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특집②>친일논란 재벌기업 족보&현주소 해부

‘일제 완장’재벌들 출발부터 남달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대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물론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후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은 잔혹하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기업은 어디일까.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이긴 하지만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친일 내지 소극적 협일 행적을 보인 창업주 가문과 그들이 일군 기업 현주소의 대문을 활짝 열어봤다.

미완의 과제 ‘친일 청산’재계도 깊게 뿌리
협일 행적 보인 창업주 가문 ‘대대로 떵떵’


친일 논란 기업 하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가 일제시대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준호씨인 탓이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민족반역자로 분류된다.
호남의 대부호였던 현씨는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대표를 지내다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된 직후부터 일제 편에 섰다. 조선총독부 편찬 공로자 명단에 오르는가 하면 일본의 정책을 대중에 선전하는 시국강연회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 참여했으며 비행기까지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세 ‘부 세습’
정말로 깨끗할까

현씨는 이 댓가로 2002년 국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현씨뿐만 아니라 부친 현기봉씨도 전라남도 참사, 전남도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일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씨의 후손들은 재계에서 이름을 날렸거나, 현재까지 날리고 있다. 현씨의 셋째 아들 현영원씨는 1995년까지 신한해운(현 현대상선) 회장을 지냈다. 그의 부인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대주주로 현 회장의 사업적 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딸 넷을 뒀는데 차녀가 현 회장이다. 1976년 정몽헌 회장과 결혼한 현 회장은 사망한 부군 대신 그룹 지휘봉을 잡았다. 1남2녀를 둔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씨는 현대U&I 전무이며 차녀 정영이씨와 외아들 정영선씨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삼양그룹도 친일 논란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씨와 함께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연수 창업주 때문이다. 두 사람은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서 같이 활동했다. 역시 호남 대지주였던 김 창업주는 이밖에도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 많은 ‘일제직함’을 보유했었다.

게다가 1935년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에까지 등재됐다. 이런 이유로 김 창업주도 각 민족단체가 꼽은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다. 1948년 9월 시작된 반민특위에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정상참작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김 창업주는 19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국경제협의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 다시 발을 붙였다.

김 창업주는 7남6녀를 뒀다. 김 창업주가 1924년 설립한 삼양그룹은 그의 자녀들이 쪼개 갖고 있다. 3남 김상홍 명예회장과 5남 김상하 전 회장이 2000년대 초반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이어 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 김상하 전 회장의 장남 김원 사장이 바통을 받았다. 이들의 형제들과 사촌들도 그룹 계열사에 몸담고 있다.

삼양그룹과 사돈기업인 경방그룹도 김 창업주 손에서 컸다. 경방그룹은 김 창업주의 형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가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 전신이다. 1970년 경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줄곧 김 창업주가 경영하다가 1945년 광복 후 매제인 김용완 전 명예회장이 맡았고, 다시 그의 장남 김각중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김용완-김각중 부자는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김 명예회장의 두 아들 김준 사장, 김담 부사장 형제체제로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

김용완 전 명예회장의 부인은 김 창업주의 여동생 김점효씨다. 또 김각중 명예회장과 김상홍 명예회장의 부인들이 자매로 둘은 동서지간이다.
두산그룹 창업주도 친일 족적을 남겼다. 박승직 창업주가 주인공이다. 박 창업주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지냈다.

현대, 삼양, 경방, 두산, 동원INC 선대 ‘친일 족적’
효성, 금호, 대림, CJ, 대한전선 선조 ‘일본 나랏밥’


특히 박 창업주는 1933년 김연수 창업주와 같이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해 친일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소화기린맥주는 적산기업(일본인이 운영하다 버리고 간 기업)으로, 그는 이를 통해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1896년 개점한 ‘박승직상점’을 운영하던 박 창업주는 광복 후 불하받은 소화기린맥주를 장남 박두병 초대회장에게 맡겼다. 이는 두산그룹이 ‘맥주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박 초대회장은 6남1녀(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용언)를 뒀다. 두산그룹은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과 달리 지난 100년 동안 ‘박승직→박두병→박용곤’으로 연결된 대물림에 이어 차남(용오), 3남(용성)이 차례로 그룹의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5년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이 원칙이 깨졌고, 두산일가는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3월 4남(용현)이 그룹 회장직에 오르는 등 3남(용오)을 제외한 두산가 형제들이 그룹을 재장악한 상태다. 여기에 두산가 4세들까지 속속 경영일선에 전진 배치되고 있다.

아예 대놓고 일제에 적극 협력한 인물도 있다. 친일파 명단 상위에 올라있는 이해승씨가 그렇다. 이씨는 일제로부터 당시 조선인으론 가장 높은 작위인 후작과 매국공채 16만2000원을 받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등 식민지 지배에 앞장섰다. 친일 공로로 일본 정부의 대훈장인 이화대수장 등 각종 서위까지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조선 왕족이란 사실이다. 이씨는 조선조 25번째 왕인 철종의 형 연평군의 손자다. 이씨의 지저분한 행적은 이를 무색케 한다.
이씨는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됐지만, 왕족신분 때 나라에서 내린 재산은 고스란히 후세인 이우영 동원INC 회장이 꿰찼다. 이씨의 손자 이 회장은 현재 서울 홍은동에 있는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이 호텔이 있는 부지가 이씨가 남긴 땅이다. 이 회장은 부친 이완주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할아버지 이씨의 밑에서 자랐고, 그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홍은동 호텔 부지엔 원래 전계대원군과 회평군, 영평군 등 이 회장의 선조들 묘소가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1988년 이 선산을 포천으로 옮기고 호텔을 세웠다. 호텔은 이 회장이 경영하는 동원INC(60%), 스위스항공(20%), 네슬레(20%) 등이 투자한 합작형태로 운영되다 2001년 이 회장이 모든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 소유하게 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07년 이 회장 소유의 홍은동과 포천 등 토지 약 200만㎡(시가 300억원대)를 국가 귀속하기로 결정했고, 이 회장은 이에 반발해 환수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같이 직접적으로 친일 행보를 보여 민족반역자와 그의 후손들이란 오명을 쓴 기업인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일가 윗대 중 한 명이 일제 식민지 시절 ‘나랏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욕먹는’기업들도 있다.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대림그룹, CJ그룹, 보광그룹 일가가 대표적이다.

