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그라운드 떠난 박지성

아듀! 축구화 벗어도 ‘영원한 캡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25년간 그라운드를 누빈 ‘캡틴’박지성(33·PSV에인트호번)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그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은퇴와 동시에 결혼을 발표하며 앞으로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예고했다. 세계 최고의 명문팀에서 아시아 선수로서 이룰 것을 다 이룬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전설로 기록될 것이다.

 
‘캡틴’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선수생활 동안 모든 것을 불태운 사나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띄며 향후 거취를 설명했다. 지난 14일 오전, 박지성은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 및 결혼발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지성은 이날 아버지 박성종씨, 어머니 장명자씨와 함께 푸른 잔디 위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무릎이 문제
“미련없다”
 
마이크를 잡은 박지성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오늘은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라며 입을 연 박지성은 담담한 어투로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박지성은 “내 거취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며 “지난 2월부터 은퇴를 결심했다. 계속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다.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심정에 대해 박지성은 “은퇴에 대한 섭섭함이나 눈물은 없다. 아마 축구선수로서 미련이 남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선수 생활 동안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축구선수 박지성으로서 인생은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받은 사랑을 갚아나가는 인생을 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는 “우선은 유럽으로 건너가 휴식을 취할 것이다. 쉬는 동안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시즌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 임대돼 활약한 박지성은 원 소속팀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와 계약이 2015년 6월 만료된다. 올시즌 잉글리시 챔피언십리그(2부리그)서 3위로 시즌을 마친 QPR이 프리미어리그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 진출하며 ‘QPR이 승격하면 박지성이 QPR로 복귀할 것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박지성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확정했다.
 
박지성은 은사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나를 지도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한 분이라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대해 “히딩크 감독은 내게 월드컵과 유럽무대를 경험하게 해줬다. 퍼거슨 감독은 내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나란히 뛸 수 있도록 가르쳐줬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선수생활을 돌아보며 박지성은 “나는 뛰어난 테크니션은 아니었지만 남들보다 많은 활동량이 장점이었다. 내 장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뛰었다”고 말했다. 또 박지성은 “나는 부족함이 많은 선수였다. 내 커리어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이라고 말하면서 은퇴 순간에도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날 단상 앞에는 그의 역사와도 같은 유니폼 10벌이 전시돼 있었다. ‘세류국교’라고 가슴팍에 쓰여있는 세류초 유니폼에 이어 경기중, 수원공고, 명지대, 국가대표팀, 교토 퍼플상가, PSV에인트호번,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킌즈파크 레인저스, 그리고 다시 에인트호번. 박지성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 유니폼들이었다.
 
단상 왼쪽에는 그가 세류초에서 처음 신었던 검은색 축구화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아직 그라운드의 흙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주황색 축구화와 축구공이 놓여 있었다. 그가 에인트호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쓴 것들이었다. 박지성은 은퇴와 함께 결혼 소식을 알렸다. 박지성은 오는 7월27일 서울 W호텔에서 그동안 사랑을 쌓아왔던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른 은퇴에도
‘웃으며 안녕’
 

결혼에 앞서 박지성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일원으로 오는 22일 수원 삼성, 24일 경남FC와의 친선전에 출전해 국내 팬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이어 6월과 7월에는 2차례 자선경기를 치러 현역 시절과 다름없이 바쁜 나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일단 6월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글로라 붕카르노에서 자선 경기인 ‘아시안드림컵 2014’를 개최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 대회에서 박지성은 유명 초청 선수들과 팀을 이뤄 인도네시아 올스타팀과 대결한다.
 
25년 달린 ‘산소탱크’ 선수생활 마침표
한국축구 세계에 알려…‘전설’로 기록
 
7월25일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함께 K리그 선수들이 참여하는 여객선 세월호 추모경기를 연다. 이는 박지성이 그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뛰는 고별 경기가 될 예정이다. 박지성은 이 경기를 통해 마련된 기금을 세월호 희생자와 관련된 장학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이후 박지성은 축구 행정가를 위한 학업에 열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행정가를 꿈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한국 축구, 한국 스포츠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그때까지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이미 2012년 모교인 명지대에서 체육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상태다. 베트남·태국 등 아시아 곳곳에서 열어온 아시안 드림컵 역시 축구 행정가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왔다. 지난 10여년간 아시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데다 영어 실력도 능통해 박지성이 행정가의 길을 걷는다면 한국 축구 외교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지성은 “우선 해외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정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의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박지성은 부모님을 향해 “아버지는 선수생활을 더했으면 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부상 당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셔서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은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면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부모님이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그렇게 힘든 일을 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진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박지성의 은퇴 소식이 알려지자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이 현역에서 은퇴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올드트레포트에서 레즈 유니폼을 입고 205경기 27골을 넣은 박지성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은퇴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지성이 맨유에 있는 동안 프리미어리그 우승 4번, 3번의 리그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했다”고 언급하며 “맨유의 모든 사람들이 박지성의 건투를 빈다”고 전했다.
 
