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특집③> 친일논란 기업들의 변명

“<당시 시대상황 따른 > 장사꾼 고충도 이해해야죠 ”

해방 이후 시작된 친일기업 역사 청산 논란은 건국 61주년을 맞이하는 오늘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다. 당시 일본과의 청탁으로 수해를 입어 이를 기반으로 사세를 확장했던 기업들의 기득권이 후세를 통해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탓이다. 일부에선 해방 이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일제시대 기득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해당 기업들을 지목하고 나선다. 달갑지 않은 지목에 기업들은 다양한 해명으로 입장을 대변한다. <일요시사>가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친일 논란이 제기됐던 기업들의 변명 노하우를 살펴봤다. 

역사적 배경 이해 없는 맹비난 ‘답답하다’ 호소
창업주 관련 예민한 논란은 ‘모르쇠’로 입 봉해 


민족주의를 내세운 일부 민간단체들은 3·1절과 광복절 등 때마다 일제시대 역사 청산을 외치며 친일 기업들을 지목한다.
일단 지목된 기업들은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늘 따라 붙는 친일기업 꼬리표가 달갑지만은 안은 탓이다.
논란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창업주가 직접 연관된 그룹의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창업주 변호에 앞장서는 반면 창업주가 아닌 직계 가족 등의 인물이 연관된 경우 ‘비약적 논리’라며 논란을 극구 부인하는 분위기가 대다수다.

다양한 후일담으로
창업주 적극 변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반응은 적극적 해명이다. 금호는 친일기업인으로 주장되고 있는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그를 옹호하고 있다. 그룹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일부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민족성이 강한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시절 당시 박 전 회장이 행한 항일 에피소드를 시리즈로 알려주며 해명에 나섰다.

첫 번째로 박 전 회장이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교장 배척 운동에 앞장서다 퇴학당한 사실을 내세웠다. 관계자에 따르면 1917년 당시 나주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 전 회장은 조선 학생과 일본 학생들 간의 다툼을 보고 일본인 가게이 교장이 일방적으로 일본 학생의 편을 들자 이에 불응해 교장을 몰아내자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결국 이듬해 박 전 회장을 비롯한 급우들이 퇴학을 당해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이 같은 소식이 확인돼 학교로부터 90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전라도 강진에서 경찰로 재직하던 당시 박 전 회장이 천황모독죄로 몰려 처형당할 위기의 최두식씨를 위해 유리한 진술로 목숨을 구해준 일, 창씨개명을 거부해 나주군청으로 좌천된 일, ‘조선인 80여 명을 강제 징용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20년 공직 생활을 마감한 일 등을 내세우며 창업주의 민족성을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시대상황에 따른 장사꾼의 고충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산그룹은 시즌마다 터지는 친일기업 논란에 ‘지겹다’는 반응이 먼저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민감한 부분이라 말 자체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더 이상 이런 논쟁은 멈춰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해방된 지가 언제인데 이런 논란을 100년, 200년 뒤까지 끌고 갈 작정인지 답답하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단체들이 본사를 친일기업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솔직히 당시 시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본과 소통해야만 했던 시대인데 그런 흐름은 고려치 않고 일방적으로 기업만을 질타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난감한 부분이라는 것.
또한 이미지 쇄신을 위한 자사의 노력이 많았음에도 그런 부분은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창업주인 박승직 전 회장이 국채보상운동 당시 자비로 100억원을 내놓는 등 국가 발전에 기여해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제2회 서상돈상’을 받는가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 환수 운동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고 해명했다.

지난 1919년 창업한 경방그룹도 창업주로 인해 친일기업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다. 창업주인 김성수 전 회장이 친일파로 활동했다는 주장들이 민족단체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경방그룹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본사는 기업 설립 시부터 국민주 공모를 통해 만들어진 회사로 내부적으로도 전 직원이 민족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친일기업 논란엔
하나같이 ‘발끈’

