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욕먹다 끝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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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서 버티고 버티다…결국 밀려났다

[일요시사=사회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결국 경질됐다. 잇따른 실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산 결과다. 지난 6일 정홍원 총리는 해임 건의를 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박근혜 대통령은 전격 해임했다. 툭 하면 구설에 올랐던 윤 전 장관. 그의 잇따른 말실수와 부적절한 행동을 되짚어봤다.




윤진숙 전 장관은 입만 열면 말썽이었다. 해임의 결정적인 원인은 이번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된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었다. 기름유출 사고를 두고 윤 전 장관은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라는 실언을 해 여야의 뭇매를 맞았다. 경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결국 장관 자리를 떠나게 됐다.


실언 릴레이
예고된 해임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새누리당과의 당정 협의에서 “1차 피해자는 정유사인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밝혀 여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정치권의 거센 질타도 끊이지 않았다. 엄중한 분위기와 맞지 않게 늘 웃는 모습을 보인 게 화근이었다. 윤 장관의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는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불신을 일으켰다. 당연히 비판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송유관 파공 기름유출 사고는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던 GS칼텍스와 초동대처에 미숙함을 드러낸 해경, 도선사의 과실 등이 종합적으로 얽힌 인재형 재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여수해경과 GS그룹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사고의 원유유출량은 GS칼텍스가 애초 발표한 추정치인 800L(4드럼)보다 무려 205배나 많은 16만4000L(820드럼)인 것으로 해경 조사 결과 잠정 밝혀졌다.


이번 사고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윤 전 장관이 이끈 해수부는 유출된 기름양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GS칼텍스도 피해를 봤다’ ‘방재 훈련 사정은 잘 모르겠다’ 등의 실언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많은 기름이 유출되면서 여수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뒤늦게 나타난 윤 전 장관조차 “보고 받기로는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전 장관은 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 행위는 언론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장관의 자질 논란이 들끓었다.




코 막은 사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윤 전 장관은 JTBC <뉴스9>에 출연해 “독감 때문에 자꾸 기침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봐 막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내가 배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자꾸 구설에 오르는 것 같냐’는 질문에는 “내가 얘기를 해야 언론사가 잘 되나 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윤진숙이라는 이름이 뜨면 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인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이 오히려 논란의 불씨를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후 YTN은 독감 예방법을 소개하며 윤 장관의 사진을 사용하며, ‘독감 예방법 공공장소에서 입 가리고 기침하기’라는 글과 함께 방송을 내보냈다. 뉴스 앵커는 윤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윤 장관 사진인데요. 논란을 떠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렇게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라며 깨알 같은 설명을 했다.

원본사진과 함께 YTN 방송 캡처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 오르면서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넘쳐났다. 윤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더 커졌다.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사과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윤진숙 때리기’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대부분의 정치 현안에 대해 정치권 입장이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한입으로 윤 장관을 비판했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대처 과정서 부적절 언행


“봐줄 만큼 봐줬다” 또 구설 오르자 결국 해임


여당인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의원은 6일 최고위원회에서 “윤 장관이 아무리 평소에도 잘 웃는다지만 사고현장 등 웃을 수 없는 상황에도 웃는 장관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과연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4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와 5일 새누리당 제4정책조정위원회와의 당정협의에서 윤 장관의 ‘웃음 섞인 실언’을 지적한 것이다.

당정회의에서 여수 기름 유출사고의 1차 피해자가 GS칼텍스라고 말한 윤 장관은 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특히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이 “GS칼텍스가 가해자지 왜 피해자냐”고 질책하자 윤 장관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최선의 초동 조치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윤 장관은 중간 중간에 웃어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입 열 때마다…
정치권 일파만파


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윤 전 장관의 즉각적인 경질을 촉구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윤 장관은 장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처신과 언행을 보이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최근 공직자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면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는데 윤 장관의 언행이 이에 딱 들어맞는 만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윤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모래밭 속 진주’라고 극찬했지만 지금은 ‘해양4차원장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문제의 국무위원들을 즉각 경질하고, 내각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에서 윤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6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정 총리는 윤 전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권 행사 의향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며 거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이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정 총리는 고심 끝에 윤 전 장관 해임안을 건의했고, 불과 2시간 만에 해임조치가 마무리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로부터 해임 건의를 받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 조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화로 해임을 건의받고 그 자리에서 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의 즉각적인 행동으로 풀이된다.

윤 전 장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에 해양수산부 대회의실에서 공공기관장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으나 회의 시작 약 20분 전에 청사를 떠났다. 대신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전격 경질된 것과 관련, 여야는 수긍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뉘앙스가 달랐던 것이다. 새누리당은 윤 전 장관의 해임 여파가 개각론으로 튈까 조심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 경제관료들도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함진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장관으로서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윤 장관의 해임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윤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장관의 경질은 만시지탄”이라며 “박 대통령은 민심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청문회 때부터 부적격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고 인사실패를 인정하는데 1년이 걸렸다”면서 “밀실인사, 땜질식 인사로 현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전면적 인사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주라더니…
다시 흙 속으로


총리가 해임건의권을 행사한 사례는 2003년 10월 고건 전 총리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최낙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한 것이 유일했다. 당시 최 전 장관은 취임 14일 만에 낙마했다. 따라서 정 총리의 해임건의는 역대 두 번째로 기록됐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의 해임건의 대상이 모두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건의 사유 또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같다.

