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⑥전남 목포

유달산에 올라 보면 불빛으로 피어나는 삶의 근기

유달산 기슭 죽교동에는 집들이 빼곡하다. 마을에 어둠이 내리면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이 켜지고, 일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집마다 불을 밝힌다. 해무가 끼는 날이면 가로등과 창문으로 새는 불빛이 뚜렷하게 반짝이지도 않고 더 멀리 퍼지지도 않으며 마을 언저리에 번진다.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죽교동 야경에 내일 다시 일터로 나갈 사람들의 근기가 서린 듯하다. 이것이 목포의 첫 번째 야경이다. 두 번째는 유달산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고하도와 목포대교 불빛이다. 세 번째는 유달산 천자총통 발포체험장에서 올려다보는 유선각 야경이다. 네 번째는 ‘춤추는 바다분수’다. 목포 야경을 즐긴 다음날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구 목포 일본영사관, 경동성당, 양동교회, 목포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구 청년회관 등 목포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를 돌아본다.

 

해무 끼는 날, 죽교동 언저리에 번지는 아리한 불빛
유달산 아래 펼쳐지는 고하도와 목포대교 불빛 바다

목포의 야경을 보려면 유달산으로 가야 한다. 해지기 전에 출발해서 마당바위까지 올라가는 동안 몇몇 정자에서 목포의 전망을 즐긴 뒤, 마당바위에 도착해서 해지는 풍경과 야경을 동시에 감상한다.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적봉에서 마당바위까지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계단이 많아 천천히 간다고 해도 40분이면 넉넉하다.

이순신 장군
노적봉 전략

출발 지점인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가장하고, 석회 가루를 바다에 뿌려 쌀뜨물이 흘러내린 것처럼 해서 엄청나게 많은 군사들이 있는 듯 속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오포대와 대학루를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나온다. 그 다음에 달선각, 천자총통 발포체험장을 차례로 지나면 유선각이 여행자를 반긴다. 유선각은 해공 신익희 선생이 쓴 현판이 있어 더 유명하다. 신익희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당시 임시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대의원과 내무부장 등을 맡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국회의장에 당선되고 대통령에 출마한 인물이다.

 


유선각을 지나면 관운각이 나오고 그 위에 마당바위가 있다. 마당바위에 서면 바다 쪽으로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어우러진 풍경이 보이고, 반대쪽으로 목포 시내가 보인다. 바로 앞에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가 있다. 기암괴석이 하늘로 솟은 모습이 볼 만하다.
해가 지면서 목포대교와 고하도에 조명이 들어온다. 검은 바다 배경으로 불빛이 반짝인다. 목포대교와 연결되는 고하도 끝을 ‘용머리’라고 하는데, 불 밝힌 배들이 용머리를 돌아 항구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련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에 마당바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가파른 계단에 조명이 없는 곳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유선각을 지나면 천자총통 발포체험장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유선각 야경이 멋있다. ‘유선각’은 신선들이 노니는 정자라는 뜻으로, 불빛에 빛나는 유선각의 모습은 신선들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노니는 것 같다.
내려가는 계단 곳곳에서 전망이 트이는데, 보는 곳마다 느낌이 다르다. 달선각과 대학루 사이에도 시야가 터지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대도시의 휘황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야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유달산 기슭 죽교동에는 집들이 빼곡하다.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이 켜지고, 일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집마다 불을 밝힌다. 해무가 끼는 날이면 가로등과 창문으로 새는 불빛이 뚜렷하게 반짝이지도 않고 더 멀리 퍼지지도 않으며 마을 언저리에 번진다.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죽교동 불빛에 내일 다시 일터로 나갈 사람들의 근기가 서린 듯하다.
유달산의 야경을 즐겼다면 바다의 야경을 즐길 차례다. 신안비치호텔 앞에서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만들어내는 야경을 즐긴다. 유달산 마당바위에서 고하도와 목포대교를 한눈에 봤다면, 신안비치호텔 앞에서는 섬과 다리에서 빛나는 불빛이 바다에 반영되는 세세한 풍경도 볼 수 있다. 바다에 반영된 불빛 위에 작은 배라도 한 척 떠 있으면 운치가 더한다.
상동 평화광장 앞바다에 가면 ‘춤추는 바다분수’를 볼 수 있다.

 


유달산 기슭 죽교동
빼곡한 집의 근기

바다에 설치된 분수와 조명이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감성적인 발라드, 신나는 댄스음악, 차분하고 그윽한 음악 등 다양한 선율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는 듯하다. 바다분수는 6월부터 8월까지 화·수·목·일요일은 오후 8시40분과 9시20분에, 금·토요일은 오후 8시40분과 9시20분, 10시에 시작한다.

 


목포 야경을 감상한 다음 날은 목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근대역사관에 들른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과 구 목포 일본영사관(사적 제289호)을 근대역사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경동성당(목포시 문화유산 제22호), 목포 양동교회(등록문화재 제114호),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등록문화재 제62호), 목포 구 청년회관(등록문화재 제43호) 등 목포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가 당시의 역사를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천주교 경동성당은 1954년에 완공됐다. 목포 구 청년회관은 일제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항일 운동 근거지로, <조선청년>이라는 잡지를 발행한 곳이다. 목포 양동교회는 선교사 유진 벨(한국 이름 배유지)이 목포 지역에서 최초로 세운 교회다. 1897년 선교사와 신도들이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교인들이 유달산에서 직접 나른 석재를 주재료로 지었다.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은 1912년 건립했으며, 목포의 석산에서 캔 석재를 사용했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삼학도 카누 체험→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구 목포 일본영사관(목포근대역사관)→노적봉→유달산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삼학도 카누 체험→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구 목포 일본영사관(목포근대역사관)→노적봉→유달산→춤추는 바다분수
・ 둘째 날: 갓바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목포자연사 박물관→목포생활도자박물관→목포문학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목포문화관광 http://tour.mokpo.go.kr


문의 전화
・ 목포시 종합관광안내소 061)270-8598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목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23회(05:35~23:55) 운행, 약 4시간 소요. 목포종합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1번 버스를 타고 목포역에서 하차 후 유달산 입구 노적봉까지 걸어서 10~15분.
* 문의 :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 이지티켓 www.hticket.co.kr
・ 목포종합버스터미널 1544-6886, www.usquare.co.kr/Local/mokpo.asp
기차> 용산역-목포역: KTX 하루 12회(05:20~21:40) 운행, 약 3시간 20분 소요. 목포역에서 유달산 입구 노적봉까지 걸어서 10~15분.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정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목포종합버스터미널→목포역→유달산


숙박 정보
・ 로얄모텔 : 목포시 통일대로, 061)282-6659
・ 상그리아비치호텔 : 목포시 평화로, 061)285-0100, www.shangriahotel.co.kr
・ 신안비치호텔 : 목포시 해안로, 061)243-3399, www.shinanbeachhotel.com


식당 정보
・ 장터식당 : 꽃게살비빔밥, 목포시 영산로40번길, 061)244-8880
・ 독천식당 : 낙지연포탕, 목포시 호남로64번길, 061)242-6528
・ 선경준치횟집 : 준치회덮밥・병어찜, 목포시 해안로 57번길, 061)242-5653


축제와 행사정보
・ 목포해양문화축제 : 2014년 8월 1~5일, 평화의 섬 삼학도와 선창 일원, 061)270-8441, www.mokpofestival.com


주변 볼거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삼학도 카누 체험,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온금동 골목길, 서산동 골목길, 갓바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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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