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별기획①>파란만장 DJ ‘인동초 삶’ 풀스토리

모진 겨울 이겨내고 평화의 꽃 활짝 피웠다



인생을 바꾼 ‘부산정치파동’, 3전4기 정치 입문기
가택연금, 사형선고, 망명 속에 키운 민주화의 등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거했다. 1924년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정치인이 됐고, 군사정부의 반대편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두 번의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았으며 1997년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민족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의 영광도 있었지만 이후로도 시련은 그를 따라다녔다.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했던 삶 속에서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가 남긴 발자취는 거대한 족적으로 남았다.

지난 18일 오후 1시43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큰 별이 졌다.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건강 악화로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85년간의 삶은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시련 속의 정치 도전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DJ의 85년 삶 중 50여 년은 정치인생이었다. 그의 삶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으며 굵직한 민주화 사건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정치에 뜻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DJ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다. 그의 호 ‘후광’도 고향 마을의 지명과 같다. 일본인 지주 밑에서 소작농을 하던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 사이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적에 기록된 생년월일은 1926년 1월6일이지만 실제 태어난 해는 그보다 2년 앞선 1924년으로 알려져 있다.

DJ는 1944년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목포상선에 취업했다.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이며 승승장구했고 해방이 되자 이곳의 재산관리인, 대표가 됐다.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로 불리는 와중에 목포상고 동기생의 소개로 첫 부인 차용애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1954년 ‘부산정치파동’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정권 연장을 노린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 게릴라를 일소한다는 명목으로 부산 일대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 대혼란이 벌어진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정치’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DJ는 “6·25를 겪으면서 국민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가 올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8월 해방을 맞자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탈퇴했는데 이 경력은 오랜 세월 그를 색깔론에 시달리게 했다.

정치권으로의 진입은 쉽지 않았다. 1954년 전남 목포에서 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첫 고배를 마셨고 강원도 인제로 지역구를 옮겨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4, 5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세 번 연속 국회의원 선거 낙선은 첫 부인인 차용애씨와의 사별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낳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 5월 강원도 인제의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부터다. 3전4기 끝에 처음으로 금배지를 손에 쥔 것. 하지만 당선 3일 만에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의원 선서도 하지 못한 채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DJ는 다시 도전했고 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1964년 4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준연 의원 구속 동의안 표결을 방해하기 위해 5시간19분의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우며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8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되며 정치력을 쌓아갔다.

1970년 9월29일은 DJ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당시 제1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날이기 때문이다. DJ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화당 후보인 박정희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고, 90만여 표 차이로 석패했다. 박정희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한 매서운 공세였다.

그리고 이후 그의 삶에는 ‘시련’이라는 글자가 깊게 새겨졌다. 1971년 대선 패배 이후 정치 스타가 아닌 민주화의 상징이 되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와 6년간의 투옥, 10년간 55회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상당 기간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대선 다음 해인 1972년 신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하던 DJ는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도쿄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첫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국민투표 무효 선언을 하는 등 반독재 반유신 투쟁을 이어나갔다. 정권에게는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중앙정보부가 움직였다. 1973년 8월 DJ를 일본 도쿄의 그랜드 팔레스호텔에서 납치한 후 바다로 끌고 가 수장시키려고 한 것. 미국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납치 5일 만에 구사일생으로 생환했다.

석방과 연금이 계속됐고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자 연금해제 및 사면복권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짧기만 했다. 1980년 5·17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주세력에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석방과 연금, 사형선고
죽음 문턱서 핀 ‘인동초’

DJ는 조작된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유언이기도 했던 “이 땅에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최후진술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불렀고 사형에서 무기로,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그는 1982년 12월 석방된 직후 쓸쓸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 있으면서도 국내에 있던 YS와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는 등 반독재투쟁을 계속했다. 굴곡진 정치 인생 속 민주화의 향해 나아간 그를 향해 사람들은 ‘인동초’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얇은 잎 몇 장으로 시린 겨울을 견뎌내고 새 봄에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이 DJ의 삶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DJ는 귀국을 감행했다. 귀국과 함께 잡힐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도 뿌리쳤다. DJ는 귀국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또 다시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그러나 2·12 총선의 ‘신민당 돌풍’을 발판으로 3월에 YS와 나란히 민추협 공동의장에 취임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이끌었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DJ의 대권도전은 3전4기였다. 1971년 첫 대선 도전 이후 1997년 4수 끝에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 36년간의 도전은 결국 꽃을 피웠다.

