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개>‘하양 청부살인’후속취재 총쏜 자들의 고해성사

“사모님이 시키지 않았다”…말 바꾼 진짜 이유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하양 청부살인’사건. 중견기업 부인이 사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한 이 사건의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범은 명백하지만 살인교사 여부가 쟁점이다. 실제 살해 청부는 있었을까. 아니면 궁지에 몰린 범인들이 꾸며낸 시나리오일까. 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 부인의 주장, 그리고 직접 총을 쏜 범인들의 고해성사와 이들의 변호사 인터뷰를 통해 그 진실을 파헤쳐봤다.

최대 쟁점 ‘재벌가 사모님’ 살인교사 여부 곧 판결
두 범인 “살해 지시”에서 “사주 없었다”진술 번복


이른바 ‘하양 청부살인’사건은 2002년 3월 윤모씨와 그의 동창생인 김모씨가 당시 여대생이었던 하모양을 납치,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공기총으로 살해한 범죄다.<본지 735호 참조>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중국에서 도피생활 끝에 이듬해 3월 경찰에 붙잡혀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기징역 선고 후
왜곡된 진실 고백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중견기업 부인인 A씨가 하양 살인을 사주했냐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사위와 하양의 불륜을 의심한 A씨가 둘의 감시·미행도 모자라 윤씨와 김씨에게 하양을 살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A씨의 사위-하양 불륜 의심이 거의 병적 수준이었다는 점 ▲A씨가 윤씨·김씨에게 거액을 주기로 한 점 ▲범행 직후 해외로 도주한 윤씨·김씨가 A씨 친인척 집에 머물렀던 점 ▲실탄 최초 1발 발사 후 확인사살을 위해 추가로 5발을 발사한 점 등이 그 이유다.

특히 윤씨와 김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A씨의 납치·살해 부탁을 받았다. A씨의 지시로 하양을 죽였다. 이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A씨는 “사주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윤씨와 김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이 ‘혐의 없음’처분을 내리자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다시 진행됐다. 청주지법은 오는 18일 위증 여부에 대해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하양 청부살인’사건의 종착지인 이번 판결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A씨가 살해를 지시했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새 국면을 맞을지가 관심거리다. 윤씨와 김씨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A씨는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A씨 측은 “윤씨와 김씨의 거짓말 때문에 A씨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이들은 죗값을 감면받으려 거짓 진술을 하다 최고형이 떨어지자 나중에서야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범인의 입장은 어떨까.
윤씨와 김씨는 기존 진술을 번복한 상태다. 윤씨는 대법원 상고 직전, 김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주 받지 않았다”고 자백을 뒤집은 바 있다.
이들은 위증 공판에서도 “A씨에게 살인을 사주 받은 사실이 없다”, “A씨가 미행 지시만 내렸다”, “A씨는 하양의 자백만 원했다”, “A씨가 준 돈은 미행댓가이지 살해댓가가 아니다”, “살해는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저질렀다”고 말을 바꿨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아간 기자의 접견을 거부했다. 낯선 이의 방문을 경계한 듯 보였다. 대신 윤씨와 김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상중 변호사를 통해 그들의 ‘고해성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변호사의 말도 다르지 않다. 2004년 4월 대법원 상고 전후 두 사람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이 변호사는 각각 윤씨와 김씨를 접견한 자리에서 허위 자백 사실을 알게 됐다.

“총으로 머리를 쿡쿡 찌르다 갑자기 1발이 격발됐습니다. 오발사고에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계속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 변호사는 “위증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으로선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지만 윤씨와 김씨는 자신들로 인해 중형을 선고받은 A씨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형 추가를 감수하고 위증을 시인하고 있다”며 “피의자들이 허위 자백한 행위에 대해선 변명 여지가 없으나 이제라도 사실을 밝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윤씨·김씨의 진술(번복 이후)과 이 변호사 등에 따르면 윤씨와 김씨는 1·2심 과정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위로 자백했다. 하양 살해 직후 잘못된 판단이 위증한 이유다.
윤씨와 김씨는 범행 후 베트남과 중국으로 도피 중 이미 A씨가 살해를 교사한 것으로 입을 맞췄다. 타의에 의해 살해했다면 조금이나마 책임을 면할 것이란 계산에서다.

“계획적 살인 정황에
몇 가지 의문 있다”

특히 검거 뒤엔 사주 진술에 대한 1·2심 변호사들의 요구도 있었다. 1심 변호사는 A씨의 지시로 살해했다고 하면 법원의 선처로 5∼7년 정도의 형에 그칠 것이라고 자신했다. 2심 변호사도 진술 번복 시 형이 더 올라갈 수 있으니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주문했다.
윤씨와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감형을 위해 위증할 수밖에 없었고 재판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진술을 번복할 수 없었다는 게 이 변호사의 전언이다. 당시 변호사들은 예상과 달리 무기징역이 최종 선고된 후 이들이 말을 바꾸자 변론을 포기했다.

