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서열화가 부른 ‘학교 잔혹사’


교내 폭력이 날로 흉포화되고 있다. 교실 안에서 계급을 정해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고자질을 했다는 이유로 때려 숨지게 하거나 앵벌이를 시키고 집단성폭행을 하는 등 강력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위계질서를 근간으로 벌어진다. 자신보다 서열이 아래에 있는 친구에게 가하는 폭력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학교폭력을 조장하고 있는 것. 상납에서 폭행, 성폭행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학교폭력의 현주소다.

학생들 사이 등급 서열화로 학교폭력 날로 흉포화
‘일진’ 학생들 다른 학생 ‘빵셔틀’로 정해 괴롭혀


새 학기에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이모(15)군은 개학을 하고 다시 학교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방학동안 잠잠하던 학교 친구들과 선배들의 협박과 폭행이 다시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군이 지금처럼 학교에 가는 것을 겁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였다. 키가 작고 왜소한 이군은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에게 소위 말하는 ‘빵셔틀’로 낙점됐다. 빵셔틀은 교내에서 ‘일진’으로 통하는 학생들에게 잔심부름을 해주는 학생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온갖 잔심부름 ‘빵셔틀’
거부하면 폭행 이어져

그날부터 이군은 ‘잘 나가는’ 선배들과 그 선배들에 붙어 기생하는 반 친구들의 잔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군이 주로 한 심부름은 간식거리를 사오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동안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뛰어가 음식을 사오거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오는 등 주로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심부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엔 담배심부름이 시작됐다. 또래보다 더 앳돼 보이는 이군에게 담배를 파는 곳은 드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간 폭력이 날아왔다. 하는 수 없이 이군은 방과 후면 사복으로 갈아입고 인근 상점들을 돌며 담배를 사 모았다.

그때부터 이군에게 학교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선배들의 눈을 피해보려 해도 이들은 어디서든 나타나 이군을 괴롭혔다. 심지어 선생님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괴롭힘은 이어졌다. 점심시간 급식실이 그중 하나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받아와야 하지만 선배들은 가만히 앉아 이군에게 식판에 음식을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밥을 먹은 뒤 뒤처리를 하는 것도 이군의 몫이었다. 자신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는 궂은일도 아무렇지 않게 이군에게 시켰던 것이다.

이군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돈 상납이었다. 선배들은 이군과 같은 ‘빵셔틀’ 몇 명을 모아놓고 일주일에 20만원을 상납할 것을 요구했다. 한 달 용돈의 몇 배가 넘는 돈을 구하는 것은 이씨나 다른 친구들에게 무리였고 할당량을 상납하지 못할 때마다 선배들의 폭행은 더해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만약 얼굴에 상처가 나 맞은 흔적이 남으면 선배들은 ‘누가 물으면 가로등에 부딪혔다고 해라’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조언까지 해주곤 했다고. 이는 곧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이군은 계속되는 폭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참다간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빵셔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이군은 익명으로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신을 괴롭혔던 선배들의 이름과 그동안 당했던 일을 담은 내용의 문자였다.

그러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불려 간 선배들이 자신들의 행각을 부인해 처벌을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선배들이 문자를 보낸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날부터 이군은 행여 자신이 문자를 보낸 사실이 발각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학을 했고 선배들의 색출작업도 끝이 났다.

하지만 어김없이 개학날짜는 다가왔고 이군의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선배들의 각종 요구와 폭력이 다시 반복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군은 “부모님에게 말해 경찰에 신고라도 하고 싶지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졸업 때까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빵셔틀로 찍힐까봐 벌써부터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인 빵셔틀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치스러운 심부름을 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오래 전부터 학교 안에 존재했던 일종의 ‘위계질서’에 따른 폭행이다.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움직여 나름대로의 계급이 정해지고 낮은 계급의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계급이 높은 학생들에게 복종을 하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계급표’를 만들어 학생들의 부류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가장 높은 1급이 일진이고 가장 낮은 등급의 학생은 천민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폭행사건이 터져 물의를 일으켰다. 방학 동안 돈을 상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학생들이 동급생을 집단폭행한 것.

