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특집④>친일파 재산 환수 현황 짚어보니

친일재산 국가귀속 땅 여의도 면적 육박했다!

“이 지구상에서 나라를 팔아서 후손까지 영화를 누리게 두고 보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건국 61주년이 다가오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친일파 후손들의 행태에 쏠리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확인해 국고로 환수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와 친일파 후손 간의 힘겨루기가 4년째 ‘진행형’인 탓이다. 땅을 팔아치운 친일파 후손들은 “땅을 뺏는 게 민주주의냐”며 당당한 입장이다. 현재 조사위와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반면 조사위는 기간 내 이들의 재산을 모두 국고에 환수시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게다가 조사위는 일제강점기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했던 재산 환수 대상자를 군과 경찰 등을 포함해 대폭 늘리고 오는 8월15일 발표할 예정이다. 때문에 또 한 번 파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일요시사>는 현재 재산환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21건 중 19건 진행 중, 1심 끝난 15건 모두 “국가환수 정당”
조사위 2006년부터 재산환수 나서 친일파 후손과 법정다툼


조사위가 친일파 후손들을 상대로 재산환수에 나선 것은 지난 2005년. 재산환수의 근거는 민족정기 회복과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파들이 부역(附逆) 대가로 얻은 토지를 국가가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있다. 이 같은 특별법을 근거로 출범한 것이 조사위다.
조사위는 을사늑약 등 국권 침탈 조약에 관여한 대신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계자, 중추원 의원 등 450여 명을 대상으로 재산환수에 나섰다. 그리고 친일파 77명의 것이던 여의도 면적의 70%에 달하는 토지 554만㎡를 국가로 귀속하는 결정을 내렸다.

친일파 후손들과
뺐고 버티기 ‘승부’

강동희·민병석·민상호·민영휘·조중응·이해승·유정수·이재곤·김서규·이진호·이경식·이정로·조성근·이건춘·서상훈·박희양·고원훈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환수 결정이 내려진 인물로는 ‘을사오적’인 이완용, 권중현, 이지용, 송병준, 민영휘등이 있다.
조사위는 지금까지 조사 대상자 454명 중 94명의 토지 774만4000여㎡(시가총액 1571억원)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실제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조사위 성적표를 보면 친일 행위자 94명의 토지 770만여㎡, 시가로 1571억원어치가 국가귀속. 독도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일본인 명의의 토지 36만여㎡를 환수했다. 

그럼에도 친일파 후손 대부분은 이에 불복해 조사위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 소송은 모두 21건이다. 이 중 19건에 대한 1·2심이 진행되고 있다. 친일파 후손이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를 포기하거나 소장을 낸 직후 소송을 취하한 것은 단 2건뿐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국가귀속 결정을 내린 땅은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617억원, 시가로는 무려 1350억원에 달한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세인들로부터 도덕적인 비난까지 받아 가면서 소송을 벌이는 것은 막대한 재산 가치가 있는 땅이 눈앞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실 그동안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이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으로 기득권을 보장받았다. 또 빠른 속도로 땅을 팔아 현금을 챙겼다. 게다가 해방 이후 줄곧 상류층으로 살아왔다.

친일파 후손들이 침묵을 깬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적극적인 ‘땅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는가 하면 이의신청도 급증했다. 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나서자 이때부터 재산환수를 추진하는 정부정책이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소송을 제기한 친일파 후손 중 대표적인 사례는 민영휘의 후손들이다. 민영휘는 일제식민통치 시절 식민지 경제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식산은행 설립위원,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조선교육회 부회장, 일선융화단체인 대정친목회 등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자작 작위 등을 수여받았던 인물.

이들 후손 20명은 2007년 11월 조사위 결정에 대해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조사위는 “조상 민씨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며 민씨에게 물려받은 시가 71억원 상당의 경기도 용인 소재 32만5531㎡의 땅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등을 지낸 민병석의 후손 민모씨도 조사위를 상대로 귀속결정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민씨는 2007년 조사위가 3차례에 걸쳐 자신이 상속받은 토지 1만4000여㎡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리자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것. 자신이 상속받은 토지는 민병석의 부친 생존 당시 취득한 것이므로 친일 대가가 아니므로 환수는 부당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추원 고문을 지낸 조중응의 후손들도 소송을 제기했다. “토지 6500여㎡를 국가에 귀속시킨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게 소송 이유다.

친일파 유정수의 후손 유모씨 등 4명도 소송에 가담했다. 2007년 11월 조사위가 유정수의 토지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리자 “국가가 가문의 토지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유종수는 1921년부터 1938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사실이 인정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육군참장·중장 및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친일파 조성근의 후손 9명도 소송을 ‘조상 땅 찾기’ 소송에 나섰다. 조성근 후손 명의의 청계산 일부 임야 77만3752㎡ (공시지가 45억원 상당) 등에 대해 국가귀속을 결정을 내린 조사위에 반발한 조치다.

