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김연아 피겨인생 희로애락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24 11: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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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사회팀]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무결점 연기를 펼치고도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전 세계는 감동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무사히 마친 그녀는 경기 후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다.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동안 흘린 땀으로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피겨계의 위대한 역사를 남겼다. 은퇴 소식이 전해지면서 향후 계획과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 21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연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실수 없이 마친 것에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날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74.92점을 얻어 근소하게 앞서 1위에 오른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을 받아 합계 219.11점을 받았다. 

그러나 한 번의 점프 실수를 저지른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프리스케이팅에서만 무려 149.95점을 받으며 종합 224.59점으로 앞지른 탓에 김연아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연아는 한 번의 실수도 없는 깨끗한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보였다. 반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한 차례 점프 실수를 보였음에도 김연아를 역전했다. 결국 아쉽게도 여자 싱글 2연패는 무산됐다.

 

모든 기술 완벽
전설의 마지막 연기

 

김연아는 기자회견에서 앞서 취재진과 만나 “점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점수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결과에 만족을 안 하면 어떡하겠느냐”고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자신의 기록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예상을 잘 하지 않고, 신기록 등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프리스케이팅 결과에 대해 오히려 “많이 나왔다”고 말해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준비하면서 체력적, 심리적 한계를 느꼈는데 이겨내고 했다”면서 “내 경기력에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금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실수 없는 무대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는 것.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인 228.56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대회 종료 후 은퇴와 현역 연장을 두고 고민을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정상의 자리에서 박수를 받으며 따날 수 있었지만 ‘위대한 기록’을 위해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자신의 현역 마지막 무대로 정하고 멋진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렇게 그녀의 은퇴소식이 알려지자 이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역에서는 물러나지만 제2의 인생의 막이 열리게 된다. 일단 김연아는 귀국 후 각종 행사, 방송 일정 등을 소화하면서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5월에는 아이스쇼가 예정돼 있다. 

김연아는 지난달 15일 빙상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너무 오랫동안 선수를 해서 올림픽이 끝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경기 걱정과 다음날의 훈련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 도전이다. 그녀는 2012년 7월 선수 복귀 기자회견을 통해 “2011년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활동을 하면서 IOC 선수위원에 대한 관심과 꿈을 키웠다. 소치 올림픽에서의 현역 은퇴는 새로운 꿈과 도전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홈 어드밴티지 뚫고
세계적 클라스 입증

 

김연아가 IOC 위원을 꿈꾸게 된 것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이 결정적이었다.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직접 IOC 총회에 참석해 프리젠터로 나서는 등 평창의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당시 국제 스포츠 외교 현장을 경험하면서 선수 위원 활동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IOC 위원과 같은 권한 및 혜택을 받는 선수위원은 각 NOC(국가올림픽위원회) 당 한 명만 가능하다. 현재 태권도 대표 출신 문대성 위원이 선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김연아 외에 장미란(역도), 진종오(사격) 등도 IOC 선수위원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선수들은 문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016년 이후에 선수위원에 도전할 수 있다.

 

깃털처럼 우아한 동작과 완벽한 기술 선보여
“역시!” 쏟아진 극찬…전무후무 피겨계 역사

 

또한 김연아는 틈날 때마다 사회봉사,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앞으로도 피겨 꿈나무, 소외 계층 등을 위한 자선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진다. 김연아 측 한 관계자는 “아직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단계지만, 김연아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해왔던 자선활동을 더 구체화할 생각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2010년 7월부터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 활동해 다양한 자선, 기부 활동을 펼쳐왔다.

김연아는 경기도 부천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수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어린 시절 군포시로 이사한 김연아는 7살인 1996년 과천시의 실내 빙상장을 찾았다가 스케이트를 탔다. 그리고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본격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동계체육대회 등 각종 국내 피겨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김연아는 2002년 4월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인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러츠, 플립, 토룹, 룹, 살코)을 완성했다. 

그리고 2003년 14세 때 피겨 스케이팅 국가 대표로 선발돼 신혜숙, 지현정, 김세열 등이 김연아를 코치했다. 
2004년 국제무대에 주니어로 데뷔했다. 헝가리에서 열린 ISU 공인 국제대회인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중국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상위 선수들끼리 겨루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한국 피겨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3회전 5종류의 점프를 모두 성공시켜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경기 프로그램과 갈라 안무는 2006년부터 함께한 데이비드 윌슨이 만들었다. 200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아쉽게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6년 3월에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177.54점으로 24.19점 차이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국제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이때부터였다. 