개학 첫날부터 폭행
돈상납 거부가 이유

사건이 일어난 곳은 대전의 한 중학교다. 이 학교에 다니는 1학년 김모(15)군은 개학 첫날 일진회라 불리는 동급생들에게 불려갔다. 이들이 김군을 부른 이유는 방학 동안 상납해야할 돈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 다음에 이어진 것은 폭행이었다. 6~7명의 동급생들은 김군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이 폭행으로 김군은 이가 부러지고 코뼈가 부어오르는 중상을 입었다. 폭행이 일어난 곳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버젓이 다니는 교실과 복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횡포는 공공연하게 이뤄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교내에 상납 고리는 조직적으로 연결돼 일진회의 요구가 있을 경우 학년별로 다달이 일정금액을 납부하도록 시켜온 것. 학교 측에서도 이미 폭력모임이 존재하고 있고 은밀한 상납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서 김군은 “가해 학생들이 방학 중에도 연락을 해 5000원에서 많게는 2만원까지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는데 주지 않았다”며 “방학 이전에도 상납 요구를 받았었고 때로는 돈을 준 적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같은 학교 친구에게 맞아 숨진 중학생의 사건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구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1시쯤 경북 구미시의 한 집에서 A(14)군이 B(14)군 등 3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A군을 때린 이유는 A군이 자신들이 폭행을 한 사실을 학원 선생님에게 알려 꾸중을 당했다는 것. 이에 화가 난 B군 등은 A군을 불러 주먹과 발로 한 시간가량 마구 때렸다. 그 뒤 B군 등은 119에 전화를 걸어 “친구가 넘어졌는데 의식이 없다”고 거짓신고를 했다. 이에 A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최근에는 ‘여중생 졸업식 동영상’이란 영상이 떠돌아 학교폭력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말 그대로 중학교 졸업식 후 뒤풀이 장면을 담은 이 동영상에는 한 여학생을 상대로 한 잔혹한 폭행이 담겨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스무 명 정도의 남녀중학생들은 한 여학생을 가운데 놓고 폭행을 가했다. 교복을 억지로 벗기고 케첩을 뿌리는 등의 수치스런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폭행을 당하는 여학생과는 달리 폭행을 가하는 학생들은 환호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더욱 충격을 줬다.

결국 교복이 벗긴 채 몸을 가리고 어디론가 도망치듯 뛰어가는 여학생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담긴 이 동영상은 현재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날로 잔혹해지는 학교 폭력의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학생들은 경찰 조사에서 그날 벌어진 일은 학교 전통으로 매년 졸업식마다 반복되는 일일 뿐이라고 태연하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을 당한 여학생도 재미삼아 한 일일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학교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앵벌이시켜 돈 뜯는 10대
서슴없이 저지른 성폭행

뿐만 아니다. 지난 5일에는 또래 여학생을 1년 동안 앵벌이를 시켜 돈을 뜯고 감금과 폭행, 집단 성폭행까지 일삼은 10대들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김모(17)군 등은 지난해 1월부터 B(16)양 등 또래 청소년 2명에게 앵벌이를 시켰다. 이들 여학생이 번 돈 100만원은 고스란히 김군 등의 몫이었다.

이들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한 B양이 도망쳐 연락을 끊자 B양의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파손하고 B양의 휴대전화에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게다가 김군 등은 지난 2일 오후 9시쯤 집에서 나오던 B양을 납치해 한 아파트로 데려간 뒤 17시간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B양은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시도하다 골절 등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한 상태다.

이처럼 지금의 학교폭력은 예전의 학교폭력과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잔혹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학생들 자신이 친구들과 자신을 서열화하는데 있다.

한 청소년 전문가는 “최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상납과 폭행은 철저히 학생들이 자신을 계급화한데서 비롯되는데 계급이 높은 학생들은 자신보다 낮은 학생들 위에서 마음대로 군림하고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며 “이는 폭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괴롭힘을 당한 학생들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학생들을 상대로 더욱 잔혹한 폭행을 가하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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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