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서열화가 부른 ‘학교 잔혹사’


교내 폭력이 날로 흉포화되고 있다. 교실 안에서 계급을 정해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고자질을 했다는 이유로 때려 숨지게 하거나 앵벌이를 시키고 집단성폭행을 하는 등 강력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위계질서를 근간으로 벌어진다. 자신보다 서열이 아래에 있는 친구에게 가하는 폭력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학교폭력을 조장하고 있는 것. 상납에서 폭행, 성폭행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학교폭력의 현주소다.

학생들 사이 등급 서열화로 학교폭력 날로 흉포화
‘일진’ 학생들 다른 학생 ‘빵셔틀’로 정해 괴롭혀


새 학기에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이모(15)군은 개학을 하고 다시 학교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방학동안 잠잠하던 학교 친구들과 선배들의 협박과 폭행이 다시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군이 지금처럼 학교에 가는 것을 겁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였다. 키가 작고 왜소한 이군은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에게 소위 말하는 ‘빵셔틀’로 낙점됐다. 빵셔틀은 교내에서 ‘일진’으로 통하는 학생들에게 잔심부름을 해주는 학생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온갖 잔심부름 ‘빵셔틀’
거부하면 폭행 이어져

그날부터 이군은 ‘잘 나가는’ 선배들과 그 선배들에 붙어 기생하는 반 친구들의 잔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군이 주로 한 심부름은 간식거리를 사오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동안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뛰어가 음식을 사오거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오는 등 주로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심부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엔 담배심부름이 시작됐다. 또래보다 더 앳돼 보이는 이군에게 담배를 파는 곳은 드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간 폭력이 날아왔다. 하는 수 없이 이군은 방과 후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인근 상점들을 돌며 담배를 사 모았다.

그때부터 이군에게 학교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선배들의 눈을 피해보려 해도 이들은 어디서든 나타나 이군을 괴롭혔다. 심지어 선생님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괴롭힘은 이어졌다. 점심시간 급식실이 그중 하나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받아와야 하지만 선배들은 가만히 앉아 이군에게 식판에 음식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밥을 먹은 뒤 뒤처리를 하는 것도 이군의 몫이었다. 자신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는 궂은일도 아무렇지 않게 이군에게 시켰던 것이다.

이군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돈 상납이었다. 선배들은 이군과 같은 ‘빵셔틀’ 몇 명을 모아놓고 일주일에 20만원을 상납할 것을 요구했다. 한 달 용돈의 몇 배가 넘는 돈을 구하는 것은 이씨나 다른 친구들에게 무리였고 할당량을 상납하지 못할 때마다 선배들의 폭행은 더해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만약 얼굴에 상처가 나 맞은 흔적이 남으면 선배들은 ‘누가 물으면 가로등에 부딪혔다고 해라’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조언까지 해주곤 했다고. 이는 곧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이군은 계속되는 폭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참다간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빵셔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이군은 익명으로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신을 괴롭혔던 선배들의 이름과 그동안 당했던 일을 담은 내용의 문자였다.

그러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불려 간 선배들이 자신들의 행각을 부인해 처벌을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선배들이 문자를 보낸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날부터 이군은 행여 자신이 문자를 보낸 사실이 발각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을 했고 선배들의 색출작업도 끝이 났다.

하지만 어김없이 개학날짜는 다가왔고 이군의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선배들의 각종 요구와 폭력이 다시 반복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군은 “부모님에게 말해 경찰에 신고라도 하고 싶지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졸업 때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빵셔틀로 찍힐까봐 벌써부터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인 빵셔틀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치스러운 심부름을 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오래 전부터 학교 안에 존재했던 일종의 ‘위계질서’에 따른 폭행이다.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움직여 나름대로의 계급이 정해지고 낮은 계급의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계급이 높은 학생들에게 복종을 하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계급표’를 만들어 학생들의 부류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가장 높은 1급이 일진이고 가장 낮은 등급의 학생은 천민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폭행사건이 터져 물의를 일으켰다. 방학 동안 돈을 상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학생들이 동급생을 집단폭행한 것.

