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사기용품 하나면 ‘백전백승’

도박꾼 울리는 ‘타짜’의 세계

사기도박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타짜들은 판돈이 걸린 곳이라면 고스톱판이건 바둑판이건 개의치 않고 나타난다. 특수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어디서든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사기도박꾼에게 잘못 걸린 도박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큰돈을 잃기 마련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카메라와 소형무전기 등을 설치해 놓고 도박에 가담해 사기행각을 눈치조차 차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인 탓이다. 전직 사기도박꾼을 만나 사기도박의 세계를 들어봤다.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사기용품 구할 수 있어 사기꾼 활개
특수 콘텍트렌즈, CCTV 등 첨단용품 갖추고 도박꾼 농락

“타짜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대로 된 장비만 구하면 얼마든지 도박꾼들의 돈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도박판을 돌며 사기행각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는 A씨의 말이다. 사기도박행각이 들통 나 목숨의 위협까지 받은 후로 손을 씻었다는 A씨. 그는 좋은 사기용품만 구비하고 있다면 손놀림이 어설픈 초짜라도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A씨가 사기도박계에 발을 들였을 때 사용한 용품은 ‘표시목 카드’라 불리는 카드였다. 카드 뒷면에 타짜들만 읽을 수 있는 특별한 표시를 작게 인쇄해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도록 한 용품이다. 처음 카드가 개발됐을 당시만 해도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A씨.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도박꾼들에게 카드의 정체가 알려졌고 ‘선수’들을 속일 수는 없게 됐다.

카드 한 장이면 OK
진화하는 사기용품

그 후 A씨의 손에 들어온 것은 일명 ‘렌즈카드’. 뒷면에 특수 형광안료로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물론 이 표시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특정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사람만이 카드 뒷면에 인쇄된 표시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진 용품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A씨가 구한 용품은 ‘카메라 카드’다. 적외선 카메라 필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수염료로 카드 뒷면에 무늬와 숫자를 표시해 놓은 카드다. 이 카드를 쓰려면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박장에 미리 들어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CCTV를 설치해야 하는 것. 이 CCTV를 통해 상대방의 카드 뒷면에 표시된 무늬와 숫자를 확인한 뒤 무전기를 이용해 같은 팀원에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첨단 용품으로 무장한 A씨에게 패배는 없었다. 천하의 도박 고수들도 A씨의 눈앞에서는 패를 다 펼쳐놓고 도박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백전백승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A씨가 타짜의 세계에서 발을 뺀 것은 함께 도박을 치던 사람들 사이에서 사기도박꾼이란 사실이 알려진 후였다. 아무리 첨단용품을 갖추고 기다려 봐도 도박을 함께 할 상대가 없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A씨가 사기도박에 발을 빼게 된 것은 도박꾼들의 협박 때문이었다. A씨에게 돈을 잃은 도박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며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도박계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들통나지만 않았다면 아직도 사기도박으로 손쉽게 돈을 벌고 있었을 것”이라며 “차라리 사기를 친 사실이 들켜 뒤늦게라도 발을 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모자에 몰래카메라 부착
아무도 모르게 사기행각

A씨는 무엇보다 사기도박용품들이 너무 쉽게 유통되고 있는 실태가 사기도박꾼들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사실 사기도박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용품을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라며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첨단 용품들을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싼 편이라 사기도박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특정 단어를 치면 손쉽게 사기도박용품 판매자의 연락처를 알 수 있다. 판매자들은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 광고글을 올리고 구매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든장비당일배송/렌즈카드목카드외.사기도박장비.(카메라장비)/특수카드감증전문/싸구려 중국산 속아서 구매하지 마시고 테스트 후 구매하세요’등의 글과 연락처를 올려놓고 버젓이 사기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사기도박꾼들도 판을 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속칭 바둑이 도박판을 벌여 사기도박을 한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이들 사기도박단이 사용한 것은 ‘렌즈 카드’였다. 경남 산청경찰서에 따르면 5명으로 이뤄진 사기도박단은 특수렌즈를 끼고 직접 도박에 참여하는 선수, 자금을 빌려주는 전주, 모집책, 바람잡이 등으로 철저히 역할을 나눠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들은 처음 몇 판을 칠 때는 보통 카드로 도박을 하다 피해자들에게 돈을 잃어줬다. 그 후 피해자들의 시선을 돌린 뒤 미리 준비한 렌즈 카드로 바꿔치기를 한 후에 사기도박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들이 피해자 2명으로부터 5회에 걸쳐 뜯은 돈은 3800만원이었다.