윤 전 장관은 진 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 들어 물러난 두 번째 각료다. 박 대통령은 부처 산하 연구기관에 있던 무명의 연구자인 윤 전 장관을 발탁하면서 ‘흙 속의 진주’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은 청문회 때부터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못해 자질 논란을 키웠다. 그가 역점을 두고 있던 북극항로 개척 사업은 해운업계로부터 ‘사업성이 떨어지는 탁상행정’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의 기이한 언행 퍼레이드는 지난해 4월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시작됐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그는 해맑은 얼굴로 “죄송합니다. 제가 떨려야 하는데 발표를 워낙 많이 해서….”라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자 윤 전 장관의 황당한 행동이 이어졌다. 의원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해양 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을 묻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윤 전 장관은 “해양…”이라고 말한 뒤 웃음을 터뜨렸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수산은 전혀 모르십니까”라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아니,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한 뒤 또 웃었다. 단순히 웃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윤 전 장관은 진지한 자리에서 장난을 밥먹듯이 했다.



대통령이 극찬한 ‘흙 속의 진주’
청문회 때부터 자질 논란 일어 
국민여론 악화…정치권 융단폭격


당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도 마찬가지로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경 의원이 “국무위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윤 전 장관은 “조정, 어 그런 역할”이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이어 경 의원이 “국무회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자 윤 장관은 “장관님들을 우선…”이라며 또 얼버무렸다.

답답한 마음에 경 의원은 “뭐 하나 자신감 있게 답하는 게 없다. 어떤 자리에 간다고 통보 받으면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가는 게 도리다. 윤 후보자가 국무회의에서 오늘 같은 태도로 답변하면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일을 신뢰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게 동료의원들의 똑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의 실언은 장관 임명 이후 수차례 반복됐다. 그의 고질병이었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윤 장관을 감싸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윤 전 장관은 “우리 어업에 대한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GDP 성장이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첫 행보로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서는 “장관님 프로필을 꿰고 있다”는 한 상인의 말에 “제가 인기가 높습니다. 워낙 유명해져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언이 이어지자 여론은 악화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돋보이는 입술에 붉은 립스틱, 정돈되지 않은 단발머리, 코 끝에 걸쳐진 안경 등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깎았다. 하지만 이후 윤 전 장관의 모습이 달라졌다. 곳곳에 변신을 시도한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눈에 띄게 붉은 입술로 호탕하게 웃었던 임기 초와 달리, 은은한 화장에 절제된 디자인의 정장을 입었다. ‘이제 좀 장관같네’ 당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윤 전 장관에게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붉은색 립스틱 대신 은은한 컬러의 메이크업을 했고, 와인색 뿔테 안경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에도 불륨을 줘 세련미를 더 했다. 그리고 답답했던 셔츠가 아닌 목선이 드러난 블라우스에 파스텔톤의 실크 스카프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치아가 보이게 웃는 웃음도 자제했다. 윤 전 장관의 변신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로열블루 컬러의 정장과 진주목걸이를 매치해 여성 장관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살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위트 있는 빨간 장화를 착용했다.

한 패션 전문가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스카프와 액서서리를 이용한 세련된 연출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성에 대한 카리스마 연출과 목주름 등 신체적인 단점 보완은 다소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전 장관의 변신에는 ‘비밀 과외’가 있었다고 한다. JTBC는 윤 전 장관이 청와대의 권유로 10여일간 아나운서 전문학원에서 걸음걸이부터 화법, 화장법 등을 배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단기 과외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줬지만, 그간의 언행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위기의 해수부
다시 살아날까


윤 전 장관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여고와 신라대(옛 부산여대)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안관리, 해양환경 등이 주요 전공 분야이며 경희대, 한성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주로 학계에서 활동했다.

국무총리실 물관리 대책위원, 국토해양부 정책자문위원, 여수 엑스포 비상임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양수산 분야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연안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해양수산발전기본법 등 해양수산 분야 법안 마련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들어간 뒤 해양정책연구부장, 해양정책연구본부장을 거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냈다. 그는 5년 만에 부활한 해양수산부 초대 장관에 임명됐지만 임기 내내 논란을 일으키다 결국 ‘가벼운 입’ 때문에 10개월 만에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윤진숙 전 장관은?]

▲부산 출생
▲신라대(옛 부산여대) 지리교육학사
▲경희대 지리학 석·박사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
▲국토해양부 중앙연안심의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아카데미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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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