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욕먹다 끝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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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서 버티고 버티다…결국 밀려났다

[일요시사=사회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경질됐다. 잇따른 실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결과다. 지난 6일 정홍원 총리는 해임 건의를 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박근혜 대통령은 전격 해임했다. 툭 하면 구설에 올랐던 윤 전 장관. 그의 잇따른 말실수와 부적절한 행동을 되짚어봤다.




윤진숙 전 장관은 입만 열면 말썽이었다. 해임의 결정적인 원인은 이번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된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었다. 기름유출 사고를 두고 윤 전 장관은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라는 실언을 해 여야의 뭇매를 맞았다. 경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결국 장관 자리를 떠나게 됐다.


실언 릴레이
예고된 해임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새누리당과의 당정 협의에서 “1차 피해자는 정유사인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밝혀 여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끊이지 않았다. 엄중한 분위기와 맞지 않게 늘 웃는 모습을 보인 게 화근이었다. 윤 장관의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는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불신을 일으켰다. 당연히 비판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송유관 파공 기름유출 사고는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던 GS칼텍스와 초동대처에 미숙함을 드러낸 해경, 도선사의 과실 등이 종합적으로 얽힌 인재형 재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여수해경과 GS그룹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의 원유유출량은 GS칼텍스가 애초 발표한 추정치인 800L(4드럼)보다 무려 205배나 많은 16만4000L(820드럼)인 것으로 해경 조사 결과 잠정 밝혀졌다.


이번 사고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윤 전 장관이 이끈 해수부는 유출된 기름양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GS칼텍스도 피해를 봤다’ ‘방재 훈련 사정은 잘 모르겠다’ 등의 실언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많은 기름이 유출되면서 여수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뒤늦게 나타난 윤 전 장관조차 “보고 받기로는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 행위는 언론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장관의 자질 논란이 들끓었다.




코 막은 사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윤 전 장관은 JTBC <뉴스9>에 출연해 “독감 때문에 자꾸 기침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봐 막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내가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자꾸 구설에 오르는 것 같냐’는 질문에는 “내가 얘기를 해야 언론사가 잘 되나 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윤진숙이라는 이름이 뜨면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인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이 오히려 논란의 불씨를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후 YTN은 독감 예방법을 소개하며 윤 장관의 사진을 사용하며, ‘독감 예방법 공공장소에서 입 가리고 기침하기’라는 글과 함께 방송을 내보냈다. 뉴스 앵커는 윤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윤 장관 사진인데요. 논란을 떠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렇게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라며 깨알 같은 설명을 했다.

원본사진과 함께 YTN 방송 캡처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 오르면서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넘쳐났다. 윤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졌다.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윤진숙 때리기’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대부분의 정치 현안에 대해 정치권 입장이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한입으로 윤 장관을 비판했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대처 과정서 부적절 언행


“봐줄 만큼 봐줬다” 또 구설 오르자 결국 해임


여당인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의원은 6일 최고위원회에서 “윤 장관이 아무리 평소에도 잘 웃는다지만 사고현장 등 웃을 수 없는 상황에도 웃는 장관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과연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4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와 5일 새누리당 제4정책조정위원회와의 당정협의에서 윤 장관의 ‘웃음 섞인 실언’을 지적한 것이다.

당정회의에서 여수 기름 유출사고의 1차 피해자가 GS칼텍스라고 말한 윤 장관은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특히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이 “GS칼텍스가 가해자지 왜 피해자냐”고 질책하자 윤 장관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최선의 초동 조치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윤 장관은 중간 중간에 웃어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입 열 때마다…
정치권 일파만파


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윤 전 장관의 즉각적인 경질을 촉구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윤 장관은 장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처신과 언행을 보이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최근 공직자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면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는데 윤 장관의 언행이 이에 딱 들어맞는 만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모래밭 속 진주’라고 극찬했지만 지금은 ‘해양4차원장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문제의 국무위원들을 즉각 경질하고, 내각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에서 윤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6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정 총리는 윤 전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권 행사 의향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며 거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이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정 총리는 고심 끝에 윤 전 장관 해임안을 건의했고, 불과 2시간 만에 해임조치가 마무리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로부터 해임 건의를 받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 조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화로 해임을 건의받고 그 자리에서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의 즉각적인 행동으로 풀이된다.

윤 전 장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에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서 공공기관장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회의 시작 약 20분 전에 청사를 떠났다. 대신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전격 경질된 것과 관련, 여야는 수긍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뉘앙스가 달랐던 것이다. 새누리당은 윤 전 장관의 해임 여파가 개각론으로 튈까 조심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관료들도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함진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장관으로서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윤 장관의 해임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윤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장관의 경질은 만시지탄”이라며 “박 대통령은 민심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청문회 때부터 부적격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고 인사실패를 인정하는데 1년이 걸렸다”면서 “밀실인사, 땜질식 인사로 현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전면적 인사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주라더니…
다시 흙 속으로


총리가 해임건의권을 행사한 사례는 2003년 10월 고건 전 총리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최낙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한 것이 유일했다. 당시 최 전 장관은 취임 14일 만에 낙마했다. 따라서 정 총리의 해임건의는 역대 두 번째로 기록됐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의 해임건의 대상이 모두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건의 사유 또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같다.

