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특집> 나가요 언니들 수상한 원정길

돈만 주면…‘캠핑 콜걸’을 아십니까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바캉스 시즌이 돌아왔다. 들뜬 마음에 저마다 휴가를 보내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나고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요즘 들어선 친구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휴가철 풍경이 있다. 바로 휴가지에서의 성관계다. 누군가는 낯선 이들과 뜨거운 하룻밤을 꿈꾸고 누군가는 잠자리를 미끼로 돈을 번다. ‘나가요 언니’부터 ‘철없는 10대’까지 피서지에서의 성매매는 오늘도 계속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준비 중인 30대 직장인 A씨는 한 여행카페에 글을 올렸다. 자신이 돌아볼 여행지의 정보도 얻고 여행기간 중 머물 게스트하우스도 공동으로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A씨 앞으로 한 통의 온라인 쪽지가 도착했다. 쪽지 안에는 “자신도 그즈음 친구와 해외여행을 준비 중인데 처음이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처음이라더니
능숙한 그녀들

A씨는 문득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성의껏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상대로부터 회신이 왔다. A씨의 여행 동선과 일정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문단 마지막에는 “방해가 안 된다면 여행 기간 중 A씨를 따라다니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동반 여행을 하자’는 뜻밖의 제안에 A씨는 당황했다. 낯선 여자와 단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 없는 A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명의 여자와 휴가를 보낼 생각을 하니 혼자인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서로 일정을 맞춰보자며 상대에게 전화번호를 남겼다. 자동 등록된 카카오톡 프로필로 본 여자의 외모는 A씨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말로만 듣던 휴양지에서의 로맨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A씨는 예정에도 없던 친구를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여자 일행과 짝을 맞춰 여행을 가려 한 것이다.

몸이 달은 A씨는 항공편 예약을 핑계로 “만나서 일정을 잡고 서로 얘기도 나누자”며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갑자기 친구에게 사정이 생겨 친구는 여행을 못 가게 됐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A씨는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딱 한달만 장사 하러”짐싸는 접대부들
캠핑장까지…휴양지 곳곳에 성매매 유혹

그러나 좌절은 잠시였다. 상대 여성은 자기 혼자서라도 여행을 같이 가겠다며 A씨를 꾀었다. 앞선 상황보다 더 좋은 기회가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낌새가 이상했다. 이 여자는 스스로를 20대 초반의 여대생이라고 소개했다. 다 큰 처녀가 낯선 남자와 단둘이 가는 여행을 재촉하는 상황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곧 비밀이 밝혀졌다. 목적은 돈이었다. 이 여성은 여행 경비만 대주면 여행기간 내내 함께 다니는 것은 물론 30만원을 지급하면 잠자리도 해주겠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애인대행 알바였던 것이다. A씨는 헛물을 켰던 자신을 반성하며 ‘알바’의 요구를 거절했다.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VIP 고객과
둘만의 허니문

A씨의 사례처럼 20∼30대 남성에게 여행 파트너가 돼준다며 접근해 성매매를 제안하는 여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휴가 시즌을 겨냥해 애인을 구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의 경우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남자가 먼저 사진과 연락처를 올리면 여자가 조건을 보고 연락을 취해 ‘단기 만남’이 성사된다. 때로는 여자가 직접 자신의 프로필을 올리고 거래를 원하는 남자와 ‘몸값’을 흥정하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신나는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여행의 진짜 목적은 성행위 유무에 맞춰진다.

겉으로는 스킨십 금지를 약속한 남자도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행 중 마음이 맞으면 성관계까지 간다는 묵시적인 합의가 형성돼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처음부터 “화끈하게 놀고 오자”며 대가를 요구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성관계에 응해주는 대신 여행 기념 등을 명목으로 선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돈을 목적으로 한 성매매인 셈인데 이 같은 행위가 휴가지의 낭만으로 둔갑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커플은 열이면 아홉, 다음날 연락을 끊고 남남이 된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관계를 아예 ‘스폰 관계’로 정착시킨 사례도 있다. 놀러갔다가 눈이 맞아 관계를 맺고 장기적으로 만나는 케이스다.

