 사령탑 부임 3년 만에 팀을 정규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의 타락에 팬들의 실망감은 컸다. 강 전 감독은 한국농구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됐다.
 
이처럼 감독·선수 가릴 것 없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프로종목 중 가장 인기가 떨어진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한국 농구가 이대로라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국 농구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성적 지상주의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장에선 응원의 목소리보다는 코치들이 선수를 닦달하는 고함소리가 더 크다.
 
이기는 농구에 익숙하다보니 경기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은 줄어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개개인의 기술보다는 당장 도움이 되는 패턴과 지역방어를 먼저 배운다. 길거리 농구는 진정한 농구가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릴 적 배운 농구 습관은 커서도 이어진다. 한 경기에도 멋진 묘기가 수십개씩 나오는 NBA와 비교해 봐도 한국 농구는 재미가 없다.
 
체계적이지 못한 인성교육 시스템도 문제다. 지난 2010년부터 공부하는 농구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훈련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효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 벤치마킹?
 
구단프런트들은 한국 농구의 변화를 위해 NBA를 벤치마킹하고 마케팅과 홍보에 힘쓰지만 선수들은 변화에 무감각하다. 경기장에서 쇼맨십은 전무하고 경기력도 거기서 거기다. 성적을 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감독과 코치들은 그런 선수들에게 자신있는 플레이를 요구한다. 프론트, 감독, 선수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농구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농구계에 몸담고 있는 농구인 모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프로농구는 다시 한번 팬들에게 열정어린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침체를 거듭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뜀박질을 시작해야 한다”는 김영기 프로농구연맹 신임 총재의 말처럼 한국 농구가 혼신의 힘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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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