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승부수 던진 정몽준

“박원순 나와!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서울시장>

[일요시사=사회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MJ’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경선은 이혜훈 최고위원, 김황식 전 총리와 맞붙는 ‘빅3 매치’가 됐다. 현재로선 MJ가 여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꼽히는 상황.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연대는 악재다. 야권 강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대결을 펼칠 경우 뜨거운 박빙이 예상된다. 정치적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로 27년 정치생활을 마감하게 될지 아니면 차기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지난 2일, 백범광장 김 구 선생의 동상 앞에서 ‘MJ’가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졌다. 공식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여권경선은 이혜훈 최고위원, 김황식 전 총리와의 3자 구도 윤곽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싼 안개가 걷히면서 대결윤곽이 분명해졌다. 사실 MJ는 올해 초부터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길어진 장고에 간만 본다는 흉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MJ는 자신의 지역구민들과 산행을 하는 등 지역구 의사를 경청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서울시장선거에 나서기 위한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이제부터 6·4지방선거 서울시장 탈환을 위한 레이스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당선되면 ‘대박’
낙선하면 ‘쪽박’

앞서 MJ는 지난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제 고민 끝 행복 시작”이라며 당찬 시작을 예고했다. 이어 서울 우의동의 경전철 공사현장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에게 “요즘 서울은 다소 침체하고 있다. 서울을 살고 싶은 도시, 사랑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출마 배경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주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주택정책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이 교통정책”이라면서 주택문제와 교통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것임을 시사했다.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MJ는 경쟁 후보로 거론되는 김황식 전 총리에 대해서는 “김 전 총리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서 언급을 피했다. 이미 출마선언을 한 이혜훈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저든 이 최고위원이든 시장이 되면 서울시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을 마친 뒤 귀국해 10일 이후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거론되고 있는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MJ 35.4%, 김황식 전 총리 25.2%, 이혜훈 최고위원이 7.5%를 보이고 있다.

차기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MJ는 만약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임기 중 대선과 겹치게 된다. 이와 관련, MJ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의원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서울시장 도전이 코앞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원론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MJ가 과거부터 대권도전 의지를 나타냈기 때문에 서울시장에 당선되더라도 2017년 대선이 다가오면 결국 태도를 바꾸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MJ 측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관계자는 “다음 대선은 포기하고 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는 것은 물론 연임까지 이뤄 내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권 포기는) 정치인 개인 커리어로 놓고 볼 때는 손해일 수밖에 없지만 나이로 보나 현재 여당 인물군으로 보나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MJ는 현역 의원 중 최다선인 7선 의원이다. 2002년 대선 후보였던 전력을 감안하면 서울시장에 뛰어든 것은 하향 지원인 셈이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여당과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선택인 것으로 풀이된다. MJ 측 핵심 관계자는 “6·4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은 물론 향후 새누리당의 주도권에 중대한 분기점”이라며 “경선을 거쳐 본선인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과의 대결에서 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지율 상승세
“승산 있을 것”

홍준표 경남지사는 MJ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박 시장과 겨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MJ가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려운 지역구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됐기 때문에 이같이 전망했다.


그러나 박 시장에 앞서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이혜훈 최고위원이다. 인물 이혜훈보다는 그의 질문이 문제다. 이 최고위원은 줄곧 “대선을 나갈 사람이 서울시장 선거를 나오면 안 된다. 나올 거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해왔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 “일단 대선은 다음에”
정치생명 건 한 수…여야 양자대결 흥미진진

이와 관련해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실제로 대권 후보 경쟁에서 이탈하는 것. 둘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당면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후 대선이 다가왔을 때 적당한 핑계를 대고 다른 결심을 하는 것. 셋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고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것 등이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길을 택할 경우 유력한 차차기 대권주자가 될 수도 있지만 4년 후의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두 번째 길을 택할 경우 대선전에서 약점이 하나 생겨버린다. 세 번째 길을 택할 경우엔 당면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약점이 생기게 된다.

사실 MJ는 대중적 인지도와 폭넓은 인기를 자랑하지만 재벌가 출신이라는 약점이 있다. 여기에 다른 약점까지 만들게 된다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부 경쟁자는 이 최고위원만 있는 게 아니다. 다음 경쟁자는 김황식 전 총리다. 일각에서는 박심이 김 전 총리를 향해 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박심은 ‘필승 인물’을 찾는 것 뿐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방선거 결과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 역설적으로 청와대인 것 같다”며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밀린다고 보고 필사적이다”라고 증언한다.

