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8주년 특집대담> 한국정치사 산증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 '그가 말하는 정치는?'

"정치인들이여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라!"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혼돈', 최근의 대한민국 정치권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애도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선거, 여야 내부 권력재편기 등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까지 겹치며 정기권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비교적 짧은 시기 민주화를 달성한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기'는 여러 차례 있어왔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지금의 혼돈을 끝낼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창간 18주년을 맞이한 <일요시사>가 한국정치사의 산증인 이만섭(82) 전 국회의장을 만나 한국정치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승만정부~박정희정부 초기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정치현장에서 활약했다. 이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 공감해 의기투합하며 공화당 전국구 17번이라는 특혜를 받아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역대 대통령 공과
언론인터뷰 사상 '첫 평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중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한 그는 박 대통령이 장기집권 야욕을 드러낸 3선 개헌,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한 시기 강하게 반발하다 8년간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1979년 10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돼 원내에 복귀한 그는 이후 다섯 차례 더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8선 의원을 지냈다. 그 사이 제14·16대 국회에서는 정권을 달리해 국회의장을 두 번 지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 국회의장의 독립성 확보와 국회의원 개개인의 독자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국회법을 여러 차례 개정한 그는 직권상정, 날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으며 '소신 의장'의 본보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은 이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요?
▲ 나라가 어려운 때인 만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언론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몸을 아끼지 않고 나가서 조언, 쓴 소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도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당당히 떠나려 합니다.

-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전체가 비통에 빠져 있습니다. 이번 사고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학생들이 희생됐으니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꽃도 피우기 전에 이렇게 저세상으로 가, 저 같은 늙은이가 살아있다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그리고 이번 사고는 우리 어른들 모두가 학생들을 두고 대피한 선장의 입장으로 돌아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반국민들도 선장만큼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는 말씀인지요?
▲ 그렇습니다. 우리 기성세대 어른들 모두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의식과 도덕의식,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 세월호 침몰 이후 정부의 구조 과정에서 미흡했던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 어떻게 보셨는지요?
▲ 정부가 구조과정에 있어 컨트롤타워도 없이 갈팡질팡함으로써 유족은 물론 국민들께 많은 실망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국가적 안전시스템을 완전히 확립해 다시는 이런 우왕좌왕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하는데, 기구의 설립만으로 안전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 기성세대 어른 모두가 책임 통감해야"
"기구 설립만으로 안전보장 못해…사명·책임감 필요"

- 실제로 비슷한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며 관료의 경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 서해페리호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비슷한 사고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정부는 그 당시만 반짝 대책을 세웠다고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냥 넘어가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확고한 대책을 수립하고 관련기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총리가 사표를 냈으니 대폭 개각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계기로 정부가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새출발 해야 합니다.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치권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여야는 세월호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면 안 됩니다. 이를 정치싸움에 이용하면 국민들로부터 더 불신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례로 야당은 책임론을 물어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다가, 막상 그만 둔다고 하니 '왜 그만 두냐'고 말을 바꿨습니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세월호 사고는 여야 모두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안입니다.


- 박근혜정부에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 지금 국내·외적으로 나라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고, 한반도 정세도 굉장히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완급을 가려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안전에 대해 정부를 믿고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6·4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일어난 이번 세월호 참사 여파로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세월호 참사가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 보시는지요?
▲ 흔히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고 이번 사건으로 꼭 야당이 유리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여야 모두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특히 여야는 자숙이 필요한 시기 모두 지방선거 공천문제로 추태를 부렸는데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투표율이 역대 선거 중 가장 저조할 것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이러한 기류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데, 의장님께서 후배 의원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 이 사건이 나자 부랴부랴 국회에서 국가안전시스템 마련을 위한 법안, 민생법안 등을 급히 처리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래야 합니다. '여'든 '야'든 자신이 속한 정당보다 나라와 국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당 지도부는 강경파에 끌려 다녀선 안 됩니다. 강경파에 휘둘리면 당과 정권은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 당론을 존중하되 꼭 따르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지요?
▲ 헌법에는 국회의원이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당론을 결정할 때 의원들이 소신을 정확히 밝히고 자유 투표를 하도록 먼저 나서서 따져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정쟁 이용은 국민적 불신만 키우는 것"
"정당·정권, 강경파에 휘둘리면 망할 가능성 높아"

- 기나긴 정치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 1964년에 남북가족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안했는데, 그것이 결국 성사가 돼서 지금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있습니다. 또 같은 해 주한미군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한미행정협정(SOFA)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안해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고, 이것을 기초로 SOFA협정이 체결됐습니다. 덧붙이자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3선 개헌, 유신 등 장기집권 음모에 끝까지 반대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 본인의 정치사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시겠습니까?
▲ 국회의장을 2번 하는 동안 청와대의 무리한 요구를 끝까지 거절하며 국회의 권위를 지켰습니다. 구체적으로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통과시켜 달라는 법안들에 대한 직권상정, 날치기를 거절해 국회의 권위를 지켰습니다. 또 여야 치우치지 않고 국회를 공정하게 운영했다고 자부합니다.

- 국회선진화법이 마련돼 지금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아예 제한됐습니다.
▲ 선진화법을 재정할 당시 정의화 국회 부의장을 통해 여야 대표들에게 "선진화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저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역시 선진화법은 '후진화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회가 식물국회가 된 것이지요.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은 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장의 리더십으로 되는 것입니다.

- 의장님께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끈 역대 대통령들을 모두 제도정치권 현장에서 지켜보셨습니다. 현대정치사의 산증인으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의장님의 평가가 궁금합니다.
▲ 대통령을 못 해본 제가 전직 대통령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간략한 소감 정도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이승만 전 대통령은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을 통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 망명하는 신세가 됐지만, 그 분이 건국의 공로자라는 것은 우리가 인정을 해야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지막에 3선 개헌, 유신 등 장기집권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민족의 가능성을 개발한 조국 근대화의 업적은 모두가 인정해야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민주적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말년에 국가에 대한 미납추징금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해 국민의 미움을 받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다만 학원안정법을 보류하고 6·29선언을 수용한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도 내려주시지요.
▲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치에 있어서는 큰 업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외교에 있어서는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해서 남북 화해·협력을 모색한 것과 북방정책 추진으로 러시아·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와도 국교를 맺은 것은 잘한 일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문화를 청산하고 문민정치를 위해 애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 등을 통해서 남북 간 화해·협력을 시도한 것은 분명 역사에 남을 일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 돈이 개입됐다는 점은 옥에 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돈 안 드는 선거, 깨끗한 정치를 하기 위해 애쓴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10·4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에 NLL을 양보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가족들의 비행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역사적으로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강화외교에 치우친 나머지 대중외교를 소홀히 했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내곡동 사저 구입 과정에서 아들의 명의로 경호실과 공동으로 땅을 구입한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만 국가원로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민심의 동향을 알려고 했던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황이 없으실 텐데 기꺼이 <일요시사> 창간 18주년 특집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이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 무엇보다 뜻있는 젊은 기자들이 모여 정론직필에 힘쓰고 계시는 <일요시사>의 창간 1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날로 발전하는 정론지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보복이 없어져야 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 부분에 후배 정치인들이 유념한다면 한층 진일보한 정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arpediem@ilyosisa.co.kr>

 


<이만섭 전 국회의장 프로필>

▲ 제14·16대 국회의장
▲ 8선 국회의원(6·7·10·11·12·14·15·16대)
▲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
▲ 신한국당 대표서리
▲ 한국국민당 총재
▲ 민주공화당 원내총무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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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