이 관계자는 경방그룹이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기업 가치로 발족한 점과 3·1 운동 당시 활동 거점이었던 태화강에서 기업창립총회를 개최한 점 등을 증거로 내세우며 민족기업으로서의 출발을 강조했다. 그는 “본사는 일제시대 당시 태극성을 상표로 사용한 기업”이라며 “조선총독부가 태극문양을 넣어 만든 옷감에 대해 민족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절해 편법으로 일본 현지에서 상표등록을 마쳐 국내에 제품을 출시했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창업주의 이름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할 예정이라는 일부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당시 사회지도층에서 내부적으로 힘을 기르기 위한 역할이 필요했었다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심정도 내비쳤다.
효성그룹도 친일기업으로 지목되는 곳 중 하나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인 송광자씨가 일제시대 식산은행 부일협력자로 추정되고 있는 송인상씨의 삼녀인 탓이다. 그러나 친일기업 논란에 대한 효성그룹의 입장은 단호하다. 친일기업 논란은 명백한 억지 주장에 소설이라는 것.

그룹 한 관계자는 “송인상씨는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로 일본 은행에 다니는 하급 행원에 불과했던 사람”이라며 “어떠한 의사결정권도 없던 그가 이후 수십 년이 지난 1980년대에 본사에 들어왔다고 해서 어떻게 친일기업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일제시대 대부분의 직장이 일본 소유였는데 그렇다면 당시 농사짓는 사람을 뺀 모든 직장인들이 민족반역자에 친일파가 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송인상씨가 만약 고문관과 같은 행적을 했다면 마땅히 처벌받아야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본사는 스스로를 민족기업이라고 자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일기업 논란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대림그룹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것. 대림그룹 한 관계자는 “친일로 논란되는 이규응씨는 창업주인 이재준 전 회장의 아버지이자 현 이준용 회장의 할아버지”라며 “창업주가 직접 친일 행적을 한 기업인도 아닌데 일제시대 아버지가 면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기업으로 매도하는 건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친일행적 논란에 ‘민족기업’ 항변
‘불가피한 선택’ 이해 구하기도… 


이 관계자는 “대림은 민족자본으로 지어진 기업이므로 절대 일본 자본과는 관계가 없다”며 “친일기업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업 설립비용은 창업주의 집안이 조선왕조 왕가 출신으로 당시 가문에 내려진 자산이 있어 투자했던 것으로 일본으로부터 수혜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창업주가 일제시대 주요기구의 고위관직에 이름을 올려 해방 이후 쭉 친일기업 논란에 휩싸였던 삼양그룹은 ‘할 말이 없다’는 간단한 말로 입장을 정리했다.
 
과거 반민특위 당시 친일파로 잡혀갔던 창업주 김연수 전 회장이 조사결과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었기에 더 이상 해명할 내용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 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도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친일기업 논란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일부에서는 당시의 기업 활동이 현재 국가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들은 친일기업 논란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의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CJ그룹 한 관계자는 “본사가 친일기업이라는 건 금시초문”이라고 전했다.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고문의 부친 손영기씨가 부일민족반역자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일관했다. 오히려  ‘관련된 주장의 출처가 어디냐, 논란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에서 굳이 옛 선친까지 끌어들인 것 아니냐’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본사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로 친가 쪽으로부터 자본금이 들어왔다”며 “손복남 고문 등 외가 쪽의 자본은 본사로 들어온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럼에도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를 묶어 일본의 수혜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건 연좌제적 성격이 강한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일기업 논란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은 보광그룹도 마찬가지다. 그룹 한 관계자는 “본사에  15년간 재직했지만 친일기업 논란은 오늘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홍석규 회장의 부친인 홍진기씨가 일제시대 법관으로 재직했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그것이 친일기업의 범주에 속해야 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는 모르겠다”며 의아해 했다. 일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으로 홍 회장과 부친의 행적은 별개로 봐야한다는 게 그룹 측 입장이다.

오너 개인사 이유로
‘모르쇠’ 일관하기도

기업의 근간인 창업 당시 상황을 창업주의 사생활로 치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업도 있었다. 현대그룹은 오너 집안 문제는 본사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친일 논란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이기에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가 없다”며 해명을 거부했다. 심지어 관련된 답변을 들으려면 해당자인 회장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동원INC도 대답을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룹 한 관계자는 “오너의 집안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일련의 논란들에 대해 기사화가 될 경우 확인은 하지만 관련 내용에 대해 윗분들에게 사실 확인을 해본 적도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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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