개학 첫날부터 폭행
돈상납 거부가 이유

사건이 일어난 곳은 대전의 한 중학교다. 이 학교에 다니는 1학년 김모(15)군은 개학 첫날 일진회라 불리는 동급생들에게 불려갔다. 이들이 김군을 부른 이유는 방학 동안 상납해야할 돈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 다음에 이어진 것은 폭행이었다. 6~7명의 동급생들은 김군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이 폭행으로 김군은 이가 부러지고 코뼈가 부어오르는 중상을 입었다. 폭행이 일어난 곳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버젓이 다니는 교실과 복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횡포는 공공연하게 이뤄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교내에 상납 고리는 조직적으로 연결돼 일진회의 요구가 있을 경우 학년별로 다달이 일정금액을 납부하도록 시켜온 것. 학교 측에서도 이미 폭력모임이 존재하고 있고 은밀한 상납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서 김군은 “가해 학생들이 방학 중에도 연락을 해 5000원에서 많게는 2만원까지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는데 주지 않았다”며 “방학 이전에도 상납 요구를 받았었고 때로는 돈을 준 적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같은 학교 친구에게 맞아 숨진 중학생의 사건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구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1시쯤 경북 구미시의 한 집에서 A(14)군이 B(14)군 등 3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A군을 때린 이유는 A군이 자신들이 폭행을 한 사실을 학원 선생님에게 알려 꾸중을 당했다는 것. 이에 화가 난 B군 등은 A군을 불러 주먹과 발로 한 시간가량 마구 때렸다. 그 뒤 B군 등은 119에 전화를 걸어 “친구가 넘어졌는데 의식이 없다”고 거짓신고를 했다. 이에 A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최근에는 ‘여중생 졸업식 동영상’이란 영상이 떠돌아 학교폭력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말 그대로 중학교 졸업식 후 뒤풀이 장면을 담은 이 동영상에는 한 여학생을 상대로 한 잔혹한 폭행이 담겨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스무 명 정도의 남녀중학생들은 한 여학생을 가운데 놓고 폭행을 가했다. 교복을 억지로 벗기고 케첩을 뿌리는 등의 수치스런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폭행을 당하는 여학생과는 달리 폭행을 가하는 학생들은 환호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더욱 충격을 줬다.

결국 교복이 벗긴 채 몸을 가리고 어디론가 도망치듯 뛰어가는 여학생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담긴 이 동영상은 현재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날로 잔혹해지는 학교 폭력의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학생들은 경찰 조사에서 그날 벌어진 일은 학교 전통으로 매년 졸업식마다 반복되는 일일 뿐이라고 태연하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여학생도 재미삼아 한 일일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학교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앵벌이시켜 돈 뜯는 10대
서슴없이 저지른 성폭행

뿐만 아니다. 지난 5일에는 또래 여학생을 1년 동안 앵벌이를 시켜 돈을 뜯고 감금과 폭행, 집단 성폭행까지 일삼은 10대들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김모(17)군 등은 지난해 1월부터 B(16)양 등 또래 청소년 2명에게 앵벌이를 시켰다. 이들 여학생이 번 돈 100만원은 고스란히 김군 등의 몫이었다.

이들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한 B양이 도망쳐 연락을 끊자 B양의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파손하고 B양의 휴대전화에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게다가 김군 등은 지난 2일 오후 9시쯤 집에서 나오던 B양을 납치해 한 아파트로 데려간 뒤 17시간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B양은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시도하다 골절 등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한 상태다.

이처럼 지금의 학교폭력은 예전의 학교폭력과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잔혹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학생들 자신이 친구들과 자신을 서열화하는데 있다.

한 청소년 전문가는 “최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상납과 폭행은 철저히 학생들이 자신을 계급화한데서 비롯되는데 계급이 높은 학생들은 자신보다 낮은 학생들 위에서 마음대로 군림하고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며 “이는 폭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괴롭힘을 당한 학생들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학생들을 상대로 더욱 잔혹한 폭행을 가하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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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