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사기용품 하나면 ‘백전백승’

도박꾼 울리는 ‘타짜’의 세계

사기도박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타짜들은 판돈이 걸린 곳이라면 고스톱판이건 바둑판이건 개의치 않고 나타난다. 특수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어디서든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사기도박꾼에게 잘못 걸린 도박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큰돈을 잃기 마련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카메라와 소형무전기 등을 설치해 놓고 도박에 가담해 사기행각을 눈치조차 차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인 탓이다. 전직 사기도박꾼을 만나 사기도박의 세계를 들어봤다.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사기용품 구할 수 있어 사기꾼 활개
특수 콘텍트렌즈, CCTV 등 첨단용품 갖추고 도박꾼 농락

“타짜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대로 된 장비만 구하면 얼마든지 도박꾼들의 돈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도박판을 돌며 사기행각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는 A씨의 말이다. 사기도박행각이 들통 나 목숨의 위협까지 받은 후로 손을 씻었다는 A씨. 그는 좋은 사기용품만 구비하고 있다면 손놀림이 어설픈 초짜라도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A씨가 사기도박계에 발을 들였을 때 사용한 용품은 ‘표시목 카드’라 불리는 카드였다. 카드 뒷면에 타짜들만 읽을 수 있는 특별한 표시를 작게 인쇄해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도록 한 용품이다. 처음 카드가 개발됐을 당시만 해도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A씨.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도박꾼들에게 카드의 정체가 알려졌고 ‘선수’들을 속일 수는 없게 됐다.

카드 한 장이면 OK
진화하는 사기용품


그 후 A씨의 손에 들어온 것은 일명 ‘렌즈카드’. 뒷면에 특수 형광안료로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물론 이 표시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사람만이 카드 뒷면에 인쇄된 표시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진 용품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A씨가 구한 용품은 ‘카메라 카드’다. 적외선 카메라 필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수염료로 카드 뒷면에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이 카드를 쓰려면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박장에 미리 들어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CCTV를 설치해야 하는 것. 이 CCTV를 통해 상대방의 카드 뒷면에 표시된 무늬와 숫자를 확인한 뒤 무전기를 이용해 같은 팀원에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첨단 용품으로 무장한 A씨에게 패배는 없었다. 천하의 도박 고수들도 A씨의 눈앞에서는 패를 다 펼쳐놓고 도박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백전백승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A씨가 타짜의 세계에서 발을 뺀 것은 함께 도박을 치던 사람들 사이에서 사기도박꾼이란 사실이 알려진 후였다. 아무리 첨단용품을 갖추고 기다려 봐도 도박을 함께 할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A씨가 사기도박에 발을 빼게 된 것은 도박꾼들의 협박 때문이었다. A씨에게 돈을 잃은 도박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며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도박계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들통나지만 않았다면 아직도 사기도박으로 손쉽게 돈을 벌고 있었을 것”이라며 “차라리 사기를 친 사실이 들켜 뒤늦게라도 발을 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모자에 몰래카메라 부착
아무도 모르게 사기행각

A씨는 무엇보다 사기도박용품들이 너무 쉽게 유통되고 있는 실태가 사기도박꾼들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사실 사기도박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용품을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라며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첨단 용품들을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싼 편이라 사기도박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특정 단어를 치면 손쉽게 사기도박용품 판매자의 연락처를 알 수 있다. 판매자들은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 광고글을 올리고 구매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든장비당일배송/렌즈카드목카드외.사기도박장비.(카메라장비)/특수카드감증전문/싸구려 중국산 속아서 구매하지 마시고 테스트 후 구매하세요’등의 글과 연락처를 올려놓고 버젓이 사기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사기도박꾼들도 판을 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속칭 바둑이 도박판을 벌여 사기도박을 한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이들 사기도박단이 사용한 것은 ‘렌즈 카드’였다. 경남 산청경찰서에 따르면 5명으로 이뤄진 사기도박단은 특수렌즈를 끼고 직접 도박에 참여하는 선수, 자금을 빌려주는 전주, 모집책, 바람잡이 등으로 철저히 역할을 나눠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처음 몇 판을 칠 때는 보통 카드로 도박을 하다 피해자들에게 돈을 잃어줬다. 그 후 피해자들의 시선을 돌린 뒤 미리 준비한 렌즈 카드로 바꿔치기를 한 후에 사기도박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들이 피해자 2명으로부터 5회에 걸쳐 뜯은 돈은 3800만원이었다.