“재산환수는 부당하다”
친일파 후손 소송 불사

‘정미칠적(丁未七賊)’ 송병준의 증손자 송모(64)씨 등 7명이 “인천시 부평구 일대 13만3000평의 땅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원인무효로 인한 소유권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2005년 11월 동일 토지에 대한 소유권확인 및 등기말소를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 이재곤의 손자 이모(79)씨도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씨는 조사위가 2007년 8월 내린 경기 김포시의 임야 15만2297㎡, 전 596㎡, 도로 5851㎡ 등 총 15만9620㎡에 달하는 토지의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소송 사유에 대해 “조사위가 친일의 대가로 보고 국가귀속 결정을 내린 토지가 사패지(국가가 개인에게 수확물을 받을 권리를 준 밭)로서 이재곤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완산 이씨 경창군파 문중의 선산이기 때문에 국가귀속이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재곤은 1906년 대한제국 황재실의 재산을 정리하는 데 앞장서고 고종의 퇴위를 강요했던 인물. 게다가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대한 제국의 모든 행정권을 일본 통감부 감독 아래 두는 한일신협약 체결을 주도하는 등 친일 행각을 벌여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송병준, 조성근 후손 등에 이은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은 번번이 패소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14일 친일파 민영휘의 후손들이 “당시 민영휘는 압박에 의해 친일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므로 국가의 재산환수는 부당하다”며 제기한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 취소 소송에 대해 패소 결정을 내렸다.

“친일행위는 반역행위
재산환수는 정당하다”

판결문에선 “민씨는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수여받았음에도 이를 거부·반납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친일파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친일행위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중대한 반역행위로 이에 따른 재산환수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민병석 후손 민씨도 제동이 걸렸다. 지난 1월8일 원고 패소 판결 결정을 받은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판결문을 통해 “민병석은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각종 이권과 혜택을 받았고 한일합방 이후 토지를 취득한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취득 자체에 정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8월, 조중응의 후손들도 패소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조중응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이권과 특권적 혜택을 받은 점을 보면 이 땅도 이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 들어서도 친일파 후손들의 ‘패소행진’은 계속됐다. 일례로 지난 2월8일, 서울고법 민사7부는 송병준의 증손자 송모(64)씨 등 7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조사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가 “송병준은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다. 송병준이 일제시대에 하사받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정당하다. 국가는 사회정의실현을 위해 한일합방의 공으로 받은 송병준의 재산 등을 환수할 권한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지난 2월11일 서울행정법원은 “국가에 귀속된 조상의 땅이 친일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 볼 수 없다. 유족들은 해당 토지가 평양조씨 종중에 소속된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성근은 평양조씨 승지공파의 직계후손도 아니며 이 토지를 사정받고자 상당한 비용을 부담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라며 고 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최근까지 친일 행위자 94명의 토지 770만여㎡ 국가귀속
독도 면적 두 배 달하는 일본인 명의 토지 36만여㎡ 환수  


친일파 유정수 후손 유씨 등도 올 2월15일 원고패소 처분을 받았다. 이날 서울 행정법원 행정3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헌법상 보호될 수 없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법률은 현재 시행과정에 있는 법률이므로 소급입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이어 “친일 인사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받은 토지를 환수하는 것일 뿐 유씨 등이 그의 후손이란 사유만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이재곤의 후손 이씨가 낸 국가귀속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문제의 토지에 관한 사패교지나 사패석 등 사패지임을 증명할 만한 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못했고 완산 이씨 경창군의 직계 자손들의 묘도 경기 양주시에 있었다가 1963년에 이르러서야 김포시의 토지로 이장되는 등 주장과 어긋나는 정황이 있다.

또 이재곤은 완산 이씨 경창군파 문중과 별다른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부터 1912년 토지를 이전받기도 했으며 한일합방 무렵 일부 토지에 관한 소유권 증명은 일제에 의해 주도됐던 식민지 토지정비 정책에 편승해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정부의 환수조치가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로부터 땅을 산 사람들이 그들이다.

실제 지난 2006년 9월, 박모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 동구의 토지 892㎡를 민병석의 후손 민모(71)씨로부터 1억62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이때는 특별법 공포 이후 시점.
이듬해인 2007년 11월, 조사위가 민병석의 재산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박씨는 졸지에 땅을 빼앗길 입장에 놓여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친일재산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산 땅이므로 귀속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 박씨는 1심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바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에 비약상고한 것이다. 이 같은 대립은 대법원이 박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을 맺었다.
그런가 하면 친일파의 땅을 잘못 샀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연천의 한 농민은 빚까지 내서 땅을 샀으나 일제시대 귀족의 땅이라는 이유로 1년 만에 국가에 귀속되기도 했다.

한편 최근 조사위는 또 다른 ‘칼’을 빼들었다. 일제 치하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했던 재산환수 대상자에 군과 경찰 등을 포함해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이다. 기존 조사대상과 별도로 친일 정도가 중대한 이들을 선정해 전원위원회 결정을 거쳐 이번 광복절에 발표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친일파 재산환수
범위 대폭 확대


각계각층은 이번 조치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군과 경찰, 예술계 등에서 활동한 친일 인사의 재산 환수도 추진하겠다는 뜻이란 이유에서다. 대상자에 누가 포함되느냐에 따라 사회 각계에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될 전망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찾기 노력이 집요해지고 있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을 되찾을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주지 말아야 하며 친일파 재산 환수에 대한 법원의 확고한 의지와 조사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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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