정권교체의 기회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첫 대선인 13대 대선에서 찾아왔다. YS와 후보단일화를 할 경우 민주진영의 정권교체가 유력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민주진영의 간절한 바람에도 단일화는 실패했고 DJ는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 민주화 동지였던 YS와 척을 지게 됐다. 또한 야권의 분열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승리로 이어졌다.

3전4기 대권도전
평화적 정권교체 이뤄

DJ는 1992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했지만 ‘삼당합당’을 앞세운 YS에게 패배했다. DJ는 즉각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의 정치인생에 마침표가 찍히는 듯했지만 1993년 7월 귀국한 DJ는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통일운동을 벌이다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1995년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40년 파란 많았던 정치 생활에 종말을 고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던 그의 약속은 깨졌고 이는 줄곧 그를 괴롭혔다.

1997년 마지막 대권도전은 ‘대선 필패론’ ‘색깔론’ 등 반DJ 정서로 어지러웠다. 그러나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DJP연합을 이루면서 ‘준비된 대통령’을 원하던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의 선택의 통해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는 했지만 국민의 정부가 맞은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IMF 외환위기는 그에게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금 모으기 운동’으로 IMF 자금 상황기간을 2년 가까이 단축, 위기를 극복했다.

2000년에는 광복 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그는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들고 북한으로 향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6·15 공동선언문을 채택, 발표했다.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견제, 대북송금의혹과 측근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불행한 임기 말을 보내야 했다. 두 아들의 권력형 부정부패와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옷로비’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DJ가 “가장 기뻤던 일은 IMF를 1년 반 만에 극복한 것이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옷로비 사건이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퇴임 후엔 참여정부의 시작과 함께 몰아친 대북송금 특검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흠집이 갔고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측근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2005년에는 불법 도·감청 사건 수사로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DJ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국가 원로로서 인권과 통일, 민족 문제 해결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가진 정치적 영향력은 건재했고 ‘현실정치 참여 논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최대 관심은 언제나 ‘통일’이었다. 현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특사 파견 등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거듭 강조했으며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조언하기도 했다. 그가 준비한 마지막 연설문도 대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한 DJ는 휠체어를 탄 채 분향소를 찾아 눈물을 쏟았다.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현실정치와 거리두기
‘햇볕정책’ 실패론 마음고생

때문에 그가 생전에 남긴 연설문과 발언은 사실상 유언이 되고 말았다. 지난 7월3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추천사 중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라는 말이 긴 울림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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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쪼개는 민주당발 음모론

