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앞둔 대학가 신풍속도<현장>

동거는 OK! 사생활 침해는 NO!


서울 신촌의 한 대학가. 예비 입학생인 강수진(19·여·가명)양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벌써 몇 일째 대학 근처 부동산을 돌며 방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게 방이 구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방은 턱없이 비싸고 형편에 맞는 방은 너무 열악했다.

고심 끝에 강양은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월세라도 아껴볼 요량이다.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려는 목적으로 ‘동거’를 선택한 것. 갈수록 치솟는 등록금에 허리가 휘는 상황이라 생활비라도 아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신입생인 강양을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신주거풍속…룸메이트는 ‘싫어’ 하우스메이트 ‘좋아’
보증금·생활비 줄일 수 있다면 생면부지라도 OK


개강을 앞둔 전국 대학가에 ‘하우스메이트족’이 급증하고 있다. 하우스메이트는 한 집에서 살면서 집세와 생활비를 나눠 부담하는 새로운 주거형태. 전·월세값 폭등으로 이 같은 방법을 선택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생활비도 줄이고
사생활 보장받고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점점 대학가 자취방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상황이라 하우스메이트를 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하우스메이트로 대거 전향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수원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송모(22·여)씨. 지난 2년간 혼자 자취생활을 했던 그녀는 이번 학기부터 하우스메이트로 바꿨다. 생면부지의 타 학교 학생과 동거를 시작한 것.

송씨는 “사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월세와 전기·수도료 등 각종 공과금이 부담돼 힘이 들었다. 결국 하우스메이트를 구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송씨가 하우스메이트를 선택한 목적은 생활비 절감이다. 그녀는 룸메이트와 보증금 500만원은 물론 월세 40만원을 반반씩 내기로 합의했다. 하우스메이트의 또 다른 장점은 사생활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도 사생활은 절대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다. 주방과 욕실 등 시설은 함께 쓰지만 개인의 공간은 존중하자는 것이다. 서울 신촌 원룸에서 3년째 월세를 살고 있는 홍모(24·대학생)씨.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는 홍씨는 최근 여자친구 이모(21·여·대학생)씨와 심하게 다퉜다. 이유는 홍씨가 하우스메이트로 전환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홍씨와 이씨가 같이 동거하게 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홍씨의 자취방 근처에서 하숙생활을 했던 이씨가 교제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동거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곧바로 살림을 합쳤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숱하게 동거커플을 봐 온 그들에게는 동거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던 것.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올 들어 대학가에 전셋집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게다가 이씨는 생활비를 거의 보태지 않아 홍씨로선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이씨에게 하우스메이트 전향을 말했다가 다툰 것이다. 홍씨는 “살던 집이 월세로 바뀌면서 한 달에 50만원을 방값으로 내게 생겼다. 이대로 가다가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할 입장이다. 하는 수 없이 월세를 반씩 낼 수 있는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고 말한 것 뿐 인데 차라리 헤어지자고 하다니 너무 한 게 아닌가라고 억울해 했다. 

비용 절감 유혹에
동거 열풍 ‘그대로’

하지만 하우스메이트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학을 함께 다니는 ‘룸메이트’가 아니라 오로지 주거비라는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공동생활을 택했다가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이 살다보면 사생활 침해 빈도가 높아지고 이는 다툼으로 이어져 각각 자기 갈 길을 선택하고 있는 커플도 늘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가 동거 열풍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기불황으로 생활비와 데이트 비용을 아끼려 동거하려는 대학생들이 방을 구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 한 여자대학교. 학교 앞에는 원룸들이 즐비하다. 이들 원룸 중 한 곳에서 인근 대학에 다니는 남자친구 구모(22)씨와 동거를 시작한 여대생 조모(20)씨. 조씨는 현재 살고 있는 원룸 건물 안에서 동거커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혼자 살 때 옆집에서 함께 사는 남녀가 담소를 나누거나 저녁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남자친구가 생기면 동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아 동거를 시작했다는 조씨. 동거를 하게 되면 생활비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물론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행여나 소문이 나서 혼삿길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지, 원치 않는 임신이 되지는 않을지,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 때 복잡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같은 원룸에 사는 여대생 성모(21)씨. 성씨는 여성의 경우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 갈등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지만 성관계를 할 때마다 행여나 임신이 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기본 월 50만원 수두룩
감당 안되면 보따리 싸

