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설의 ‘마장동 괴담’ 추적

고기 사이에 사람 매달아 포를 뜬다고?

[일요시사=사회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일반 시장과 다르게 조직폭력배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과거 조폭들은 시장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받았지만 마장동은 예외였다고 한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기 때문에 조폭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후문. 상인을 위협하던 조폭이 되레 복부에 칼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소문들은 진실일까.
 

흔히 ‘마장동’ 하면 우시장을 떠올리게 된다. 마장동 우시장은 대표적인 축산물 시장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물 도매시장은 수도권에서 유통되는 고기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개가 넘는 점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우만 취급하는 한우전문 시장으로 알려진다. 고기 맛을 아는 고기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마장동에는 싸한 괴담이 존재한다. 시장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요구하던 조폭들이 마장동 상인들의 칼에 사망하는 등 조폭들이 이곳에서는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상인들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심상찮은
동네 공기

조폭들은 시내 이곳저곳의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보호비를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그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마장동 괴담에 따르면 과거 1980∼90년대, 마장동에서 보호비와 세금을 요구하던 조폭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수십 번이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칼로 시작해 칼로 끝나는 일상에 마장동 상인들에게 칼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 이런 상인들 앞에서는 제 아무리 이름난 조폭이라 해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1982년, 한 조폭이 12cm 단검을 들고 한 상인을 위협했다. 그러자 상인은 아주 태연히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냐?”라며 조폭의 복부에 칼을 꽂았다고 한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간 칼을 잡고 고기를 썰어온 축산시장 상인들이 조폭보다 칼을 더 잘 쓰고, 온갖 동물들을 도축하는 거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조폭 따위는 겁내지도 않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 그런데 사실 조폭들이 은퇴 후 고깃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는 사진을 함부로 찍을 수 없다. 찍더라도 상인 얼굴은 나오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것. 이름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례로 모 방송국에서 고기소비 장려를 위해 이곳에서 일일 봉사체험을 하면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실제 발골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형기술자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 아이돌그룹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돼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과거보단 나아진 상태지만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장동에서는 소 한마리당 몇 그람 나오지도 않는 희귀 부위도 구할 수 있다. 마장동 상인들의 칼 솜씨는 달인 수준이다. 

마장동 상인들은 칼만 잘 다루는 게 아니다. 고기 다루는 노동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활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힘으로 유명해 ‘임꺽정’으로 불리는 남모(34)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힘의 제왕으로 알려진다. 지난 8년간 출전한 팔씨름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경험이 없다. 작업장에서 매일 몸집만한 고기를 옮기기 때문에 근육이 붙지 않을 수 없다. 전부는 아니지만 마장동 상인들 대부분은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칙칙할 거라고 생각했던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현대식으로 진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봤다. 시장 입구는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 입구에는 순대와 족발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보니 오로지 고기로만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낯선 모습이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간판 대부분은 ‘○○축산’ ‘○○상회’ ‘○○식품’ ‘○○유통’ 등이었다. 판매하는 건 축산시장답게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전부였다. 가게 앞에는 갈색 대형고무다라가 즐비했다. 그 안에는 소와 돼지의 각종 부산물이 가득했다.

소는 천엽, 생간, 소머리 등이었고 돼지는 곱창, 막창 등이었다. 특히 선지를 만들기 위해 피를 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덩어리진 피를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바닥 곳곳에는 군데군데 피로 얼룩져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칼갈이로 칼을 갈고 있었다.


칼 갈면서
주검 기다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양반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인들의 리어카에는 소의 머리가 가득했다.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내 머리 잘린 소의 주먹만 한 눈과 마주쳤다. 잘린 머리에는 핏기가 가득했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평소 즐겨먹던 소머리국밥이 떠오르면서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당황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이곳 광경을 바라보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장동 상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저 과업의 일부다. 소와 돼지의 주검을 옮기는 상인들의 몸짓과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과거 상인들 칼솜씨에 조폭도 찍소리 못해 
축산시장 맴도는 무서운 소문들…진실은?

대부분의 가게는 깔끔하게 포장한 한우를 앞세우고 있었다. 간간이 호객행위도 있었다. “삼촌 뭐 찾아? 일루와 맞춰줄게” “아들 소야 돼지야? 선물하게?” “멀리 가지 마시고 구경하고 가요. 막 잡았어요.”

붉은 앞치마를 두른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고기를 나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칼로 고기를 다듬거나 기계로 고기를 자르거나 고기 덩어리를 옮기거나 부산물을 분리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장 길을 쭉 걸어가다 보니 매우 낯선 부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모(72) 할머니는 작은 공간에서 소 부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 봉투에 담긴 쭈글쭈글한 부위가 궁금했다. 한 봉지에 1000원, 핏기가 가득했다. 도대체 무엇일까. 장 할머니는 ‘소골’이라고 했다. “소골이여 소뇌라고, 삶아도 먹고 소골탕으로도 먹어” ‘소뇌를 먹는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는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맞았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차량 통행량에 놀랐다.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 화물차, 택배차량이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었다.

주부 박모(52)씨는 인근에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자주 들른다. 다른 곳보다 최소 20% 정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우’라서 더욱 마음에 든다. 가계부담도 적을 뿐더러 먹자골목에서 먹는 고기 맛이 꿀맛이기 때문에 자주 찾는 편이다. 특히 부드러운 채끝살과 등심을 추천한다고.
 

