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시계를 그날로 되돌린다면…결정적 순간 '7'

안 일어나야 할 사고가 일어났다

[일요시사=사회팀] 박민우 기자 = 174명.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된 인원은 지금도 그대로다. 점점 실종자는 줄고 사망자는 늘고 있다. 참담할 따름이다. 유족들은 물론 국민들 머릿속엔 '만약 그때 그랬다면…'이란 가정이 떠나질 않는다. 결정적 순간들, 세월호 시계를 '그날, 그때'로 되돌려봤다.

대한민국이 패닉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상당 시간이 흘렀지만, 사고 원인과 침몰 과정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가 아직도 '멘붕'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 일어나도 될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날, 그때 출발하지 않았다면…

승객과 선원 등 총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인천을 떠난 것은 15일 오후 9시께. 당초 이날 오후 6시30분 출발 예정이던 세월호는 안개로 인해 2시간30분이 지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밤새 순조롭게 운항해 전남 진도군 해상에 도착한 세월호는 오전 8시55분께 긴급한 구조요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머리 바닥만 간신히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선체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겼다.

당시 이날 안개 속에 인천항을 떠난 배는 세월호가 유일하다. 유족들은 안개가 심한데도 왜 운항을 강행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운항을 취소했어야 맞다는 것. '그날, 그때 출발하지 않았다면…'이란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 들어섰을 때도 안개는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해경은 "세월호가 사고해역에 도달했을 당시 시정거리가 1마일(1852m)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짙은 안개를 무시한 무리한 운항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간이라도 과감히 중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무리한 출항을 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사고 3주 전에도 안개 속에서 여객선 충돌 사고를 낸 적이 있다.


② 그날, 그때 선장 바뀌지 않았다면…

청해진해운은 사고 직후 "이준석 선장은 4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이 선장은 인천∼제주 항로를 24번 운항한 경험이 있다"고 확인했다. 세월호는 2명의 선장이 있다. 당초 신모 선장이 운항할 예정이었으나, 신씨가 사고 다음날인 지난 17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휴가여서 대신 이 선장이 키를 잡았다. 이 선장은 신 선장보다 선배다.

패닉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전히 멘붕


그런데도 유독 이 선장에게 화살이 쏠리는 것은 사고 이후 처신 때문이다. 이 선장은 승무원들과 함께 일반 승객들이 다 대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배를 버렸다. 이는 명백한 선원법 위반이란 지적이다. 선원법 10조(재선의무)를 보면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

다만 기상 이상 등 특히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 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장이 자신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을 직원 중에서 지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선박 위험 시 조치를 다룬 11조에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선장은 인명구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다. 실제 세월호 1차 구조자 명단엔 이 선장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있다. 더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선장은 탈출 후 진도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동안 병상에서 바닷물에 젖은 현금을 말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만약 이 선장이 승객 탈출에 앞장섰더라면 이처럼 큰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③ 그날, 그때 항로 변경 않았다면…

세월호는 안개로 출발이 지연된 만큼 도착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이를 두고 항로 이탈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가 예정보다 늦게 출항하면서 입항 시간을 맞추려고 평소 다니던 항로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지점이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이라며 "이는 진도 남쪽으로 돌아가는 해도상의 인천-제주 권고항로를 벗어난 항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항로는 선박들이 운항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항로"라고 덧붙였다.

권고항로란 특별한 법적근거는 없지만 선박의 교통질서 확립과 선박 통항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권고하는 항로로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한다. 권고항로를 벗어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선박들은 권고항로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 측도 항로 이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한 결과 정상적인 안전항로를 크게 이탈한 걸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④ 그날, 그때 화물 잘 실었다면…

사고 원인을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월호가 기울 때 내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옆으로 쓰러져 침몰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세월호는 적재량 이상의 화물을 실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차량 적재기준은 승용차 88대, 화물차(대형트럭) 60대, 컨테이너(10피트) 247개만 실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승용차, 대형 트레일러, 굴착기 등 180대를 포함해 화물 3608톤을 실었다. 세월호는 출항 직전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해경에 신고했다. 컨테이너는 싣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컨테이너 수십 개가 실려 있는 것도 확인됐다.

선박에 화물을 고정시키는 고박 상태도 허술했다. 해경 수사결과 전문가가 현장에 배치되지 않았고, 장비 역시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외줄로 고정하는가 하면 바퀴 고정용 목틀은 2개만 사용했다. 컨테이너는 쇠줄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진 끈으로 고정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구나 세월호는 마지막 짐을 실은 지 3분 만에 출항했다. 그만큼 적재상태 확인이 불량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는 화물 적재 기준보다 3배 이상 많은 화물을 실었다. 이는 평형수 문제로 넘어간다. 배 아래쪽에 있는 평형수는 배가 중심을 잡고 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물이 턱없이 모자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평형수를 적게 채워 복원성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박이 급회전한 뒤 복원력을 잃고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침몰했다는 지적이다.


⑤ 그날, 그때 탈출 방송했다면…

세월호 사고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객실에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다. 세월호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란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어 배가 기울어도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란 방송으로 승객들의 이동을 막았다.

자체 수습을 시도한 정황으로 판단되는 이 대응은 결과적으로 승무원들의 판단 미스였다. 승객들이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수습만 하려다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물이 들어오면 퍼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장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장은 승객들을 급히 대피시켜야 할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보통 선장은 배에 문제가 생기면 승객들을 구명보트 등이 있는 데크(갑판)로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승무원들은 사고 직후 "밖으로 나가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라. 객실에 있어라"란 내용의 안내방송을 하다가 약 30분 뒤에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을 했다. 선체가 기울자 뒤늦게 대피령을 내린 것이다. 지체된 대피로 실종자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못했고, 이미 물이 들어와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렸다.


⑥ 그날, 그때 제때 신고했어도…


신고만 빨리했어도 구조가 수월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사고 당일 목포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최초 사고 신고 시각은 오전 8시58분. 그런데 현지 어민들에 따르면 신고 시각 1시간여 전부터 세월호가 바다에 정지해 있었다고 한다. 한 어민은 "바다에서 그 배를 처음 본 것은 7시∼7시30분쯤이었다"며 "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는데 그때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어민의 말대로라면 세월호는 사고 현장에서 1시간여 동안 머물다 8시30분 이후부터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최초 신고는 사고 선박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이 한 게 아니다. 단원고 한 학생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해경은 "조난신고는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조난신고가 사고 발생보다 1시간 이상 늦어졌다면 그만큼 구조작업도 지체됐다는 얘기가 된다. 승무원들이 직접 조난신고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최소한 10여분을 벌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세월호는 사고가 일어난 진도 해상에서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하지 않았다. 제주VTS에 연락했다. 다시 제주VTS는 진도VTS에 연락했고, 어렵게 진도VTS와 세월호가 교신할 수 있었다. 이 사이 10여분이 소요됐다. 10분이면 승객들이 데크로 대피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⑦ 그날, 그때 오판만 안 했어도…

일분일초를 다투며 진행된 구조작업은 2시간 동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탑승자 476명 가운데 174명만 구조됐다. 조난 신고가 접수된 건 8시58분. 여객선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11시30분쯤이다. 이에 따라 2시간이나 있었는데 왜 모두 구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정부의 우왕좌왕한 모습도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처음 배가 그대로 버틸 것으로 오판했다. 구조에 나선 해경과 해군도 눈에 보이는 승객만 구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2시간 후 침몰했고, 내부에 갇힌 승객들은 모두 실종됐다.

게다가 정부는 구조 첫날 구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잠수부 182명을 확보했지만 3차례에 걸쳐 각각 6명, 6명, 4명만 투입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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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