서울 청담동 한 단란주점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가희(가명·29)씨는 오는 8월 초 부산 해운대로 휴가를 갈 계획이다. 가희씨의 고향은 부산. 부산 사람들은 절대 가지 않는다는 해운대로 가희씨가 휴가를 떠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가희씨가 일하고 있는 주점의 VIP 고객인 B씨는 아내와 이혼 후 가희씨를 자주 찾았다. 평소 B씨와 오빠·동생 하며 친분을 쌓았던 가희씨는 함께 휴가를 다녀오자는 B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휴가기간 동안 껄끄러운 손님들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휴가비는 모두 B씨가 대주며, 별도의 용돈까지 약속했기 때문이다. 타지 생활로 한 푼이 아쉬운 가희씨 입장에서는 돈도 벌고 고향도 다녀오는 일석이조의 휴가였다.

가희씨는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만큼) 여행기간 동안 오빠(B씨)를 내 남자친구처럼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주점에서도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가희씨는 “동료 언니들도 하루나 이틀은 손님들과 휴가를 떠난다”고 설명했다. 가희씨처럼 나이를 초월한 일명 ‘점오’와 ‘스폰’의 대담한 러브스토리는 매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희씨와는 반대로 지방의 한 고급 유흥주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혜란(가명·34)씨는 휴가철을 맞아 상경을 준비 중이다. 혜란씨는 본인의 오랜 스폰이 출장을 핑계로 서울을 가는데 자신도 따라가 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내 한 유명 호텔이 혜란씨가 머물 휴가지로 선택됐다. 혜란씨는 스폰과 함께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할 계획이다.

해외여행 미끼로 ‘애인대행 알바’성행
스폰 끼고 서울서 부산까지 원나잇 여행

혜란씨는 “보통 7월 말에서 8월 말까지 업계의 비수기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30∼50대 남성들이 타깃이다 보니 그들이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면 상대적으로 우리 쪽 매출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혜란씨는 “무엇보다 손님들을 응대할 젊은 아가씨가 빠지는데 우리 가게에 있던 20대 초반의 대학생은 학기 중 돈을 벌고 방학이 되면 국내외 여행이나 원정 쇼핑에 돈을 썼다”고 설명했다.

찾아가는 성매매
찾아오는 성매매

이처럼 유흥주점은 휴가철이 되면 손님들의 발걸음이 주춤하다. 하지만 반대로 휴가철만 되면 대목을 맞는 장사가 있다. 바로 피서지에 횡행하는 출장 성매매다. 대형 해수욕장 인근에서 벌어지는 불법 성매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차된 차량 유리 틈으로 출장 안마 서비스를 안내하는 명함이 가득하다. 식당가가 밀집된 거리 곳곳에는 성매매를 암시하는 전단지가 빽빽하다. 예전부터 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들을 비롯해 원정에 나선 포주들까지 일대는 밤만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성매매 장소를 제공하는 숙박업체는 넘치는 수요에 함박웃음이다.

최근에는 캠핑 붐이 일면서 몇몇 캠핑장을 중심으로 출장 안마를 해주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캠핑이 동반된 일부 락 페스티벌에서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어린 아이도 이용하는 캠핑장에서 성매매가 있었다는 사실은 꽤 놀랍다.
 

유동인구가 많은 계곡이나 해변에서는 간이 텐트를 설치해 놓고 즉석 성매매가 이뤄진다. 기존 성매매는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한 사전 예약이 필수지만 즉석 성매매는 이 같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윤락 여성들은 휴가철에 앞서 미리 피서지 인근의 방을 장기 임대해 놓고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적이 제기된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한 우리 휴가 문화에서 전문 윤락여성을 찾는 남성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성욕의 감퇴와 관련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 백사장만 나가봐도 남녀의 밀도 있는 스킨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인은 성욕이 아닌 10대들을 비롯한 비직업 여성들의 성매매 시장 유입이다.

