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뉴미디어 아티스트 김태은

"예술은 우리 사회의 최소한입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인터뷰 내내 전화벨이 울렸다. 방금 전까지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응원 벽화를 그렸던 그다. 다음 날이면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로 올라오면 자신이 교수로 있는 대학교의 CF 영상 제작과 개인 작업에 몰두할 것이다.

'뉴 미디어 아티스트' 김태은 작가는 본인이 2년 전부터 구상한 장기프로젝트로 말문을 열었다. 예술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날카로운 안목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겼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복제될 수 없는 김 작가만의 아우라로부터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김태은 작가를 수식하는 여러 명사가 있다. 영화감독, 뮤직비디오감독, 광고감독 등. 하지만 김 작가의 바이오그래피는 필름이나 영상에 국한되지 않았다. 설치미술, 연극, 무용, 패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이른바 전천후 예술이었다.

전천후 예술

최근 김 작가는 자신의 대학 전공인 페인팅(회화)에도 공력을 쏟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주로 미디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라 사운드가 배제된 회화가 조금은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 작가는 "미디어 아트를 경험하면서 내 나름의 착륙지점을 찾은 것 같다"며 개의치 않아 했다.

"(한때 유행했던) 인터렉티브한 예술도 이제는 새로운 예술이 아니게 됐어요. 정형화됐고, 보편화됐죠. 어떻게 보면 동어반복 행위인데 무엇인가에 반응하고 놀라고 소비하고 그냥 지나치죠.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미디어 아트를 관객에게 생각 없이 소비하게 만든 측면이 있어요. 저는 반대로 긴 여흥을 주는 작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요즘 같은 때는 (과잉된) 감각을 거세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영상과 소리를 분리하는 작업 같은 거요."


이제는 클리셰가 되버린 '제2의 백남준'. 김 작가는 미디어 설치미술이 부흥하던 시기에 데뷔했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김 작가에 따르면 설치미술은 국내를 기준으로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의 전시가 기획되면서 질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국내 미술계 판도가 아트페어로 넘어가면서 침체를 겪고 있다. 김 작가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좋은 기획자가 많이 생겨야 하는데 그들이 제도권으로 흡수되면서 예술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언론만 봐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흔히 미디어 아트를 한다고 하면 '제2의 백남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데요. 이건 정말 강한 프레임이거든요. 예술가 입장에서 한 번 프레임에 갇히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아예 '제2의 백남준'이라고 언론에서 소개한 작가들을 모아 기획전을 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죠."

김 작가는 자신이 구상한 몇몇 작업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했다. 가령 그는 몇 년 전 문경 채석장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작업으로 풀겠다고 했다. 이른바 '문경 십자가 사건'이 그것이다.

"2년 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장소를 특정해서 작업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10년 이상 시리즈로 할까 생각 중인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특정 메시지를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방법은 선호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가 사회에 대한 저항을 포기해선 안 되겠죠."

"다만 예술은 문제의식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거고 판단은 사회 구성원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채석장 사건은 우리 사회가 종교를 강요하고 내면화한 극단적인 단면입니다. 당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스스로 못 박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돌려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상당히 충격이었죠."

영화·MV·CF·미술·연극 등 재능 다양
심오한 이야기들 유희적 코드로 풀어

김 작가는 특정 장소의 기억이나 장소를 상징화(예를 들면 JSA)하는 작업 외에도 <블랙레인보우>(가제)라는 영화를 준비하는 한편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구두>를 모티브로 한 설치작업, 중세회화를 차용한 패러디 페인팅 등을 연이어 준비 중이다. 그의 모든 작업을 아우르는 공통점은 심오한 이야기를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다.


"처음에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는 관람객 스스로가 생각을 하게 되겠죠? 장비나 SW를 이용한 작업, 그림이나 설치,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역량이 되는 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당분간은 누구나 아는 코드나 기호를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황금색으로 칠한 아케이드게임기에 앉아서 아주 단순한 게임을 하고 있는 관객을 상상해요. 그게 뭐냐고요? 해보시면 무척 재미있을 겁니다."

유희적 코드

김 작가는 '드로몰로지'(Dromology·질주학)라는 표현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의 욕망에 빠르게 종속되고 있음을 비유했다. 김 작가에게 예술은 질주하고 있는 자본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이다. 그래서 작품은 상품이 아닌 자본과 분리된 형태의 '자극'이란 설명이다. 그는 "권력의 근본을 바꾸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자본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자본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김 작가는 인터뷰 내내 예술로 가능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역설하고 있었다. 

 

<angeli@ilyosisa.co.kr>


[김태은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 회화과 졸업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연세대 영상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 개인전 서울메들리 Making of Seoul Landscape(2011, 사이아트 갤러리) 등 11회
▲그룹전 <DMZ 평화그림책 프로젝트 겨울,겨울,겨울,봄>(2012, 경기도미술관) 등 다수
▲중앙미술대전(2015, 중앙일보)·뉴디스코스(2011) 대상, 미장센 단편영화제(2005) 우수상 등 수상 다수
▲영화 <애인> MV 실연(코요테)·천일동안(이승환)·사랑할 수 있을 때(바비킴) 등 연출 다수
▲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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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