효성가 직계는 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조석래 회장의 장인 송인상씨가 민족단체들로부터 부일협력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1950∼1960년대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장관까지 지낸 송씨는 일제시대 식산은행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이다.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은 식산은행은 일본이 조선에서 신용기구를 통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은행이다. 송씨는 1935년부터 이 은행에서 근무해 심사부장까지 역임했다.

윗대는 행방불명
재산만 물려받아 

 
이 과정에서 송씨는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친분을 쌓았고, 이 인연은 사돈으로 이어졌다. 조 창업주의 장남 조 회장과 송씨의 3녀 송광자씨가 결혼한 것.
송씨는 조 창업주가 1978년 건강 악화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동양나이론 회장, 효성T&C 회장 등을 맡았다. 지금은 효성그룹 고문으로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인천 창업주는 1924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 영광경찰서 순사로 취업해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광복 무렵까지 경찰간부로 근무했던 박 창업주의 최종 계급은 경부였다. 일부 민족연구가들은 “이만하면 친일명단에 올라야 하는 수준”이라고 단언하지만, 박 창업주의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는 경찰직에서 나와 1946년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광주택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다. 박 창업주는 금호실업, 광주고속, 삼양타이어,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 삼화교통㈜ 등 계열사 6개사로 1973년 ‘그룹’체제를 출범했다.
이 중 사업다각화의 스타트를 끊은 전남제사는 적산기업으로 꼽힌다. 전남제사는 1926년 일본인 등이 세운 방직업체로 광복 후 전남대학교에서 소유했는데 경영부실로 어려움을 겪다 박 창업주가 1954년 인수했다.

박 창업주는 5남3녀(성용-경애-정구-강자-삼구-찬구-현주-종구)를 뒀는데, 딸을 제외한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 경영을 맡겼다. 형제경영의 시초다. 하지만 최근 3남 박삼구 명예회장과 4남 박찬구 전 회장이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여 이 전통은 산산이 부서졌다.
대림그룹은 이재준 창업주의 부친 이규응씨가 일제시대 경기도 시흥군 남면(현 산본 일대) 면장을 지낸 경력이 문제다. 또 이 창업주의 형 이재형 전 의원도 일제시대 때 총독부가 설립한 금융조합의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금융조합 이사는 총독이 임면권을 갖고 있었다.

민족반역자협회 측은 “대림가가 친일의 대가로 재산을 늘려나간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림그룹의 모태는 1939년 이 창업주가 부평역 앞에 문을 연 목재와 건자재상 점포다. 이 창업주는 그룹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을 장남 이준용 명예회장에게 물려줬다. 현재 대림산업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할아버지 손영기씨는 일제시대 때 경기도 장단군 군수와 총독부 소속 관료로 근무했다. 광복 후 농림부 양정국장과 경기도지사,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회장 등을 역임했지만, 지난해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부문에 선정됐다.

손씨의 딸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와 결혼했다. 손씨와 이 창업주는 사돈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손씨는 이 창업주의 부인 박두을씨와 외가 쪽으로 6촌 인척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은 손경식 CJ그룹 공동회장(대한상의 회장)이다.
보광그룹 일가도 민족단체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홍석규 회장의 부친 홍진기씨가 일제 치하에서 법관을 지낸 탓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목록에 오른 그는 광복 전까지 경성지법 사법관시보와 검사대리, 전주지법 판사 등을 지냈다.

1960년대 이병철 창업주와의 인연으로 삼성그룹 소유의 서울중앙라디오방송과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었다. 1967년엔 장녀 홍라희씨를 이건희 전 회장에게 출가시켜 삼성가와 사돈을 맺었다.
홍진기는 4남2녀를 뒀다. 장남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차남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3남 홍석준 보광창투 회장, 4남 홍석규 보광 회장 등 그의 아들들은 1999년 삼성으로부터 분할한 보광그룹 계열사를 나눠 경영 중이다. 막내딸 홍라영씨는 리움박물관 수석 부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의 상무를 겸하고 있다.

대한전선그룹 일가의 선대도 석연치 않은 행보를 걸었다. 설경동 창업주는 일본 유학 후 1921년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 판매 사업을 벌인 것. 1936년엔 함경북도 청진에 동해수산공업을 설립해 대부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려 북측 공산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어선 몇 척을 몰고 월남해 대한전선그룹을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설 창업주는 1954년 자유당 재정부장과 중앙위원 등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

“조상의 과오·오점
 후손에 책임 잔혹”

이에 대해 반론도 있다. 그를 조명한 여러 문헌들은 “설 창업주를 친일파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 누군가 억울한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4남2녀를 둔 설 창업주는 장남 설원식씨와 차남 설원철씨에게 각각 대한산업과 대한방직을, 3남 설원량씨에게 대한전선을, 4남 설원봉씨에게 대한제당을 넘겨줬다. 이 중 설원식씨는 일제시대 때 식산은행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임희숙씨와 결혼했다. 설원량씨는 양귀애 대한전선그룹 고문과 결혼해 2남을 뒀는데 장남 설윤석 상무가 그룹 적통을 계승할 준비로 분주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