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집> 파란의 6·4 지방선거 후폭풍 ①힘 받는 '청와대 플랜'

세월호 역풍에 휘말린 '박근혜호' 순풍에 돛 다나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로 궁지에 몰렸던 박근혜정부가 기사회생했다. 6·4 지방선거에서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면죄부도 함께 쥐었다. 보수층의 굳건한 지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박근혜 대통령. 이제 안팎의 관심은 '국가개조'에 쏠린다. 무엇을 어떻게 개조하겠다는 건지 박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법을 세우겠다"는 의지만큼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 보인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작업이 지연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무능한 정권론이 부상했다. 유족들은 매일 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렸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도 함께 울었다. 청와대는 "재난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헛발질했다. 박근혜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말마다 거리를 매웠다.

세월호의 눈물
박근혜의 눈물

지난달 차기 국무총리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자진사퇴했다. 내려올 줄 모르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를 전후로 20% 가까이 빠졌다. 당시만 해도 '집권 2년차 레임덕'이라는 호들갑이 허언이 아닌 듯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느꼈던 위기감은 상당했다고 했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청와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여권 입장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 선거에서 진다. (선거법상) 대통령의 입이 안 되면 '칼(문책성 인사나 야권을 겨냥한 공안수사 등)'을 써서라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은 입을 열지 않았다. '칼'도 쓰지 않았다. 다만 '눈'으로 보여줬다. '박근혜의 눈물'은 궁지에 몰린 여권이 쓸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 그날로 전국 곳곳에는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란 피켓이 등장했다.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피켓 전면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붙었다. 피켓 속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호소는 망설이고 있던 보수층의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돌렸다. '세월호의 눈물'로 시작해 '박근혜의 눈물'로 끝난 선거였다.

정권심판론
너무 일렀다

개표결과 여야 어느 쪽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성적표가 나왔다. 표면적인 결과는 새누리당의 패배였다. 전국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모두 8곳에서 이겼고, 새정치민주연합은 9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 3곳 중 새누리당은 경기와 인천을 얻어 서울을 사수한 새정치민주연합과 균형을 이뤘다. 또 새누리당은 여권의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을 지켜냄으로써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은 선거였다.

당선자의 윤곽이 가려진 5일까지 박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가개조'란 국정과제를 또 한 번 명확히 했다. 이날 민 대변인은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 이번 선거결과는 그 자체가 국민의 소중한 민의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년차 레임덕 위기서 벗어나
세월호발 정권심판론 잠재워

청와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은 눈치다. 대체로 여권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역대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도 여당이 17곳 중 8곳을 가져 간 건 나름 선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가장 최근 있었던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박근혜정부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여당은 전체 16곳 중 6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반색하는 대목은 인천을 탈환했다는 사실이다. '친박'의 대표주자인 유정복(새누리당) 후보는 현 인천시장인 송영길(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꺾고 인천의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했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안전행정부장관을 역임했던 안 후보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송 후보에게 박빙열세를 보이던 안 후보는 본선에 돌입하자 예상 밖의 응집력을 보였다.

안 후보의 출마는 그가 청와대 내각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었다. 안 후보의 상대는 현직 프리미엄이란 후광을 업고 있는 송 후보였다. 송 후보는 야권의 잠재적 대권후보로 꼽힐 만큼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세월호 참사라는 돌발변수까지 발생했다. 정권심판론이란 그늘에서 안 후보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인천 민심은 결국 안 후보를 선택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박근혜정부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이해됐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없음을 확인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국가개조론
밀어 붙인다

'오거돈 바람'이 불었던 부산도 끝내는 친박 중진인 서병수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 전 서 후보는 오거돈 후보와 여론조사에서 막판까지 초박빙 접전을 벌였다. 위기감을 느낀 서 후보는 선거일이 임박하자 노골적인 '박근혜 마케팅'을 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읍소에 부산 시민들은 변화보다는 '인정'을 택했다.

그러나 여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산에서 오 후보가 거둔 성적은 놀랍다. 최종득표율 49.3%, 서 후보와의 표 차이는 1.4%에 불과했다. 비록 야당 간판을 달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 후보의 선전은 부산 시민들이 당만 보고 찍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반대로 박 대통령을 전면에 앞세운 서 후보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진땀 승부였다.

유권자들은 '세월호 민심'을 투표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의 붕괴나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1년 6개월만의 레임덕은 너무 심하지 않냐. 지방선거로 심판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빨랐다. 유권자들이 조금 더 기다리자는 쪽이었던 것 같다. 만약 지방선거가 1년 뒤에 있었다면 결과가 또 달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국민들은 박 대통령을 재신임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앞길은 산적한 과제로 첩첩산중이다. 당장 국정운영의 변곡점이자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7·30 재보궐선거가 눈앞에 있다. 차가워진 민심을 외면했다가는 언제든 정권심판론이 타오를 수 있다.

국가개조 드라이브
공직사회 틀어쥐고
철권통치 재현할까

우선 박 대통령은 정권심판론에 맞서 국가개조론을 통해 난맥상을 정면 돌파할 방침이다. 세월호 참사 후 '관피아 색출'을 첫 번째 후속조치로 내놓은 게 대표적인 예다. 검찰 등 사정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무너진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복안이다. 때문에 박근혜정부는 '관피아 색출'을 필두로 한 고강도 공직사회 개혁에 당분간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피아 색출과 관련해서는 공직사회 내부에 강한 반발이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관피아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인데 이 정부는 기관들만 닦달해서 성과를 내려한다"며 "공직사회가 경직될수록 득을 보는 건 국민이 아닌 절대 권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박 대통령이 공직사회 장악에 나선 배경에 '철권통치'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윗사람의 지시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공무원을 주물러 이를 바탕으로 정국 운용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의 속셈을 알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쏘아올린 국가개조의 방향과 속도는 후임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일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쇼크를 경험한 청와대는 도덕성을 중점으로 두고 인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황우여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총리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고사할 경우는 의외의 선택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력 후보로 검토되고 있는 김 지사는 청와대로 입성할 경우 박 대통령과 얼마만큼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능력 면에서는 합격점이지만 국가개조의 각론에서 기존 청와대 비서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불안요소다.

한편 청와대는 공석 중인 국가정보원장 지명과 조각 수준의 내각개편을 위한 후보자 물색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탕평인사' 얘기가 나왔지만 선거 결과 여권의 중심부인 대구에서 고전하면서 소홀했던 'TK 달래기'에 나설 것이란 예측이 힘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보수층의 결집을 확인한 박 대통령이 다시 '줄푸세'  카드를 꺼낼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큰 틀에서 박 대통령은 경기부양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자리 창출, 경제혁신3년계획 등의 경제정책이 골자다. '통일대박론' 역시 궁극적으로는 경제효과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전언이다.

TK 달래기
경기부양 사활

하지만 구체적인 경기부양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종국에는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내수 진작을 위해 다방면으로 세금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절세'를 지지하는 보수·부유층의 표를 모으는 효과가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유임 여부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만약 김 실장이 유임된다면 사회전반적인 사정 드라이브가 좀 더 가속화될 것이고, 김 실장이 교체된다면 경기 부양에 좀 더 힘을 주게 될 확률이 높다.

청와대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실정을 하던 박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40%의 '국민'이 등 뒤에 있다는 사실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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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