민주당 쪼개는 민주당발 음모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공소 취소’ 논란이 뜨겁다. 진위는 사라지고 무수히 많은 뒷말과 갈라치기만 남았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청 모두 “황당하다”는 입장이지만 ‘스피커’로 불리는 외부 인사가 계속해서 당을 흔든다면 그 목적을 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대형 폭탄이 떨어졌다. 소위 말하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위급 검사’ 다수에게 “내 말이 곧 대통령의 뜻이다. 나는 대통령이 시키는 것만 한다. 공소 취소해 줘라”라고 주장했다는 것.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저널리스트’를 운영하는 MBC 기자 출신 장인수씨는 친청(친 정청래)·친문(친 문재인) 성향으로 알려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단독”이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안으로 겨눈 칼날 왜? 장씨는 “검찰은 이 메시지를 ‘아, 이재명정부가 우리랑 거래하고 싶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여기까지는 팩트”라고 부연했다. 검찰과 정부가 보완수사권·검찰개혁 수위 등을 놓고 일종의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장동·위례·백현동 개발 및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위증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 5개 재판을 받았으나 대통령 당선 뒤 중단됐다. 장씨는 “이미 검찰은 이재명정부 말기 혹은 퇴임 후에 이 대통령을 털 생각을 하고 있다. 직권남용이라는 죄목까지 정해놨다”며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나 국무회의 생중계에서 지시하는 사안들을 직권남용으로 걸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임은정 동부지검장의 인천세관 마약 사건 수사팀에 백해룡 경정을 배치하라고 지시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자 김어준씨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건 사실이 아닐 것이라 본다. 이 대통령이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을 통해 절차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누굴 만나서 부탁할 일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도 “어떤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냈다면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직후 해당 발언은 ‘공소 취소 거래설’로 압축돼 여의도 전역에 퍼졌다. 코너에 몰렸던 국민의힘은 이를 ‘공소 취소 거래 게이트’로 규정하고 이 대통령에 대한 특검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특검을 통해 이 추악한 뒷거래 시도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며 “이 황당한 ‘사법 거래설’이 세간에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명백하다. 최근 친명(친 이재명)계 주도로 이른바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이 결성됐고, 심지어 민주당은 오늘 그 빌드업의 일환으로 억지스러운 ‘국정조사 요구서’까지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주당과 친명계는 아수라장”이라며 “정권의 사법 거래 의혹을 두고 여권 내부에서 서로 삿대질해대는 참담한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혹평했다. 정부 고위급 관계자의 수상한 거래? “사법 농단 탄핵감” 국민의힘 맹공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 역시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와 검찰 수사권 문제를 맞바꾸려 했다면 이는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라며 “관련자 처벌은 물론이고 사실로 확인될 경우 관련 정도에 따라 대통령 탄핵까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곧바로 받아쳤다. 대표 친명계인 한준호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음모론도 모자라 탄핵까지, 정말 선을 넘었다. 참담하다’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근거로 대통령 탄핵까지 입에 올리는 발언이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서 흘러나온다”며 “사실 확인도 없는 이야기로 음모론을 키우고 급기야 탄핵까지 거론하는 행위는 국정을 흔드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직접적으로 여권 세력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검찰개혁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소 취소 거래설 자체를 감히 꺼낼 수 없다”며 “이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공소가 취소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윤석열 검찰 세력도, 국민의힘 윤 어게인 세력도 그렇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대통령을 쥐고 흔들려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공소 취소 사건의 고위급 검사로 지목된 이들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고위급 검사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공개하며 “장관님께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종종 건의사항을 보내고 있는데, 가장 최근 문자를 받은 것은 지난 12월”이라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검사들에게 특정 사건 관련 공소 취소에 대해 말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최근 제기된 황당한 음모론으로 인해 진지하게 숙의돼야 할 검찰개혁 논의가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며 “다시 건설적인 개혁의 논의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의혹이 제기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어디서 문제가 됐는지 조사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중요한 검찰개혁 문제가 엉뚱한 데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 말씀을 국민이 합리적으로 잘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치명타 여권 인사들은 불씨를 댕긴 장씨를 향해 “출처를 밝히라”며 근거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장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긴급 라이브’ 공지를 띄우고 “방송 후 한준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저잣거리 소문만도 못한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제 취재 내용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흔들릴 수 없는 팩트”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의원은 ‘누가 말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 무슨 근거로 확인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공개하라’고 하는데 고민해 보겠다”며 “공개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죄송하지만 출처를 밝힐 수 없다. 출처를 밝히지 않기로 약속하고 취재했다”며 한 발 물러섰다. 공소 취소를 지시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신원도 “그 사람을 저격하기 위해 해당 취재 내용을 밝힌 것이 아니”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공소 취소에 대한 사실관계는 사라지고 진영 논리와 경쟁구도만 남았다. 