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재계 총수들 진짜 피서법

아무때나 가면 되지…피크 시즌엔 ‘방콕’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이맘때면 궁금해지는 게 '돈 많은' 재벌총수들의 휴가 계획이다. 재벌그룹의 대답은 한결같다. "휴가가 뭐냐?"는 것.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건강 악화, 유동성 위기,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로 뒤숭숭한 재계의 휴가 풍경을 들여다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두한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총수들의 여름휴가를 묻는 질문에 각 그룹 홍보실들은 비슷비슷한 공식 답변을 내놨다. "휴가가 뭐냐?"고 반문하는 기업도 있었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공백, 건강 악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 유례없는 글로벌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가 덮친 대기업의 총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별다른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한다. 자진해서 '안 가는' 회장님이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회장님도 있다.

할일 태산인데
휴가는 무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자택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간 현대·기아차 공장이 휴무에 돌입하는 때에 맞춰 공식적인 휴가 일정을 잡아왔다. 현대·기아차는 오는 8월4일부터 5일 동안 울산 등 전국의 공장·연구소 등 모든 사업장이 휴무한다. 정 회장은 이 기간 동안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과는 다르게 유럽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자료를 보면 현대차는 지난 5월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에서 3만5636대를 판매,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유럽 현지를 찾는 등 유럽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대립되는 구도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2분기 신형 제네시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신형 i20 출시로 실적 부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하반기 사업목표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휴가 기간을 잡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구상을 한다는 계획이다. 외부 일정은 지양한다.
 

LG그룹은 하반기 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그룹 연구개발(R&D)센터로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가 착공에 들어간다. 이를 기반으로 LG그룹은 올 하반기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방침이다. 먼저 LG전자는 스마트TV, UHD(초고해상도) TV,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전략 제품을 앞세워 세계 TV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폰사업에서는 G3 출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LG디스플레이는 TV와 스마트폰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휴가와 회사 일정을 맞물리게 잡았다.

허 회장은 7월23∼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에 참석한 뒤 짧은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경영 구상을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7월23일부터 3박4일간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했다가 남은 기간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별다른 일정 없다"는 대외용 홍보성 멘트
개인별장·출장 핑계로 해외서 '유유자적'

이재성 회장을 포함한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아직 일정과 장소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중동과 유럽 등 해외 공사현장과 현지법인을 방문해 현장 경영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매년 해외를 찾아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체해 왔다. 매년 명절 연휴에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직원들을 격려해왔다.

"휴가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기업도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 휴가를 반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수습에 전념하느라 휴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올해 여름휴가 기간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휴가기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올해 초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해 "기필코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자"고 강조한 뒤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2010년부터 5년째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금호산업 구조 조정안을 놓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주사인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정상화를 지휘해 왔다. 주말을 반납하고 그룹 임직원들과 산행을 하고 세미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현장경영을 이어 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특별한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여름철 성수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순항 길에 접어든 한진해운 정상화도 현안이다. 휴가철에도 평상시처럼 정상 출근해 업무를 챙길 예정이다.

방에 콕 박혀
하반기 경영구상

조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며 '부활'을 자신했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을 꿈꾸던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업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한진해운의 핵심 사업을 시아주버니인 조 회장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일부 사업만 떼어내 독립했고, 핵심 사업은 한진그룹으로 편입됐다.

지난 5월 한진해운 대표로 선임된 조 회장은 흑자 전환까지는 월급도 받지 않겠다며 한진해운 정상화를 목전 과제로 내건 상황이다.
 

수감된 최태원 SK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아예 휴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SK그룹은 매월 한차례씩 계열사 CEO들이 모이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집단 경영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 2월 말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떠났고 그룹 경영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비중이 커진 상태다. 지난달 27∼28일에는 경기 용인의 'SK아카데미'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CEO들이 대거 참여해 이틀간 합숙토론 행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전체를 휩쓸고 있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상황에 그룹 CEO의 휴가 거론은 어불성설이다.

뒤숭숭한 재계
"휴가가 뭐냐?"

2008년 이후 휴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올해 역시 별다른 휴가 계획이 없다. 현 회장은 해마다 8월4일 고 정몽헌 회장 기일 때마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열리는 추모식을 휴가를 겸해 다녀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

구자열 LS그룹 회장도 2012년 11월 취임한 이후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올해도 구 회장은 여름휴가를 미뤘다. 지난해 원전 케이블 품질 문제로 바닥을 치는 회사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경영에 몰입하고 있다. 사실상 휴가 계획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초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풍파를 겪고 있는 이웅렬 코오롱 그룹 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통상 2∼3일 정도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휴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회사 사정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못 가는' 총수들도 있다. 와병 중인 총수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여름 자택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례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으면서 족쇄가 풀렸다. 하지만 구속기간 동안 건강은 악화됐다. 김 회장은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공란, 당뇨, 우울증, 섬망 등의 증세가 겹쳐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김 회장은 지난 3월과 5월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회사 어려워 못가고
몸이 아파서 못가고
구속 처지라 못가고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 모두는 이건희 회장이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상황이라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 자택 인근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돼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 회장은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같은 달 13일부터 뇌와 간 등 장기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진정치료를 받았다. 입원 9일 만인 5월19일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8∼9시간 정도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상대와 눈을 맞추는 등 외부자극에 대해 점차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이 전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쇠고랑'을 차고 있는 총수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확정 판결 받고 1년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독방을 쓰며 하루 1시간 정도 바깥 운동을 하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면회 온 임원을 통해 '옥중메모'를 전달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SK그룹 연례 워크숍에서 공개된 최 회장의 옥중메모에는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뛰어 준 경영진과 구성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SK의 역사가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온 만큼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수펙스추구협의회와 김창근 의장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현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6500억대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효성은 박근혜 정부의 타깃이었다. 새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에서 효성그룹에 대해 대규모 특별세무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검찰은 98년 외환위기 직후 종합상사의 부실을 10여년 이상 분식회계 했다면서 조 회장에 대해 배임·횡령·탈세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세 번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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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