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시계를 그날로 되돌린다면…결정적 순간 '7'

안 일어나야 할 사고가 일어났다

[일요시사=사회팀] 박민우 기자 = 174명.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된 인원은 지금도 그대로다. 점점 실종자는 줄고 사망자는 늘고 있다. 참담할 따름이다.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 머릿속엔 '만약 그때 그랬다면…'이란 가정이 떠나질 않는다. 결정적 순간들, 세월호 시계를 '그날, 그때'로 되돌려봤다.

대한민국이 패닉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상당 시간이 흘렀지만, 사고 원인과 침몰 과정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가 아직도 '멘붕'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 일어나도 될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날, 그때 출발하지 않았다면…

승객과 선원 등 총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인천을 떠난 것은 15일 오후 9시께. 당초 이날 오후 6시30분 출발 예정이던 세월호는 안개로 인해 2시간30분이 지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밤새 순조롭게 운항해 전남 진도군 해상에 도착한 세월호는 오전 8시55분께 긴급한 구조요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머리 바닥만 간신히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선체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겼다.

당시 이날 안개 속에 인천항을 떠난 배는 세월호가 유일하다. 유족들은 안개가 심한데도 왜 운항을 강행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운항을 취소했어야 맞다는 것. '그날, 그때 출발하지 않았다면…'이란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 들어섰을 때도 안개는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해경은 "세월호가 사고해역에 도달했을 당시 시정거리가 1마일(1852m)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짙은 안개를 무시한 무리한 운항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간이라도 과감히 중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무리한 출항을 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사고 3주 전에도 안개 속에서 여객선 충돌 사고를 낸 적이 있다.


② 그날, 그때 선장 바뀌지 않았다면…

청해진해운은 사고 직후 "이준석 선장은 4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이 선장은 인천∼제주 항로를 24번 운항한 경험이 있다"고 확인했다. 세월호는 2명의 선장이 있다. 당초 신모 선장이 운항할 예정이었으나, 신씨가 사고 다음날인 지난 17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휴가여서 대신 이 선장이 키를 잡았다. 이 선장은 신 선장보다 선배다.

패닉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전히 멘붕


그런데도 유독 이 선장에게 화살이 쏠리는 것은 사고 이후 처신 때문이다. 이 선장은 승무원들과 함께 일반 승객들이 다 대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배를 버렸다. 이는 명백한 선원법 위반이란 지적이다. 선원법 10조(재선의무)를 보면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

다만 기상 이상 등 특히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 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장이 자신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을 직원 중에서 지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선박 위험 시 조치를 다룬 11조에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선장은 인명구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다. 실제 세월호 1차 구조자 명단엔 이 선장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있다. 더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선장은 탈출 후 진도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동안 병상에서 바닷물에 젖은 현금을 말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만약 이 선장이 승객 탈출에 앞장섰더라면 이처럼 큰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③ 그날, 그때 항로 변경 않았다면…

세월호는 안개로 출발이 지연된 만큼 도착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이를 두고 항로 이탈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가 예정보다 늦게 출항하면서 입항 시간을 맞추려고 평소 다니던 항로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지점이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이라며 "이는 진도 남쪽으로 돌아가는 해도상의 인천-제주 권고항로를 벗어난 항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항로는 선박들이 운항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항로"라고 덧붙였다.

권고항로란 특별한 법적근거는 없지만 선박의 교통질서 확립과 선박 통항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권고하는 항로로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한다. 권고항로를 벗어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선박들은 권고항로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 측도 항로 이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한 결과 정상적인 안전항로를 크게 이탈한 걸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④ 그날, 그때 화물 잘 실었다면…

사고 원인을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월호가 기울 때 내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옆으로 쓰러져 침몰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세월호는 적재량 이상의 화물을 실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차량 적재기준은 승용차 88대, 화물차(대형트럭) 60대, 컨테이너(10피트) 247개만 실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승용차, 대형 트레일러, 굴착기 등 180대를 포함해 화물 3608톤을 실었다. 세월호는 출항 직전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해경에 신고했다. 컨테이너는 싣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컨테이너 수십 개가 실려 있는 것도 확인됐다.

선박에 화물을 고정시키는 고박 상태도 허술했다. 해경 수사결과 전문가가 현장에 배치되지 않았고, 장비 역시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외줄로 고정하는가 하면 바퀴 고정용 목틀은 2개만 사용했다. 컨테이너는 쇠줄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진 끈으로 고정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구나 세월호는 마지막 짐을 실은 지 3분 만에 출항했다. 그만큼 적재상태 확인이 불량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는 화물 적재 기준보다 3배 이상 많은 화물을 실었다. 이는 평형수 문제로 넘어간다. 배 아래쪽에 있는 평형수는 배가 중심을 잡고 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물이 턱없이 모자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평형수를 적게 채워 복원성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박이 급회전한 뒤 복원력을 잃고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침몰했다는 지적이다.


⑤ 그날, 그때 탈출 방송했다면…

세월호 사고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객실에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다. 세월호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란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어 배가 기울어도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란 방송으로 승객들의 이동을 막았다.

자체 수습을 시도한 정황으로 판단되는 이 대응은 결과적으로 승무원들의 판단 미스였다. 승객들이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수습만 하려다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물이 들어오면 퍼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장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장은 승객들을 급히 대피시켜야 할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보통 선장은 배에 문제가 생기면 승객들을 구명보트 등이 있는 데크(갑판)로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승무원들은 사고 직후 "밖으로 나가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라. 객실에 있어라"란 내용의 안내방송을 하다가 약 30분 뒤에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을 했다. 선체가 기울자 뒤늦게 대피령을 내린 것이다. 지체된 대피로 실종자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못했고, 이미 물이 들어와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렸다.


⑥ 그날, 그때 제때 신고했어도…

신고만 빨리했어도 구조가 수월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사고 당일 목포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최초 사고 신고 시각은 오전 8시58분. 그런데 현지 어민들에 따르면 신고 시각 1시간여 전부터 세월호가 바다에 정지해 있었다고 한다. 한 어민은 "바다에서 그 배를 처음 본 것은 7시∼7시30분쯤이었다"며 "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는데 그때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어민의 말대로라면 세월호는 사고 현장에서 1시간여 동안 머물다 8시30분 이후부터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최초 신고는 사고 선박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이 한 게 아니다. 단원고 한 학생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해경은 "조난신고는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조난신고가 사고 발생보다 1시간 이상 늦어졌다면 그만큼 구조작업도 지체됐다는 얘기가 된다. 승무원들이 직접 조난신고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최소한 10여분을 벌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세월호는 사고가 일어난 진도 해상에서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하지 않았다. 제주VTS에 연락했다. 다시 제주VTS는 진도VTS에 연락했고, 어렵게 진도VTS와 세월호가 교신할 수 있었다. 이 사이 10여분이 소요됐다. 10분이면 승객들이 데크로 대피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⑦ 그날, 그때 오판만 안 했어도…

일분일초를 다투며 진행된 구조작업은 2시간 동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탑승자 476명 가운데 174명만 구조됐다. 조난 신고가 접수된 건 8시58분. 여객선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11시30분쯤이다. 이에 따라 2시간이나 있었는데 왜 모두 구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정부의 우왕좌왕한 모습도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처음 배가 그대로 버틸 것으로 오판했다. 구조에 나선 해경과 해군도 눈에 보이는 승객만 구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2시간 후 침몰했고, 내부에 갇힌 승객들은 모두 실종됐다.

게다가 정부는 구조 첫날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잠수부 182명을 확보했지만 3차례에 걸쳐 각각 6명, 6명, 4명만 투입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pmw@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