또다시 ‘정청래 VS 청와대’ ‘친명 VS 친청’ 프레임이 굳어지면서 오는 8월 치러질 전당대회를 향한 당권 경쟁이 벌써 과열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평소 김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를 “민심의 척도”로 강조하는 등 김씨와 우호적인 관계였던 만큼 친청·친문계의 모든 행동이 ‘김민석 총리 당대표 차출설에 대응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김 총리를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는 총리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거부하거나 이 대통령의 순방 기간에 벌어진 중동 사태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대응을 두고 “국무회의도 없었다”며 국정 공백을 지적했다. 이에 총리실은 “대통령 순방 중에 정부는 중동 상황 발발 직후부터 매일 오후 비상 점검을 위한 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후에는 대국민 브리핑을 진행해 왔다”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검찰개혁 뒷다리만 최근에는 ‘KTV 이매진(KTV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이재명 대통령의 싱가포르·필리핀 국빈 방문 출국길 영상을 논란 삼으면서 직접적으로 정부와 각을 세웠다. 해당 영상에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 정 대표 지지자들이 ‘딴지일보’ 게시판을 통해 “의도적 삭제”라고 반발한 것. 김씨는 자신의 방송을 통해 “대통령과 당 대표자의 악수 장면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실수일 수 있다”면서도 “그런 실수가 민주정부 정권 재창출을 막으려는 악의적인 시도에 이용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몇 차례 마찰이 있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조금씩 갈라지던 민주당 지지층이 이번 사태를 통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누적된 갈등이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 공소 취소라는 민감한 소재에 대통령을 엮었다는 점이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김씨와 정 대표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민주 진영에 내분을 일으켜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설명이다. 기존 지지자와 더불어 ‘뉴이재명’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전통 민주당 당권파와 다른 양상을 띠면서 표심이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을 지녔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투쟁 전선이 넓어진 것 역시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과 ‘당심(당원의 의중)’이 대척점에 서면서 모든 사안이 권력투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공취모(이재명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를 중심으로 움직임에 나섰지만, 외부에서 여론을 흔드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현 정부에 오히려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의 뜻’인지 ‘참칭’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통령 직접 개입이라는 최대 해석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정치적 파장이 큰 주장일수록 더 엄격한 증거 기준이 요구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이렇게 음모론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김어준 VS 청와대’ 유튜버에 휘청 8월 전대 앞두고 사방서 권력투쟁 정 대표는 “당에서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갈등 진화에 나섰다. 그는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 치하도 아니고 가장 민주적인 이정부에서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다”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실제로 있는 일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소 취소는 거래로 될 일이 아니”라며 “합법적인 방법인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윤석열 정권 치하에서 벌어진 조작 기소 사실이 드러나면 상응하는 조치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대표와 김씨가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갈등 진화에도 민주 진영 커뮤니티는 이미 격양된 사용자들의 게시글로 도배가 됐다. “이 대통령이 보완수사권을 갖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유튜버가 정부를 흔드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대해진 유튜브 권력을 규탄하기도 했다. 정부의 검찰개혁인 이른바 ‘정부안’에 반대하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공소 취소 거래설을 퍼뜨린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친명·친청계 유튜버들이 이번 사태에 대거 참전해 분석에 나섰고, 해당 주장은 게시글로 가공돼 또다시 커뮤니티로 퍼지는 순환이 이어졌다. 청와대는 이번 논란에 대해 공식 대응을 삼가고 있다. 해명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사사건건 대응한다면 오히려 국정 운영에 힘만 빠진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종의 ‘프레임 작전’이라며 상대방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거래설 제기’가 정말인지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별도 방송을 확인한 결과 어디에서도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찰과 공소 취소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말은 없었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검찰개혁-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를 추적했다. 노 의원은 “네이버 기사 검색 결과에 따르면 가장 먼저 거래설을 띄운 건 <조선일보>”라며 “장씨의 주장 전체를 거래설 제기로 인식케 하는 교묘한 프레임이라 할 만하다. 이후 나온 보도들에서는 대놓고 거래설 제기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배후는 누구? 이어 “장씨가 거론한 ‘거래’는 ‘우리랑 거래하자는 거구나’라는 검찰의 일방적 반응을 전하면서 말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논란의 문장 자체를 ‘거래 시도’로 해석한다면 해석하는 쪽과 다퉈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아울러 장씨를 향해 “섣부르고 무책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면서도 “프레임에 갇혀 지금처럼 우리끼리 싸우면 별것도 아닌 것만 나와도 수습하기 어렵다. 잠시 숨을 고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칼 빼든 민주당 “법적 조치 나서겠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소 취소설을 제기한 MBC 기자 출신 장인수씨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공소 취소 거래설에 대해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2일 민주당 국민소통위원장인 김현 의원과 허위조작 정보 대응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김동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씨를 정보통신망법 제70조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발언이 ‘대통령과 정부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 주장’이라는 게 주요 골자다. 앞서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은 장씨와 더불어 김어준씨를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과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사세행은 “김씨는 장씨 발언 내용에 대해 방송 이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장씨의 발언을 사전에 승인하고 그대로 방송에 출연시켰다”며 “장씨와 함께 공동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 정 장관의 검찰개혁 업무 특히 공소청법 및 중수청법 입법 추진을 심대하게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