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별기획>④ ‘포스트 조문정국’ 정치 함수

겉은 ‘애도’ 속으론 ‘끙끙’



민주, 원외투쟁 부담에 탄력 받는 등원론
한나라, 10월 재보선, 선거구제 개편 변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야는 ‘포스트 조문정국’을 고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겪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동반 추락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남은 민주세력의 연합을 통해 ‘반MB전선’을 확대하려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조문정국으로 멈춰졌던 정치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10월 재보선 공천과 9월 정기국회, 이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논의 등 복잡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조문정국 후 정세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올스톱된 여의도는 겉으로는 애도를, 속으로는 향후 정국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상주 된 민주당
‘민주대연합’ 구상

DJ의 서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 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정치적 무게처럼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또한 국장이 마무리되자마자 10월 재보선 공천과 9월 정기국회 개원 문제 등 굵직한 사안을 처리해야 해 여야의 머리싸움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10월 재보선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앞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정치 풍향계가 될 전망이고 9월 정기국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8·15 메시지를 통해 전한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9월 정기국회를 개원할 수 있을지의 여부부터 따져야 한다.

서거정국으로 다시 상주가 된 민주당은 ‘DJ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그중 하나가 민주세력의 대연합이다. 민주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DJ의 말처럼 민주세력을 모으겠다는 것. 이는 길어지고 있는 장외투쟁으로 인해 하나둘 표출되고 있는 당 내부의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있는데다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는 친노 진영을 압박할 수 있는 패다.


또한 ‘반MB전선’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DJ가 마지막 연설이 된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현 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규정하고 거세게 질타했기 때문이다. 당시 DJ는 “우리는,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면서 “만일 이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을 갖고 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할 것을 바란다”고 경고했다.

미디어법에 대한 반감이 가시지 않았고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예산 문제 등도 ‘반MB전선’을 강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반MB전선’이 강화되면 대여투쟁에 탄력이 붙게 될 뿐더러 곧 있을 10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민주당은 국회에 꾸려진 DJ의 빈소보다 시민 참여가 더 많은 서울역 광장 빈소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민심의 향방을 살피고 있다.

거목 부재 ‘큰 구멍’
민주당내 역학구조 변화

DJ의 유지를 잇는 것과는 별개로 민주당은 한 해에 연거푸 두 전직 대통령을 잃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DJ의 ‘훈수정치’는 민주당에도 부담이기는 했지만 정치적 위기 때마다 나서서 민주세력을 다독이고 감싸던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까닭이다.

또한 DJ의 서거로 인해 당 내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전국정당화를 위해 ‘중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호남에 대한 영향력이 일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DJ가 서거함으로써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가 손상되는 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9월 정기국회 등원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등원론에 대한 내부의 주장뿐 아니라 평생 정치의 중심 무대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의회주의자 DJ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빈소가 국회에 치러진 것도 그러한 DJ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 만큼 당이 자연스럽게 등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5월 말 서거했을 때 나는 6월 국회를 바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를 통해 500만 명을 민주당에 줬다. 우리가 그런 추모 열기를 등에 업고 바로 등원해서 강력한 원내투쟁을 했더라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며 등원을 주장했다.


그는 “나는 ‘주국야광(晝國夜光)’을 하자는 입장”이라며 “낮에는 국회에서 투쟁하고, 밤에 필요할 경우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자는 거다. 우리는 9월이 되면 9월의 행동을 할 것이다. 무조건 등원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9월 정기국회가 되면 합당한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면서 원외투쟁에 나선 만큼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DJ의 서거가 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등원을 위해서는 의원직 사퇴에 맞먹는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DJ까지 서거하며 국민 여론이 다시 한 번 민주당으로 모아질 수 있다는 점과 정부 여당이 그 후폭풍에 가격당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당 지도부가 발 빠르게 조문에 나서는 등 조문정국 동안에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조문정국보다 ‘포스트 조문정국’이 더 골칫거리다. 당장 10월 재보선이 멀지 않았다. 재보선 지역이 확정된 곳은 강원도 강릉, 경기도 안산, 경남 양산이다. 하지만 수도권 한두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는데다 이 경우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 민심이 민주당으로 돌아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숨죽인 한나라당
골치 아픈 일감만 잔뜩

9월 정기국회도 난제를 안고 있다.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이다. 당초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은 이 대통령이 8·15 메시지에서 “여당에 불리해도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한 이래 여권 내에서 활발히 논의됐다.
박희태 대표는 “우리 정치 현안 중에서 특히 선거제도와 지방행정구역 개편 등은 이 시대의 소명”이라며 “당은 이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구상과 방향 제시에 대해 총력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은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문정국으로 기대했던 효과가 반감됐으며 국장 후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바쁜 일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거정국이 끝나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DJ는 죽기 직전까지 남북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하며 현 정부에 ‘6·15 선언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동교동계 측근들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관된 대북정책이 있어야 북한도 남한 정부를 신뢰하고 대남 유화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이 DJ의 조문을 위해 방문했다는 것도 호재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후 북한과 냉랭한 기운만 쌓아갔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성과를 가져오며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소득을 얻었지만 그만큼 “정부는 뭐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특사 조문단’은 방문 그 자체가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 조문단이 DJ의 빈소를 찾은 지난 21을 기점으로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조처가 해제됐다. 조문단을 위한 임시 전화 개설도 지난해 11월 북한이 끊었던 적십자 채널의 전면적 복원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북정책 어찌하나
여권 고민 깊어만 가

대북 소식통들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잇따른 방북, 북측의 조문단 파견, 남북적십자회담 제안 등의 흐름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며 “임시 전화 개설로 인해 남북 정부 간 연락 채널 복원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측과의 대화를 위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면서도 “능동적인 대북전문가를 등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절충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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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