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설의 ‘마장동 괴담’ 추적

고기 사이에 사람 매달아 포를 뜬다고?

[일요시사=사회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일반 시장과 다르게 조직폭력배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과거 조폭들은 시장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받았지만 마장동은 예외였다고 한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기 때문에 조폭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후문. 상인을 위협하던 조폭이 되레 복부에 칼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소문들은 진실일까.
 

흔히 ‘마장동’ 하면 우시장을 떠올리게 된다. 마장동 우시장은 대표적인 축산물 시장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물 도매시장은 수도권에서 유통되는 고기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개가 넘는 점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우만 취급하는 한우전문 시장으로 알려진다. 고기 맛을 아는 고기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마장동에는 싸한 괴담이 존재한다. 시장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요구하던 조폭들이 마장동 상인들의 칼에 사망하는 등 조폭들이 이곳에서는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상인들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심상찮은
동네 공기

조폭들은 시내 이곳저곳의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보호비를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그들의 영향권 밖에 있다. 마장동 괴담에 따르면 과거 1980∼90년대, 마장동에서 보호비와 세금을 요구하던 조폭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수십 번이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인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칼로 시작해 칼로 끝나는 일상에 마장동 상인들에게 칼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 이런 상인들 앞에서는 제 아무리 이름난 조폭이라 해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1982년, 한 조폭이 12cm 단검을 들고 한 상인을 위협했다. 그러자 상인은 아주 태연히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냐?”라며 조폭의 복부에 칼을 꽂았다고 한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 년간 칼을 잡고 고기를 썰어온 축산시장 상인들이 조폭보다 칼을 더 잘 쓰고, 온갖 동물들을 도축하는 거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조폭 따위는 겁내지도 않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 그런데 사실 조폭들이 은퇴 후 고깃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는 사진을 함부로 찍을 수 없다. 찍더라도 상인 얼굴은 나오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것. 이름난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례로 모 방송국에서 고기소비 장려를 위해 이곳에서 일일 봉사체험을 하면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실제 발골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형기술자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 아이돌그룹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돼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과거보단 나아진 상태지만 어느 정도 폐쇄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장동에서는 소 한마리당 몇 그람 나오지도 않는 희귀 부위도 구할 수 있다. 마장동 상인들의 칼 솜씨는 달인 수준이다. 

마장동 상인들은 칼만 잘 다루는 게 아니다. 고기 다루는 노동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활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한다.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힘으로 유명해 ‘임꺽정’으로 불리는 남모(34)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힘의 제왕으로 알려진다. 지난 8년간 출전한 팔씨름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경험이 없다. 작업장에서 매일 몸집만한 고기를 옮기기 때문에 근육이 붙지 않을 수 없다. 전부는 아니지만 마장동 상인들 대부분은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가능한 일일 것이다.

칙칙할 거라고 생각했던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현대식으로 진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봤다. 시장 입구는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 입구에는 순대와 족발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보니 오로지 고기로만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낯선 모습이었다.

좌우를 둘러보니 간판 대부분은 ‘○○축산’ ‘○○상회’ ‘○○식품’ ‘○○유통’ 등이었다. 판매하는 건 축산시장답게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전부였다. 가게 앞에는 갈색 대형고무다라가 즐비했다. 그 안에는 소와 돼지의 각종 부산물이 가득했다.

소는 천엽, 생간, 소머리 등이었고 돼지는 곱창, 막창 등이었다. 특히 선지를 만들기 위해 피를 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덩어리진 피를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바닥 곳곳에는 군데군데 피로 얼룩져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칼갈이로 칼을 갈고 있었다.


칼 갈면서
주검 기다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양반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인들의 리어카에는 소의 머리가 가득했다.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내 머리 잘린 소의 주먹만 한 눈과 마주쳤다. 잘린 머리에는 핏기가 가득했다. 움직일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평소 즐겨먹던 소머리국밥이 떠오르면서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당황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이곳 광경을 바라보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장동 상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저 과업의 일부다. 소와 돼지의 주검을 옮기는 상인들의 몸짓과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과거 상인들 칼솜씨에 조폭도 찍소리 못해 
축산시장 맴도는 무서운 소문들…진실은?

대부분의 가게는 깔끔하게 포장한 한우를 앞세우고 있었다. 간간이 호객행위도 있었다. “삼촌 뭐 찾아? 일루와 맞춰줄게” “아들 소야 돼지야? 선물하게?” “멀리 가지 마시고 구경하고 가요. 막 잡았어요.”

붉은 앞치마를 두른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고기를 나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칼로 고기를 다듬거나 기계로 고기를 자르거나 고기 덩어리를 옮기거나 부산물을 분리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장 길을 쭉 걸어가다 보니 매우 낯선 부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모(72) 할머니는 작은 공간에서 소 부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 봉투에 담긴 쭈글쭈글한 부위가 궁금했다. 한 봉지에 1000원, 핏기가 가득했다. 도대체 무엇일까. 장 할머니는 ‘소골’이라고 했다. “소골이여 소뇌라고, 삶아도 먹고 소골탕으로도 먹어” ‘소뇌를 먹는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는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맞았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차량 통행량에 놀랐다.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량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 화물차, 택배차량이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었다.

주부 박모(52)씨는 인근에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자주 들른다. 다른 곳보다 최소 20% 정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우’라서 더욱 마음에 든다. 가계부담도 적을 뿐더러 먹자골목에서 먹는 고기 맛이 꿀맛이기 때문에 자주 찾는 편이다. 특히 부드러운 채끝살과 등심을 추천한다고.
 