여권에서 현실적으로 서울시장 본선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이 최고위원보다는 MJ와 김 전 총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결국 두 사람의 경선은 ‘재벌가 인사’라는 MJ의 약점과 ‘이명박 정부 사람’이라는 김 전 총리의 약점 중 어느 것이 일반 대중에게 더 악영향을 미칠지를 판별해보는 장이 될 것이다. 이 평가를 거쳐야만 고대하던 서울시장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마지막 경쟁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만만하지 않은 상대다.

지난 25일 MBC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단일후보로 내세울 경우를 가정한 양자대결에서는 박 시장이 41.9%, MJ가 40.7%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MJ는 박 시장을 겨냥해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등 활기가 떨어지면서 걱정”이라며 “(박 시장은) 말로만 서민을 이용하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새누리당 출신으로서 (MJ의) 이런 말씀, 정말 시민들에게는 모독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반박했다.

사실 MJ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패배할 경우 차기 대권가도와 더불어 정치인생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지신탁제도…
돈이냐 권력이냐


그러나 MJ가 친박 주류의 지지를 받고 경선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MJ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이다. MJ와 박 대통령은 장충초교 동창이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냈지만 둘은 1964년 2월 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기동창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양재 테니스클럽에서의 교류였다. 사적으로는 친밀해 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과거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던 박 대통령을 향해 미생지신(고지식함을 빗댄 표현)이란 고사성어까지 인용해 비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고 공언한 MJ가 소신을 바꿨다며 판단력에 오류가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결국 MJ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는 MJ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내 경선이 치열해질수록 둘의 관계는 더 멀어졌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MJ는 지난 2011년 8월 펴낸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사례를 소개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2009년 9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 취임 후 박 대통령과 국회 커피숍에서 회동한 적이 있다.

회동 후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10월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박 대통령)가 선거를 도울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MJ는 “박 전 대표도 마음속으로 우리 후보들이 잘되기를 바라시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현대중공업 지분 문제 부각
‘백지신탁’그룹 지배력 상실


당시 보도가 난 후 MJ는 박 대통령의 항의 전화를 받았고,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는 바람에 민망했다”고 회고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일화가 더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친박 주류에서는 용꿈을 꾸고 있는 MJ가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할 경우에 발생할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고 있다. 잠룡 속성상 현직 대통령과 마찰이 잦을수록 지지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사소한 충돌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빅매치를 앞두고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MJ가 보유한 지분에 대한 백지신탁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백지신탁제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 있는 주식을 처분하거나 대리인에게 위탁하고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주식은 717만7769주(지분율 10.15%)로 26일 종가기준 약 1조6186억원에 달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공직자윤리법 주식백지신탁제도에 따라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 보유주식은 매각하거나 백지신탁 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 평가액이 총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취임 1개월 내에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직무 관련성은 안전행정부 산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현대중공업은 본사가 울산에 위치해 있고 선박·건설기계 제조 등 수출위주 업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서울시와의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룹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와 하이투자증권, 호텔현대 등은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MJ 측은 내심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길 바라는 눈치다. 그는 지난달 말 방미 일정 이후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재산이 50조인 블룸버그 전 시장도 심사를 받았지만 직무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만약 주식을 전량 매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를 중심으로 한 현대중공업의 지배구조도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에 대한 주식 증여도 불가능하다. 공직자 윤리법은 직계존속의 주식도 백지신탁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MJ가 보유 지분을 그룹 내 비영리 재단에 증여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2.65%와 0.6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긴장하는 정치권
뚜껑 열어봐야…

MJ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맞선 노무현 대통령과 단일화에 나섰다가 결국 대통령후보 경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성급한 행보 때문에 높았던 국민적 지지도가 반토막나는 시련을 겪은 바 있다.

추락한 지지율은 울산에서 서울 동작구로 지역구를 옮기고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다시 정상궤도로 올렸다. 더 큰 정치적 모험을 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는 평도 나온다. 그가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과거와 달리 진중하고 무거워 보인다.

MJ의 핵심관계자는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2022년에도 기회가 온다면 그때 대권에 나서는 가능성까지 닫아둘 이유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변화는 MJ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는 출마를 결심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장으로서 일할 기회가 생기면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말을 통해 시정에 대한 지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88올림픽과 월드컵 때 서울이 많이 발전했고 서울이라는 브랜드가 알려졌지만 요즘의 수도는 다소 침체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서울이 단지 일자리가 있어서 사는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도시, 사랑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도시개조·주택환경 개선·교통정책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 서울시장에 나서는 그의 포부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정몽준 의원은?]

▲부산 출생
▲중앙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 학사, M.I.T경영대학원 석사, 존스홉킨스대학교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대한축구협회 회장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FIFA 명예 부회장
▲제13∼19대 국회의원(7선)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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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