그런가하면 최신 사기도박용품을 사용해 사기도박으로 돈을 뜯은 조폭들도 덜미를 잡혔다.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7일 카드인식용 열 감지기 장비 등을 이용해 사기 도박을 벌여 수천만원을 가로챈 조직폭력배 B(30)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C(32)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 일당은 지난해 12월2일부터 일주일간 남원시의 한 모텔에 사기도박장을 차린 뒤 2명의 도박꾼을 유인해 4000여 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일당은 도박을 시작하기 전 모텔 천장에 미리 CCTV와 도박에 이용된 특수 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열 감지기 탁자를 설치했다. 그 후 옆방에 대기 중이던 일당으로부터 카드 숫자 등을 끼고 있던 이어폰을 통해 전달받는 방식을 사용했다.

옷가지에 몰래카메라를 부착하고 도박장에 나타나 사기행각을 벌인 기막힌 사기꾼들도 등장했다.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박모(41)씨 등 일당은 사기도박을 계획하고 도박꾼들을 모았다. 그리고 충남 아산시 권곡동의 한 아파트를 도박장으로 꾸몄다. 그리고 도박을 하기로 약속한 날 박씨 등은 모두 모자 하나씩을 썼다. 몰래카메라를 달아야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기용품으로 준비해간 것은 화투장 뒷면 무늬를 형광물질로 표시한 이른바 ‘목화투’였다. 이들은 도박을 하다 다른 사람의 패를 몰래카메라를 통해 도박장 밖에 대기하던 일당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를 본 대기자들은 무전기를 통해 도박에 가담하던 이들에게 무전기를 통해 화투패의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해서 이들 일당이 7명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5000만원으로 밝혀졌다.

그런가하면 사기도박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뜯은 간 큰 도박단도 덜미를 잡혔다. 지난달 27일 대전 중부경찰서는 몰래카메라로 상대방의 패를 알아낸 뒤 무전기로 송·수신하는 방법으로 사기 도박을 벌어온 김모(31)씨 등 6명에 대해 상습도박 및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도박에 가담한 3명에 대해서도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정모(52)씨 등 도박장을 빌려준 이들을 도박장 개장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판돈 1100만여 원과 무전기, 카메라 등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달 26일 오전 2시30분쯤 대전시 중구 선화동 한 모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바둑이’라는 카드 도박판을 벌여 2000만여 원을 챙기는 등 이달 초부터 5차례에 걸쳐 판돈 1억130만여 원을 뜯어낸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대전 중구 선화동 한 모텔에 도박판을 개설한 뒤 형광등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아래층에서 모니터로 상대방의 패를 읽어 같은 편에 무전기로 전송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 6명의 일당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로 친구 중 한 명이 도박으로 돈을 잃자 몰래카메라 설치업자에 딴 돈의 3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범행을 모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도박은 카드나 고스톱 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바둑판에서도 기가 막힌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8일 몰래카메라와 특수 무선 이어폰 등을 동원해 사기바둑판을 벌인 장모(50)씨와 정모(43)씨 등 5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장씨 등은 지난해 11월 부산 국제시장 부근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노모(53)씨 등을 상대로 한 판에 50만~100만원을 걸고 내기바둑을 벌여 32차례에 걸쳐 22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 일당은 사기바둑판에 끌어들일 사람들을 물색하던 중 비슷한 실력의 노씨를 알게 됐다. 그 후 내기바둑을 두며 노씨와 친분을 쌓아가던 장씨 일당은 판돈이 큰 내기바둑을 제안했다. 장씨 일당에게 털끝만큼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노씨는 내기제안을 수락했다. 실력도 비슷해 겨뤄볼 만한 상대란 점도 노씨를 유혹했다.

바둑판에도 사기꾼 등장
눈물흘리는 도박꾼

하지만 장씨 일당의 본격적인 사기행각은 이때부터였다. 이들은 내기바둑을 약속한 당일 사무실 천장 형광등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위층에는 카메라를 통해 대국 장면을 시켜볼 수 있는 대기실을 마련했다. 대기실에는 아마추어 1급 수준의 김모(52)씨 등 고수 2명이 대국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씨의 귓속에 숨겨둔 초소형 무선 이어폰을 통해 훈수를 뒀다. 결국 노씨는 번번이 내기에서 질 수밖에 없었고 큰 돈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각은 금세 들통났다. 정씨가 훈수를 받을 때마다 머뭇거리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노씨가 이들의 사기행각을 신고해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사기도박용품의 진화와 함께 억울하게 돈을 잃는 피해자들은 증가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기도박판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최신 장비의 각축장이나 다름없다”며 “도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숨겨진 피해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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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