윤 전 장관은 진 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 들어 물러난 두 번째 각료다. 박 대통령은 부처 산하 연구기관에 있던 무명의 연구자인 윤 전 장관을 발탁하면서 ‘흙 속의 진주’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은 청문회 때부터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못해 자질 논란을 키웠다. 그가 역점을 두고 있던 북극항로 개척 사업은 해운업계로부터 ‘사업성이 떨어지는 탁상행정’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의 기이한 언행 퍼레이드는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시작됐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그는 해맑은 얼굴로 “죄송합니다. 제가 떨려야 하는데 발표를 워낙 많이 해서….”라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자 윤 전 장관의 황당한 행동이 이어졌다. 의원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해양 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을 묻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해양…”이라고 말한 뒤 웃음을 터뜨렸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수산은 전혀 모르십니까”라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아니,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한 뒤 또 웃었다. 단순히 웃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윤 전 장관은 진지한 자리에서 장난을 밥먹듯이 했다.



대통령이 극찬한 ‘흙 속의 진주’
청문회 때부터 자질 논란 일어 
국민여론 악화…정치권 융단폭격


당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도 마찬가지로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경 의원이 “국무위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조정, 어 그런 역할”이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이어 경 의원이 “국무회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윤 장관은 “장관님들을 우선…”이라며 또 얼버무렸다.

답답한 마음에 경 의원은 “뭐 하나 자신감 있게 답하는 게 없다. 어떤 자리에 간다고 통보 받으면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가는 게 도리다. 윤 후보자가 국무회의에서 오늘 같은 태도로 답변하면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일을 신뢰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게 동료의원들의 똑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의 실언은 장관 임명 이후 수차례 반복됐다. 그의 고질병이었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윤 장관을 감싸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윤 전 장관은 “우리 어업에 대한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GDP 성장이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첫 행보로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서는 “장관님 프로필을 꿰고 있다”는 한 상인의 말에 “제가 인기가 높습니다. 워낙 유명해져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언이 이어지자 여론은 악화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돋보이는 입술에 붉은 립스틱, 정돈되지 않은 단발머리, 코 끝에 걸쳐진 안경 등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깎았다. 하지만 이후 윤 전 장관의 모습이 달라졌다. 곳곳에 변신을 시도한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눈에 띄게 붉은 입술로 호탕하게 웃었던 임기 초와 달리, 은은한 화장에 절제된 디자인의 정장을 입었다. ‘이제 좀 장관같네’ 당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윤 전 장관에게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붉은색 립스틱 대신 은은한 컬러의 메이크업을 했고, 와인색 뿔테 안경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에도 불륨을 줘 세련미를 더 했다. 그리고 답답했던 셔츠가 아닌 목선이 드러난 블라우스에 파스텔톤의 실크 스카프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치아가 보이게 웃는 웃음도 자제했다. 윤 전 장관의 변신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로열블루 컬러의 정장과 진주목걸이를 매치해 여성 장관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살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위트 있는 빨간 장화를 착용했다.

한 패션 전문가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스카프와 액서서리를 이용한 세련된 연출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성에 대한 카리스마 연출과 목주름 등 신체적인 단점 보완은 다소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전 장관의 변신에는 ‘비밀 과외’가 있었다고 한다. JTBC는 윤 전 장관이 청와대의 권유로 10여일간 아나운서 전문학원에서 걸음걸이부터 화법, 화장법 등을 배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단기 과외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줬지만, 그간의 언행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위기의 해수부
다시 살아날까


윤 전 장관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여고와 신라대(옛 부산여대)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안관리, 해양환경 등이 주요 전공 분야이며 경희대, 한성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주로 학계에서 활동했다.

국무총리실 물관리 대책위원, 국토해양부 정책자문위원, 여수 엑스포 비상임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양수산 분야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연안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양수산발전기본법 등 해양수산 분야 법안 마련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들어간 뒤 해양정책연구부장, 해양정책연구본부장을 거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냈다. 그는 5년 만에 부활한 해양수산부 초대 장관에 임명됐지만 임기 내내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가벼운 입’ 때문에 10개월 만에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윤진숙 전 장관은?]

▲부산 출생
▲신라대(옛 부산여대) 지리교육학사
▲경희대 지리학 석·박사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
▲국토해양부 중앙연안심의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아카데미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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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