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세월에 묻힌 도시풍경 '천태만상'

급변하는 시대…사람냄새가 지워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시대가 변하면서 생활 속 풍경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구시대 유물로 느껴졌던 것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진화하면서 ‘신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질 것 같았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다시 재탄생한 우리 주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결혼정보회사의 시초는 결혼상담소였다. 1970년대부터 성행한 중매결혼은 대부분 결혼상담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결혼상담소 간판을 내건 초기에는 “오죽 못났으면 스스로 결혼 상대자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상담소에 의뢰하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서서히 인식이 바뀌어 결혼상담소를 찾는 발길이 급격히 잦아졌다.

[결혼상담소-결혼정보회사]
 
결혼상담소 신청자들의 남녀비율은 약 1대2 정도로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상담소에 따라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4배나 많아 남자기근 현상을 빚기도 했다. 지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신청자들의 연령은 여자 22세부터 55세, 남자 25세부터 60세까지로 폭이 넓은 편이었지만, 여자 23세부터 26세, 남자 27세부터 33세까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결혼상담소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초기에는 본인보다는 부모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상담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후 ‘보따리 중매장’이란 묘한 직업이 생겼고, 이들은 유수 기업체의 젊은 엘리트 사원의 명단이 든 두툼한 수첩보따리를 들고 다방을 누비며 10명 정도씩 그룹을 지어 수시로 각종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매장이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과거 성행했던 결혼상담소와 지금의 결혼정보회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성행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또한 중매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결혼정보회사는 1990년 중반, PC통신의 발달로 본격 등장했다. 2000년 8월부터는 결혼정보업이 자유업으로 바뀌어 사업자등록증만 제시하면 즉시 영업이 가능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만남을 주선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결혼정보업체는 500여 곳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듀오, 선우, 에코러스, 피어리, 듀비스 등 몇몇 업체는 수천에서 수만명씩의 회원을 거느리고 ‘중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시장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변화다. 경쟁주의 속 개인주의 심화는 친분적 소개 문화의 쇠퇴를 불렀고, 결국 그 부분의 역할을 결혼정보 업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는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등급에 따라 자신의 점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 시 성격, 외모, 학벌, 직업,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도 중요하지만, 결혼 전 충분한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탁소-무인세탁소]
 
세탁소의 트렌드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세탁소 간판을 걸고 있지만 직원 자체가 없는 ‘무인세탁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셀프빨래방과 세탁편의점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무인세탁소는 고객들이 무인 락커에 세탁할 옷을 맡기면 전문 세탁 업소에서 이를 수거해 말끔히 세탁한 후 다시 락커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이런 무인세탁소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일반 세탁소는 영업시간이 한정돼 있어 맞벌이 가정에서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들이 무인세탁소를 자주 애용한다.   

[전당포-인터넷캐싱]
 
흔히 전당포는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귀중품을 담보로 손쉽게 금전을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애용해왔다. 사실 전당포는 사채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캐싱’이라는 용어를 상호에 쓰기도 한다. 전당포의 시초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당포 형태의 사채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후 모방과 조합의 형태로 전당포가 곳곳에 생겨났고 서민들 사이에서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전당포는 일본과 달리 부동산도 담보로 취급했다. 1970년대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인기였고 80년대에는 비디오플레이어, 컴퓨터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귀금속 등은 여전히 인기 품목으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명품 패션이 주종을 이룬다. 
 
전당포는 현재도 진화 중이다. 쇠창살과 골방, 음침한 복도는 이제 더 이상 전당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요즘 전당포는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깔끔한 편이다.
 
최신식 인테리어로 이용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카페처럼 음료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포의 기본인 보안시스템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고, 다루는 품목도 진화했다. 요즘엔 명품 전당포가 대세지만 각종 IT 기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도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엔 전당포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신촌, 강남, 압구정, 건대입구 등 서울 도심 주요 상권엔 최소 1∼2개씩 현대식 전당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가맹점 형태로 지점을 늘리며 기업화하는 현상도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저신용자용 전당포는 전국에 1000여개로 10년 전 대비 80% 가량 줄었다. 대신 명품 전당포나 IT 전당포와 같은 현대식 전당포는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전당포에 들어오는 물건은 달라지고 있지만 전당포의 개념 자체는 변함이 없다.
 
헌책방, 미니콘서트장으로…전당포는 인터넷 거래
이발소, 카페 미용실로…세탁소, 무인빨래방 변신

[꽃집-데이트카페]
 
꽃집도 시대 변화에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꽃카페’인데, 요즘 꽃집은 꽃을 판매하며 더불어 커피, 건강음료, 칵테일 등을 내놓고 있다. 꽃을 사러 온 고객들은 꽃을 사러 온 건지, 커피를 마시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궁합마케팅’ 덕분에 꽃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특히 커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헌책방-카페방]
 
헌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60∼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몇 달 일하면 일 년 정도 쉬어도 될 정도로 당시엔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책방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변신을 꾀해 새로운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헌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헌책방들은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헌책방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판매 방식을 바꾸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다고 전해진다. 또한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게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헌책방도 있다.
 
