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세월에 묻힌 도시풍경 '천태만상'

급변하는 시대…사람냄새가 지워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시대가 변하면서 생활 속 풍경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구시대 유물로 느껴졌던 것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진화하면서 ‘신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질 것 같았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다시 재탄생한 우리 주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결혼정보회사의 시초는 결혼상담소였다. 1970년대부터 성행한 중매결혼은 대부분 결혼상담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결혼상담소 간판을 내건 초기에는 “오죽 못났으면 스스로 결혼 상대자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상담소에 의뢰하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서서히 인식이 바뀌어 결혼상담소를 찾는 발길이 급격히 잦아졌다.

[결혼상담소-결혼정보회사]
 
결혼상담소 신청자들의 남녀비율은 약 1대2 정도로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상담소에 따라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4배나 많아 남자기근 현상을 빚기도 했다. 지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신청자들의 연령은 여자 22세부터 55세, 남자 25세부터 60세까지로 폭이 넓은 편이었지만, 여자 23세부터 26세, 남자 27세부터 33세까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결혼상담소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초기에는 본인보다는 부모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상담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후 ‘보따리 중매장’이란 묘한 직업이 생겼고, 이들은 유수 기업체의 젊은 엘리트 사원의 명단이 든 두툼한 수첩보따리를 들고 다방을 누비며 10명 정도씩 그룹을 지어 수시로 각종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매장이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과거 성행했던 결혼상담소와 지금의 결혼정보회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성행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또한 중매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결혼정보회사는 1990년 중반, PC통신의 발달로 본격 등장했다. 2000년 8월부터는 결혼정보업이 자유업으로 바뀌어 사업자등록증만 제시하면 즉시 영업이 가능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만남을 주선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결혼정보업체는 500여 곳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듀오, 선우, 에코러스, 피어리, 듀비스 등 몇몇 업체는 수천에서 수만명씩의 회원을 거느리고 ‘중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시장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변화다. 경쟁주의 속 개인주의 심화는 친분적 소개 문화의 쇠퇴를 불렀고, 결국 그 부분의 역할을 결혼정보 업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는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등급에 따라 자신의 점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 시 성격, 외모, 학벌, 직업,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도 중요하지만, 결혼 전 충분한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탁소-무인세탁소]
 
세탁소의 트렌드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세탁소 간판을 걸고 있지만 직원 자체가 없는 ‘무인세탁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셀프빨래방과 세탁편의점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무인세탁소는 고객들이 무인 락커에 세탁할 옷을 맡기면 전문 세탁 업소에서 이를 수거해 말끔히 세탁한 후 다시 락커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이런 무인세탁소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일반 세탁소는 영업시간이 한정돼 있어 맞벌이 가정에서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들이 무인세탁소를 자주 애용한다.   

[전당포-인터넷캐싱]
 
흔히 전당포는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귀중품을 담보로 손쉽게 금전을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애용해왔다. 사실 전당포는 사채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캐싱’이라는 용어를 상호에 쓰기도 한다. 전당포의 시초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당포 형태의 사채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후 모방과 조합의 형태로 전당포가 곳곳에 생겨났고 서민들 사이에서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전당포는 일본과 달리 부동산도 담보로 취급했다. 1970년대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인기였고 80년대에는 비디오플레이어, 컴퓨터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귀금속 등은 여전히 인기 품목으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명품 패션이 주종을 이룬다. 
 

전당포는 현재도 진화 중이다. 쇠창살과 골방, 음침한 복도는 이제 더 이상 전당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요즘 전당포는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깔끔한 편이다.
 
최신식 인테리어로 이용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카페처럼 음료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포의 기본인 보안시스템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고, 다루는 품목도 진화했다. 요즘엔 명품 전당포가 대세지만 각종 IT 기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도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엔 전당포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신촌, 강남, 압구정, 건대입구 등 서울 도심 주요 상권엔 최소 1∼2개씩 현대식 전당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가맹점 형태로 지점을 늘리며 기업화하는 현상도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저신용자용 전당포는 전국에 1000여개로 10년 전 대비 80% 가량 줄었다. 대신 명품 전당포나 IT 전당포와 같은 현대식 전당포는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전당포에 들어오는 물건은 달라지고 있지만 전당포의 개념 자체는 변함이 없다.
 
헌책방, 미니콘서트장으로…전당포는 인터넷 거래
이발소, 카페 미용실로…세탁소, 무인빨래방 변신

[꽃집-데이트카페]
 
꽃집도 시대 변화에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꽃카페’인데, 요즘 꽃집은 꽃을 판매하며 더불어 커피, 건강음료, 칵테일 등을 내놓고 있다. 꽃을 사러 온 고객들은 꽃을 사러 온 건지, 커피를 마시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궁합마케팅’ 덕분에 꽃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특히 커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헌책방-카페방]
 
헌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60∼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몇 달 일하면 일 년 정도 쉬어도 될 정도로 당시엔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책방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변신을 꾀해 새로운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헌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헌책방들은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헌책방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판매 방식을 바꾸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다고 전해진다. 또한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게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헌책방도 있다.
 