 박씨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웬만하면 마장동에서 구매한다”면서 “먹어보면 확실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질 좋은 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현재 도축장은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서울에서 사라지고 도·소매가 중심을 이룬다.

서울 동부지역의 명물인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3000여개 이상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으며 종사원 숫자만 해도 1만여명에 달한다. 연간 유동인구는 200만여명에 이른다. 단일 육류시장으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로 알려진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부천, 안성, 안양, 음성 등지에서 도축된 소와 돼지가 들어온다. 보통 오후에 경매가 이뤄지는데 당일 오후와 다음날 새벽에 두 번에 걸쳐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배달된다.

배달된 소와 돼지는 바로 부위별 해체작업을 시작한다. 해체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명칭은 식육처리기능사지만 마장동에서는 ‘정형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마장동’은 말목장이라는 뜻으로 목장 맞은편이라는 뜻의 면목동, 목장 안 넓은 들판이란 뜻의 장안평, 암말을 기르던 동네라는 뜻의 자양동이 그 예다.

시대에 발맞춰
개방형으로 변화

이렇게 말목장이 있던 곳에 도축장이 들어서면서 우시장이 만들어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난 1963년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루 평균 한우 800∼1000마리, 돼지 2000여 마리가 도축돼 취급되며, 수도권 축산물 공급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도축장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축산물시장은 여전히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국내 최대규모의 육류시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양마장, 도축장, 우시장, 고기 도매상,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발전해 온 역사의 궤적이 있다.


수도권 물량 60∼70% 담당 ‘축산물 메카’
거친 모습 지우고 현대화로 이미지 개선

하지만 1998년 도시개발로 인해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 마장동 도축장의 역사는 35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2000여개 고기 도매상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특유의 비린내와 어둡고 지저분한 분위기, 주차난 탓에 외면을 받아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성동구는 지난 2004년 23억원을 들여 재래시장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1년여간 정비했다. 이름도 우시장에서 축산물시장으로 바꿨다. 이후 상당부분 현대식 시장으로 변모했다. 전기·통신시설, 하수관로 등 기반설비도 정비했다. 또 소방도로를 만들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의 화재위험을 예방했다.


 571m의 중앙통로에 천막 지붕을 세워 비나 눈이 와도 시민들이 편리하게 고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시장 특성에 맞춰 가게 양 끝에 붉은색 차광막을 덧댔다.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진열할 수 있는 냉장 쇼케이스를 설치하고, 간판도 규격화해 한층 깔끔해진 시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상인들은 급속도로 변해가는 유통환경에 발맞추고자 신선도는 물론 축산물 ‘3정 운동’(정품·정량·정찰제), 반품과 교환이 가능한 소비자센터 운영, 무료시식회, 명절맞이 합동세일, 축산물시장 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지하철 2호선 용두역과 5호선 마장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시장의 입구는 북문, 서문, 남문 총 3군데다.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전국의 축산농가에서 매시간 배송되는 축산물과 수입육을 취급한다. 원산지와 가격표시가 의무화 되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고기를 고를 수 있다.

한우 꽃등심 1++등급의 가격이 100g 당 8000원, 삼겹살 100g 당 1500원 정도로 시중 마트보다 저렴하다. 이외에도 치맛살, 살치살, 안창살 등 각종 특수부위를 취급하고 있어 취향별로 다양한 고기를 구매할 수 있다.

모든 가게에는 ‘한우 모듬’ 세트가 있다. 4인 기준으로 10만원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은 구성이다. 그리고 차돌박이, 생간, 천엽 등은 그냥 서비스로 준다. 보통 매장에서 고기를 구매하고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을 내고 식사를 한다. 여러 정육점이 함께 운영하는 직영식당은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상차림비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정도다. 식당은 대개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비린내 진동하는
서민들 삶의 터전

과거에는 마장동 사람이 80% 외지인이 20%였지만 요즘엔 입소문을 타 외부인의 발걸음이 80%에 육박한다고 전해진다. 활기를 잃어가는 일반 시장과 달리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상인들의 서비스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내 한 매장을 운영하는 이모(33)씨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 서비스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믿고 먹을 수 있는 신선한 고기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좋은 한우 고르는 법
“등급에 속지 마세요”

보통 한우는 특별한 날 먹는다. 고기의 질이 좋은 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우라고 무턱대고 먹는 건 곤란하다. 등급을 자세히 살펴야 한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급을 먹어야 한우를 제대로 먹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정형사(쇠고기 발골)들에 따르면 한우는 등급이 전부가 아니다. 보통 한우의 등급은 A, B, C, D 등급으로 나뉜다. A는 고기의 함량이 많다. B는 고기와 지방이 적절히 섞여 있다. C는 지방의 함량이 살짝 더 많다. D는 등외로 육우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등급은 다시 ++, +, 1, 2, 3으로 나누어진다. 소비자들이 고기를 선택할 때는 B와 C도 괜찮다고 한다. 무조건 등급에 의존하는 게 아닌, 자신의 육류섭취 취향에 따라 고기를 고르는 게 좋다. 또한 고기를 선택할 때에는 선홍빛인지, 마블링 즉, 지방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지방보단 고기가 많은지를 꼼꼼히 따지면 좋은 고기를 고를 수 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