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설의 ‘마장동 괴담’ 추적

고기 사이에 사람 매달아 포를 뜬다고?

[일요시사=사회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일반 시장과 다르게 조직폭력배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과거 조폭들은 시장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받았지만 마장동은 예외였다고 한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기 때문에 조폭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후문. 상인을 위협하던 조폭이 되레 복부에 칼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소문들은 진실일까.
 

흔히 ‘마장동’ 하면 우시장을 떠올리게 된다. 마장동 우시장은 대표적인 축산물 시장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물 도매시장은 수도권에서 유통되는 고기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개가 넘는 점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우만 취급하는 한우전문 시장으로 알려진다. 고기 맛을 아는 고기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마장동에는 싸한 괴담이 존재한다. 시장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요구하던 조폭들이 마장동 상인들의 칼에 사망하는 등 조폭들이 이곳에서는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상인들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심상찮은
동네 공기

조폭들은 시내 이곳저곳의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보호비를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그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마장동 괴담에 따르면 과거 1980∼90년대, 마장동에서 보호비와 세금을 요구하던 조폭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수십 번이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칼로 시작해 칼로 끝나는 일상에 마장동 상인들에게 칼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 이런 상인들 앞에서는 제 아무리 이름난 조폭이라 해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1982년, 한 조폭이 12cm 단검을 들고 한 상인을 위협했다. 그러자 상인은 아주 태연히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냐?”라며 조폭의 복부에 칼을 꽂았다고 한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간 칼을 잡고 고기를 썰어온 축산시장 상인들이 조폭보다 칼을 더 잘 쓰고, 온갖 동물들을 도축하는 거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조폭 따위는 겁내지도 않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 그런데 사실 조폭들이 은퇴 후 고깃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는 사진을 함부로 찍을 수 없다. 찍더라도 상인 얼굴은 나오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것. 이름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례로 모 방송국에서 고기소비 장려를 위해 이곳에서 일일 봉사체험을 하면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실제 발골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형기술자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 아이돌그룹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돼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과거보단 나아진 상태지만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장동에서는 소 한마리당 몇 그람 나오지도 않는 희귀 부위도 구할 수 있다. 마장동 상인들의 칼 솜씨는 달인 수준이다. 

마장동 상인들은 칼만 잘 다루는 게 아니다. 고기 다루는 노동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활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힘으로 유명해 ‘임꺽정’으로 불리는 남모(34)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힘의 제왕으로 알려진다. 지난 8년간 출전한 팔씨름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경험이 없다. 작업장에서 매일 몸집만한 고기를 옮기기 때문에 근육이 붙지 않을 수 없다. 전부는 아니지만 마장동 상인들 대부분은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칙칙할 거라고 생각했던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현대식으로 진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봤다. 시장 입구는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 입구에는 순대와 족발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보니 오로지 고기로만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낯선 모습이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간판 대부분은 ‘○○축산’ ‘○○상회’ ‘○○식품’ ‘○○유통’ 등이었다. 판매하는 건 축산시장답게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전부였다. 가게 앞에는 갈색 대형고무다라가 즐비했다. 그 안에는 소와 돼지의 각종 부산물이 가득했다.

소는 천엽, 생간, 소머리 등이었고 돼지는 곱창, 막창 등이었다. 특히 선지를 만들기 위해 피를 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덩어리진 피를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바닥 곳곳에는 군데군데 피로 얼룩져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칼갈이로 칼을 갈고 있었다.


칼 갈면서
주검 기다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양반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인들의 리어카에는 소의 머리가 가득했다.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내 머리 잘린 소의 주먹만 한 눈과 마주쳤다. 잘린 머리에는 핏기가 가득했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평소 즐겨먹던 소머리국밥이 떠오르면서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당황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이곳 광경을 바라보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장동 상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저 과업의 일부다. 소와 돼지의 주검을 옮기는 상인들의 몸짓과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과거 상인들 칼솜씨에 조폭도 찍소리 못해 
축산시장 맴도는 무서운 소문들…진실은?

대부분의 가게는 깔끔하게 포장한 한우를 앞세우고 있었다. 간간이 호객행위도 있었다. “삼촌 뭐 찾아? 일루와 맞춰줄게” “아들 소야 돼지야? 선물하게?” “멀리 가지 마시고 구경하고 가요. 막 잡았어요.”

붉은 앞치마를 두른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고기를 나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칼로 고기를 다듬거나 기계로 고기를 자르거나 고기 덩어리를 옮기거나 부산물을 분리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장 길을 쭉 걸어가다 보니 매우 낯선 부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모(72) 할머니는 작은 공간에서 소 부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 봉투에 담긴 쭈글쭈글한 부위가 궁금했다. 한 봉지에 1000원, 핏기가 가득했다. 도대체 무엇일까. 장 할머니는 ‘소골’이라고 했다. “소골이여 소뇌라고, 삶아도 먹고 소골탕으로도 먹어” ‘소뇌를 먹는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는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맞았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차량 통행량에 놀랐다.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 화물차, 택배차량이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었다.

주부 박모(52)씨는 인근에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자주 들른다. 다른 곳보다 최소 20% 정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우’라서 더욱 마음에 든다. 가계부담도 적을 뿐더러 먹자골목에서 먹는 고기 맛이 꿀맛이기 때문에 자주 찾는 편이다. 특히 부드러운 채끝살과 등심을 추천한다고.
 

