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다시 등장한 김종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4: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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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시대’ JP가 움직인다

[일요시사=사회팀] 한국 정치사는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인생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최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국무총리는 살아 있는 한국 정계의 거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이후 잠잠했던 그가 5년10개월 만에 국회에 나타났다. 존재감은 여전했다. 현 정국에 그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지난 10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국회를 찾았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운정회는 그가 한국 산업화 시대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JP의 국회 방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던 2008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무려 5년10개월 만이다. 그는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칩거해왔다.

운정회 창립총회
참석차 국회방문

JP는 이날 흰색 밴을 타고 국회에 도착해 휠체어에 앉았다.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과 정진석 국회사무총장이 행사장까지 JP의 휠체어를 밀어 눈길을 끌었다. JP는 국회 헌정기념관 1층에 도착해 전시돼 있는 자신의 두상을 둘러봤다. 행사장 안에는 참석자 30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종필’을 연호하며 칭송했다.

이들은 발기문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 운정 김종필 전 총리를 모시고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데 참여하고 헌신해 왔다”며 운정 선생은 고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추대, 국구 충정으로 5·16혁명을 주도해 최빈국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초석을 놓으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두 차례의 총리와 9선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등 4개 정당의 총재와 대표를 역임해 오신 우리 현대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이라며 “우리는 한평생 국태민안을 위해 헌신해 오신 운정 선생의 공업을 기리며 뜻을 같이해 온 동지 상호 간의 친목을 증진시키고자 김 전 총리의 아호를 빌려 운정회 발기인총회를 개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회사와 축사에 나선 주요 인사들은 김 전 총리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풍운아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점을 환기시키며 조국근대화에 대한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운정 선생님의 명성을 처음 대한 것은 20세가 채 안 된, 대학에 입학하고 난 직후였다. 선배들이 거사의 정당성을 설파하실 때 보여주신 선생님의 논리적인 언변을 전설처럼 들려줬다”며 “선생님은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마이크를 잡은 JP는 40여분간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원고 없이 자신의 정치 역정을 연설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특히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을 인용했다. 그는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성과를 언급했다. 8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해서는 “저는 나라는 팔아먹지 않았다. ‘제2의 이완용’도 아니다”라며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했고, 거기에서 생산된 철로 현대자동차와 조선업도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JP는 “이제 갈 곳은 죽는 곳밖에 없는데 국립묘지(현충원)에 가지 않고 우리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 누워 있는 고향(부여 선산)에 가서 눕겠다. 누구나 늙으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는 경로를 밟는데 저도 ‘생로병’까지 왔다”며 남은 인생에 대한 자신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국회 사랑재에서 강창희 국회의장, 김수한·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한동·이홍구 전 총리 등과 환담하는 중에 강 의장이 “정치가 시끄러워 죄송하다”면서 조언을 구하자 “야당은 실권을 쥔 사람들을 때려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져주면서 얻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야당은 집권당을 상대로 머리를 쓰고,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물리력을 쓰면 결국은 손해”라고 했다.

5년10개월 만에 외출…존재감 드러내
나타난 속내는? 돌아온 속사정 주목

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일으켜서 비가 많이 오고 홍수가 날 지경인데도 홍수가 안났다고 하지만 그 효과 때문이 아니다”면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산에 못 들어가게 하고 벌거벗었던 산이 파랗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 가지를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것을 이롭게 해주셨나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어제를 잘 알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충청권 인사가 대거 결집했다.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총리와 전혁직 국회의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부회장을 맡은 새누리당 이완구, 정우택, 성완종 의원을 비롯해 이인제 의원,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 충청권을 기반으로 내년 지방선거나 당권 등을 노리는 인사들 등 40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운정회 발족을 계기로 충청권이 세 결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행사에 참석한 새누리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운정회 창립총회를 계기로 충청권이 다시 뭉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JP는 현실 정치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시 돌아온
‘영원한 2인자’

JP의 외부활동이 그나마 가능한 현 시점에서 이러한 결집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권 내부가 본격적인 세 결집으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면서 계파 또는 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각종 모임으로 세 확장에 나설 모양새다. 근대 당내 모임이 잇달아 출범하더니 충청권 기반 모임까지 결성된 것. 이들은 나름의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임을 보면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의원이 주축인 이 모임은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출범 당시 33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는 현재 70여 명에 이른다. 이 포럼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명씩 회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이 총괄간사인 이 모임엔 홍문종 사무총장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당대 최고 공부 모임인 ‘근현대사역사교실’도 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의 회원(의원) 수는 109명에 이른다. 왼외 회원은 23명이다. 이 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매주 수요일 열리는 모임엔 50∼60명의 회원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최근 불거지는 역사논쟁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근현대사역사교실은 보수층 결집 의도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 중진인 남경필 의원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회원 수 62명 가운데 20명 안팎이 매주 목요일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총궐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5년 만에 나타난 충청권 보스인 JP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의도 정가에선 보수대연합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의 행보가 앞으로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반면 범야권은 연일 전략부재를 노출한 데 이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 추진 등으로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 1년 차 말기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지방선거 노린
여권의 결집?

