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회장 별세>녹십자 경영구도 포인트

‘백신 명가’ 후계자가 불안하다

대한민국 백신의 선구자인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지난 15일 별세함에 따라 다소 복잡한 녹십자 경영구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허 회장이 세 아들을 두고 있지만 후계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다. 이를 가늠할 만한 지분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허 회장이 떠난 자리를 누가 채울까. 녹십자 경영구도를 체크해 봤다.

지분구조 다소 복잡 “우열 가리기 힘들다”
‘10.59% 대 9.92%’동생 허일섭 부회장 변수

녹십자의 경영구도는 다소 복잡하다.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에 이어 경영권을 쥘 만한 오너일가의 지분이 고만고만한 것. 평생 사업파트너였던 동생도 그렇고, 후계자로 꼽히는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누구 한 명 거론할 수 없을 만큼 거의 비슷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허 회장은 녹십자홀딩스 지분 12.3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 지분 50.81%를 보유하고 있는 등 국내 10개사, 해외 현지법인 4개사 등 14개 계열사들의 지주회사 격이다.

장남외 차·3남 경쟁

허 회장의 미망인 정인애 여사는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1.57% 보유 중이다. 장남 허성수씨는 0.81%, 차남 허은철 녹십자 전무는 1.03%, 3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상무는 0.99%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을 제외한 직계 가족들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이 4.40%에 불과한 셈이다. 이들은 허 회장이 병석에 누워있던 지난 9월 이후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잇달아 늘려 경영권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장남인 허성수씨는 보유지분을 늘리지 않았다. 허 회장의 세 아들 중 차남 허 전무와 3남 허 상무가 경영에 뛰어든 것과 달리 허성수씨는 한때 녹십자 계열사인 지씨헬스케어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현재 물러난 상태다. 녹십자 경영구도에서 장남이 배제되는 분위기가 여기서 나온다. 지분도 두 동생이 형을 앞지른 상황이다. 녹십자 R&D기획실과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을 각각 맡고 있는 허 전무와 허 상무는 지난해 4월 정기인사 때 승진했다.

재계 관계자는 “허 회장 타계 전까지 가족들이 집중적으로 지분을 매입했지만 경영권을 강화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며 “다른 기업의 경우 보통 적게는 20∼30%, 많게는 50% 이상 확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16%란 지분율은 아직 한참 모자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녹십자 경영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사가 허 회장의 동생 허일섭 녹십자 부회장이다.
 
허 부회장은 허 회장과 함께 지금의 녹십자를 일군 장본인이다.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5남(장남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 3남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4남 허남섭 서울랜드 회장) 중 차·5남인 허 회장과 허 부회장은 녹십자와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를 같이 맡는 등 모범적인 ‘형제경영’으로 녹십자를 이끌었다.

허 회장은 독일 유학 당시 선진국에 비해 척박한 국내 보건환경에 안타까움을 느껴 귀국 직후인 1970년 녹십자 전신인 극동제약에 공무부장으로 입사한 뒤 1980년 대표이사 사장, 1992년부터 회장직을 역임했다. 허 부회장은 1979년 녹십자에 입사한 후 1988년 한일시멘트 이사를 거쳐 1991년 다시 녹십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 형제는 탄탄한 재무구조와 내실을 중시하며 국내 백신 안보와 필수의약품 국산화 분야를 개척, 녹십자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분야 등에서 연 매출 6000억원대를 올리는 세계적인 백신 및 생명공학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허 부회장은 녹십자홀딩스 지분 9.01%를 보유해 허 회장에 이어 2대주주다. 여기에 부인과 3명의 자녀들의 지분을 합치면 허 부회장 일가의 보유지분은 9.92%로 늘어난다.

허 부회장 가족들도 앞서 녹십자홀딩스 보유 지분을 확대한 바 있다. 결국 허 회장의 지분이 향후 녹십자 경영구도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누구에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2세 경영체제 윤곽을 점칠 수 있다는 게 제약업계의 관측이다.  하지만 가족들로선 적잖은 상속세가 부담이다. 허 회장이 보유 중인 녹십자홀딩스 12.37%와 녹십자 2.92%의 주식평가액은 각각 약 490억원, 360억원으로 총 850억원 정도다.
 
이 중 절반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는 계산이다. 상속세는 상속재산가액이 30억원을 초과할 경우 50%의 세율로 과세한다. 특히 허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아도 가족 전체 지분율에 불안요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상속세를 지분으로 물납하면 허 회장 가족들의 지분은 기존 4.40%에 허 회장의 지분의 절반인 6.19%가 추가돼 10.59%로 늘어난다.

허 부회장 측과 비교해 근소한 차이(0.67%)로 앞서지만 사실상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다. 허 회장 가족들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지 않았다면 허 부회장 측 지분율이 높을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경영권 위협 감지?

증권가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형제경영을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경영권 다툼 등 촌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다만 허 회장 가족들의 지분 매입이 주목할 만하다”며 “허 회장 가족들이 지난 9월부터 최근까지 사들인 지분이 0.91%에 이르는데 만약 이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허 회장 지분을 상속받더라도 허 부회장 일가보다 적었다”고 분석했다.

녹십자 측은 경영구도 언급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허 회장이 타계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회사 경영권에 대해 운운하냐”며 “경영권과 관련해 내부 논의는 물론 허 회장 일가의 어떠한 결정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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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