성씨는 “여러 가지 피임을 하고는 있지만 불안감을 떨치기엔 역부족이다”면서 “남자친구는 임신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가끔 억울하다. 동거를 하면 여자만 손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사실 대학생들의 동거에 대한 생각은 관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한국대학신문과 대학생활포털 캠퍼스라이프가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대학생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혼전동거에 대해 10명 중 8명은 특별한 조건이 없어도, 또는 결혼이나 사랑이 전제된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반면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은 18.5%에 불과했다. 또 특별한 조건 없이도 혼전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응답자는 남학생이 16.3%, 여학생이 4.1%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특별한 조건 없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늘고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고시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대학가 신풍속 중 하나다. 고시원이 대학생들의 주거 형태로 깊게 파고들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비싼 보증금에 부담을 느끼는 생계형 대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서울 신촌 한 대학에 다니는 주모(20·여)씨. 주씨는 얼마 전 보증금 2000만원에 월 30만원을 내던 원룸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옮겼다.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안전, 화재, 소음 등이 걱정됐지만 고시원을 선택한 것.

주씨는 “60만원대 럭셔리 고시원도 많지만 보증금과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아 월 25만원의 고시원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전셋집을 구했는데 기존 전세마저 월세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 매물이 없었다. 전세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월세부터 뛰었다. 내 형편에 갈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고 푸념했다. 실제 대학가마다 전세전쟁이 한창이다. 대학생들이 빈방을 찾아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도 새로운 광경이다.

생계형 동거 ‘확산기로’ 동거 열풍 추세는 여전해
고급원룸·민자기숙사 진출에 하숙·자취방 한숨


서울 대학가는 특히 전셋집을 구경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은행 금리가 낮아지면서 기존 전세마다 월세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원룸의 경우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 40만~70만원을 웃돈다. 운이 좋아 전세 원룸을 발견한다고 해도 5000만~7000만원을 호가해 대학생으로서 계약하기엔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싼 월세 원룸을 방문해 보증금을 올려주겠다고 해도 집주인들은 요지부동이다.

대학 졸업반인 이모(25)씨는 “요즘 기숙사는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낸다. 민자로 지어졌다는 이유로 1인 기준 월 40만원에서 50만원을 웃돈다. 민자 기숙사들이 대학가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다”고 전했다. 서울 성북구 소재 한 대학에 다니는 차모(20·여)씨는 “요즘 대학가에는 고급 원룸촌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원룸계약이 끝나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보증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숙집도 알아봤지만 고급 원룸들은 기본 월 50만원 정도다.

물론 고급 원룸은 세탁기, 냉장고, 화장실, 에어컨 등이 다 갖춰져 있지만 월세 부담으로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차씨는 “사실 대학가 주변엔  싼 방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닌가. 친구나 선배들도 사는 집에서 나와 새로운 방들을 알아보고 있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월 30만원의 월세를 살기도 힘들다. 때문에 학교 주변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이 많다. 나도 보증금과 월세가 싼 곳을 알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예전보다 원룸이나 고시원, 하숙집 등이 몰려 있는 지역에 방범용 CCTV가 설치되고 순찰차가 늘어난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이화여대·연세대·서강대 등이 몰려 있는 마포구, 고려대·경희대·성신여대 등이 있는 성북구와 동대문구, 중앙대·숭실대 등이 있는 동작구 등지에는 순찰이 강화됐다. 이 같은 현상은 원룸이나 고시촌에 살고 있는 여대생들을 목표로 ‘성폭행’이나 ‘강·절도’ 강력범죄가 잇따른데 있다. 이에 따라 불안감들이 증폭되자 경찰이 우범지역에 대해 집중순찰을 강화한 것.

강력범죄 잇따르자
경찰 순찰 강화도


실제 지난해 12월15일 충남 당진에서는 새벽시간대 여성들이 거주하는 원룸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 금품을 강탈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이 남성은 주택가 원룸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하는 수법으로 여성들을 위협, 휴대전화로 알몸 동영상을 촬영하고 성폭행하는 등 총 9회에 걸쳐 12명의 여성으로부터 890만여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았다.

성신여대 인근 한 원룸에 살고 있는 한모(20·여대생)씨는 “밤이 되면 이 지역은 5분에 한 번꼴로 순찰차가 지나다닌다. 때문에 술을 마시고 늦게 다녀도 혼자 집에 있어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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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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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