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다시 등장한 김종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4: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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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시대’ JP가 움직인다

[일요시사=사회팀] 한국 정치사는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인생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최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국무총리는 살아 있는 한국 정계의 거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이후 잠잠했던 그가 5년10개월 만에 국회에 나타났다. 존재감은 여전했다. 현 정국에 그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지난 10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국회를 찾았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운정회는 그가 한국 산업화 시대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JP의 국회 방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던 2008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무려 5년10개월 만이다. 그는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칩거해왔다.

운정회 창립총회
참석차 국회방문

JP는 이날 흰색 밴을 타고 국회에 도착해 휠체어에 앉았다.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과 정진석 국회사무총장이 행사장까지 JP의 휠체어를 밀어 눈길을 끌었다. JP는 국회 헌정기념관 1층에 도착해 전시돼 있는 자신의 두상을 둘러봤다. 행사장 안에는 참석자 30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종필’을 연호하며 칭송했다.

이들은 발기문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 운정 김종필 전 총리를 모시고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데 참여하고 헌신해 왔다”며 운정 선생은 고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추대, 국구 충정으로 5·16혁명을 주도해 최빈국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초석을 놓으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두 차례의 총리와 9선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등 4개 정당의 총재와 대표를 역임해 오신 우리 현대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이라며 “우리는 한평생 국태민안을 위해 헌신해 오신 운정 선생의 공업을 기리며 뜻을 같이해 온 동지 상호 간의 친목을 증진시키고자 김 전 총리의 아호를 빌려 운정회 발기인총회를 개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회사와 축사에 나선 주요 인사들은 김 전 총리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풍운아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점을 환기시키며 조국근대화에 대한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운정 선생님의 명성을 처음 대한 것은 20세가 채 안 된, 대학에 입학하고 난 직후였다. 선배들이 거사의 정당성을 설파하실 때 보여주신 선생님의 논리적인 언변을 전설처럼 들려줬다”며 “선생님은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마이크를 잡은 JP는 40여분간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원고 없이 자신의 정치 역정을 연설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특히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을 인용했다. 그는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성과를 언급했다. 8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해서는 “저는 나라는 팔아먹지 않았다. ‘제2의 이완용’도 아니다”라며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했고, 거기에서 생산된 철로 현대자동차와 조선업도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JP는 “이제 갈 곳은 죽는 곳밖에 없는데 국립묘지(현충원)에 가지 않고 우리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 누워 있는 고향(부여 선산)에 가서 눕겠다. 누구나 늙으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는 경로를 밟는데 저도 ‘생로병’까지 왔다”며 남은 인생에 대한 자신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국회 사랑재에서 강창희 국회의장, 김수한·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한동·이홍구 전 총리 등과 환담하는 중에 강 의장이 “정치가 시끄러워 죄송하다”면서 조언을 구하자 “야당은 실권을 쥔 사람들을 때려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져주면서 얻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야당은 집권당을 상대로 머리를 쓰고,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물리력을 쓰면 결국은 손해”라고 했다.

5년10개월 만에 외출…존재감 드러내
나타난 속내는? 돌아온 속사정 주목

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일으켜서 비가 많이 오고 홍수가 날 지경인데도 홍수가 안났다고 하지만 그 효과 때문이 아니다”면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산에 못 들어가게 하고 벌거벗었던 산이 파랗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 가지를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것을 이롭게 해주셨나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어제를 잘 알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충청권 인사가 대거 결집했다.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총리와 전혁직 국회의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부회장을 맡은 새누리당 이완구, 정우택, 성완종 의원을 비롯해 이인제 의원,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 충청권을 기반으로 내년 지방선거나 당권 등을 노리는 인사들 등 40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운정회 발족을 계기로 충청권이 세 결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행사에 참석한 새누리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운정회 창립총회를 계기로 충청권이 다시 뭉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JP는 현실 정치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시 돌아온
‘영원한 2인자’

JP의 외부활동이 그나마 가능한 현 시점에서 이러한 결집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권 내부가 본격적인 세 결집으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면서 계파 또는 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각종 모임으로 세 확장에 나설 모양새다. 근대 당내 모임이 잇달아 출범하더니 충청권 기반 모임까지 결성된 것. 이들은 나름의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임을 보면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의원이 주축인 이 모임은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출범 당시 33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는 현재 70여 명에 이른다. 이 포럼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명씩 회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이 총괄간사인 이 모임엔 홍문종 사무총장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당대 최고 공부 모임인 ‘근현대사역사교실’도 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의 회원(의원) 수는 109명에 이른다. 왼외 회원은 23명이다. 이 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매주 수요일 열리는 모임엔 50∼60명의 회원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최근 불거지는 역사논쟁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근현대사역사교실은 보수층 결집 의도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 중진인 남경필 의원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회원 수 62명 가운데 20명 안팎이 매주 목요일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총궐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5년 만에 나타난 충청권 보스인 JP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의도 정가에선 보수대연합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의 행보가 앞으로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반면 범야권은 연일 전략부재를 노출한 데 이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 추진 등으로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 1년 차 말기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지방선거 노린
여권의 결집?