 

영광스러운 은퇴
제2의 인생 시작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2006년 11월에 개최된 시니어 대뷔 첫 무대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에 입상했고, 얼마 후 열린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한국 최초로 시니어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1∼6차 대회를 합산한 상위 6명만이 출전할 수 있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12점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2007년에는, 주니어 시절부터 그녀를 지도한 김세열 코치에서 캐나다의 브라이언 오서 코치로 변경했다. 2007년 1월에 열린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는 허리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3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참가한 김연아는 영화 <물랑루즈>의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71.95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미국의 사샤 코언의 71.12점보다 0.83점 높은 기록이었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데뷔한 당해연도에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한 역대 3번째 선수이며,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역대 2번째 선수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2007년 5월부터는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연습거점을 옮겨 브라이언 오서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11월에 열린 컵 오브 차이나에서 122.36점으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갱신하며 우승했다. 또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컵 오브 러시아에서 새로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해 2연패를 달성했다. 2008년 초에는 쌓인 피로와 부상으로 인해 힘든 경기에 임했다. 이 시기에는 부상투혼으로 동메달을 땄다. 

이후 10월에 열린 그랑프리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 출전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이어 컵 오브 차이나에서도 63.6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컵 오브 차이나의 우승으로 김연아는 그랑프리 대회 5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8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을 확정했다.

2009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연습방해로 인한 논란이 일었다. 일본 피겨연맹과 피겨선수들은 연습 방해를 부정했지만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김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72.24의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2007년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 1위로 금메달을 차지한다. 10월에는 그랑프리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 출전해 133.70점이었던 프리 스케이팅 세계 최고 기록점을 다시 경신해 133.95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기록 경신은 계속됐다. 절정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었다. 전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김연아는 올림픽 한 달 전 얻은 발목부상을 딛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 기술 점수 44.70점, 예술 점수 33.80점, 합계 78.50점으로 또 다시 세계기록을 경신하면 쇼트 1위를 기록했다. 

 

세계신 끌어안고
더 큰 꿈을 향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으면서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Time 100)에 선정됐다. 또한 미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편지를 받고, 평소 존경하던 미셸 콴이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서 복귀 무대에 서는 등 다방면의 저명인사와도 친분을 쌓기도 했다.

2010년 이후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스트 웨스트 아이스팰리스와 서울의 고려대학교 빙상장 및 태릉선수촌 빙상장 등에서 훈련했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곳은 올댓스포츠다.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가 대표이사로 있다.

 

‘마지막 피날레’ 전 세계가 감탄
은퇴 이후 행보는?…평창 서포터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는 김연아가 7세 때 빙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코치, 매니저, 후원자 역할을 도맡았다. 힘들어 그만두려고 하는 김연아의 등을 두르리며 링크로 돌아오게 했고, IMF 사태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힘든 내색 없이 딸을 지원했다. 특히 박씨는 ‘철혈엄마’로도 유명하다. 아침엔 딸의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열었고, 밤엔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으로 딸을 데려가 낮에 배운 기술을 복습시켰다. 김연아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은 피겨를 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을 수차례 해왔다.

2010·2011시즌은 김연아가 은퇴를 고민하다 출전을 결정한 시기였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안도미키에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부터는 다시 류종현 코치와 트리플 점프를 가르친 신혜숙 코치가 그녀를 지도했다. 2012년,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 현역 연장을 선언하고 여러 대회에 출전했다. 좋은 성적으로 세계선수권 티켓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4년, 한국 피겨 종합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80.60점을 기록했다. 비록 비공인 점수였지만 본인이 수립한 세계 신기록인 78.50점보다 2.1점 높은 여자 싱글 사상 최초의 80점 돌파였다.

김연아가 세운 공식 신기록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받은 쇼트 프로그램, 프리 프로그램,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 합계 점수이며 이 점수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김연아’누구?

 

피겨여왕 김연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연아 키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해진(17·수리고), 박소연(17·신목고), 곽민정(20)이 포스트 김연아로 불린다.

김해진과 박소연은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평창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김해진은 149.48점을 얻어 16위에, 박소연은 142.97점으로 21위에 올랐다. 

김해진과 박소연은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고 피겨의 꿈을 키운 ‘김연아 키즈’로 알려진다. 두 선수는 김연아가 지난해 3월 런던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무려 3장의 싱글 출전권을 따내면서 예상보다 빨리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차세대 김연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곽민정은 허리부상을 포함해 근육파열 후유증, 발목 부상 등으로 재활에 전념 중이다.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김해진과 박소연 그리고 재활 중인 곽민정이 4년 뒤인 평창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쏠리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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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