무려 51년 간 자리를 지켜온 한 서점은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추억의 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독서를 만끽한다. 휴일에는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해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이처럼 추억의 헌책방들이 신선한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도시 속 유물에서 도시 속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이발소-이색미용실]
 
이용원, 이발관, 이용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발소는 많은 남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기 위해 찾던 장소였다. 이발소가 남성 전용이라면 미용실은 여성전용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성들의 머리가 길어지면서 짧게 깎기보다는 긴 머리를 다듬게 되면서 남성들의 미용실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의 미용실은 남녀구분이 없어졌고, 미용실 이름도 여러 가지 브랜드 명칭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인 이발소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발소는 그 자체로 존재 의미가 컸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발할 때는 기계 보단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이발 가위를 썼다. 또한 이발소는 개운한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발소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대신 미용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콘셉의 미용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미용실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마련한 곳, 와인바로 단골 손님을 끄는 곳, 다양한 음료 및 과자, 떡볶이 등의 간식을 제공하는 곳, 손님의 머리털로 그림을 그려주는 곳 등 이색적인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요즘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 손질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단골 확보에 애쓰고 있다.
 
신세대 입맛에 맞게 탈바꿈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재탄생
 

[사진관-포토존]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네 사진관. 이제는 가족 전문, 아기 전문, 취업 전문사진관 등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사진관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잡지 화보 같은 가족사진, 흑백 필름만 사용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는 사진, 톡톡 튀는 팝 아트 초상화 등 진화된 사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자녀를 둔 30∼40대 부부들 중에서는 연예인 화보 같은 가족사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외 공간에서 가족끼리 서로 마주보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항공촬영(헬리캠)까지 아우르는 스튜디오도 등장했다. 또한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꾸미고 실제로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진관이 늘고 있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대기 시간까지 사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색 있는 사진관은 일부다. 요즘 사진관들은 대부분 ‘디지털 인화’ ‘이미지 백화점’으로 진화해 생존하고 있다. 사진 촬영, 현상, 인화는 물론 액자, 캘린더, 디지털 카메라, 주변기기 등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극적인 변화다. 

[복덕방-중개소]
 
집을 잘 골라야 ‘복’과 ‘덕’이 들어온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 ‘복덕방’은 1900년대 초 ‘가괘(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시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자 주거지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풍수지리와 택일의 관습 때문에 이사를 할 때에는 가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초기 복덕방은 밑을 여러 갈래로 가른 누런 삼베를 간판으로 사용했다. 누런 삼베는 수수해서 복이 잘 붙고 감이 질겨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며, 밑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은 것은 출입하기 편하다는 뜻에서 한 것이다. 복덕방은 대체로 노령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일로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거간노릇을 해주고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매매를 성립시킨 뒤 그 차액을 수수료로 얻었다.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각종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다양한 용도의 택지와 주택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복덕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점차 복덕방 간판은 ‘○○개발’ ‘○○개발공사’ 등 다양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중개 대상도 주택과 아파트뿐 아니라 전국의 상가·공장·빌딩·임야·레저시설 등으로 확대됐다.
 
이같은 복덕방의 확대·발전은 투기조장, 가격조작, 과다경쟁 및 불건전한 거래 유발과 선의의 피해자 발생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유발했고, 결국 규제의 필요성이 부각돼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됐다. 이후 복덕방이라는 말 대신 ‘○○부동산중개회사’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중개인영업소’ 등으로 표기하도록 규정됐다.
 
그리고 부동산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법인화, 종합대형화 추세로 부동산거래정보망과 함께 전국적인 체인 형성이 나타났고,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중개·거래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복덕방은 부동산 중개를 주로 했지만, 현재의 공인중개사무소,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중개뿐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분양, 관리, 개발, 신탁 등 전문적인 재산 상담 기능까지 하고 있다.

[당구장-이색레포츠]
 
볼링장, 당구장 등 마니아들의 스포츠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레포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볼링장에서 단순히 볼링만 치는 것에서 벗어나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볼링 실력을 떠나서 누구나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칙칙한 내부 인테리어를 벗고 야광으로 도배해 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돼 특히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다.
 
당구장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식 당구장이 눈길을 끈다. 카페 같은 당구장에서 수제버거와 커피를 들고 당구를 즐기는 곳이 있어 반응이 좋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금연 당구장이 늘어나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미녀 직원을 당구장에 다수 고용해 젊은 남성 고객을 유치하는 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미인 당구장’ 등장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동종업종 간 극심한 경쟁 탓에 탈선할 개연성은 언제든 있는 것이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화한 사랑의 메신저
편지 → PC → 스마트폰 → 이모티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 전화나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주 연애 방식이었지만, 통신이 발달되면서 PC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문화에 큰 혁명을 불러왔다.
 
이후 스마튼의 등장은 또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화 된 지 오래,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자’ 보단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하며 신속한 메시지 전달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만큼 스마트 세대의 연애법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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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