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김연아 피겨인생 희로애락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24 11: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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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사회팀]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무결점 연기를 펼치고도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전 세계는 감동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무사히 마친 그녀는 경기 후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다.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동안 흘린 땀으로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피겨계의 위대한 역사를 남겼다. 은퇴 소식이 전해지면서 향후 계획과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연아는 지난 21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연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실수 없이 마친 것에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날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74.92점을 얻어 근소하게 앞서 1위에 오른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을 받아 합계 219.11점을 받았다. 

그러나 한 번의 점프 실수를 저지른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프리스케이팅에서만 무려 149.95점을 받으며 종합 224.59점으로 앞지른 탓에 김연아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연아는 한 번의 실수도 없는 깨끗한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보였다. 반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한 차례 점프 실수를 보였음에도 김연아를 역전했다. 결국 아쉽게도 여자 싱글 2연패는 무산됐다.

 

모든 기술 완벽
전설의 마지막 연기

 

김연아는 기자회견에서 앞서 취재진과 만나 “점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점수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결과에 만족을 안 하면 어떡하겠느냐”고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자신의 기록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예상을 잘 하지 않고, 신기록 등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프리스케이팅 결과에 대해 오히려 “많이 나왔다”고 말해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준비하면서 체력적, 심리적 한계를 느꼈는데 이겨내고 했다”면서 “내 경기력에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금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실수 없는 무대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는 것.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고점인 228.56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대회 종료 후 은퇴와 현역 연장을 두고 고민을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정상의 자리에서 박수를 받으며 따날 수 있었지만 ‘위대한 기록’을 위해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자신의 현역 마지막 무대로 정하고 멋진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렇게 그녀의 은퇴소식이 알려지자 이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역에서는 물러나지만 제2의 인생의 막이 열리게 된다. 일단 김연아는 귀국 후 각종 행사, 방송 일정 등을 소화하면서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5월에는 아이스쇼가 예정돼 있다. 

김연아는 지난달 15일 빙상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너무 오랫동안 선수를 해서 올림픽이 끝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경기 걱정과 다음날의 훈련 걱정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 도전이다. 그녀는 2012년 7월 선수 복귀 기자회견을 통해 “2011년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활동을 하면서 IOC 선수위원에 대한 관심과 꿈을 키웠다. 소치 올림픽에서의 현역 은퇴는 새로운 꿈과 도전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홈 어드밴티지 뚫고
세계적 클라스 입증

 

김연아가 IOC 위원을 꿈꾸게 된 것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이 결정적이었다.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직접 IOC 총회에 참석해 프리젠터로 나서는 등 평창의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당시 국제 스포츠 외교 현장을 경험하면서 선수 위원 활동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IOC 위원과 같은 권한 및 혜택을 받는 선수위원은 각 NOC(국가올림픽위원회) 당 한 명만 가능하다. 현재 태권도 대표 출신 문대성 위원이 선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김연아 외에 장미란(역도), 진종오(사격) 등도 IOC 선수위원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선수들은 문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016년 이후에 선수위원에 도전할 수 있다.

 

깃털처럼 우아한 동작과 완벽한 기술 선보여
“역시!” 쏟아진 극찬…전무후무 피겨계 역사

 

또한 김연아는 틈날 때마다 사회봉사,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앞으로도 피겨 꿈나무, 소외 계층 등을 위한 자선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진다. 김연아 측 한 관계자는 “아직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단계지만, 김연아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해왔던 자선활동을 더 구체화할 생각을 갖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2010년 7월부터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 활동해 다양한 자선, 기부 활동을 펼쳐왔다.

김연아는 경기도 부천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수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어린 시절 군포시로 이사한 김연아는 7살인 1996년 과천시의 실내 빙상장을 찾았다가 스케이트를 탔다. 그리고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본격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동계체육대회 등 각종 국내 피겨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김연아는 2002년 4월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인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러츠, 플립, 토룹, 룹, 살코)을 완성했다. 

그리고 2003년 14세 때 피겨 스케이팅 국가 대표로 선발돼 신혜숙, 지현정, 김세열 등이 김연아를 코치했다. 
2004년 국제무대에 주니어로 데뷔했다. 헝가리에서 열린 ISU 공인 국제대회인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중국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상위 선수들끼리 겨루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한국 피겨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3회전 5종류의 점프를 모두 성공시켜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경기 프로그램과 갈라 안무는 2006년부터 함께한 데이비드 윌슨이 만들었다. 200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아쉽게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6년 3월에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177.54점으로 24.19점 차이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국제무대에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이때부터였다. 