윤씨와 김씨의 우발적 범행 정황도 사주 부분과 대치된다. 이들이 밝힌 하양 납치 배경을 보면 A씨를 향한 충성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윤씨와 김씨는 A씨가 돈을 주고 사위와 하양의 미행을 시켰지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등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하자 A씨로부터 추궁을 당했고, ‘돈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양을 납치해 불륜 사실을 자백받기로 했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A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독촉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돈을 다 쓴 상태였죠. 돈을 반환할 방법이 없어 친구인 김씨와 함께 납치를 계획했습니다. 뭔가 성과를 얻으려고요.”
윤씨가 재판에서 증언한 하양의 납치 모의 경위다.

그러나 납치는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A씨의 교사에 따른 계획적 살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전에 살인을 계획했다면 미리 철저하게 범행 은폐까지 시나리오를 짜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사체 처리를 위한 삽, 곡괭이 등을 준비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암매장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행 장소도 등산객이 자주 오고가는 등산로 바로 옆(약 1m 지점)에 사체를 허술하게 낙엽으로 덮어 놓은 채 서둘러 산에서 내려왔다. 이들은 범행 전 공기총과 함께 철물점에서 결박용 노끈과 테이프, 머리에 씌울 쌀포대만 갖고 하양을 납치했다.

이들은 또 당초 납치 목적이 살인이었다면 최대한 범행을 감춰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살해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조력자 3∼4명 등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윤씨 소유의 승합차를 범행에 사용했다.
A씨가 윤씨와 김씨에게 각각 8000만원, 5000만원을 줬다는 혐의 내용도 살인 대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이 변호사의 의견이다. A씨가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감시원들을 고용하면서 이에 버금가는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통 심부름센터 등에 미행을 의뢰할 경우 1주당 1000만원 안팎의 사례비가 들어간다. 윤씨는 2000년 3월부터, 김씨는 2001년 10월부터 ‘행동’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A씨가 건넨 돈이 미행댓가로 과한 게 아닌 셈이다.
범행 직후 해외로 도주한 윤씨와 김씨가 A씨 친인척 집에 머물렀다는 경찰의 발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은 이를 A씨가 하양 살해를 사주한 뒤 이들의 도주를 도왔다는 근거로 내세웠지만, 윤씨가 A씨의 조카이기 때문에 이들이 윤씨 친인척 집에서 있었다는 것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

형 낮추려 허위 자백
1·2심 변호사 부추겨


특히 이 변호사는 윤씨와 김씨가 하양을 살해할 결정적인 동기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들은 하양 납치·살해 당시 불륜 사실을 입증할 만한 물증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불륜 증거를 잡았다면 몰라도 하양이 심하게 반항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사태 외에 달리 하양을 죽인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자발적·우발적 범행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하양을 향해 공기총 방아쇠를 당긴 김씨도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불륜 사실만 자백 받으려다 하양의 저항이 거세지자 자신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머리를 덮은 쌀푸대와 입, 눈을 가린 테이프를 떼자 하양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빨리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입과 눈에 테이프를 붙이고 쌀푸대를 씌운 뒤 총으로 하양의 머리를 쿡쿡 찌르면서 불륜을 시인하라고 하다가 갑자기 1발이 격발됐습니다. 예기치 못한 오발사고에요. 실탄이 장전돼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아쇠 잠금장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김씨가 직접 작성해 이 변호사에게 전달한 사건 당일 행적 중 일부 내용이다. 김씨는 확인사살에 대해선 실수로 1발 발사 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벌어진 일(5발 발사)이라고 해명했다.
“저의 손으로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때부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계속 방아쇠를 당기게 됐습니다. 정신이 없어 몇 발을 발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그 순간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총은 하양을 살해하기 위해 가져간 게 아닙니다. 단지 위협하려고 한 것입니다.”

검찰은 법원의 공소 재기 명령에 따라 위증 혐의로 윤씨와 김씨를 기소했지만 무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A씨의 살인교사가 명백하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A씨가 단순히 혐의를 벗기 위해 윤씨와 김씨의 위증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두 범인이 “A씨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한 이면에 A씨-윤씨·김씨간 모종의 거래도 의심하고 있다. A씨 측의 회유가 있지 않았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총은 살해용 아닌
위협용으로 소지”

하지만 이 변호사는 이를 일축했다.
“윤씨와 김씨는 하양은 물론 A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왜곡된 증언으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그 죗값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검찰은 아무런 증거나 근거 없이 언론 등에 회유 의혹을 흘리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추측만 갖고 말이죠. 검찰 맞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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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