김종필 전 총리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복한 소년기를 보내며 공주중과 공주고를 졸업했다.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 예과에 들어갔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곧 중퇴, 귀국후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45년 대전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고 보령군의 소학교 교사로 발령났다. 그러나 그는 교편을 잡은 지 2개월 만에 그만두고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8기생으로 입교했다. 그리고 1960년 일어난 항명 파동으로 육군 중령에서 예편했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한때 ‘사상계’를 찾아가 이력서를 넣었으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예비역 중령 신분으로 자신의 처삼촌인 박정희 등과 교류했고 61년 5·16 군사정변을 준비한다.

5·16군사 정변이 성공하자 그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육군 중령이 됐다. 이어 대령으로 진급했고 준장까지 진급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을 거사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그는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했다.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구성되면서 중앙정보부가 신설됐다. 그는 제1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다. 군사 정변 직후 그는 장인 박상희의 경력과 관련해 사상 공세에 시달렸고, 황태성이 남하한 후에는 한일회담 직전까지 야당인사들로부터 수시로 의혹을 받았다.

62년에는 민주공화당의 사전 창당조직 연구팀과 사전 조직인 동양화학 주식회사의 창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연구실의 이름을 ‘동양화학 주식회사’로 위장하고 종로 2가 제일전당포 2∼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렇게 재건당을 조직해 민정에 군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기 위한 창당작업을 지속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63년 그는 육군 준장에서 예편했고 중앙정보부장직도 사퇴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야당 인사들은 구정치인 정정법으로 묶어놓고 자신들만의 사전조직을 비밀리에 결성했다며 비난했다.

한편 꾸준히 육사 5, 6기생들의 견제를 받던 그는 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위원장을 사퇴하고 순회대사의 자격으로 동남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을 역방하고자 출국했다가 귀국하여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63년 11월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해 12월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선출됐다.


65년에는 일본 외무상인 오히라 마사요시와의 비밀 접촉으로 논란이 일었다. 식민지에 대한 사과, 약탈 문화재 반환, 재일동포 지위, 동해어업권,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원폭피해자 문제 등 주요 현안은 무시한 채 경제적 보상과 차관을 대가로 모든 문제의 종결을 선언해 이후 야당 인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 협상은 ‘김-오히라 메모’로 불린다. 후일 그는 “내가 이완용이 소리를 들어도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적은 액수이더라도 빨리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 경제성장이 빠르지 않았느냐”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공적 기리는 ‘운정회’
보수결집 신호탄 되나

64년부터 한국에서는 한일협상을 반대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한다는 학생시위가 일어난 것.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해 반대 목소리를 탄압하고 회담을 지속했다.

67년에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지만 부정·타락 선거라는 이유로 그 이듬해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후 물러난다는 선언을 하면서 JP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과 함께 차기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민주공화당 내에는 그를 지지하는 파벌이 나타났다.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경계하는 원인이 되어, JP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JP는 당원직을 사퇴하고 일시적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의 2인자로 끊임없이 박 전 대통령과 갈등했고 75년 12월 총리직에서 전격 경질된다. 77년에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를 순방한 바 있고, 79년 제10대 국회의원에 재선했다.

현충원 아닌…
고향에 누울 것


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해 11월 민주공화당 당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JP는 김영삼, 김대중 등과 함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각했다.

80년 5월에는 보안사에 체포돼 감금당했다. 신군부는 관제보도를 통해 JP 등 10여 명을 유신 시대의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이때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전두환을 증오하게 됐다. 그리고 그해 9월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헌납하도록 강요받고, 정계에서 은퇴한다는 각서를 썼다.

이후 정치활동이 정지당한 채 87년까지 야인생활을 했지만, 그해 다시 정계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추대돼 민주공화당과 국민당을 흡수했다. 그리고 87년 8월,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결과는 4위였다. 이후 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민주정의당의 노태우로부터 삼당합당의 제의가 오자 고려 끝에 노태우의 제안을 수용했다. 90년 2월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러나 내각제를 추진하려는 JP와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려는 YS 간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92년에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 재선임되고, 95년 민자당 총재직 사퇴와 동시에 탈당해 독자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일부 영남권 인사들을 포섭하고 군부 출신 인사들과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했으나 실패했다.

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97년,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DJ와 손을 잡고 DJ를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일명 DJP연합), 그해 11월에는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로 정계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민련을 이끈 JP는 2000년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원하는 의석을 얻지 못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소수야당의 총재로 남게된 것이다.

2004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에서 아무도 비례대표가 나오지 않자,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JP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종결됐고, 대통령에 끝내 당선되지 못했다. 충청권 지역 정당으로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등이 만들어졌지만 JP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 갑자기 뇌놀중으로 쓰러져 입원했고, 재활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JP’라는 약칭은 정치가로 활동할 당시 JFK(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본따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알파벳 이니셜’의 원조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필은?]

▲충남 부여 출생
▲공주고 졸업
▲서울대 교육학 학사, 육군사관학교 학사
  페어리디킨슨대 등 명예박사학위 9개
▲제 1대 중앙정보부 부장
▲제 6대 공화당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당의장
▲제 7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부총재
▲제 8대 국회의원
▲제 11대 국무총리
▲제 9대 국회의원
▲제 10대 국회의원
▲제 13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총재
▲제 15대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
▲제 31대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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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