 

영광스러운 은퇴
제2의 인생 시작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2006년 11월에 개최된 시니어 대뷔 첫 무대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에 입상했고, 얼마 후 열린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한국 최초로 시니어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1∼6차 대회를 합산한 상위 6명만이 출전할 수 있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12점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2007년에는, 주니어 시절부터 그녀를 지도한 김세열 코치에서 캐나다의 브라이언 오서 코치로 변경했다. 2007년 1월에 열린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는 허리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3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참가한 김연아는 영화 <물랑루즈>의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71.95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미국의 사샤 코언의 71.12점보다 0.83점 높은 기록이었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데뷔한 당해연도에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한 역대 3번째 선수이며,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역대 2번째 선수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2007년 5월부터는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연습거점을 옮겨 브라이언 오서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11월에 열린 컵 오브 차이나에서 122.36점으로 자신의 최고기록을 갱신하며 우승했다. 또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컵 오브 러시아에서 새로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해 2연패를 달성했다. 2008년 초에는 쌓인 피로와 부상으로 인해 힘든 경기에 임했다. 이 시기에는 부상투혼으로 동메달을 땄다. 

이후 10월에 열린 그랑프리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 출전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이어 컵 오브 차이나에서도 63.6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컵 오브 차이나의 우승으로 김연아는 그랑프리 대회 5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8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을 확정했다.

2009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연습방해로 인한 논란이 일었다. 일본 피겨연맹과 피겨선수들은 연습 방해를 부정했지만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김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72.24의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2007년 자신이 세웠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 1위로 금메달을 차지한다. 10월에는 그랑프리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 출전해 133.70점이었던 프리 스케이팅 세계 최고 기록점을 다시 경신해 133.95점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기록 경신은 계속됐다. 절정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었다. 전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김연아는 올림픽 한 달 전 얻은 발목부상을 딛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 기술 점수 44.70점, 예술 점수 33.80점, 합계 78.50점으로 또 다시 세계기록을 경신하면 쇼트 1위를 기록했다. 

 

세계신 끌어안고
더 큰 꿈을 향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으면서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Time 100)에 선정됐다. 또한 미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편지를 받고, 평소 존경하던 미셸 콴이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서 복귀 무대에 서는 등 다방면의 저명인사와도 친분을 쌓기도 했다.

2010년 이후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스트 웨스트 아이스팰리스와 서울의 고려대학교 빙상장 및 태릉선수촌 빙상장 등에서 훈련했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곳은 올댓스포츠다.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가 대표이사로 있다.

 

‘마지막 피날레’ 전 세계가 감탄
은퇴 이후 행보는?…평창 서포터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는 김연아가 7세 때 빙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코치, 매니저, 후원자 역할을 도맡았다. 힘들어 그만두려고 하는 김연아의 등을 두르리며 링크로 돌아오게 했고, IMF 사태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힘든 내색 없이 딸을 지원했다. 특히 박씨는 ‘철혈엄마’로도 유명하다. 아침엔 딸의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열었고, 밤엔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으로 딸을 데려가 낮에 배운 기술을 복습시켰다. 김연아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은 피겨를 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을 수차례 해왔다.

2010·2011시즌은 김연아가 은퇴를 고민하다 출전을 결정한 시기였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안도미키에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부터는 다시 류종현 코치와 트리플 점프를 가르친 신혜숙 코치가 그녀를 지도했다. 2012년,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 현역 연장을 선언하고 여러 대회에 출전했다. 좋은 성적으로 세계선수권 티켓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4년, 한국 피겨 종합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80.60점을 기록했다. 비록 비공인 점수였지만 본인이 수립한 세계 신기록인 78.50점보다 2.1점 높은 여자 싱글 사상 최초의 80점 돌파였다.

김연아가 세운 공식 신기록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받은 쇼트 프로그램, 프리 프로그램,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 합계 점수이며 이 점수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김연아’누구?

 

피겨여왕 김연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연아 키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해진(17·수리고), 박소연(17·신목고), 곽민정(20)이 포스트 김연아로 불린다.

김해진과 박소연은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평창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김해진은 149.48점을 얻어 16위에, 박소연은 142.97점으로 21위에 올랐다. 

김해진과 박소연은 김연아를 롤모델로 삼고 피겨의 꿈을 키운 ‘김연아 키즈’로 알려진다. 두 선수는 김연아가 지난해 3월 런던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무려 3장의 싱글 출전권을 따내면서 예상보다 빨리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차세대 김연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곽민정은 허리부상을 포함해 근육파열 후유증, 발목 부상 등으로 재활에 전념 중이다.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김해진과 박소연 그리고 재활 중인 곽민정이 4년 뒤인 평창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쏠리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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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