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재계 총수들 진짜 피서법

아무때나 가면 되지…피크 시즌엔 ‘방콕’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이맘때면 궁금해지는 게 '돈 많은' 재벌총수들의 휴가 계획이다. 재벌그룹의 대답은 한결같다. "휴가가 뭐냐?"는 것.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건강 악화, 유동성 위기,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로 뒤숭숭한 재계의 휴가 풍경을 들여다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두한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총수들의 여름휴가를 묻는 질문에 각 그룹 홍보실들은 비슷비슷한 공식 답변을 내놨다. "휴가가 뭐냐?"고 반문하는 기업도 있었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공백, 건강 악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 유례없는 글로벌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가 덮친 대기업의 총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별다른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한다. 자진해서 '안 가는' 회장님이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회장님도 있다.

할일 태산인데
휴가는 무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자택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간 현대·기아차 공장이 휴무에 돌입하는 때에 맞춰 공식적인 휴가 일정을 잡아왔다. 현대·기아차는 오는 8월4일부터 5일 동안 울산 등 전국의 공장·연구소 등 모든 사업장이 휴무한다. 정 회장은 이 기간 동안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과는 다르게 유럽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자료를 보면 현대차는 지난 5월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에서 3만5636대를 판매,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유럽 현지를 찾는 등 유럽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대립되는 구도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2분기 신형 제네시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신형 i20 출시로 실적 부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하반기 사업목표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휴가 기간을 잡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구상을 한다는 계획이다. 외부 일정은 지양한다.
 

LG그룹은 하반기 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그룹 연구개발(R&D)센터로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가 착공에 들어간다. 이를 기반으로 LG그룹은 올 하반기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방침이다. 먼저 LG전자는 스마트TV, UHD(초고해상도) TV,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전략 제품을 앞세워 세계 TV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폰사업에서는 G3 출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LG디스플레이는 TV와 스마트폰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휴가와 회사 일정을 맞물리게 잡았다.

허 회장은 7월23∼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에 참석한 뒤 짧은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경영 구상을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7월23일부터 3박4일간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했다가 남은 기간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별다른 일정 없다"는 대외용 홍보성 멘트
개인별장·출장 핑계로 해외서 '유유자적'


이재성 회장을 포함한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아직 일정과 장소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중동과 유럽 등 해외 공사현장과 현지법인을 방문해 현장 경영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매년 해외를 찾아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체해 왔다. 매년 명절 연휴에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직원들을 격려해왔다.

"휴가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기업도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 휴가를 반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수습에 전념하느라 휴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올해 여름휴가 기간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휴가기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올해 초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해 "기필코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자"고 강조한 뒤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2010년부터 5년째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금호산업 구조 조정안을 놓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주사인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정상화를 지휘해 왔다. 주말을 반납하고 그룹 임직원들과 산행을 하고 세미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현장경영을 이어 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특별한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여름철 성수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순항 길에 접어든 한진해운 정상화도 현안이다. 휴가철에도 평상시처럼 정상 출근해 업무를 챙길 예정이다.

방에 콕 박혀
하반기 경영구상

조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며 '부활'을 자신했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을 꿈꾸던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업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한진해운의 핵심 사업을 시아주버니인 조 회장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일부 사업만 떼어내 독립했고, 핵심 사업은 한진그룹으로 편입됐다.

지난 5월 한진해운 대표로 선임된 조 회장은 흑자 전환까지는 월급도 받지 않겠다며 한진해운 정상화를 목전 과제로 내건 상황이다.
 

수감된 최태원 SK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아예 휴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SK그룹은 매월 한차례씩 계열사 CEO들이 모이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집단 경영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 2월 말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떠났고 그룹 경영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비중이 커진 상태다. 지난달 27∼28일에는 경기 용인의 'SK아카데미'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CEO들이 대거 참여해 이틀간 합숙토론 행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전체를 휩쓸고 있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상황에 그룹 CEO의 휴가 거론은 어불성설이다.


뒤숭숭한 재계
"휴가가 뭐냐?"

2008년 이후 휴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올해 역시 별다른 휴가 계획이 없다. 현 회장은 해마다 8월4일 고 정몽헌 회장 기일 때마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열리는 추모식을 휴가를 겸해 다녀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

구자열 LS그룹 회장도 2012년 11월 취임한 이후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올해도 구 회장은 여름휴가를 미뤘다. 지난해 원전 케이블 품질 문제로 바닥을 치는 회사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경영에 몰입하고 있다. 사실상 휴가 계획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초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풍파를 겪고 있는 이웅렬 코오롱 그룹 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통상 2∼3일 정도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휴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회사 사정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못 가는' 총수들도 있다. 와병 중인 총수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여름 자택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례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으면서 족쇄가 풀렸다. 하지만 구속기간 동안 건강은 악화됐다. 김 회장은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공란, 당뇨, 우울증, 섬망 등의 증세가 겹쳐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김 회장은 지난 3월과 5월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회사 어려워 못가고
몸이 아파서 못가고
구속 처지라 못가고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 모두는 이건희 회장이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상황이라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 자택 인근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돼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 회장은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같은 달 13일부터 뇌와 간 등 장기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진정치료를 받았다. 입원 9일 만인 5월19일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8∼9시간 정도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상대와 눈을 맞추는 등 외부자극에 대해 점차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이 전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쇠고랑'을 차고 있는 총수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확정 판결 받고 1년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독방을 쓰며 하루 1시간 정도 바깥 운동을 하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면회 온 임원을 통해 '옥중메모'를 전달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SK그룹 연례 워크숍에서 공개된 최 회장의 옥중메모에는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뛰어 준 경영진과 구성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SK의 역사가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온 만큼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수펙스추구협의회와 김창근 의장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현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6500억대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효성은 박근혜 정부의 타깃이었다. 새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에서 효성그룹에 대해 대규모 특별세무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검찰은 98년 외환위기 직후 종합상사의 부실을 10여년 이상 분식회계 했다면서 조 회장에 대해 배임·횡령·탈세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세 번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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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