무려 51년 간 자리를 지켜온 한 서점은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추억의 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독서를 만끽한다. 휴일에는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해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이처럼 추억의 헌책방들이 신선한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도시 속 유물에서 도시 속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이발소-이색미용실]
 
이용원, 이발관, 이용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발소는 많은 남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기 위해 찾던 장소였다. 이발소가 남성 전용이라면 미용실은 여성전용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성들의 머리가 길어지면서 짧게 깎기보다는 긴 머리를 다듬게 되면서 남성들의 미용실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의 미용실은 남녀구분이 없어졌고, 미용실 이름도 여러 가지 브랜드 명칭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인 이발소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발소는 그 자체로 존재 의미가 컸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발할 때는 기계 보단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이발 가위를 썼다. 또한 이발소는 개운한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발소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대신 미용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콘셉의 미용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미용실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마련한 곳, 와인바로 단골 손님을 끄는 곳, 다양한 음료 및 과자, 떡볶이 등의 간식을 제공하는 곳, 손님의 머리털로 그림을 그려주는 곳 등 이색적인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요즘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 손질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단골 확보에 애쓰고 있다.
 
신세대 입맛에 맞게 탈바꿈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재탄생
 
[사진관-포토존]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네 사진관. 이제는 가족 전문, 아기 전문, 취업 전문사진관 등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사진관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잡지 화보 같은 가족사진, 흑백 필름만 사용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는 사진, 톡톡 튀는 팝 아트 초상화 등 진화된 사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자녀를 둔 30∼40대 부부들 중에서는 연예인 화보 같은 가족사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외 공간에서 가족끼리 서로 마주보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항공촬영(헬리캠)까지 아우르는 스튜디오도 등장했다. 또한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꾸미고 실제로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진관이 늘고 있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대기 시간까지 사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색 있는 사진관은 일부다. 요즘 사진관들은 대부분 ‘디지털 인화’ ‘이미지 백화점’으로 진화해 생존하고 있다. 사진 촬영, 현상, 인화는 물론 액자, 캘린더, 디지털 카메라, 주변기기 등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극적인 변화다. 

[복덕방-중개소]
 
집을 잘 골라야 ‘복’과 ‘덕’이 들어온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 ‘복덕방’은 1900년대 초 ‘가괘(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시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자 주거지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풍수지리와 택일의 관습 때문에 이사를 할 때에는 가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초기 복덕방은 밑을 여러 갈래로 가른 누런 삼베를 간판으로 사용했다. 누런 삼베는 수수해서 복이 잘 붙고 감이 질겨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며, 밑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은 것은 출입하기 편하다는 뜻에서 한 것이다. 복덕방은 대체로 노령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일로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거간노릇을 해주고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매매를 성립시킨 뒤 그 차액을 수수료로 얻었다.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각종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다양한 용도의 택지와 주택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복덕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점차 복덕방 간판은 ‘○○개발’ ‘○○개발공사’ 등 다양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중개 대상도 주택과 아파트뿐 아니라 전국의 상가·공장·빌딩·임야·레저시설 등으로 확대됐다.
 
이같은 복덕방의 확대·발전은 투기조장, 가격조작, 과다경쟁 및 불건전한 거래 유발과 선의의 피해자 발생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유발했고, 결국 규제의 필요성이 부각돼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됐다. 이후 복덕방이라는 말 대신 ‘○○부동산중개회사’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중개인영업소’ 등으로 표기하도록 규정됐다.
 
그리고 부동산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법인화, 종합대형화 추세로 부동산거래정보망과 함께 전국적인 체인 형성이 나타났고,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중개·거래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복덕방은 부동산 중개를 주로 했지만, 현재의 공인중개사무소,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중개뿐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분양, 관리, 개발, 신탁 등 전문적인 재산 상담 기능까지 하고 있다.

[당구장-이색레포츠]
 
볼링장, 당구장 등 마니아들의 스포츠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레포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볼링장에서 단순히 볼링만 치는 것에서 벗어나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볼링 실력을 떠나서 누구나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칙칙한 내부 인테리어를 벗고 야광으로 도배해 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돼 특히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다.
 
당구장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식 당구장이 눈길을 끈다. 카페 같은 당구장에서 수제버거와 커피를 들고 당구를 즐기는 곳이 있어 반응이 좋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금연 당구장이 늘어나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미녀 직원을 당구장에 다수 고용해 젊은 남성 고객을 유치하는 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미인 당구장’ 등장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동종업종 간 극심한 경쟁 탓에 탈선할 개연성은 언제든 있는 것이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화한 사랑의 메신저
편지 → PC → 스마트폰 → 이모티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 전화나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주 연애 방식이었지만, 통신이 발달되면서 PC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문화에 큰 혁명을 불러왔다.
 
이후 스마튼의 등장은 또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화 된 지 오래,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자’ 보단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하며 신속한 메시지 전달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만큼 스마트 세대의 연애법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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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