또한 SNS 트위터 계정에서도 “박지성의 미래에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있는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FIFA도 박지성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FIFA는 “한국 슈퍼스타 박지성이 은퇴했다”는 글에서 “박지성은 아시아 축구 선구자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가 커리어를 마감했다”고 전했다.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은 전남 고흥군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은 전남 고흥이지만 유년 시절부터 쭉 수원시에서 자랐다. 그가 축구화 끈을 처음 묶은 건 수원 영본초등학교 4학년 때다. 6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세류초가 준우승을 차지해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했다.
 
안용중, 수원공고를 거친 그는 명지대 김희태 감독의 눈에 들어와 명지대에 진학하게 된다. 2000년 잠시 휴학하고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엔(2000년 당시 한화 약 5억원)이라는 파격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다. 당시 J리그 진출은 황선홍 등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고참급 선수들만 가능했지만 박지성은 예외였다.
 
‘포스트 박’비상
공백 누가 메우나
 
박지성은 교토 퍼플상가에서 당시 동료들과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에는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팀의 첫 우승을 안기는 데 기여했다. 사실 이때 박지성과 교토 퍼플상가의 계약은 종료된 상태였다. 그러나 팀의 컵대회 우승을 위해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02년 한국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결승골 등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황태자로 거듭나며 이영표와 함께 ‘PSV에인트호번’의 부름을 받는다. 박지성은 3년6개월에 연봉 100만달러라는 계약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팀 동료들도 그의 부진한 활약을 꼬집을 정도였다. PSV에인트호번의 사령탑이었던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했다. 이후 차차 페이스를 되찾으면서 발군의 기량을 뽐냈고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듬해 정규리그 28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으며 부진을 만회했다. 
 
2004-05 시즌에도 리그 28경기에서 일곱 골을 넣어 우승에 일조했다. 2005년 5월4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AC밀란(이탈리아)을 상대로 넣은 선제골은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원동력이 됐다. 이후 박지성은 경기 때마다 종횡무진 활약했고 네덜란드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하기도 했다.
 
박지성을 괴룝혔던 PSV에인트호번 팬들도 야유가 아닌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박지성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리고 2005년 박지성을 눈여겨보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든 감독이 그를 영입했다. 박지성은 등번호 13번을 달고 맨유에 입단했다. 이듬해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신고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맨유에서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어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어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면서 출전했다. 그는 일곱 시즌을 뛰며 전성기를 보냈다. 프리미어리그 4회(2007, 2008, 2009, 2011년), 리그컵 3회(2006, 2009, 2010년), 커뮤니티 실드 3회(2008, 2009, 2012년), 챔피언스리그 1회(2008년),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1회(2008년) 우승을 함께했다.
 
2012년 2월6일 첼시와의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맨유 창단 이후 92번째로 2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통산 기록은 205경기 27골. 그의 성공을 계기로 잉글랜드에서 한국 선수들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낯선 유럽 리그를 친숙하게 만든 선봉장이다. 박주영(29·왓포드)을 비롯해, 기성용(25·선덜랜드), 이청용(26·선덜랜드), 지동원(23·아우크스부르크), 김보경(25·카디프시티), 윤석영(24·QPR) 등 열한 명이 프리미어리그를 거쳤다.

‘두 개의 심장’
제2의 축구인생
 
2012-13시즌 이적한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에서는 2부 리그 강등을 경험했으나 지난해 8월 친정팀 에인트호번에 임대로 이적한 뒤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전성기를 지난 데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지난 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25경기에서 2골 5도움을 올려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따는 데 기여했다.
 
은퇴와 동시에 결혼 발표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
 
역대 한국 국가대표 가운데 월드컵에 세 차례(2002, 2006, 2010년) 출전해 모두 골을 넣은 선수도 박지성이 유일하다. 4년 전 남아공 대회에서는 주장을 맡아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일조했다. 대표팀 100경기에서 열세 골을 넣은 그는 센추리클럽 가입과 함께 2011년 1월31일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박지성은 미드필더로 넓은 행동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를 갖고 있는 선수였다. 양쪽 측면에서 모두 뛸 수 있었던 건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을 다루는 경합 상황에서도 높은 집중력과 뜨거운 근성을 보였다.
 
특히 공간을 잘 활용하는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차례 칭찬하곤 했다. 맨유 시절에는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과 수비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개척하기도 했다. 패싱력 또한 준수해 팀의 승리를 위해 항상 헌신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다.
 
박지성은 지금껏 유럽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알렸다. 그는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국외의 시선을 바꿔놓은 대표적인 선수다. 박지성은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 축구와 팬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 그라운드를 떠난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khlee@ilyosisa.co.kr>
 
 
[박지성 족적]
 
▲전남 고흥 출생
▲수원공고 졸업
▲명지대학교 졸업

<프로>
▲2000∼2002 교토퍼플상가
▲2002∼2005 PSV에인트호번
▲2005∼2012 맨체스터유나이티드
▲2012∼퀸즈파크레인저스
▲2013∼2014 PSV에인트호번 임대

<국가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2011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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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