그런가하면 최신 사기도박용품을 사용해 사기도박으로 돈을 뜯은 조폭들도 덜미를 잡혔다.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7일 카드인식용 열 감지기 장비 등을 이용해 사기 도박을 벌여 수천만원을 가로챈 조직폭력배 B(30)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C(32)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 일당은 지난해 12월2일부터 일주일간 남원시의 한 모텔에 사기도박장을 차린 뒤 2명의 도박꾼을 유인해 4000여 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일당은 도박을 시작하기 전 모텔 천장에 미리 CCTV와 도박에 이용된 특수 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열 감지기 탁자를 설치했다. 그 후 옆방에 대기 중이던 일당으로부터 카드 숫자 등을 끼고 있던 이어폰을 통해 전달받는 방식을 사용했다.

옷가지에 몰래카메라를 부착하고 도박장에 나타나 사기행각을 벌인 기막힌 사기꾼들도 등장했다.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박모(41)씨 등 일당은 사기도박을 계획하고 도박꾼들을 모았다. 그리고 충남 아산시 권곡동의 한 아파트를 도박장으로 꾸몄다. 그리고 도박을 하기로 약속한 날 박씨 등은 모두 모자 하나씩을 썼다. 몰래카메라를 달아야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기용품으로 준비해간 것은 화투장 뒷면 무늬를 형광물질로 표시한 이른바 ‘목화투’였다. 이들은 도박을 하다 다른 사람의 패를 몰래카메라를 통해 도박장 밖에 대기하던 일당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를 본 대기자들은 무전기를 통해 도박에 가담하던 이들에게 무전기를 통해 화투패의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해서 이들 일당이 7명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5000만원으로 밝혀졌다.

그런가하면 사기도박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뜯은 간 큰 도박단도 덜미를 잡혔다. 지난달 27일 대전 중부경찰서는 몰래카메라로 상대방의 패를 알아낸 뒤 무전기로 송·수신하는 방법으로 사기 도박을 벌어온 김모(31)씨 등 6명에 대해 상습도박 및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도박에 가담한 3명에 대해서도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정모(52)씨 등 도박장을 빌려준 이들을 도박장 개장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판돈 1100만여 원과 무전기, 카메라 등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달 26일 오전 2시30분쯤 대전시 중구 선화동 한 모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바둑이’라는 카드 도박판을 벌여 2000만여 원을 챙기는 등 이달 초부터 5차례에 걸쳐 판돈 1억130만여 원을 뜯어낸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대전 중구 선화동 한 모텔에 도박판을 개설한 뒤 형광등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아래층에서 모니터로 상대방의 패를 읽어 같은 편에 무전기로 전송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 6명의 일당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로 친구 중 한 명이 도박으로 돈을 잃자 몰래카메라 설치업자에 딴 돈의 3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범행을 모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도박은 카드나 고스톱 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바둑판에서도 기가 막힌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8일 몰래카메라와 특수 무선 이어폰 등을 동원해 사기바둑판을 벌인 장모(50)씨와 정모(43)씨 등 5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장씨 등은 지난해 11월 부산 국제시장 부근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노모(53)씨 등을 상대로 한 판에 50만~100만원을 걸고 내기바둑을 벌여 32차례에 걸쳐 22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 일당은 사기바둑판에 끌어들일 사람들을 물색하던 중 비슷한 실력의 노씨를 알게 됐다. 그 후 내기바둑을 두며 노씨와 친분을 쌓아가던 장씨 일당은 판돈이 큰 내기바둑을 제안했다. 장씨 일당에게 털끝만큼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노씨는 내기제안을 수락했다. 실력도 비슷해 겨뤄볼 만한 상대란 점도 노씨를 유혹했다.

바둑판에도 사기꾼 등장
눈물흘리는 도박꾼

하지만 장씨 일당의 본격적인 사기행각은 이때부터였다. 이들은 내기바둑을 약속한 당일 사무실 천장 형광등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위층에는 카메라를 통해 대국 장면을 시켜볼 수 있는 대기실을 마련했다. 대기실에는 아마추어 1급 수준의 김모(52)씨 등 고수 2명이 대국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씨의 귓속에 숨겨둔 초소형 무선 이어폰을 통해 훈수를 뒀다. 결국 노씨는 번번이 내기에서 질 수밖에 없었고 큰 돈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각은 금세 들통났다. 정씨가 훈수를 받을 때마다 머뭇거리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노씨가 이들의 사기행각을 신고해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사기도박용품의 진화와 함께 억울하게 돈을 잃는 피해자들은 증가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최근 사기도박판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최신 장비의 각축장이나 다름없다”며 “도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숨겨진 피해규모는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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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