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특집①> 정치권 ‘친일 논란’ 들춰보니

영원히 자를 수 없는 ‘친일 꼬리표’…“이젠 잘라라”

친일인명사전에 정치인 선친 다수…또다시 친일 논란 조짐
현 정부인사들 인사청문회서 친일 인사 후손 논란에 허우적

우리 역사의 암흑기라 불렸던 날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가고 있지만 ‘친일’의 잔재는 아직까지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제의 수탈을 도왔던 이들이 ‘친일’에서 ‘친미’로 재빨리 다른 가면을 쓰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계 요직에 깊이 뿌리 내리면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일 인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그때마다 파란이 적지 않았다. 이는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8 15를 맞이해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친일 논란을 되짚어봤다.

나라를 되찾은 것은 64년이지만 친일은 여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친일 문제를 친일 인사들이 평가하면서 제대로 된 해결이 이뤄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일 인사들의 후손이 유력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친일’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막은 것도 걸림돌이 됐다.

실제 2004년 2월 모 방송 프로그램은 ‘친일파는 살아있다’ 편에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부친들이 일제시대 면장을 지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최연희, 김용균 의원이 법안을 반대하거나 주요 내용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균 전 의원의 부친 김명수 전 의원은 일제시대 일본 신문사의 기자와 전무를 지냈으며 귀국 후 합천 용주면 면장과 금융조합장을 지내 친일혐의를 받고 있다.

  과거사진상규명법 두고
친일 논란 ‘들썩 들썩’


김 전 의원은 “선친은 친일파가 아니다”라면서 “36년간 일제 치하에서 단순히 취업한 사람과 친일한 사람,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까지 있을 수 있는데 여러 기록을 놓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면장을 하고 조합장을 지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해명했다.

최연희 의원의 부친도 일제시대 면장을 지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 전 의장은 부친이 일제시대 형사였다.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따르면 박 전 의장의 부친 박희준은 일제말기 경남도경 부산경찰서 산하 사법계 순사로 근무한 것으로 나와 있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 지연된 데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 문제가 얽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 전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논란이 불거지면 박 전 대표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것.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만주군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1686명의 명단에 포함됐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박 전 대통령이 근무한 만주군은 일본군과는 법적으로 다르며 복무기간도 겨우 1년4개월로 소대장도 못한 채 육군소위로 해방을 맞았다”고 반박했다.

이 외에도 남경필 의원의 부친은 일제시대 면장을, 정두언 의원의 조부는 일제시대 군수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택 충북도지사의 정운갑은 해방 후 요직에 오른 친일관료였다.

친일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강해지면서 ‘친일’이 정치권의 논란을 부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2004년은 특히 친일 논란이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해였다.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 신상묵(시게미쓰 구니오)이 일본군 헌병 오장(부사관)으로 활동하며 징병기피자 색출을 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 신 전 의장은 “부친은 일제 때 교사만 했다”고 부인했으나 결국 시인하고 3개월 2일 만에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신 전 의장은 “법률적으로는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겠지만, 정치의 세계에선 연좌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의 부친 김일련(가나이 에이이치)은 만주군 특무(경찰)로 활동했으며 이미경 의원의 부친 이봉권은 일본군의 핵심 사찰요원인 황군 헌병오장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근태 전 의장의 부친은 일제시대 훈도, 유시민 전 장관의 백부는 면장이었으며 부친은 훈도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열린우리당 유력 정치인 대부분이 친일시비에 말려들었다.

이 의원은 “일본에서 야간 대학을 다닌 아버지가 졸업 즈음에 성적이 우수해 헌병으로 차출되어서 복무했다고 들었다”고 선친의 일본군 헌병 활동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부친의 문제는) 제 개인 가족사의 비극이기고 하고, 식민지 시대를 걸어왔던 민족의 비극이기도 하다”면서 “개인사의 족보 캐기식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친일 진상규명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부친과 큰아버지의 친일 의혹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나, 아버지, 과거사 그리고 국가정체성’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해명했다. 유 전 장관은 “선친은 1942년경 만주의 어느 소학교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교사였는지, 보조원이었는지, 또는 행정사무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고, 교사 자격이 있었는지 여부도 모르겠다”면서 “해방 직후 미군정 교사 요원 공채에 합격해 최초로 교원자격을 얻었고, 일제 때 교원경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백부가 일제 때 면장을 한 것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현 정부에서도 친일 논란이 세차례나 불거졌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안병만 교과부 장관,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다.

끊이지 않는 친일 시비
사퇴 vs 강행 ‘격세지감’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증조부의 친일 경력이 문제가 됐다. 현 위원장의 증조부 현준호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올라있는 친일경력자다. 그는 호남은행을 세운 대부호로 전남 참사 전남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일제시대 요직을 거쳤다.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강연반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그의 땅 3만2000㎡(시가 10억원)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등 명백한 반민족 행위가 드러난 인물이다.

현 정부 들어 문화재청장에 임명된 이건무 청장의 조부는 이완용이 고문으로 있던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던 친일 사학의 대두 이병도다.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하며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단군 조선의 역사를 신화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부친이 일제시대 경찰 순사와 순사부장을 지냈다.

청문회 당시 안 장관은 안민석 의원의 “민족정기를 가르치는 교육부 수장의 부친이 일제 순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나”라는 날선 질문을 받아야 했다.

안 의원은 “신기남 의원의 경우 부친 친일 논란으로 당의장을 사퇴했던 바 있다”며 “참여정부에게 드리워졌던 잣대로 안 장관을 평가한다면 장관 명함을 내밀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안 장관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일제시대 때 어려운 생활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현 정부의 인사들의 친일 문제를 지적한 김을동 의원은 “왜 친일후손들이 자격이 ‘된다’ ‘안 된다’라는 논란거리가 돼야 하는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젠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이해하고 용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정부는 한참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국민의 정서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친일후손 인사들이 요직에 오르는 걸 결코 바라지 않는다. 설사 당시의 친일 여부 등 구체적 활동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민정서상 일제강점기 요직에 있던 분이라면 용납이 될 수 없다”며 “일례로 17대 국회에서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이 일본군 ‘오장’(지금의 하사)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내놓은 것은 부친의 친일활동이 구체적이었다기보다는 국민정서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고 지적했다.

8·15를 즈음해 편찬될 친일인명사전으로 인해 정치권에 다시 한 번 ‘친일 문제’로 인한 파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사 명단에 정치권 인사들의 선친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권과 관련된 인사 중 명단에 오른 것으로 확인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범석 전 의원,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장면 ·진의종·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이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다시 불붙은 친일 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자료조사 과정에서 전·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한 다수 정치인들의 선친이 포함돼 있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러나 후손들의 신분은 연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친일 인사와 그 후손을 동일시하지는 않더라도 당시 친일 인사들이 사회 기득권자로 활동하면서 쌓은 유·무형의 재산이 후손에게로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세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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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