 박씨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웬만하면 마장동에서 구매한다”면서 “먹어보면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질 좋은 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현재 도축장은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서울에서 사라지고 도·소매가 중심을 이룬다.

서울 동부지역의 명물인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여개 이상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으며 종사원 숫자만 해도 1만여명에 달한다. 연간 유동인구는 200만여명에 이른다. 단일 육류시장으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로 알려진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부천, 안성, 안양, 음성 등지에서 도축된 소와 돼지가 들어온다. 보통 오후에 경매가 이뤄지는데 당일 오후와 다음날 새벽에 두 번에 걸쳐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배달된다.

배달된 소와 돼지는 바로 부위별 해체작업을 시작한다. 해체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명칭은 식육처리기능사지만 마장동에서는 ‘정형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마장동’은 말목장이라는 뜻으로 목장 맞은편이라는 뜻의 면목동, 목장 안 넓은 들판이란 뜻의 장안평, 암말을 기르던 동네라는 뜻의 자양동이 그 예다.

시대에 발맞춰
개방형으로 변화

이렇게 말목장이 있던 곳에 도축장이 들어서면서 우시장이 만들어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난 1963년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루 평균 한우 800∼1000마리, 돼지 2000여 마리가 도축돼 취급되며,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도축장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축산물시장은 여전히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국내 최대규모의 육류시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양마장, 도축장, 우시장, 고기 도매상,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발전해 온 역사의 궤적이 있다.


수도권 물량 60∼70% 담당 ‘축산물 메카’
거친 모습 지우고 현대화로 이미지 개선

하지만 1998년 도시개발로 인해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 마장동 도축장의 역사는 35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2000여개 고기 도매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특유의 비린내와 어둡고 지저분한 분위기, 주차난 탓에 외면을 받아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성동구는 지난 2004년 23억원을 들여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1년여간 정비했다. 이름도 우시장에서 축산물시장으로 바꿨다. 이후 상당부분 현대식 시장으로 변모했다. 전기·통신시설, 하수관로 등 기반설비도 정비했다. 또 소방도로를 만들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의 화재위험을 예방했다.


 571m의 중앙통로에 천막 지붕을 세워 비나 눈이 와도 시민들이 편리하게 고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시장 특성에 맞춰 가게 양 끝에 붉은색 차광막을 덧댔다.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진열할 수 있는 냉장 쇼케이스를 설치하고, 간판도 규격화해 한층 깔끔해진 시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유통환경에 발맞추고자 신선도는 물론 축산물 ‘3정 운동’(정품·정량·정찰제), 반품과 교환이 가능한 소비자센터 운영, 무료시식회, 명절맞이 합동세일, 축산물시장 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하철 2호선 용두역과 5호선 마장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시장의 입구는 북문, 서문, 남문 총 3군데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전국의 축산농가에서 매시간 배송되는 축산물과 수입육을 취급한다. 원산지와 가격표시가 의무화 되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고기를 고를 수 있다.

한우 꽃등심 1++등급의 가격이 100g 당 8000원, 삼겹살 100g 당 1500원 정도로 시중 마트보다 저렴하다. 이외에도 치맛살, 살치살, 안창살 등 각종 특수부위를 취급하고 있어 취향별로 다양한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

모든 가게에는 ‘한우 모듬’ 세트가 있다. 4인 기준으로 10만원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은 구성이다. 그리고 차돌박이, 생간, 천엽 등은 그냥 서비스로 준다. 보통 매장에서 고기를 구매하고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을 내고 식사를 한다. 여러 정육점이 함께 운영하는 직영식당은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상차림비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정도다. 식당은 대개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비린내 진동하는
서민들 삶의 터전

과거에는 마장동 사람이 80% 외지인이 20%였지만 요즘엔 입소문을 타 외부인의 발걸음이 80%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활기를 잃어가는 일반 시장과 달리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상인들의 서비스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내 한 매장을 운영하는 이모(33)씨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 서비스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믿고 먹을 수 있는 신선한 고기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좋은 한우 고르는 법
“등급에 속지 마세요”

보통 한우는 특별한 날 먹는다. 고기의 질이 좋은 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우라고 무턱대고 먹는 건 곤란하다. 등급을 자세히 살펴야 한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급을 먹어야 한우를 제대로 먹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정형사(쇠고기 발골)들에 따르면 한우는 등급이 전부가 아니다. 보통 한우의 등급은 A, B, C, D 등급으로 나뉜다. A는 고기의 함량이 많다. B는 고기와 지방이 적절히 섞여 있다. C는 지방의 함량이 살짝 더 많다. D는 등외로 육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등급은 다시 ++, +, 1, 2, 3으로 나누어진다. 소비자들이 고기를 선택할 때는 B와 C도 괜찮다고 한다. 무조건 등급에 의존하는 게 아닌, 자신의 육류섭취 취향에 따라 고기를 고르는 게 좋다. 또한 고기를 선택할 때에는 선홍빛인지, 마블링 즉, 지방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지방보단 고기가 많은지를 꼼꼼히 따지면 좋은 고기를 고를 수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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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