시내 룸살롱은 비수기
지방 휴가지는 성수기

불행하게도 10대 청소년들은 이미 고유한 성매매 시장을 형성했다. 주로 악덕 포주에 이끌려 출장 안마를 하는데 차 안에서건 모텔에서건 성행위를 가리지 않는다. 일부 남성들의 퇴폐적인 성취향은 꾸준한 공급과 맞물려 10대 성매매 시장을 불황 없는 호황으로 이끌고 있다.

방학을 맞은 일반 여학생 중에서도 성매매로 돈을 버는 일이 심심치 않게 보고되고 있다. 아저씨들의 호주머니를 노린 원조교제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은 접촉면이 더 넓다. 이미 과거부터 해수욕장에 놀러온 10대들은 20∼30대 남성들이 선호하는 ‘바캉스 파트너’ 1순위였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한층 대담해진 성의식과 성찰 없는 물질만능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투영돼 많은 여학생이 성인 남성에게 원조교제를 제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휴가철 맞아
한몫 챙긴다

10대뿐 아니라 일부 여대생도 이 같은 흐름에 편입되고 있다. 애인대행 알바를 제안 받거나 고민해 본 여대생은 생각보다 많다. 애인대행 알바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커피숍에서 한 달 꼬박 일해야 벌수 있는 돈을 3일 동안 남자와 여행 다니고 벌 수 있다면 유인 동기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10대와 달리 20대의 휴가철 대행알바는 설혹 성매매가 실재했다 하더라도 당국의 적발이 쉽지 않고 사법처리가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과거 애인대행으로 시작해 단란주점에 발을 들인 윤희(가명·25)씨는 “손님 중 지금 보수의 2배를 쳐줄 테니 내일 여행을 가자고 한 사람이 꽤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윤희씨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원칙적으로 성매매에 응하지 않겠지만 제시된 액수가 크다면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윤희씨의 지인은 지난해 바닷가에서 스폰을 만나 서울 강남에 고급 오피스텔을 얻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바닷가는 인생역전을 상징하는 로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름철 몰카 주의보
화장실서 ‘찰칵’ 탈의실서 ‘찰칵’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거리에는 짧은 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눈에 띈다. 핫팬츠나 민소매 상의는 물론 도발적인 시스루 룩까지. 여성들의 몸매를 부각한 패션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해변가에서 입는 비키니도 전년보다 더욱 과감한 노출이 유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데 여성들의 노출만큼이나 진화하고 있는 ‘몰카’가 올 여름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몰카 사범은 최첨단 전자기기로 무장해 여성들의 은밀한 신체부위를 포착하고 있다.

공공장소인 지하철은 물론 공중화장실, 헬스클럽 탈의실, 숙박업소에 이르기까지 몰카가 촬영되거나 설치된 공간은 실로 다양하다. 특히 올 여름에는 해수욕장이나 야외 수영장과 같은 노출이 심한 지역에서 몰카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변태들 최첨단 전자기기로 무장
인터넷 유출 등 2차 피해 우려

몰카 사범들의 범죄에는 촬영당하는 당사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첨단장비가 동원된다. 스마트폰은 예사고, 개조된 지팡이와 렌즈가 부착된 신발, 안경, 시계, 만년필, 차키 홀더, 넥타이 핀, 화재경보기 등 하나같이 평범한 물건에 카메라가 감춰져 많은 피해자는 범죄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중 화장실이나 모텔 객실 안에 설치된 몰카는 유포됐을 경우 피해자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 뒤따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이 잡히면 대부분 호기심에 찍었다고 하거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해소용으로) 찍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는데 죄질이 나쁜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유출 등으로 분명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몰카에 대한 형량을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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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