 박씨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웬만하면 마장동에서 구매한다”면서 “먹어보면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질 좋은 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현재 도축장은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서울에서 사라지고 도·소매가 중심을 이룬다.

서울 동부지역의 명물인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여개 이상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으며 종사원 숫자만 해도 1만여명에 달한다. 연간 유동인구는 200만여명에 이른다. 단일 육류시장으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로 알려진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부천, 안성, 안양, 음성 등지에서 도축된 소와 돼지가 들어온다. 보통 오후에 경매가 이뤄지는데 당일 오후와 다음날 새벽에 두 번에 걸쳐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배달된다.

배달된 소와 돼지는 바로 부위별 해체작업을 시작한다. 해체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명칭은 식육처리기능사지만 마장동에서는 ‘정형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마장동’은 말목장이라는 뜻으로 목장 맞은편이라는 뜻의 면목동, 목장 안 넓은 들판이란 뜻의 장안평, 암말을 기르던 동네라는 뜻의 자양동이 그 예다.

시대에 발맞춰
개방형으로 변화

이렇게 말목장이 있던 곳에 도축장이 들어서면서 우시장이 만들어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난 1963년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루 평균 한우 800∼1000마리, 돼지 2000여 마리가 도축돼 취급되며,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도축장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축산물시장은 여전히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국내 최대규모의 육류시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양마장, 도축장, 우시장, 고기 도매상,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발전해 온 역사의 궤적이 있다.


수도권 물량 60∼70% 담당 ‘축산물 메카’
거친 모습 지우고 현대화로 이미지 개선

하지만 1998년 도시개발로 인해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 마장동 도축장의 역사는 35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2000여개 고기 도매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특유의 비린내와 어둡고 지저분한 분위기, 주차난 탓에 외면을 받아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성동구는 지난 2004년 23억원을 들여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1년여간 정비했다. 이름도 우시장에서 축산물시장으로 바꿨다. 이후 상당부분 현대식 시장으로 변모했다. 전기·통신시설, 하수관로 등 기반설비도 정비했다. 또 소방도로를 만들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의 화재위험을 예방했다.


 571m의 중앙통로에 천막 지붕을 세워 비나 눈이 와도 시민들이 편리하게 고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시장 특성에 맞춰 가게 양 끝에 붉은색 차광막을 덧댔다.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진열할 수 있는 냉장 쇼케이스를 설치하고, 간판도 규격화해 한층 깔끔해진 시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유통환경에 발맞추고자 신선도는 물론 축산물 ‘3정 운동’(정품·정량·정찰제), 반품과 교환이 가능한 소비자센터 운영, 무료시식회, 명절맞이 합동세일, 축산물시장 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하철 2호선 용두역과 5호선 마장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시장의 입구는 북문, 서문, 남문 총 3군데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전국의 축산농가에서 매시간 배송되는 축산물과 수입육을 취급한다. 원산지와 가격표시가 의무화 되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고기를 고를 수 있다.

한우 꽃등심 1++등급의 가격이 100g 당 8000원, 삼겹살 100g 당 1500원 정도로 시중 마트보다 저렴하다. 이외에도 치맛살, 살치살, 안창살 등 각종 특수부위를 취급하고 있어 취향별로 다양한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

모든 가게에는 ‘한우 모듬’ 세트가 있다. 4인 기준으로 10만원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은 구성이다. 그리고 차돌박이, 생간, 천엽 등은 그냥 서비스로 준다. 보통 매장에서 고기를 구매하고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을 내고 식사를 한다. 여러 정육점이 함께 운영하는 직영식당은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상차림비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정도다. 식당은 대개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비린내 진동하는
서민들 삶의 터전

과거에는 마장동 사람이 80% 외지인이 20%였지만 요즘엔 입소문을 타 외부인의 발걸음이 80%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활기를 잃어가는 일반 시장과 달리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상인들의 서비스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내 한 매장을 운영하는 이모(33)씨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 서비스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믿고 먹을 수 있는 신선한 고기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좋은 한우 고르는 법
“등급에 속지 마세요”

보통 한우는 특별한 날 먹는다. 고기의 질이 좋은 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우라고 무턱대고 먹는 건 곤란하다. 등급을 자세히 살펴야 한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급을 먹어야 한우를 제대로 먹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정형사(쇠고기 발골)들에 따르면 한우는 등급이 전부가 아니다. 보통 한우의 등급은 A, B, C, D 등급으로 나뉜다. A는 고기의 함량이 많다. B는 고기와 지방이 적절히 섞여 있다. C는 지방의 함량이 살짝 더 많다. D는 등외로 육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등급은 다시 ++, +, 1, 2, 3으로 나누어진다. 소비자들이 고기를 선택할 때는 B와 C도 괜찮다고 한다. 무조건 등급에 의존하는 게 아닌, 자신의 육류섭취 취향에 따라 고기를 고르는 게 좋다. 또한 고기를 선택할 때에는 선홍빛인지, 마블링 즉, 지방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지방보단 고기가 많은지를 꼼꼼히 따지면 좋은 고기를 고를 수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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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