김종필 전 총리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복한 소년기를 보내며 공주중과 공주고를 졸업했다.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 예과에 들어갔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곧 중퇴, 귀국후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45년 대전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고 보령군의 소학교 교사로 발령났다. 그러나 그는 교편을 잡은 지 2개월 만에 그만두고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8기생으로 입교했다. 그리고 1960년 일어난 항명 파동으로 육군 중령에서 예편했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한때 ‘사상계’를 찾아가 이력서를 넣었으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예비역 중령 신분으로 자신의 처삼촌인 박정희 등과 교류했고 61년 5·16 군사정변을 준비한다.

5·16군사 정변이 성공하자 그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육군 중령이 됐다. 이어 대령으로 진급했고 준장까지 진급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을 거사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그는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했다.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구성되면서 중앙정보부가 신설됐다. 그는 제1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다. 군사 정변 직후 그는 장인 박상희의 경력과 관련해 사상 공세에 시달렸고, 황태성이 남하한 후에는 한일회담 직전까지 야당인사들로부터 수시로 의혹을 받았다.

62년에는 민주공화당의 사전 창당조직 연구팀과 사전 조직인 동양화학 주식회사의 창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연구실의 이름을 ‘동양화학 주식회사’로 위장하고 종로 2가 제일전당포 2∼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렇게 재건당을 조직해 민정에 군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기 위한 창당작업을 지속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63년 그는 육군 준장에서 예편했고 중앙정보부장직도 사퇴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야당 인사들은 구정치인 정정법으로 묶어놓고 자신들만의 사전조직을 비밀리에 결성했다며 비난했다.

한편 꾸준히 육사 5, 6기생들의 견제를 받던 그는 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위원장을 사퇴하고 순회대사의 자격으로 동남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을 역방하고자 출국했다가 귀국하여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63년 11월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해 12월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선출됐다.


65년에는 일본 외무상인 오히라 마사요시와의 비밀 접촉으로 논란이 일었다. 식민지에 대한 사과, 약탈 문화재 반환, 재일동포 지위, 동해어업권,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원폭피해자 문제 등 주요 현안은 무시한 채 경제적 보상과 차관을 대가로 모든 문제의 종결을 선언해 이후 야당 인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 협상은 ‘김-오히라 메모’로 불린다. 후일 그는 “내가 이완용이 소리를 들어도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적은 액수이더라도 빨리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 경제성장이 빠르지 않았느냐”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공적 기리는 ‘운정회’
보수결집 신호탄 되나

64년부터 한국에서는 한일협상을 반대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한다는 학생시위가 일어난 것.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해 반대 목소리를 탄압하고 회담을 지속했다.

67년에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지만 부정·타락 선거라는 이유로 그 이듬해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후 물러난다는 선언을 하면서 JP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과 함께 차기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민주공화당 내에는 그를 지지하는 파벌이 나타났다.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경계하는 원인이 되어, JP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JP는 당원직을 사퇴하고 일시적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의 2인자로 끊임없이 박 전 대통령과 갈등했고 75년 12월 총리직에서 전격 경질된다. 77년에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를 순방한 바 있고, 79년 제10대 국회의원에 재선했다.

현충원 아닌…
고향에 누울 것


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해 11월 민주공화당 당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JP는 김영삼, 김대중 등과 함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각했다.

80년 5월에는 보안사에 체포돼 감금당했다. 신군부는 관제보도를 통해 JP 등 10여 명을 유신 시대의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이때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전두환을 증오하게 됐다. 그리고 그해 9월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헌납하도록 강요받고, 정계에서 은퇴한다는 각서를 썼다.

이후 정치활동이 정지당한 채 87년까지 야인생활을 했지만, 그해 다시 정계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추대돼 민주공화당과 국민당을 흡수했다. 그리고 87년 8월,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결과는 4위였다. 이후 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민주정의당의 노태우로부터 삼당합당의 제의가 오자 고려 끝에 노태우의 제안을 수용했다. 90년 2월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러나 내각제를 추진하려는 JP와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려는 YS 간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92년에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 재선임되고, 95년 민자당 총재직 사퇴와 동시에 탈당해 독자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일부 영남권 인사들을 포섭하고 군부 출신 인사들과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했으나 실패했다.

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97년,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DJ와 손을 잡고 DJ를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일명 DJP연합), 그해 11월에는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로 정계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민련을 이끈 JP는 2000년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원하는 의석을 얻지 못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소수야당의 총재로 남게된 것이다.

2004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에서 아무도 비례대표가 나오지 않자,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JP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종결됐고, 대통령에 끝내 당선되지 못했다. 충청권 지역 정당으로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등이 만들어졌지만 JP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 갑자기 뇌놀중으로 쓰러져 입원했고, 재활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JP’라는 약칭은 정치가로 활동할 당시 JFK(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본따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알파벳 이니셜’의 원조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필은?]

▲충남 부여 출생
▲공주고 졸업
▲서울대 교육학 학사, 육군사관학교 학사
  페어리디킨슨대 등 명예박사학위 9개
▲제 1대 중앙정보부 부장
▲제 6대 공화당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당의장
▲제 7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부총재
▲제 8대 국회의원
▲제 11대 국무총리
▲제 9대 국회의원
▲제 10대 국회의원
▲제 13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총재
▲제 15대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
▲제 31대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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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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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